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제1부. 10화. 오빠를 돌려줘! (10) (66/195)



〈 66화 〉제1부. # 10화. 오빠를 돌려줘! (10)

66.

아....
내가 멀 하는 거지........?

수진은 자신의 몸을 만지던 손을 빠르게 빼내고 속옷도 원래대로 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치기만 해도 좋았는데, 이제는 손바닥이 스쳐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밀려오는 허무함.


명록과 정사를 벌인 이후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열심히 모아놓은 모래들이 빠르게 파도에 휩쓸리며 사라져 버렸다.

수진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뜨거운 그녀의 숨과 만나며 흩어졌다.


자위......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


친구들이 자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자신이 스스로 하게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렇게 밀려드는 감각은 무얼까....
허무함......
자책감....
이상한 갈증 같은 느낌이라니...


거기에다가 그녀가 느끼는 성욕의 끝에는 명록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가 땀을 흘리며 그녀를 안을 때는 꼭 이런 걸 해야 하는 걸까...
-하며 의구심을 갖던 자신이 이제는 그의 분신이 그녀의 안에 들어오길 바라고 있었다.

자신을  껴안아주는 그의 팔이 생각나고 자기 자신도 그를 힘껏 끌어안고 싶었다.
그가 땀을 흘리며 힘들어할지라도 자신을 채워주고 달구었던 격렬한 행위를 떠올리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명록이 인상을 쓰며

거친 숨을 토해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도
자신의 위에서 힘껏 움직여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될 줄이야......

잔인하고 이기적인 자신의 마음 때문에 명록에게 미안해졌다.
수진은 애초에 그와의 섹스를 꺼렸으면서도
점점 만나기도 어려운 시간이 길어지자 어느새 애타게 명록의 체온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복잡한 그녀의 마음이 어둠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






아...
젠장.....

명록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생각대로 스케쥴이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금세라도 끝날 거 같던 촬영은 어느새 다람쥐 쳇바퀴 돌듯 똑같은 과정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틀 만에 끝날 거라는 CF 감독의 말과 달리 삼 일째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신경이 곤두서버린 명록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위장약을 쪽쪽 들이켜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12월 31일....


이제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 그날이 다가오는 가운데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아서
이미 명록의 속은 숯검댕이처럼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이 와중에서 위안이 되는 것은
승필 선배와 박 과장님이 담당하고 있던 일은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발......
제바알.....




이와중에도 수진과의 통화가 이어졌다.

" 응. 괜찮아.  갈 테니까.... 응. 그래. 염려하지 마.... "



명록은 수진에게 여전히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달래며 통화를 마쳤다.
하지만 정작 그야말로 아무도 마감일을 보장해주지 않는 가운데 애타는 마음으로 일분일초를 보내고 있었다.
31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수화기 저편의 수진 또한 불안한 기색을 떨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명록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말로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말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녀 혼자 또 새해를 맞이 하는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하긴...
이미 전적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12월 31일.


자신을 수진 곁에 확실히 데려다 주기라도 한다면 뭐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당이든 교회든 누구한테 가서라도 기도하며 매달리고 싶은 절박함이 그의 마음 안으로 세차게 밀려들고 있었다.

하흐.....
제발....... 좀.......






**************






응. 괜찮아. 꼭 갈 테니까.... 응. 그래. 염려하지 마.... "




명록이 몇 번을 말했다.



괜찮아.
꼭.
염려하지 마...


수진에게 확신을 주려는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컥울컥 넘어와서는 달콤한 깃털처럼 수진의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
하지만 명록의 목소리에도 불안이 숨어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대통령도 자기 맘대로 못하는 세상에서 회사의 일개 구성원인 그가 어떻게 제 일을 확신을 할 수가 있을까?
이번에도 이브처럼 못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에서 계속 떠올랐다.

짧은 통화가 끝났다.

끊어진 전화기 너머 계속 반복되었던 그의 약속 만이 강하게 수진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서서히 귓가에 남아있었던 그의 목소리가 잔상처럼 흩어져 사라진다.


믿으라던 그의 말에 불안이 담겨 있었는지,
자신이 불안해하는 건지 알 수도 없게 깨끗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니까 믿는다.
어차피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면 자신의 기억보다.....
불확실한 예감보다, 그의 말을 믿는다.

올 거야....
오빠.....
꼭  거야.....

수진은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는 초점이 안 맞는 눈동자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







올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늘 볼 수 있을 거라며 확신을 주던 그의 목소리였었는데, 어젯밤은 더욱 깊은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한테서 온다고 확실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아침이면 소식이 올까 하고 불안함과 그간 그를 믿었던 마음 속에서 싹튼 기대감으로
채 어둠이 걷히지도 않은 이른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혹시라도 지금 출발한다는 연락이 올까?




세수하면서도 수진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울리지 않은 휴대폰.


아직 자는 걸까?


전화라도 걸어볼까 하고 고민하던 수진은 아침을 먹고 나서야 고민 끝에 명록에게 문자를 보냈다.

[ 오빠, 오늘 오는 거야?]


금세 드르륵 하더니 명록의 문자가 도착한다.


[ 이따 연락할게]




이따?
이따가 라니.....
이따 라는 말은 대체 언제쯤일까?
설마......
못 온다는 말을 미안해서 돌려 말하는 걸까?
지금 말하면......
내가 화낼까 봐.....
그냥 시간을 미루려는  아닐까???

정확하지 않은 명록의 대답에 다시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이었지만,
왠지 바빠 보이는 그의 메시지에 더 연락할 수 없었다.

수진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휴대폰을 고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연락한다고 했으니까......
지금 당장 안된다 말하는 것도 아니니까.....
혼자 결론 내고 그러지 말자......
오빠도 나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같아.....


수진은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아주 약간의 불안 속에 빠진 채......
아직 명록을 믿고 있었다.



**************





밤샘 촬영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늘이 마침내 31일.....
그날이었다.


야외촬영장에서의 스텝들 얼굴에서 피곤이 완전 눌어붙어서 표정이 절여져 있었다.
배우들도 매니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화장을 고치고 피곤함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거의 막바지였다.

끝.

 한마디를 향해서 미친 듯이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


명록은 벌써 커피잔을  잔째 비우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머릿 속에서는 지도를 펼치고 서울로 가는 길을 쭉 훑어가고 있었다.



서울까지 가야  거리가.....
얼마나 되지?
오전 중에 바로 출발하면
늦어도 오후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잠시 머리가 멍해진 느낌이었다.
명록이 눈을 비비고 있는 동안 감독의 슛! 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




티비를 보면서도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봐 수신은 한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특집영화는 이미 두 편이 끝났지만 명록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겨울의 짧은 해는 이미 중천을 넘어가고, 긴 그림자를 만들며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연락해볼까 하고 휴대폰을 보다가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한번을 망설인다.
보고 싶어 다시 망설이고, 그에게 섭섭함을 적을까 봐 두 번째 망설인다.
그에게 실망할까 봐 다시 망설이고, 그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세 번째 망설인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수진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명록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고,
올해의 마지막 해는 아직 마지막 하루가 오지 않은 저 하늘 너머로 가버렸다.




" 얘가,  친구랑 싸웠어? 왜 이번 방학은 집구석에서 청승이야 청승은? "


" 아 몰라, 신경 쓰지 마."

아니면 말지 왜 신경질이람? 하여튼 우린 나간다? 너 물고기 밥 좀 잘 챙겨줘! 할 일도 없이 온종일 빈둥거리며 그 정도도 못하니?"



외출 준비를 하며 말을 거는 엄마에게 수진도 날을 세워 대답했다.
가뜩이나 명록에게 연락이 오지 않아 예민하던 차라 어쩔 수 없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엄마야 괜히 차갑게 구는 딸의 행동에 한껏 좋았던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수진의 바가지를 긁기 시작한다.




" 아, 알았어..... 주면 되잖아! "

수진도 그러고 싶어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엄마가 타박하자 울컥하며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나도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어쩜 내일 들어올지도 몰라! 친구들이랑 제야의 종소리 들으러 가기로 했어! "



소파에 누워 있는 수진이 마땅치 않았는지  얘기 없이 힐끔 보고는 엄마가 알았다고 말하며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집안...
크리스마스이브처럼 또다시 홀로 집에 남았다.
그리고  정적이 수진의 마음을 흔들었다.

불안한 마음....


혹시나 하고 휴대폰을 보지만 여전히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그래도......
꼭 온다고 했으니깐...


손을  움켜쥐던 수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둘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에게 연락은 없지만......
이브 때와 상황은 비슷해지고 있었지만.......


단 하나 다른 건.


아직 올 수 없다고 연락이 오진 않았다.
그 하나에 희망을 걸고 수진은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화장도 끝났고......
옷도 골라놓았다.


연락만 오며 바로 나갈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시간은......
저녁 8시.

겨울의 밤은 어둡다.
유난히  시간이 흐르고 사방은 깜깜한 밤이 되었고,
집에 홀로 남은 수진은 여전히 외로웠다.


일이 끝났다면 이미 끝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 연락이 안 오는 건지,
미칠  초조했다.
마음 속으로만 곱씹던 불안이 참을성 없이 터져 나오며 마침내 명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 가는 소리.....
멜로디....
예전에 통화할 때는 바로 얼마 듣지도 못하고 끊어지던 그 음악이 2절까지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도 그의 목소린 들을 수 없었다.
한 번 더 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전화를 걸고 싶지만,
그에게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보일까 봐 더는 전화하지 못했다.

정신 사납게 울어대는 티브이를 꺼버리자 마침내 조용해졌다.
왠지 더 넓어 보이는 거실.....
그 안에 수족관에서 거품이 올라오는 소리만 들려왔다.



아!
물고기 밥......

엄마의 말을 떠올리곤 어항 앞으로 갔다.
색색의 금붕어들 다섯 마리가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아는지 서로 어울리며 유난히 사이좋게 보였다.

수진은 길게 한숨을 쉬고 살짝 눈을 흘기다가 먹이를 들고 수족관으로 다가갔다.
유유히 헤엄을 치다가 수진이 가까이 가자 금붕어들이 우르르 반대쪽으로 도망간다.

아니!
엄마가 가면 서로 먼저 보려고 다가오더니!!!!



"얘! 너희 밥  사람인데 도망가면 어떻게 하니? 바보들......."



금붕어들이 대답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말을 걸었다.
수진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붕어들은 자기들끼리 흩어지며 어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수진의 눈동자에 들어오는 금붕어들이 있었다.
그 와중에 유독 두 녀석 만이 계속 붙어 다니고 있었다.

한 쌍의 커플 같은 모습에 수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도
두 마리는 서로의 꼬리라도 잡으려는지
 지느러미를 흩트리며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스쳐 갔다.


금붕어 두 마리가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 마치 애무를 하는 연인처럼 보였다.

순간....
수진은 속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지금 혼자인데....
이것들이 연애질이나 하고.....
이씨......!

입술을 삐죽거리며 손가락으로 유리벽을 톡톡 치며 말했다.



" 얘! 너희마저 연애하는 거야?! 응? 치이..... 너흰  없어! 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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