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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제1부. 5화. 그녀를 적시는 방법 (4) (18/195)



〈 18화 〉제1부. # 5화. 그녀를 적시는 방법 (4)

18.

" 그나저나 이렇게 까지 했는데 수진이가 용서 안 해주면 너무 불쌍하겠다. "



" 야~ 용서해줘, 불쌍하다 불쌍해. 집에선 어머니가 우쭈쭈~ 하며 길렀을 텐데, 이렇게  여자에게 내팽개치는 자존심이라니. "



영연이 다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수진에게 말을 걸었다.




" 몰라."




냉정한 듯 수진은 딱잘라 말을 내뱉었지만
마음 속은 어느새 점점 용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용서해줄까....?
그런데 왜 전화는 안하지.......?


수진의 혼란스러운 마음.
그리고 점점 명록과 가까워져 간다.



순간 명록 뒤에 서있던 차의 트렁크가 열리며 풍선들이 날아올랐다.
색색 깔의 아름다운 풍선들이 하늘로 둥둥 떠오르며 퍼져나갔다.
그리고 수진을 바라보며 서있는 명록.
수진도 따라서 멍하니  채 굳어버렸다.

" 큭큭, 야,내가 맞았지? 만원 내놔. "



" 아오! 누가 요즘 저런 이벤트를 해? 멍청한  아니야? 저게 얼마나 불완전한 이벤트인데. 어어어~~~ 으이구! 저기 플래카드 접혀서 올라간다. 아휴......가관이다, 가관이야. "


설아의 말에 영연이 씩씩대며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건네줬다.
멀리 떨어져 있던 명록의 눈이 접혀서 올라가는 플래카드를 보더니 다시 수진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마구 흔들리는 명록의 눈동자.


갑자기 굳은 표정의 명록이 차에 오르더니 빠르게 수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차가 서있던 자리는 텅 비어 졌다.
남겨진 수진은 그런 명록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까지 해놓곤 그렇게 그냥 가는 거야?



" 뭐라고 쓴지 보여? "


아니, 수진....미안....머야 저거......? "





나희의 말에 영연이 집중해서 플랜카드를 읽어내려 했지만 이미 멀리 허공 높이 날아간 플래카드의 글씨를 모두 읽을 순 없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 말을 하지 않는 거야......
풍선따위상관없는데.......
이제 용서해 줄수 있는데.



도망치듯 떠나버린 명록이 이해가 되지 않는 수진은 멍하니 휴대폰만 쥐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명록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스티어링휠 (steering wheel)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순간 잘못 박아서 빵~ 하는 클랙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명록이 고개를 들고 앞 유리 창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 그를 보는 시선은 없었다.




으......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에 쪽팔림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이디어는 분명 먹힐 거 같았다.


로맨스 드라마에서도 풍선에 매단 플래카드로 고백을 하고
여자배우가 오글거리는 그런 이벤트에 웃으면서 좋아하지 않았던가.

수진도 그 플래카드를 보면 최소한 걸음을 멈추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명록이 다가가서 그녀 앞에서 무릎 꿇고 내가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줘 라고 말하면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아니  거기서 플래카드가 반으로접히냐고......!
아......
운도 지지리 없는 녀석 방명록......
광고스팸이나 달리는 방명록 같은 녀석아!



다시 한 번 얼굴이 화르르 불타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다시 스티어링휠에 처박았다.
눈을 감자 수진의 어이없는 표정이 어두운 눈꺼풀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쿡쿡 웃으며 지나가던 그녀의 친구들.

아그그......

어깨 뒤로 차르륵 소름이 끼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제길......
이판사판이다.


전날 들었던 상규의 미친 아이디어를 해야 할 듯 싶었다.
처음 들었을  완전 미친 짓이라고생각했는데 더 이상 여유도 없었다.
승필 선배로부터 온 문자 내용을 봐선 명록의 외근도 내일 이상은 어려울 듯 싶었다.






좋아.....
으으으.....
반드시 성공한다.



묘한 오기심까지 발휘되며 다시 전의(?)가 불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이 자꾸 자신을 수진으로부터 밀어내려는 적의를 들어낼수록
절대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업체부터 들려야 했다.
업무부터 진행하고 다른 업체로 이동하면서 준비할 생각이었다.



광고기획이란 일로 알게  것이
이럴 때 또 다른 도움이 될 줄이야......




절대!
운명(?) 따위에 지지 않을테다.
하늘!!!
날 모쏠로 돌려보내려 하나본데......
절대 모쏠로 안돌아갈테다.....
으르릉~~~~~~



그는 악셀을 밟으며 도로로 진입했다.
이 순간에도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편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나마 일이라도 있어서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잠시나마 딴 곳으로 신경 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








" 야.... 잘해봐라. 오늘 너 실패하면  이상 나도 너 못 도와주니까 알아서 해. 박 과장이 슬슬 눈치 까고 있는 같더라. "


아침부터 승필 선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명록은 숨을깊게 들이쉬고는 비장한 어조로 그에게 답했다.



" 넵. 오늘은 반드시 성공할게요. 그나저나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선배. 밥한 끼 거하게 쏠게요. 아니..... 술한잔 뽀지게 쏘겠습니다. "




결의에 찬 명록의 대답에 피식 웃던 승필은 한턱 단단히 쏘겠다는 말에 푸하하 웃었다.


" 좋다~ 은혜를 갚겠다는 그 의지! 내 당연히 받아야지. 오늘도 확실하게 커버해 줄 테니까 확실히 여자애 마음을 녹여봐라. 무슨 삽질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크흐흐흐..... 아참~ 은혜는 단란주점으로 받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술 한  마시겠는데? "



승필은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흔들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명록은 갑자기 속이 쓰려왔다.
승필 선배가 가는 단란주점이라면 뻔했다.




으윽......
아무래도 월급 4분의 1...
아니 3분의 1이 한 번에 날아갈 듯 싶었다.



아흑......
 악마 같은 선배 같으니라고........
급여도 나보다  많으면서 등골을 뽑아드실라우?
젠장......





그래도 아쉬운 건 명록이었다.
거기에다가 확실히 오늘도 커버해 준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농땡이 치면서 업무 대신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도
눈  감고 웬만한 업무도 대신 척척 처리해주는 직장 선배는 흔치 않았다.
물론 명록이 해야할 일까지 가져다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이정도만 해도....
대인배 중 대인배.
천사 중 대왕천사라고 해도 모자르지 않았다.
아...
 마지막 단란주점도 뺐으면 완벽 그 자체였겠지만.



헐......
오늘은 절대....
결사코 성공해야 해.
어젯밤 특훈도했잖아.
성공 할 수 있을 거야.
제발...
제발 그러자....
으으....




명록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전엔 업체부터 들려서 최대한 업무를 모두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후부터는 전력을 다해서 수진과의 승부를 벌일 작정이었다.


불끈!


두주 먹을 힘껏 움켜쥐며 반드시 그녀의 마음을 돌리고 다시 연애의 궤도로 복귀하리라!!!!
다시 또 다시 다짐했다.












**************











어제 그렇게 허무하게 명록이 떠나가고
이유를   없는 수진은 하루 종일 휴대폰을 들고 고민을 했었다.



영연이 전화해보라며 수진을 부추겼지만
그 옆에서 나희는 세상에 널린 게 남잔데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
-며 오히려 자신이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고 나서는 바람에 결국 연락하지 못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도 수진은 휴대폰을 한참 노려봤었지만
명록에게 연락은 오지 않고 결국 전화를 먼저 걸 용기 또한 생기지 않았다.

이미 자동차 극장에서 그가 했던 행동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계속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명록의 행동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수업도 다 들은 상태에서 정문을 향해 내려오는 중이었다.
뜨거운 햇살아래...
해도 채 지지 않았지만 시원한 술이 마시고 싶다는 설아의 말에
나희가 이 시간에 술은 좀 무리고 시원하게 빙수나 먹자며 그녀들을 이끌고 있었다.

며칠간 명록과의 일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아 있던 수진도 어제 명록의 일 때문인지 오늘은 밝아 보였다.
어찌 됐든 두번이나 그녀를 찾아온 명록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풀린 것이 분명했다.


 어디 술집 오픈하나봐? "



" 응? 왜? "



" 저기- 웬 원숭이가 교문 앞에 서있는데? "




영연의 말, 그리고 영연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 그녀들은
정말로 교문 앞에서 서있는 원숭이 인형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했다.




" 쪽팔리겠다. 저렇게 서있으려면. 거지같네, 차-암 돈 벌기 참 힘들다 그치? "




" 덥겠네. 이런 날씨에 인형 옷을 입고 있으려면... "

시니컬한 설아마저 저 모습에 혀를 찼다.
수진이 또한 원숭이 인형 옷을 입은 사람이  되어 보였다.

자신들은 더워서 빙수를 먹으러 가는 중인데,
그냥 보기에도 쪄죽을  같은 인형옷을 입고 있다니....
 인형 옷을 입은 사람은 한 시간을 저렇게 일하면 빙수나 사먹을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때 갑자기 원숭이 인형이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 야? 저래도 돼? 학교 안에서 호객을 해도 되는거야? "

" 글쎄...? 저래도 되나????? "



교내로 들어온 인형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에
주변 학생들이 무슨 이벤트라도 하는 건가 하며 고개를 돌려 모두 쳐다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인형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계속 걸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수진을 비롯한 그녀들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수진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나희도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열 걸음.

에이, 설마.

다섯 걸음

설마???



세 걸음.
그리고 마침내 원숭이 인형 탈을 쓴 사람이 수진의 앞에 와서 무릎을꿇었다.


길을 걷던 학생들도  황당한 상황에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는 그들을 쳐다보았다.



다들 어리둥절 하는 가운데 설아와 나희는 그제야 알았는지 아 하며 입을 열었다.
영연 또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진과 원숭이인형을 쓴 사람으로부터 살짝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  또한 눈을 반짝거리며 보기 힘든  귀한 구경거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무릎을 꿇은 채 수진 앞에 있던 원숭이 인형의 탈속에서 웅얼거리듯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너를 지키지 못한~~~~ 나를 용서해 줄래......."



노래?
노래라 하면 음정, 박자, 그리고
가사가 어우러져 있는 것을 노래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 이들 귀에 들리는 건 노래가 분명했다.
그런데.......
나희와 설아의 예상과는 다른 할머니 같은 목소리가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김치 같이 푹 묵어버린 목소리.


웃긴 목소리에 주변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누구를 가릴 것도 없이 입을 가리며 킥킥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숭이가 준비한 것이 실패하길 바라는 듯이, 저들끼리 속닥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집중했다.



원숭이 인형도 어느덧 당황했는지 잠시 멈칫 했다.
두꺼운 원숭이 인형이 모든 것을 가리고 있음에도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의 당황스러움이수진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수진은 자신 앞에 있는, 원숭이 인형을 입고 있는 사람이 명록 임을 알았다.





























끝 => 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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