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5화 〉134. 왜 이따위 전개가 됐나이까?(3)
정치라는 건 귀찮다.
아니, 그냥 숨 쉬는 거 자체가 귀찮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면 생각을 안 하면 존재를 안 해야 할 거 아니냐.
인생 망할….
“상황이 저 지경인데도 들고 일어섰다는 건 정말 갈 데까지 갔다거나, 뒷배가 있다는 건데.”
믿는 구석이 있으니 날뛰지, 믿는 것도 없는데 개긴다? 그 정도로 생각이 없을 리가….
라고 생각한 내 대가리를 쥐어 박고 싶었다.
“나도 황제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래서 들고 일어섰다?”
“그러하답니다.”
미친 소리다.
아무래도 내가 황제랍시고 자리하고 있다 보니, 이것들은 우리 세계 기레기 마냥 헛소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편집해서 날 진노케 하여 자기들 뜻대로 다루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닌 이상 저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나 황제 쫌 해보자카는데 와! 문제 있나?!”
“…….”
포박된 상태로 무릎까지 꿇려져 있는데도 잘도 저러고 있다.
이쯤 되면 그냥 기질 자체가 맛탱이가 간, 뭐 그런 부류로 봐야하려나.
본래 세상엔 상식을 벗어난 기질을 지닌 이들이 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게 멋있는 줄 알고 들이박아대는 뭐, 그런 걸 로망으로 여기는 그런 부류들.
차라리 돈키호테 마냥 자기 나름 의롭다 믿기라도 한 상태로 그런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시전한다 치면, 깨알은 동정을 해볼 수도 있겠다만, 이건 뭐 야욕 덩어리다.
실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덕에 꽤 주변에 호응도 얻었고, 몇 차례 국지전 및 자잘한 전투에서도 승리했었다고 한다.
…뭐 그쯤 됐으니까 내 귀에까지 이런 소란이 들려온 걸 테지.
“이 귀찮을 짓을 뭐가 좋다고 하고 싶다는 건가?”
알현실은 내 불성실한 발언에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그도 그럴게, 정말로 귀찮은데 뭐가 좋다고 황제질이 그토록 하고 싶다는 건지, 한 번 들어나 보고 싶다.
“말해보라. 하고 싶다면 필시 정당한 연유가 있었을 터.”
“싸나이라면 할 수 있는 게지. 무어 그리 잔 말이 필요카나?!”
“…….”
번역기를 차고 있었다면 저 구질구질한 사투리? 지역 방언이 정상적으로 들렸으려나?
오히려 이쪽 언어에 익숙하기에, 다른 의미로 괴멸적인 사투리로 들린다만.
“그러니까, 그냥 되고 싶으니까 벌였다? 그러면서 주변 애들 싹 다 죽여가며?”
“증당한 승부 아니갔나! 치고 박고! 결가는 저 하눌만 아신 니라 카니!”
“…….”
지랄.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구나.
“허허허허….”
나는 명목상 입헌군주다.
그러니까 재판을 하니 뭐니 이럴 자격 같은 건 없는 거다.
그러나 일단, 이건 나로 인해 비롯됐기에 본의 아니지만,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문제의 발단 중 하나로서, 이곳에 참가하고 있던 셈이었다.
괜한 불똥이다. 말도 안 되는 오해고.
“정말 쓸데없는 짓이로군. 무턱대고 생명을 학살해대고, 모두가 지켜가는 도리며 법을 어겨가며,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서 한다는 변명이 고작 그따위라 이건가? 이거이거… 대단한 족속이로군.”
정했다.
“좋다. 그럼 한 번 도전해보아라. 날 이기면 황제 자리, 그까짓거 그냥 건네주마.”
“마 호쾌하구마잉!”
“대신 네 놈이 패할 시, 네놈을 비롯한 네놈과 연관된 모든 존재를 말살한다. 종족, 인종, 피륙을 가진 모든 것들, 가축서부터 네놈의 터전, 밭, 가옥, 흔적을 비롯한 모든 걸, 모조리 갈아업고, 네놈의 이름, 역사, 그 자취며 흔적. 모든 걸 전부, 짐의 이름을 걸고 말미암아 모조리, 없애버릴 테다. 그럼에도 네 녀석을 짐에게 도전할 텐가? 지금 잘못을 시인하고 만민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100번 외치고 자결한다면, 최소한 네 핏줄의 명맥만큼은 챙겨주마.”
“거 무시무시한 새끼로구마.”
“네 녀석이 감히 누굴 향해 그런 막말을….”
“조용.”
손을 휘저음과 동시에 수막을 쳐서 소리를 죄다 차단해버렸다.
사실상 주변은 적막으로 뒤덮였지만, 그들 스스로 제아무리 입을 놀린다 한들, 그 목소리, 음성이 외부로 퍼져가는 일은 없었다.
졸지에 전부가 벙어리가 되어버린 상황.
“짐은 애초에 이 자리에 있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아는 것들은 알겠지만 짐은 황권도 내려놓고,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그것이 평화와 세상의 안정에 이바지한다 여겼기에 그러고 있을 뿐이지, 실상은 이따위 자리 따위 언제든 부숴버려도, 내심 개의치도 않을 참이었다. 이 몸의 신변과, 짐의 주변에 해악을 끼치는 무리들, 족속들, 버러지들만 없었다면야!
그래, 뭐 정당하게 좋은 황제 되겠구다! 하면 선양할 생각조차 지니고 있었다. 선양이 무엇이냐 묻거든, 이리 답해주마. 혈연도 핏줄이 아닌 이조차, 황제직을 물려줌을 의미한다. 그래, 그래도 짐은 개의치 않을 참이다. 세상의 평화와 안정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한데… 그대는 뭐라 하였나? 황제따위 좀 해보겠다고 자기 세를 불리고 이를 과시하고자 주변인을 학살하고, 야만스러운 욕구를 충족하고자 전투를 벌여 그깟 몇 번 승리했다고 기고만장해져서 하늘을 논하며 자기 잘난 맛에 취해 뭐가 어쩌고 어째? 포부는 좋고 의지는 가상하다만 그게 타인의 죽음을 강요하면서까지 필요한 것이더냐? 살육의 정당성을 이야기할 참이더냐? 약육강식? 강자가 약자를 취하고 더럽히고 짓밟고 죽이고 조롱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그랬다면 짐은 시체로 산을 쌓았고, 재물로 탑을 쌓아 저 하늘 끝까지 닿았으리라. 그러고도 능히 남았지. 그런데도 왜 그런 짓을 안 하는가? 그게 정녕 네놈이 믿는 하늘이, 신이, 조상이 바라던 그게 맞느냐? 그까짓게? 고작 그따위 그릇으로?”
……하아.
빡치네.
그냥 재미 삼아 도전자랍시고 오는 거라면야 그러려니 한다.
근데 말이다.
“네 녀석은 짐이 가장 경멸스러워하는 짓을 벌였노라.”
넌 선을 넘었어.
차라리 이권 다툼, 정복 욕의 일환으로서 정복 행위를 했다고 하면, 그나마 정상 참작이라도 해줄 수 있다 치자. 시대상이 이러하니 치고박고 전쟁 놀음하는 거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조선조차도 놀이로 석전해서 사람이 마구 죽어나가지 않았던가.
그 세종대왕님조차도 석전 개꿀잼하며 즐기며 구경했을 정도인데.
거기다 석전, 돌팔매질로 승부보는 그 놀이는 무려 삼국시대 때도 빈번하게 행해왔던 일종에 놀이 겸 전투 훈련 같은 거였다.
그래, 그런 걸로 죽으면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지만, 뭐 그런 문화라는데 어쩌겠나.
인간이 좀 험하면 다치고, 심하면 불구가 되고 죽을 수도 있다. 고대엔 그런 게 흔했으며, 의학이 발달 안 했던 시절엔 작은 상처 만으로 감염이니 합병증이니 온갖 뭔가로 죽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 욕망에 충실한 거야 그럴 수 있다 치자고.
그런데….
왜 그걸 나하고 결부하고서 개소리를 씨부리는데.
가만히 넋 놓고 있다 뺨 맞은 난 뭐냐고?
“결정하지? 도전하겠느냐, 스스로 자결하여 명맥만큼은 이어가겠나? 단언컨대 자비를 바라지 마라. 네게 죽임당한 무고한 이들을 짓밟고 도려내듯, 네놈의 그 더러운 핏줄과 영혼을 이 세상에 한 조각, 한 점도 남김없이 모조리 태워 불살라 소거해버릴 테니. 그러니 제발 의기를 발휘해 내게 도전하거라. 포기하지 말라. 스스로 죽는다니, 이보다 치욕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 전사인지 쓰레기인지 뭔지답게 덤벼 보거라. 어서.”
감정을 가라앉힌다.
감정은 들끓고 있다지만 되려 음성은 착 깔리고, 표정은 차갑게 식어갔으리라.
늘 그랬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해왔다.
행복을 추구하고, 과한 자극에 휘말리면 거기에 적응하고 물들고 이러면 결국 더한 자극, 더한 쾌락, 더한 무언가를 갈구하게 된다.
그러니까, 평행선을 유지하자.
딱히 강렬한 행복, 쾌락, 절정감 등이 없어도 좋으니… 가급적 평상시는 무난하게, 단조롭게….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이성이 마비된 로봇이나 AI도 아니고, 늘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고 자제할 수 있는 그런, 그런 초인적인 존재냐 하면… 전혀.
지금도 체내 호르몬을 조절함으로써 개빡치려는 기분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있는 판인데.
일부러 심박을 낮추고, 혈압도 낮추고 있는 판이다.
그래, 인간의 감정이란 건 어차피 이러한 작용에 일환.
얼마든지, 언제든지 제어 가능한 영역이다 이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이걸 참아낼 필요가, 제어할 필요가 있긴 한가?
그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라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참지 않는다면?
“왜 대답이 없느냐? 할 수 있는 시도는 죄다 해보라 하지 않더냐. 손발이 부족하면 더 만들어보던가. 특수한 능력, 초능력 등이 있다면 전부 구사해 보아라. 마법은? 주술? 주법? 저주는 또 어떤가. 무기는 뭔가? 도검? 창? 철퇴? 도끼? 투척 무기? 장병기? 중병기? 뭐지? 맨손인가? 뭐 소환할 게 있으면 해봐도 좋다. 싹 다 꺼내 보아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닌가? 사제는 있나? 저자의 몸을 치유하거라. 만전을 기하도록, 결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도록! 뭐냐 그 표정은? 혹여 은총이라도 있으면 싶더냐? 각 교단 사제는 저자의 신체를 이롭게 하는 은총을, 가호를 걸도록 하라. 그래, 그 다음은? 뭐가 또 필요한가? 약물도 필요한가? 아님 허기가 지니 힘을 못 쓰겠나? 만찬을 차려 그걸로 배를 채우면 변명의 여지가 없겠군. 먹은 게 뱃속에 쌓여 몸이 무거워 만전을 기하지 못했다는 개소리를 하려거든 딱 적당량만 챙겨주도록 하지. 필요한가? 어떤가? 어서 대답해보거라. 다 해준다니까?”
“…….”
왜 입을 싸 물고 있는 걸까.
정말로 뒤지고 싶은 건가?
“5초를 주겠다. 답을 하지 않으면 짐이 결정하마. 인생의 끝조차 정하지 못하는 놈이 황제를 논해? 왕은커녕 도적 무리의 수장조차 무리겠군. 개죽음당하기 싫으면 선택하라. 네놈 스스로 가장 떳떳한 결말을! 최후를! 종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