〈 444화 〉134. 왜 이따위 전개가 됐나이까?(2)
신체를 손상시킨다는 건 실로 쉬운 일.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큰 부상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손발톱 사이에 가시만 찔러 넣어도 정신을 못 차린다.
하물며 몸이 제아무리 멀쩡하더라도, 발모가지를 분지르기는커녕 금만 쩍 가게 해도 전신이 무기력해지는 건 흔한 예고.
인간을 굳이 예를 들었지만, 대부분 생명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곤 하나, 일부가 잘려 나가도 회복하거나 자체적으로 수복하는 예시는 각종 생명체들 가운데서도 아주 드문 건 아니다.
하물며 식물조차도 그런 예는 허다하고.
그러나 그조차도 기간은 뒤죽박죽이며 조건들이 정해져 있다.
특정 현상, 증세에 강한 무엇조차도 환경이 조금만 바뀌는 정도로 아무것도 못 하는 예처럼.
이를테면 외래 식물인 부레옥잠은 국내에선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며 그 주변 수상 생태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게 외국에선 잡초이자 해로운 식물로 분류되는데, 되려 수질을 악화시키고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잡초라 불리는 만큼 번식력이 어마어마하기에 내버려두면 호수며 주변을 싹 다 덮어버리기 일쑤.
그러나 한국에선 안 그런다. 왜냐?
부레옥잠은 추위에 약하다.
지옥 불 반도의 4계절, 특히 겨울철, 차갑다 못해 몸서리가 쳐지는 날씨,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뚝 떨어지는 기온이 이들에겐 독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열대 지방에서 골칫거리가 되는 것과 달리, 한국 내에선 한창때 개체를 늘려 수질 개선만 열심히 하다 겨울철에 싹 다 죽어 자연적으로 청소가 된다는 모양이다.
이렇듯 어디에서 질긴 무엇조차도 환경, 여건에 따라 입장이 완전히 틀려진다.
똑같은 수달도 한국에선 귀엽다면, 아마존에선 악어도 씹어먹는 괴수인 것도 좋은 예시리라.
“후우.”
발목 부근까지 올라온 그건 단순한 안개에서 이젠 그보다 훨씬 더 짙은 무언가로 점차 변질 돼 갔다.
어느 의미로 드라이아이스에서 뻗어 나오는 새하얀 그것을 꽉 뭉쳐놓은 것처럼.
크아아아악!
이윽고 코앞까지 쇄도하는 그것들이.
단체로 허물어진 건 그로부터 몇 초가 흐른 직후였다.
약간만 늦었어도 몇 걸음 차이로 저것들과 랑데부(?)를 해야 했을 판.
그러나 거기까지 가진 않았다.
케겍! 케에! 켁!
고작 이쪽 기준에선 발목 부근.
그러나 널부러 진 것들에 한에선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을 거다.
아니, 사실 차이는 없다.
닿는 거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까.
그리고 어느 부위가 닿든 의미도 없고.
새하얀 안개가, 짙디짙은 안개에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도 그쯤.
간혹 녹색빛으로, 자줏빛으로 물들어가기도 했으나, 그럴수록 발버둥 치는 괴물들의 척수반사에 가까운 발악은 더욱 격화돼 갔다.
그렇다 쳐도 무의미.
이윽고 양이 불어난 탓인지 발목 부근까지 왔던 안개는 서서히 무릎 바로 아래로까지 높아졌다.
“자비가 깊으시군요.”
헨델이 이쪽 옆으로 와서 그런 소리를 해댄다.
자비는 개뿔.
산 채로 피며 체액을 뽑아내고 있는 건데.
그나마 신경 기관을 마비 시켜 통증을 안 느끼게 해주는 게 최대한 자비지만, 그조차도 당하는 입장에선 이만한 공포가 없을 거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공포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거기다 자신이 죽어가는지, 살아는 있는지 제대로 실감도 안 되는 상태로 실시간으로 죽어간다는 실감을 체감한다는 건, 다른 의미로 지옥이 따로 없지.
그러기에 호흡기관으로 침투시킨 입자로 뇌에까지 영향을 줘서 아예 그런 사고며 인지, 인식 자체를 와해시켜버려 멍 때리게 만들고는 있지만, 인간이 아니니 제 몇의 기관 등이 있고 이런 경우, 단순 조치가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
또 나름 독성 물질로 체내에 침투시켜 증상을 발생시킨다 쳐도. 정체불명의 면역 체계를 비롯한 내성 체계가 생겨날 수도 있고.
어차피 한번 솎아보면 이에 대한 데이터는 쌓이니 이후엔 그럴 여지조차 없애버릴 테지만,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불필요한 행위였다.”
이윽고 무릎까지 치미는 알록달록한, 그러나 불길하기 짝이 없는 안개 같은 입자를 허공으로 치솟아 한데 뭉쳐 끌어모았다.
그러자 아주 절묘하게, 흉악한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면에 널려 있는 건 미라처럼 바짝 마른 마물들, 괴물들의 시체들이 대부분.
피륙이 주변에 널리 퍼지면 그건 그것대로 환경에 지대한 오염 현상 등으로 작용할 테니.
적당한 거야 그렇다 치지만 이런 세계는 그런 시체가 뭉텅이로 쌓여 있는 것만으로 안 좋은 기운이며 에너지, 쓸데없는 악 영향을 골고루 미칠 수가 있다.
뭐, 미관에 안 좋은 건 당연하고.
그러나 저런 식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관리하듯, 습기를 쫙 짜내 건조 시켜버리면, 저 상태로 장기간 내버려 둬도 알아서 토양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악영향을 크게 주진 않을 거다.
…어쩌면 저 고기로 현란한 파티를 꿈꿨을지 모를 몇몇 마물이며 괴물들에겐 미안한 조치가 되겠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먹잇감이 사라진 셈이니, 주변 생태가 요동칠지도 모르겠네.
“이 주변에 널려 있는 몇몇 마물들이 먹잇감이 없어 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으니, 그거까지 고려해서 철저히 박멸 작업을 펼쳐두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잘도 답하시네.
어휴.
그나저나 이걸 어쩐담?
머리 위쪽, 사실상 허공에 붕 떠있는 거대한 구체가 불길하기 짝이 없게 넘실대고 있었는데, 애써 암축하고 또 압축해도 축구공 크기 이하로는 도저히 압축이 되질 않았다.
이 이상 시도했다가 터지기라도 하면, 주변에 물난리…라기보단 마물들의 피와 체액과 기타 등등으로 범벅이 진 것들이 주변을 한가득 대 환장 파티하듯 적셔댈 텐데, 이걸 마냥 풀어버릴 수도 없고.
‘물에다 던져 넣자니 그건 그것대로 문제고.’
기왕이면 바다면 상관없는데, 일반 강가는 아무래도… 호수는 더더욱 말이 안 되고.
지면에 뿌린다? 토양 망가뜨릴 일 있나.
아닌가? 피며 체액들도 토양에 도움이 되려나? 이건 좀 헷갈리네.
시험을 해보면 어떨까 싶지만 그건 나중에 해본다 치고.
뼈를 비롯해 몇몇은 되려 농사지을 때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이 주변은 아마 시간이 흐른 뒤 몇몇 작업만 가해주면 좋은 농지가 될지도? 아니면… 또 다른 자원 채집을 위한 그럴싸한 장소가 될지도? 그 경우 꽤 시간이 흘러야 할 테지만….
“가지.”
뭐 수련한답시고 당분간 유지한 상태로 다녀야 될지도.
덕분에 기존처럼 날아다니기가 영 껄끄러워진 덕에, 별수 없이 말 위에 몸을 얹기로 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얌전히, 이것들이 괜한 착각 안 하도록 언행에 갑절은 신경을 쏟아가며, 이들의 훈련 겸 토벌 작업을 차분히 지켜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편하진 않았다.
머리 위에 붕 떠 있는 저 빌어먹을 구체를, 24시간 내내 유지 시켜야 했으니까.
마치 쓰레기통 없어서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기분이다. 어디 버릴 데 좀 안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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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그 소식 들었는가?”
“무슨 소식?”
“황제가 민생을 위해 친히 마물들을 토벌하고 다닌다던데….”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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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문이 각지에 돌고 있던데, 짐작가는 바가 있더냐?”
“…짐작이라.”
황후 마누라가 드물게 근엄한 얼굴을 무너뜨린 채 히죽거리고 있었다.
뭔가 재미난 건수를 발견했나 본데, 왜 나는 전혀 짐작이 되질 않는 걸까.
“난 단지 망할 것들 뒷수습하고 다닌 게 전부인데.”
하라는 거나 할 것이지 자꾸 괴상한 오해를 해댄 덕에, 이것들이 벌이는 놀라운 뻘짓을 처리하고자 얼마나 생고생을 해댔는지.
“그렇다곤 하나 결과적으론 긍정적인 전개로 이어진 바 아니더냐?”
“…그렇기야 한데.”
의도된 게 아니라 우연, 요행, 소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은 격이 된 거라 영 찝찝했다.
“특별히 불만 사항을 언급하지 않는 걸 보아하니, 전력 면에선 문제가 따로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충성심들은 여전하더냐?”
“나야 모르지. 그들 속내를 내 어찌 알리.”
내 말 한 마디를 괴상하게 해석하는 게 실상을 날 엿 먹이려는 고도의 술책인 건가 하는 의혹과 의심암귀 덕에 골머리를 앓아댔던 판인데.
어쩌면 후궁으로 오라는 것도 거절한 것도 일방적으로 물 먹이기 좋은 건수가 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것임을 진작 눈치채고 그랬던 건지도?
“너무 복잡하게 생각 말거라. 세상의 이치는 한치 앞도 넘볼 수 없으나, 의외로 단조로운 법이다.”
“…뭐 강가에 물이 흐르듯 단조롭기야 하지. 자연 재해나 현상 등이 몰아치지만 않는다면야.”
“그들에게 있어선 네가 그런 재해적 존재였을 터. 틀린가?”
“…그건 그렇겠지.”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구나. 아무튼 고생 많았다. 며칠 후면 멜도 황궁에 복귀한다 하니, 요 며칠간은 조금 느긋하게 지내도록 하자구나.”
“오, 마치 당신도 한동안 쉴 것처럼 말하는구먼?”
“본인이야 그럴 생각은 없지만, 본인이 너무 쉼 없이 달리는 말처럼 일해서야, 아랫 사람들이 버텨내질 못한다 하여, 충언을 받아들여 한동안 일손을 내려 놓고자 결심했느니라.”
“…그거 참 망극한 일이네.”
누구누구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니 당분간은 숨을 돌리자구나.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정치의 일환이니.”
“예예, 알아모시겠습니다.”
정 할 일 없다면, 나가기 귀찮으면 마작 판이라도 굴려 방콕을 유도해야겠다.
…계속 싸돌아다녔는데 또 인간들 눈치 보며 활보하긴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