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제1부. # 7화. 간호사가 그리 좋아? (6)
29.
수진은 고개를 돌려 명록을 쳐다봤다.
뚫어지도록 쳐다봤지만 그의 눈은 오은혜 간호사에게 이미 맞춰져 있었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하고 있었지만 순간 명록을 스치고 가는 그녀를 따라 명록의 고개도 따라서 돌아간다.
수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 오빠! 지금 저 여자 본거야?! "
명록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수진을 쳐다봤지만 이미 터져버린 화산을 막을 길은 없었다.
" 어떻게 내가 옆에 있는데다른 여자한테 시선이 돌아가?! 저 여자가..... 저 간호사가 그렇게 좋아?! 어?!!!!!!!!!! "
잔뜩 화가 난 수진이 따지며 명록의 어깨를 밀었다.
하지만....
그녀가 세게 민 것도 아닌데 순간 명록이 중심을 잃고 넘어가고 말았다.
링겔을 매달아 놓은 링겔대에 다리가 걸리며
명록이 경사로에 세워진 휠체어 위로 넘어지고
그의 몸을 실은 휠체어가 그대로 경사로를 따라 아래로 질주했다.
순간 수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오빠~~~~~~! "
" 으아악! "
수진이 멍해진 사이 명록은 비명만을 남긴 채
저 아래로 굴러 내려가고 곧바로 이어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는 그대로 벽을 들이 받았다.
우당탕탕!!!
휠체어가 넘어지며 명록도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비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요란한 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간호사가 달려왔다.
수진이 놀라 멍하니 위에서 서있는 동안 간호사가 명록을 부축해 휠체어에 태우곤 어디론가 달려 수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팔이 부러졌다!!!!!!!!!!!!!
반 기브스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이로써 이번 주 내 퇴원은 물 건너갔다.
명록은 난감해져 있었다.
회사에는 뭐라고 해야 하지......?
병원에서 있는데 갑자기 팔도 부러졌다고 해야 되나?
뭐.....
사실이긴 한데......
병원에서 병을 더 키웠다고 하면 하하하........
뭐라고 할 말이 없네;;;;;;;
크헐....
순식간에 명록은 속병환자에서 골절환자가 되어버렸다.
부러진 팔 상태에서 당일 바로 수술을하지는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상태보고 빨라봐야 모레.......
수술한다고 담당의사가 말했다.
일단....
우선 아픔을 떠나서 새하얗게 질린 수진을 위로하느라 진땀을 뺐다.
윽.......
팔이 부러져 아픈 것은 명록 자신이었는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수진을 보고 있자니
아무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온갖 거짓말을 하며 그녀를 달래야 했다.
그렇게 간신히 수진을 달래서 집으로 돌려 보냈다.
한숨 돌리고 맞은 저녁시간.......
어머니가 오시고 완전 혼쭐이 났다.
아니 대체 병원에서 무슨 짓거리를 했기에
팔이 부러졌냐고 말씀하시며 타박하시는데
실수로 계단에서 발을 헛딛었다고 말하니 순식간에 날아온 꿀밤을 맞았다.
그리고 세살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저질렀던 온갖 실수와 실패담을 끝없는 메들리송 마냥 쏟아내시는 어머니였다.
그것도 병실 환자들과 보호자들 앞에서........!
아.....
나이 스물여덟에 이게 왠 망신망신 또 망신......
아니지.....
나 환자인데.....
어머니.....
그렇게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겁니까?
인격 모독은요!!!
아~~ 제발 퐁퐁 흡입 사건만은 그만........
아흑!!!!
똥팬티 사고는 언제 적 일인데......
절 사회에서 매장 시킬 작정이세요???
그렇게 잘하는 짓이라고 명록을 타박하시던 어머니는
한참을 쏘아 붙이시다가 결국 병원 침대가 배겨서 허리가 아파 죽겠다고 하시곤
집으로 휭하니 돌아가셨다.
쩝......
왠지 버림받은 기분에 명록은 씁쓸했다.
명록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으......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게 왠 날벼락이냐.......
순간 오은혜 간호사의 자태가 생각났다.
오늘따라 몸에 꽉 끼는 듯한 자태의 그녀 모습이 평상시와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약간 타이트해 보이는 바지......
아.....
생리하면 바지를 입는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 몸에 끼던 간호사복도 자기 옷이 아니었나보지......
한 치수 작은 듯한데......
자기 간호사복은 어떻게 하고 남의 것을 입어야 했을까나.......
빨래를 못 했나 아니면 갑자기 갈아입었어야 되었을까?
암튼......
꽉 끼는 간호사복 차림이 정말 섹시하긴 했지......
브래지어선이 보일 듯한 젖가슴 라인과 팬티 라인이 엿보이던 그녀의 통통한 엉덩이가 생각났다.
순간 수진이 자신의 옆에서 새초롬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을 흘겨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
명록은 자신의 머리에 콩하고 꿀밤을 주었다.
에휴.......
이러고 있었으니 수진이가 화를 낼 만도 하지......
내가 잘못했다.
완전....
잘못했어.
수진이 옆에 있는데 딴 여자한테 눈을 돌리다니.......
그것도 속옷라인에 보일락 말락 한 그런 여자에게
남자친구의 시선이 쫓아가니까
당연히 그렇게 화낼 만하다......
하아......
그리고 통로로 질주하던 휠체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아찔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하하.......
이런 게 천벌인가 보네.......
여친 놔두고 딴 여자한테 한눈팔아서 벌 받았나 봐.......
순간 부러졌던 팔이 덜그럭 흔들리고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시큰 거리며 아파왔다.
으으........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나는 명록이었다.
**************
결국 왼팔 골절을 수술 받았다.
그리고 완전 기브스를 하고 나니 반 기브스 했을 때보다 훨씬 편해졌다.
사실 반기브스는 완전 고정이 안되서 순간순간 스치는 충격에 너무도 아프고 신경 쓰였다.
수진은 명록에게 골절상을 입힌 후로 병원에 오지 못했다.
곧 중간고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언제인가 수진이 갑자기 책을 잔뜩 들고 병원에 왔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다음 주부터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일이 미안해서 그런지 계속 와서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명록 자신도 대학시절을 겪어본 터라 그렇게 해서 시험을 치루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수진이 있으면 분명 자신이 그녀의 공부를 방해하게 될 거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되는 전개이므로 그녀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거듭 얘기하고 중간고사 다 치루고 오라고 얘기했다.
수진도 명록이 계속 만류하자 알았다고 하고 마침내 시험 끝나자마자 오겠다며 말하고는 짐을 쌌다.
계속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명록도 사실 그녀를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대학 성적은평생 쫓아다니는 꼬리표와 같았다.
수진도 아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명록이 병원을 나서는 수진을 배웅하려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엘리베이터에 단둘만이 있을 것을 보고는 수진이 그에게 갑자기 뽀뽀를 했다.
그녀의 향기가 짧은 그순간 명록의 코로 흘러 들어왔다.
비록 볼이었지만 수진이 이런 공간에서 뽀뽀를 해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명록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처음 해주는 뽀뽀........
수진의 입술이 촉촉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수진을 보니 이미 명록의 몸에서 떨어져 일정거리를 두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수진의 표정!
약간 붉어진 그녀의 볼이 너무 귀여워서
명록은 와락 껴안고 싶어다가가려는데 순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안타까울 때가.......
분명 지금 같아서는 수진이가 가만히 안겼을 텐데.......
명록은 아까운 찬스가 날아가 버린 듯해서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채운 사람들 속에서 수진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어느새 어둠이 내린 병원 현관에서 그녀를 보내고 병실로 들어오는 길이 왠지 쓸쓸했다.
한동안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휑하니 찬바람이 부는 듯싶었다.
병원생활 2주 때 들어서고 나니 그새 병실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옆 침대 오씨 아저씨도 퇴원했다.
그리고.......
까불이 창수 녀석이 퇴원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창수 녀석은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언제나 만화책도 잔뜩 빌려오는 통에 한동안 병실에 볼거리가 많았었다.
그리고 장난도 많이 치러 다녔기 때문에 심심하지 않았는데
녀석이 퇴원하자 병실이 조용해져버린 것이 왠지 적막함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명석이는 거의 이제 병실에 오지 않았고
어머니도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이틀에 한번 오시고 있었다.
그리고 오셔도 잠깐 계시다가 가시곤 했다.
명록도 팔 기브스 한 뒤 어머니가 자꾸 오시는 게 불편하기도 해서 오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병원에서의 시간이점점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오은혜 간호사를 보는 즐거움은 여전했다.
팔이 부러졌던 날처럼 타이트한 간호사복 차림은 보지 못했지만
여전히 병실에 있다 보면 그녀의 섹시한 모습을 훔쳐볼 기회는 종종 많이 왔다.
그리고 주사 맞을 때라든지.....
체온이나 혈압을 잴 때 그녀의 보드라운 손길을
마주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코 앞에 그녀의 빵빵한 가슴이 놓여지기도 했다.
흐......
오 간호사도 애인이 있으려나.......
누군지 몰라도 그 남자는 전생이 지구를 구했을 거야.......
그러나......
오늘은 그런 병원의 활력소 오은혜 간호사도 없는 날이었다.
오프 날인지 그녀의 모습은 오전부터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신참내기 조남희 간호사의 마루타가 되서 혈관 주사를 네 방이나 맞고서야 끝날 수 있었다.
으으......
인간 마루타.......
조남희 간호사는 병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참내기 간호사였다.
착하고 성격도 유순해서 곧잘 남자 환자들
특히 고삐리 애들한테 장난질을 많이 당하는 간호사인데
문제는 주사 놓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형편 없다는 것 조차도 아주 후한 평가였다.
그녀가링겔과 혈관주사를 들고 나타나는 날이면 환자들 표정이 딱 굳었다.
그나마 남자들은 참기라도 했지만 성격 있는 아줌마 같은 경우 버럭 하는 일도 있었다.
사실 오늘 명록처럼 네 번째 실패하는 날이었으면 참지 못하고 뭐라고 했을지도 몰랐다.
혈관에 자꾸 구멍만 뚫어놔서 퍼렇게 멍이 번지고 있었던 터라 쪼금....
아주 쪼금 성질이 나려던 참이었다.
마지막 성공을 끝으로 다음 환자로 넘어갈 때까지 명록 또한 부글부글거리는 속을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다.
하늘에 진정 감사......
젠틀한 방명록으로 남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어찌 됐든 오후가 되자 너무도 심심했다.
부러진 팔도 기브스로 보호해주고 있는 터라 왠만한 충격엔 괜찮았다.
기브스 안 팔이 간지러우면 간지러웠지 통증으로 괴로운 일은 없었다.
상태만 좋으면 퇴원이었는데 아직 높은 염증수치 때문에 골절에 혹 문제가 있을까 관찰한다고 하니 반강제 나이롱 환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기브스한 곳이 간지러워서 못참고 그 안에 나무젓가락을 넣고 긁는다....
-는 얘기가 우스개 소리 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려워 미칠 줄이야.......
생각해보니 몸도 근질거리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다가 머리를 며칠 못 감아서 너무도 간지러웠다.
손톱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 있자니 왠지 자신이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
그제 어머니 오셨을 때
머리 감아달라고 하는 건데........
후회하며 창밖을 내다보는데 갑자기 누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고개를 돌렸는데 화사한 복장의 수진이 바로 옆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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