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직하니 떡을 침. 이세계에서 (448)화 (448/454)



〈 448화 〉135. 나는 건전함과 야릇함으로 이루어졌노라.(3)

“검을 배우고 싶어요.”
“배우면 될  아닌가?”


응?
왜 그런 답변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인 걸까.


“저, 정말로 괜찮은 건가요?”
“안 될 건 무엇인가?”

키도 작고 아담한 크기의 소녀다.
나이는 대략 10대 중후반쯤 됐을까.


푸른 머리에 푸른 눈을 지닌, 비교적 개성미가 넘치는 미소녀였다.
우리 세계로 치면 고등학생에 갓 입학했을 나이지만, 이곳 세계에선 애를 출산하고도 남을 나이이자 시기.
거기다 손에 물 한 번 묻혀 본 적 없는 이 소녀가 뜬금없이 검을 배우고 싶다?

그나저나 왜 하필 검일까.


검에 대한 로망은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 온다.
뭐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심심하면 검을 들고, 전설  영웅들이 검을 쥐고 자빠졌으며, 기사란 직업이 대세화를 굳힌 이곳 세계에서 검이란 상징성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
그러나 실상 전장에선 검보단 다른 무기들의 효율이 압도적이다.
애초에 검이라는 게 얼마나 다루는 난도가 높은 무기인데.

그나마 원래 세계로 치면, 서양식 검은 조금 다루기가 그러려니 싶지만 동양식 검법? 검술로 들어가면 이때부턴 많이 헷갈려진다.
진짜가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아, 없다는 건 아니다. 내가 어찌 그걸 장담하리.
다만 있다 쳐도 대중적으로 알려지거나 알리려 하는 그거에 대해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할 거다.
상징성 자체로 만족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러니 실전이랍시고 춤추는 거 말고 말이다.

사람을 진짜로 샥샥   없으니, 시연 차원에서야 그렇다고 치지만… 어떠려나.
차라리 로마식 그라디우스 같은 거야, 과장 없이 철저하게 군용 병기로서, 도구 겸 병장기에 걸맞은 쓰임새로서 다루기 용이해 보인다만, 동양권에서도 그놈에 검에 대해 묘한 환상을 지니고 있단 말이지.
검으로 음양이니 태극이니, 삼재며 사상을 어쩌고, 오행이니 육합이니, 칠성이니.

…내가 제일 어이없던 게, 그런 무술 한다는 인간이 무협지 보며 영감을 얻고 초식을 연구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다.
왜? 아예 무협지 작가한테 천마신공이라도 알려달라지? 구양X공은 어떻고? 건곤x나이는?!


거기까진 좋다 치는데 그걸로 실전이 가능하다?
그래그래, 정말, 정말 이해해서 거기까지도 이해한다 치자!
그런데 그조차도 넘어 나중엔 실전을 넘어 뭔가를 초월할  있다?


이보세요, 이건 좀 선을 넘은 거지.
진짜로 보여줘도 헷갈릴 판에 보여주지도 않고 말만 뭐라 뭐라.

현실적으로 접근해보자.
일단 조선 시대 이전에도 뭐가 어쩌고쩌고는 찾아보면 엄청 많다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고.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전승, 계승이 됐냐 여부다.


당장 가깝기로 임진왜란 때도 활을 다루는 건 여러모로 압도적이었지만, 근접전으로 가면 개손해라며 그 이순신 장군님조차 선상에서 달라붙어 치르는 근접 전투는 피하셨다고 하질 않던가.
 선조가 친히 명해 각 잡고 왜놈들 무기를 전리품 및 군수품으로서 취급해 이를 국가적 사업 느낌으로 타국에 내다 판매까지 했다는 기록도 있다.

무엇보다 왜놈을 붙잡거나 조선으로 귀화한 왜인들에게 왜검법을 따로 배우고, 이를 시연 및 교육시키게 하여 여기에 적응하고 대응 및 참고, 습득했다는 기록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말은 뭐다?

유교의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사농공상을  것 취급해 삼국시대에 기술을 전해주던  관계가 제대로 역전됐다는 의미일 거다.
여말선초 당시만 해도 조선은 결코 약한 국가가 아니었다.
세종 시기까지만 가도 조선은 여전히 동아시아 주변에선 나름 깡패 소리까지 듣던 나라였다.
꾸준한 예방 전쟁으로 만주 주변에 양아치 짓까지 했다 하니.


근데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된 탓일까.
뭐 국경지대에선 여전히 활약들을 했다지만, 곪아 가는 건 도리가 없었으며, 전투의 구성, 메타가 바뀌어 가는데 이에 대응  한 것도 실책이라면 실책이겠지.
오히려 화약에 대한 연구, 총포며 포에 대한 연구는 세종  아예 특별 기구까지 설립해 국책으로서 다루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그 이후에도  명맥은 끊기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니까 나중에라도 왜란에서 그러한 기술들이 도입돼 금세 적응, 활용해 왜놈들조차 듣도 보도 못한 기술들로 엿을 먹인  테고.

그러나 실질적으로 평화로운 시기, 권력 놀음하는 이들에게 이런 쪽이 중요할 것인가, 아님 고고한 선비로서의 체면치레를 다지며, 뒤로는 자기들 밥그릇 챙기며 욕망을 충족하는 게 중요했을까?
어쨌든 냉병기 기준으로, 병기를 다루는 기술도 그렇고, 당장 보급화 된 병장기술도 그럴 테고.


군에선 언제나 합리적으로 쓰일 법한 기술을 다뤄올 텐데, 만약 시대적으로 전통적 기술 등이 그토록 대단했다면, 그리고 그게 유서 깊은 가문의 뭐시기였다면, 필시 그 편린이 어딘가에서 드러나야 마땅하며,  영향을 받은 무언가들이 나와야 정상인 것.
이건 너무 자의적인 해석인가? 그렇다면 조금 판타지 및 무협적 요소를 섞어 고고하게 절대적인 무공이지만 악용될 걸 우려해 일인전승 혹은 비인부전. 좋다 이거야.


그러나 전쟁이라는 극한의 혼돈 속에서 그 계승자들이 진짜 있었다고 가정한다 치면, 과연 이들이 얼마나 활약하고, 살아남아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했을까. 그리고  다음은? 공과를 인정받고 과연 제대로 대우를 받으며 가세를 이룩해 새로이 양반 계층, 권력 계층에 무사 합류가 가능했을까?


권력자 견제하거나 죽이기 바쁜 그놈의 조정 신료들이,  혐오하는 칼잡이 망나니들이 자신들과 나란히 서는 걸 과연 용납은 했을까?
전쟁이 끝난 뒤, 정리 차원에서 공을 인정받고 대우받은 예도 무수히 많지만, 공을 격하 당하거나 너무 나대서 되레 누명을 쓰고 죽어 나간 수도 상당하다고 한다.

그렇게 왜란, 정유재란까지 끝냈다 치자.
그 이후 조선 역사상 최악의 기근들이 연달아 기다리고 있다.


응? 2번의 호란은 또 어디 가고? 그때 끌려간 조선 노예만 60만이 넘었다는데….
노예가 그 정도로 잡히는 동안 사람은 안 죽었을까.

그것조차 어찌  견뎠다 쳐도,  이후는?
그조차도 끝까지 견뎠다 쳐도! 조선말서부터 일제 강점기 때로 접어들면?

이렇듯, 이 극한의 환경, 상황 속에서 온전히 제대로 된 기술과 비전을 계승하려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고행이었을지, 나로선 도저히 그 고통과 역경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러면, 그게 가능하려면 무조건 있는 집안이어야 타당하다는 건데, 이러면 설득력이 좀 있다.


민초에서 나날이 계승되어 온 어쩌고저쩌고.
산중에서 어쩌고저쩌고.
…농사하고 일하고 먹고 살기도 빠듯하고 바쁠 텐데, 그걸 고수가 될 정도로 단련한다? 타고 난 재능충이면 가능은 하겠는데, 이게 과연 보편성이 있기야 할까.


합리적인 예로 들어가 보자.


그런 의미에서, 왜놈들이 우리 도공이며 장인들 납치해다가 귀히 대우해줘 그들 가문들의 후손이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예는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그 망할 열도의 간장 문화가 임진왜란 이후 급격한 발전을 이룩했단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것들도 작정하고 인재를 빼앗아갔다고 봐야 할 거다.

유별날 건 없다.
삼국시대 때엔 그런 식으로 타국, 적대국 후려쳐 노예 빼가는  일상에 가까웠다니까.
국력을 늘리는 요소 중 하나고


로마를 보라.
군사와 노예로 사실상 비대해진 제국이었다.
그리고 노예 중엔 당연 기술공에 대한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그래도 납치당한 비운의 장인들도, 비교적 조선에서보다 받는 대우가 좋았다며 만족스레 정착한 이도 있는가 하면, 고향을 그리워해서 그 정체성만큼은 유지하려 노력했다지만, 어차피 거기서 집도 주고 아내도 주고 녹봉도 챙겨주며 존중을 해주는데, 마음이 안 돌아가는 게 이상한 걸 테지.


다시 검법 혹은 무술 쪽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지나 정조대왕 시기, 이에 대한 복원 및 개발, 또 주변국의 병장기술들을 정리해 이를 군사적으로 보급하려 했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이게 정조 생전엔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가 싶다가 사건  터지고, 정조 사후엔 이조차도 반쪽으로 머물렀다.
물론 그 기술이며 옛것을 계승하고, 그걸 현대에서나마 복원하려 노력하는 이들에 대해선 멋지구나하는 생각은 들지만,  거기까지.


여전히 그놈의 제대로  ‘검법’ 이라는 것들에 대해, 나는 여러모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단순 병기술 개념이면 이렇게까지 오버할 필요는 없겠지.
어쩌면 나도 무협지에 영향을 너무 과하게 받은 건지도.


그렇게 단정 지으면 간단해지지만, 결국 요는 진실이냐 거짓이냐다.
또 진실된 기술, 계승된 기능이라 하여 그게 실전성이 있으냐 하는 것.


옛것이 무조건 대단하고 좋다는 편견은, 다른 의미로 시대를 역행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일부 전통 혹은 비전이랍시고 과대 포장하는 것들을 막상 보면, 아주 가관이다.
차라리 복싱이며 무에타이, 가라데, 카포에라 같이 뭔가 앞뒤가 맞으면 이해라도 하는데, 무턱대고 고대서부터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익히면 고수를 넘어 신선이 된다 어쩐다?

흐음…….


솔직히 본사와 접하기 이전까지 그런 개소리는 눈곱만치도  믿었는데, 이젠 조금 믿을 만한 신빙성이 생겼다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익힌 그게 정말로 신선의 경지에 이를 무언가인가에 대해선 솔직히 장담을  하겠다.
근데, 정말로 그렇게 대단하면 왜 실전 격투에서 효력을 못 보이는가.
하다못해 무협지에서 나오는 것처럼 거대한 기암괴석을 때려 부순다던가, 그조차도 그러면 최소 사람 크기 만한 바위 정도를 맨손 혹은 병장기를 이용해 어떻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닐지?

뭐, 홍보 마케팅 차원에서 과장  했다 치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다.
그러면 최소 사람  사람 간의 대결에서의 실전성은?

…뭐 사정을 하나하나 논하면 끝이 없긴 하지.
어쨌건 간에 나는 검에 대한 환상이 없어진 지 오래다.
검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무협지 식 무공에 대한 것도.


그 인식에 쐐기가 박히게 된 건, 처음 이곳 세계 왔을 때 이것저것 배우고서 더더욱 그랬다.
이젠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원래 세계에서 말하는 그런 뭐시기에 대해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됐다.
과거엔 완벽한 체념이었지만.

…그리고, 내가 여기에 이것저것 아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이걸 배워보려 온갖 시도를 해봤기에 그런 거다.
젊을 적에 원래 세계든, 본사 입사  파견된 이곳에서든 간에 말이다.
이곳 세계에서 처음에 소드마스터가 될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더러 있었고.

근데 나란 남자, 마나하고 그다지 친한 몸이 아니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포기했지만.
마법이든 그놈의 소드 뭐시기든 마나라는 걸 다룬다는 개념인데, 그거하고의 관계가 썩 좋지 않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적성에서 아웃인 거지.
그렇게 생각하자 되려 편해졌다.


무엇보다 현대식 총과 미사일의 시대에 검이며 칼이라니… 말 그대로 로망이지. 로망.

그러나 이곳 세계에선 그 로망이 직접적으로 와닿는 세계.
그러니까, 그걸 배우고자 한다면 뭐, 못 하게 할 이유는 없겠지.
자기 호신 용도로도 좋을 테고.

…아, 갑자기 빡치네.
 제대로  걸 배워보고 싶다는 희망 사항이, 절망으로 바뀌어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탓일까.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이런 티를 내서 괜히 눈앞에 소녀에게 불안을 안겨줄 순 없기에, 잔기침 한 번으로 그 안이한 기분을 싹 털어냈다.

“그러니 그대에게 걸맞은 검술 선생을 구해주면 되겠구나.”

그렇게 상황을 일단락 짓자, 소녀가 감동하듯 눈시울을 글썽인다.


“저, 정말로 제가….”
“짐이 누누이 말했지만, 안 될 건 없다. 비도덕적이고, 비인도적이며, 정도에서 벗어난, 그런 천인공노할 무언가만 아니라면, 하고자 하는 것엔 어떠한 제한도 없으리.”

아무튼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면담을 통해 희망 사항 등을 전해 들었다.
근데 이조차도 정치의 교섭의 일환으로 착각하는 부류들은 따로 분류해둔 다음.


따로 공터로 불러 모았다.
대략 열 명 정도.
딱 달라붙어 집중 조련하기 아주 좋은 숫자였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더라. 그대들의 마음속의 더럽고 추잡한 악의를 땀과 함께 끄집어내 모조리 씻어내는 작업에 착수하도록 하겠다. 이로서 건강과 건전한 정신마저 함양하게  테니, 모든 것이 황궁의 흥복으로 이어지리라. 하니 그대들은 짐이 직접 조… 아니, 교육 시키도록 하겠다. 걱정 말라. 금일을 시작으로 2주간, 하루 1시간씩만 굴려줄 터이니! 그러면 그대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저절로 떠오르게 되리라.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 그러면 숙련된 조교는 앞으로!”


그리고, 한때 카일론의 흑성 기사단에게서 병사들 신체  정신 훈련에 효율적이라 호평받았던, 현대식 군대에서 가져온 훈련 고문법(?)인, 유격 훈련을 진행 시켰다.
다 배때기가 처불러 헛짓들을 하는 거니까, 일절 그럴 여유를 없애주마.

세상 사는  힘겹고 박하고 어렵다는 걸, 그런 절박함을 알아야 일상의 소중함을 알겠지.
나처럼.

어차피 나와 살을 맞대게  관계들 아닌가. 미리 이런저런 체험해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나중에 쇼킹해서 다른 의미로 충격받는 쪽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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