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3화 〉137. 마침내!(2)
마음의 준비라는 건 때때로 사람을 설레게 하는 구석이 있다.
평상시에 마음의 준비라는 걸 하는가?
아니오.
하지 않는다.
그럼 왜 하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무슨 이유?
아무튼 그럴 만한 이유!
“음.”
그렇다고 너무 들뜨자니 체면이 좀.
‘상관없나?’
하루 이틀 해본 일도 아닌데 일일이 긴장하는 건 좀 이상하긴 했다.
이 경우 텐션이 너무 업 돼서 문제라는 지적 쪽이 더 적합할지도.
“자질구레한 건 됐고.”
달빛이 처연하게 실내를 비추는 가운데, 침묵과 초조함 비슷한 무언가를 기대감이란 명목으로 적당히 눌러놓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윽고 문밖에서 인기척이 접근하길 수 초.
문이 열리고 그녀들이 당도했다.
여기가 무슨 조선 시대 궁궐도 아닌 만큼, 한창 일보는 걸 지켜보게 내버려둘 이유도 없기에, 큼지막한 방안은 나와 그녀 둘이 전부.
테이블엔 얼음에 담겨진 병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익숙한 손길로 이를 따내 글라스에 내용물을 따라 흔쾌히 들이킨 건, 바로 황녀 마누라.
“크으. 좋군!”
“…….”
평소와 같은 분위기라 이쪽 긴장감도 절로 풀어지고야 만다.
식사 뒤 몸단장을 한다며 사라진 게 대략 1시간 전이었나?
나도 그런 게 필요할까 싶었는데, 눈치 보지 말라는 말에 그냥 넋 놓고 기다렸었다.
근데 몸단장이라 해봤자 옷이 바뀐 게 고작인데.
물론 나야 알몸, 나체보단 옷을 입힌 채 하는 걸 더 좋아하긴 한다.
막연한 환상 같은 건 없다. 이미 볼만큼 봤고, 몸도 너무 보다보니 어설프게 관리했을 시, 군살이라던가 어설픈 걸로 흥이 종종 깨지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 군살이 때때로 매력 포인트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이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구는 허벅지가 가날픈 게 정말 아름답게 여겨진다면, 또 다른 누구의 허벅지 굵기가 좀 전에 봤던 그녀와 비슷하다고 느끼기 무섭게, 기분이 확 깨진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모델들 몸매는 불호에 가깝다. 너무 빼빼 마른 게 다양한 옷을 소화하는데는 좋다지만, 개인적으로 건강해 보이질 않는다.
특히 키가 크면 그 부조리는 더욱 심해지는데, 내 눈엔 영 아니지만 뭐 그쪽 업계 사람들을 따로 뭐라 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그 몸 관리하는 것도 얼마나 곤혹스러울 텐가.
“근데 왜 색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한 사람은 검정 드레스, 한 사람은 하얀 드레스.
팀장님이 검정 쪽이다.
즉, 황녀 마누라가 백색 드레스라는 건데, 이게 엄청… 이색적이랄까.
매번 검정, 흑색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고, 그나마 다른 색을 겉에 걸친다 쳐도 황색 적색 주홍색이 대부분이었는데 말이지.
…또 둘 다 머리색이 비슷하니 차이가 있겠냐 싶지만, 색감이 이리도 대조적이면 아무리 생각해도 구별이 안 갈 수가 없달까.
“안 되느냐?”
“안 될 건… 없지? 없죠?”
팀장님 쪽으로 슬쩍 시선을 주자.
“뭐 그런 게 있다.”
뭘 말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보여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던가?”
“……?”
뭘요?
또 무슨 깜짝 파티를 하시려고?
“예전에도 말했지만, 나와 그녀는 기원이 같다.”
“예, 잘 알죠.”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기원이 같기에 되돌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진짜요?”
“이 몸은 누구와 달리 그녀를 짐이며 허물, 쓸모없는 무언가라 생각지 않으니까.”
황녀 마누라가 단조로운 어조로 그리 단언했다.
“그래도 이미 우리 둘은 너무 많이 나갔지. 서로에 대한 자아가 워낙 강렬하니, 합친다 쳐도 결국 자아가 분열된 상태로 남게 될 텐데, 한 몸에 자아가 둘이라는 건, 상상 이상으로 버겁거든.”
“그것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황녀 마누라는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그야 네 경우는 자아가 워낙 강하니, 이 경우 옅은 내 쪽이 파묻히지.”
“원래 빛과 어둠, 양면은 공존하기 마련. 그렇다 쳐도 오로지 내가 주도권을 쥔다 자부하긴 어렵겠다만… 그래도 이걸로 합의점을 이루자고 했으니,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러니까….”
에드릭이 잠시 관자놀이를 만지작대다 반문했다.
“두 분이서 퓨전? 합체하시겠다? 그걸로 서로 우위 이런 거 없이 퉁 치시겠다?”
“뭐냐? 왜 아쉬운 듯한 태도냐?”
“그야….”
처녀를 쌍으로 맛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하나로 만족하라고?
이 무슨 형벌이지? 내가 뭐 죽을 죄라도 지은 건가?
“처녀성에 왜 그렇게 혈안이 돼 있느냐?”
“본능과도 같죠? 로망이자 낭만이기도 하고?”
“현혹되지 마라. 마음만 먹으면 그거 복구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중요한 건 의지며 마음이며 선택의 여부 아니겠느냐?”
“보, 복구….”
“귀족 가문에서 처녀성을 잃은 계집들이 한둘이겠느냐? 어릴 적부터 불장난 좀 치다가 결혼할 때쯤 복구하고 그러는 건 이곳 세계에서도 흔했는데, 알고 있을 텐데?”
“벌써 영향을 받나 보네. 너 말투 이상해진다.”
“그런가?”
확실히 황녀 마누라의 고풍스러운 어조가 조금 어눌해지고 있달까.
그녀니까 어눌하게 느껴지는 거지, 실상은… 일반적인 그것과 비슷해진다는 느낌?
“그러니까 그 옷이 아티펙트 같은 건가요?”
“당장은 이것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들었다. 나중에 정말로… 일체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앞서 준비해둬야 하지 않겠냐?”
“아, 네.”
“…….”
확실히 아까 전 황녀 마누라 쪽이 개성이 강하다 말한 게 그대로 들어맞는지, 팀장님 쪽이 반응이 점차 무뎌지고 있었다.
무뎌진다고 할까, 기운이 썩 없어 보인달까.
“후우!”
심지어 몸도 흐릿하네?! 순간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아, 그런가.”
거기다 백색으로 물든 황녀 마누라의 드레스의 반절 가량이 잿빛으로 물들어간다.
…뭔가 판타지라서 별의별 걸 다 봤다지만, 이건 이것대로 신선했다.
아, 그건 그렇고 정말 처녀는 한 번 밖에 체험 못 하는 건가? 이건 너무 잔혹한데….
“조금만 기다려라. 곧 마무리될 거다.”
황녀 마누라 특유의 고풍스럽고, 고압적인 텐션이 기존보다 옅어졌다.
대신 싸늘하면서도, 어딘가 침체된 듯한 인상이 더욱 뚜렷해졌달까.
심지어 외모조차 일부 변화를 겪는 듯한…?
마치 팀장님과 마누라가 합쳐져 새로운 여성이 탄생하는 듯한, 근데 이거… 생각해보니 다른 의미로 색다른 그거잖아?
‘뭐지? 마치 바람 피울 때 이상으로 두근대는 이 설렘은?’
죄악감은 아닌데, 가슴이 여느 때의 소녀처럼 두근대는 게 좀처럼 멎이질 않는다.
이건, 그러니까… 그거네.
기대감.
마치 기대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론 예상치 못했던 시기에 발매 소식을 터트린, 게임사의 신작 PV를 접했을 때의 그 기분?
“이런 거였군.”
지켜보는 에드릭도 색다른 무언가를 느끼는 거 이상으로, 실제로 체감하는 그녀는 더욱 이색적으로 실감됐나 보다.
“그런데 그렇게 섞이면… 서로 생각이니 사고 같은 게 공유되고, 그런 건가요?”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니지.”
“그러면 기억도 공유된다거나?”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그 부분은 크게 문제 없다 들었다. 자아가 유지되는 한, 그것이 존재하는 한 별문제가 없다는 모양인데, 나한테 묻지 마라. 나도 모른다.”
“음.”
“확실한 건, 우리라는 개념으로서 이해하면 좋을 거다. 나는 곧 우리다. 음, 어감이 이상하지만…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예컨대 한 몸에 영혼이 둘이란 쪽이 더 설득력이 있으려나?
“합쳐졌다고 신체 능력이 강해진다거나 뭐 그런 건요?”
“그건 장담 못하겠군. 나로서도 아직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음, 그러니까 귀걸이나 이상한 동작 맞춰서 하는 그 퓨x은 아니란 거지?
“좋다. 슬슬 다 된 거 같구나.”
“기분은 어떠신지?”
“모르겠군.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말투는 확실히 바뀌었지만, 은연중 특유의 위압적인 뉘앙스가 섞여 들어 갔다.
이건 이것대로 꼴리는군.
한편으론 아쉬운 게 있었으니.
“뭔가 황녀 마누라도, 팀장님도 아닌 듯한 이 기묘한 뭐시기란….”
“뭘 아쉬워 하느냐. 우리가 매번 이 모습으로 너와 밤 시간을 나눌 리가 없지 않느냐?”
“…….”
그건 그런가.
역시 이건 처녀성에 대한 아쉬움? 남자라면 솔직히 이건 못 참지!
…특히 상대에 대한 애정, 호감, 친애가 강할수록, 상대가 더 없이 깨끗하고 청결하길 바라는 건, 본능인 동시에 신념, 희망 이상의 무언가다.
…실제로 내가 가장 친애하는 여성들 대부분도, 나로 인해 첫 경험을 했던 그녀들이었고.
아닌 예도 있긴 하지만 그 일부는 내게 나름 일편단심이니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만.
어느 고전 만화책에 나온 누구처럼, 어쩌고 저쩌고 해도 결국 최후에 내 곁에만 있으면 된다…까진 아니어도, 그게 도피처, 최후에 이르러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들인 그런 거라면 이야기는 틀리겠지만, 스스로 택하고 좋아하며, 사랑이라는 표현은 좀 낯간지럽지만… 그런 대상으로서 최후에 이르러 날 택한 거라면… 그건 어느 정도 받아 들일만 했다.
…결국 이것도 온전히 자신의 순수한 씨를 잉태 시키고자 하는, 본능에 가까운 걸 테지만.
과연 본능이 그녀들의 순결을 원하는 건지, 학습된 내 자의식이 그걸 갈구하게 된 건지는, 여전히 아리송하다만.
“하면 어찌 시작할까? 환담이라도 나누겠나? 아니면 바로 본론으로?”
“…….”
막상 이러니 급 어색해지네.
그렇다고 아마추어처럼 티를 낼 생각은 없지만.
그 전에 체크 사항 하나.
“…그 옷 벗겨도 되는 겁니까?”
“합쳐진 시점까지 필요했던 거니, 불필요하다면.”
스르륵.
순식간에 흑백으로 물든 드레스가 추락하며, 눈앞에 매력 넘치는 그녀의 잘 발달 된 나신이 달빛에 젖어 들며 아름답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건… 기대 이상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