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1화 〉136. 괜찮아! 그 정도로 안 죽어!(3)
시련을 극복한 게 끝은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잡념, 잡생각에 휘말리는 우매한 족속들.
그러기에 고통은 잠깐이고, 다시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우를 벌이길 주저 않는 족속들!
이번에 쓴맛을 봤으니 다음엔 괜찮아 지겠지?
이 또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조차도 해당되는 게 있고 아닌 게 있는 법.
예를 들어 독버섯을 먹고 사경을 헤맸다면 이후 그 독버섯을 쳐다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리라.
그러나 어설픈 매운맛, 쓴맛은 버틸 만하니 주의하는 정도에 그칠 테고.
이러면 언제든, 다시금 호기심이 생겨 뻘짓을 하기 마련!
그러다 거기에 적응하고 그 자극에 심취해 변태로 전향(?)하듯 괴상망측한 짓을 해대는 것도 그리 문은 경우는 아닐 거다.
매운맛이란 본래 독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맛의 일부로 스며들더니, 특정 누군가들에겐 없으면 안 될 소중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러나 본질은 독이 맞다.
오죽하면 잡식성의 대부인 바퀴 선생께서도, 고춧가루라면 학을 떼고 접근조차 안 하려 들겠는가.
아무튼.
오히려 어설프게 힘든 수모를 겪고, 이를 극복했다는 달성감은 되레 호기심과 적극성을 자극할 문제가 있다.
그러기에 군대에선 단조롭고 짜증나고 버겁고 귀찮고 역겨운 것들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거고.
사실 군대 기준에선 기본적인 걸 시키는 건데, 그곳 환경이 그 모든 걸 역겹게 뒤바꾸곤 한다.
숨만 쉬어도 짜증나는 곳이 거긴데.
아, 스마트폰 다루는 애들은 좀 나으려나?
오죽하면 스모킹이 유일한 취미 겸 낙이란 개소리가 튀어 나오겠나.
뭐 노래방이니 사지방이 있다곤 해도 거기서 솔직히 뭘 하라고.
그래서인지 용무가 아니면 난 들락거리지도 않았다.
그럼 뭐 했냐고?
책 펼쳐놓고 멍 때렸지.
뭘 안 하면 ‘어? 할 일 없냐? 심심해 보이는데 잠깐만 와봐. 잠시면 돼!’ 하는 식으로 재수 없게 어그로가 끌려 괜한 잡무에 시달렸으니까.
그런 식으로 쫓기니 뭐 뻘 생각을 할 겨를이 있나.
‘한동안은 그렇게 굴려야지.’
그래서 나처럼, 가만히 숨쉬기 운동만 하는 것만으로 새삼 좋구나 하는, 초 긍정적 마인드가 심어질 수 있도록, 당분간 등이며 엉덩이가 어딘가에 닿을 상황 자체를 안 만들어 줄 속셈이다.
자발적으로 일꾼이 되고자 어딘가로 향하거나,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터득하려는 이들은 내버려 둬도 딴청을 피우거나 뻘짓은 안 할 테니 이쪽은 그냥 잘 풀리도록 등을 밀어주면 되는 거고.
그리하여.
“…….”
황궁 안쪽에 형식적으로나마 진지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공사 및 작업은 군대의 꽃!
사실 부조리의 극치지만 이 유서 깊은 문화는 고대 시대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왔다.
그 로마조차 병사들이 진지를 구축함을 넘어 숙련된 이들은 건설업계의 스페셜리스트 취급을 받았다고 하지 않나.
다만 형식적으로 만들고 허무는 식으로 허무감을 안겨줄 순 없기에, 필요에 의거한 작업을 이룩하는 쪽에 초점을 잡았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지하 주둔지를 만드시겠단 말씀이십니까? 황실 정원 아래에?”
“영역도 넓은데 서른 이상이 숨어들 비밀 지하실 하나 못 만들겠나.”
참고로 이건 정말 그럴싸하게 만들고자 했는데 조건이 있었다.
누구의 조언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사실상 그녀들 스스로 시작부터 끝까지 이를 돌파해내야만 한다.
그걸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할 줄 모르니 못 하겠다?
그래서 안 하면?
‘물은 언제나 답을 알고 있지.’
안 한다는 가정은 있을 수가 없다.
정말로 안 하고 싶다면, 접시 물에 코 박고 익사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거다.
…본능조차 억누른 채 익사를 자결마냥 자처한다니,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안 된다.
그게 가능하면 그 자체로 초인일지도?
‘제한 시간을 주면 딴청 피울 수도 없겠지.’
마법을 비롯해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일부 수용해주도록 하자.
또 대놓고 감시하는 감시관과, 숨어서 감시하는 이들도 추가로 배치해두고.
‘이러면 내 쪽이 일일이 눈치 안 줘도 되겠지.’
오늘도 그럴싸한 퀘스트를 안겨줄 생각에 벌써 기대감이 물씬 샘솟는다.
이미 부지는 정해뒀으니 어려울 것도 없다.
나중에 상황이 또 어떻게 변질돼서 그 지하실이 유용히 쓰일지 어찌 알랴.
‘그건 그렇다 치고.’
팀장님이 복귀하기 며칠이 채 안 남았다.
축배라도 들어야 할까 싶지만, 농땡이를 피우는 거에도 미학이 있고 이것도 넋 놓고 앉아서 부리면 눈치가 엄청 보이기에, 뭔가 하는 척하며 농땡이를 피우다 보면 의외로 시간이 물 쏟아지듯 사라지기 마련.
황비를 괴롭… 아니, 갱생시키는 것도 슬슬 질려가니까, 뭔가 건설적인 척 할 만한 콘텐츠가 필요했다.
“…….”
혹시 내 변덕이 주변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다.’
선 지킴이의 달인을 넘어 현자, 선지자라 할 정도의 내가 실수를 한다 쳐도 그런 식으로 트롤 짓을 할 리가 없지 않나.
이 경우는 온전히, 팩트로 따져봐도 세상이 나쁜 거며, 악의를 품고 평화롭게 살아가길 포기한 부류들, 탐욕스러운 필멸자들의 탓인 거다!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더 짜증나네.’
세상 조잡하고 난잡하고 추잡한 거 뭐 하루 이틀인가. 아닌 척 눈 돌리고 귀를 막고 있을 뿐이지.
모든 생명체가 하루에 싸는 똥을 환산하면 동산 몇 개를 이룩하는 건 일도 아닐 거다.
…다들 그런 쪽으로 신경들 끄니까 묻어가는 거지.
비슷한 예로 쓰레기를 들 수 있을 거다.
하루 배출되는 쓰레기양만 따져도 주변 초토화시키는 건 일도 아닐 거다. 그걸 온전히 다 처분하고 정리하고 태우고 파묻고 이러니 넘어가지만, 이조차도 미봉책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지.
더 심한 케이스로 접어들면 방사능 폐기물을 들 수 있을 테고.
‘이러면 한도 끝도 없지.’
보이지 않는 곳에 쥐새끼며 바퀴며 모기며 각종 해충들이 얼마나 득실대는가.
다 눈앞에 안 보여서 넘어가지만, 그것들이 눈앞에 출몰하는 시점엔?
다 같이 환장하는 거다.
“그러면 조금 더 건설적인 뭔가로 초점을 맞춰야 하나.”
본래라면 이렇듯 방구석에 들러붙어 쥐 죽은 듯 살아야 하는데, 역시 황제가 된 지 얼마 안 된 탓에 이런저런 눈치가 보인다.
내가 일 안 하고도 잘 굴러간다는 인상 및 선입견을 언제쯤 심어줄 수 있을까.
그보다 마누라가 다 하는데 왜 눈치는 내가 보냐?
이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같은데….
‘나 입헌군주제의 실권 전무한 아이돌 같은 거라고요.’
실무를 안 시킨다고 일을 안 시키는 건 또 아니다.
눈치를 보게 만드는 건 일이 아니고?
나도 원래 세계의 부패한 입헌 군주 국가의 왕족들처럼 룰루랄라 하며 놀다가 행사며 기념비적인 날만 깜짝 등장해서 옷 좀 차려입고, 고개 꺾는 애들한테 고개 끄덕여주고 손 좀 몇 번 휘젓고, 흔들어준 다음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빠르게 퇴장해 그대로 다 벗고 푹 처지고 싶은, 그런 순수한 남정네거늘.
뭐 그들도 나름 할 거 다 한다? 내심 우여곡절, 고생이 잇따른다? 그 위치에선 그 위치에 따른 고충이 있다?
그러면 뭐 전쟁 난민은 산 채로 지옥에 처박힌 건가? 그보다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노숙자, 장애인.
그리고 단칸방에서 빵 사 먹을 돈도 없이 휴대폰 통신비도 밀려 독촉받는 청년층이 훨씬 불쌍하지, 대체 배부르고 등 따습고 사치도 심심찮게 누리는 그들이 뭘 그렇게 힘겹다고?
그러기에 내 기준에서 왕족 불쌍하다고 하는 것들은 진정한 의미로 엇나가도 한참 엇나간 부류들이다.
세상엔 빵 한 조각에 행복해질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루 몸 성히, 편히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보면 너 혁명 마렵냐? 기립하고 싶은 기분 든다던가? 하며 의구심을 표현할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엄연한 팩트다.
‘알렉산더 제안 거절한 디오게네스라면 내가 이해는 한다만.’
그쪽은 자진해서 원하는 걸 다 준다 했음에도 응 꺼져, 햇볕 가리지 말고! 했었으니까.
가난은 그 자체로 죄를 부추긴다.
마음의 여유라는 것도 집도 좀 넓고 통장 잔고도 갖춰지고, 있을 거 있어야 여유가 생기는 거지, 당장 휴대전화 끊기려 하고, 집에 가스며 물, 전기마저 끊기려는 와중에 먹을 쌀은커녕 라면조차 없다?
이러고도 마음이 평온하고 늘 평정심이 유지된다던가, 세상을 늘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현자이자 대 철학자며 성인이지.
“이것도 PTSD인가.”
어째 잊을 만하면 일 못 구해서 방구석에서 정신 승리를 하려다, 자괴감이 더 심해져 자책을 일삼던, 그 구렁텅이 떨어진 듯한 시기가 불쑥 떠오르곤 한다.
술을 퍼마셔도, 여자를 끌어안아도 풀리는 건 잠깐.
그조차도 가끔이랄까, 주기적으로 이렇게 현자 타임이 올 때가 있다.
그럴 땐 정말, 아무 일도 안 하고 멍하니 어디 볕 좋은 곳에 앉아 낮잠을 자는 게 최고긴 하지.
우울한 건 대체로 빨리 떨쳐내는 게 최고다. 품고 있어봤자 고통을 곱씹는 자해 행위밖에 더 되겠나.
실제로 심리학 계통에서도 비슷한 식의 해답을 내놓곤 했다.
“자선 사업 플러스 자체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뭔가를 해봐야겠군.”
미온적 복지는 끊임없는 소모만을 불러온다.
그렇다고 안 하자니 최소 인간적인 생존권조차 보장을 못 해주니 이건 이것대로 문제고.
그렇다고 과한 복지를 때려 넣는다? 이걸 세금으로? 이러면 다른 의미로 불평등이 시작되는 거고.
평등이라는 건 의외지만 없이 사는 이들과 가진 자들 간의 권리, 소유 문제와도 직결한다.
이는 절대 상충될 수 없는 문제고.
그러니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던가, 있는 자가 없는 자들에게 베풀고 양보하는 가치관과 문화를 성립해두는 게 좋은 거고.
없는 이들은 자연스레 가진 자들에게 존경과 경외심을 품는 흐름.
…문제는 있는 놈들이 돼지 새끼들처럼 욕심만 챙기려 들면 이 구도가 절대 성립하기 어렵다는 거지.
하물며 기본 이상들 하다가 재앙이니 재난 사태, 온갖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로 상황이 어찌 바뀔지 모르는 건데.
중세 봉건 시대 당시, 장원으로 자급자족하던 흐름이 흑사병으로 초토화돼서 도시로 시민이 몰리는 건, 인간 개인으로선 답이 없는 강제적 변화의 물결이 아니겠나.
방직기 공장이 생겨난 이래, 너도나도 부자가 되겠다며 밭 갈아버리고 양 키우려다 감자 파동 나서 대기근으로 이어져 졸지에 감자 하나만 훔쳐도 바로 사형이니 처형 때려버리던 시기가 유럽권에 있었던 예처럼.
이걸 어찌 개인이 감당하겠나.
제도며 복지가 현재에 적합하다 해서 미래에도 적합하단 보장이 없다.
그러니 권력자며 지도자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민감해야만 한다.
그리고 늘 통계를 쥐고 있어야 그러한 변화를 금세 파악하는 거고.
로마가 괜히 점령지에서 가장 먼저 행한 게 인구수 조사가 아닌 거다.
“그런 맥락이면 당장은 뉴딜 정책 비슷한 뭔가를 하나 해봐도 되긴 하겠네. 그 다음 순차적으로 머물 곳들을 어떻게 하고, 거기서 정착해서 후세를 볼 수 있게, 그 후예들이 직업을 얻을 수 있
는 루트를 쫙 깔아주면… 근데 이거 이미 하고 있는 거 아냐?”
문제는 한다 해서 성공하고 말고 여부는 별개.
누군가가 이리 말했다더라.
교육에 투자하라. 나라가 x 되고 있으면 더욱 더 미래를 위해 교육에 투자해 이 10장생들아!
…뭔가 심히 편집된 느낌이지만, 요점은 교육의 중요성.
교육은 앎인 동시에 희망이고, 미래다.
물론 지배 계층 입장에서는 썩 좋지 않은 전개긴 하다.
앎이 퍼져갈수록 그 부작용도 심상치 않으니.
좋은 의미로 앎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자기도 이로워지려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간악한 의미로 그 앎을 통해 기회주의자가 된다거나, 극단적 이기주의를 더욱 강렬히 실현하고자 하는 악적 같은 거시기도 생겨날 수 있으니까.
그 외에, 기득권 기준에서 자신들에게 대항할 여지가 생기고, 졸지에 그들이 경쟁자가 되는 망아지 같은 구도가 형성될 시, 이건 여러모로 영구불멸 기득권이 되고자 하는 그들로선 대단히 아니꼬운 일이란 말이지.
“그렇다고 마냥 계몽을 반기진 않을 테고.”
난 그냥 평범하게 할 거 하며 가족과 화목하게 살렵니다!
라는 이들도 있는데, 배워 이 새끼야! 세상은 넓다고! 깨어나라 민중이여! 이러는 것도 민폐는 민폐지.
그렇다고 그럴 기회를 안 주는 것도 문제인데, 괜히 그런 흐름을 조성해서 너도 나도 교육 열풍에 잠식돼 본 취지가 변질되는….
“끝이 없군.”
그래도 뭔가 그럴싸한 사고를 했다.
여기서 그냥 땡 치면 망상이요 탁상공론이요, 자기 만족에 불과하겠지만.
“이걸로 마누라한테 한 소리는 안 듣겠네.”
해가 떨어지고 복귀할 때쯤, 식사 혹은 술 한잔 걸치며 이러한 정국이라거나 치세, 정책 관련 논의 때 이를 언급해야 괜한 핀잔을 안 듣게 될 테니까.
사실 안 그래도 되긴 하지만, 그래야 또 마음껏 그녀를 껴안고 부디부디 할 수 있으니까.
“…….”
내 신세가 어쩌다 이리됐을까.
정말이지 이도저도 아닌 거 같은데?!
“폐하!”
그 와중에 슬금슬금 잠이 올까 말까 했는데, 부름에 불쑥 눈이 떠졌다.
“말해보라.”
“멜크리우스 장군이 도착했다 하옵니다.”
“멜크리우스….”
순간 뭔가 했네.
아, 팀장님이 온 건가.
그나저나 언제 장군님이 되셨대?
“……?”
설마 오늘이 그 날이었나?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고? 며칠 더 남은 거 아니었나?
나름 깜짝 소식이 됐는데, 미묘한 기분이 드는 건 무슨 연유인지.
어쨌든 좋은 소식이다.
이제 곧…!
숙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