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제1부. 11화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3) (72/195)



〈 72화 〉제1부. # 11화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3)

72.




" 뭐? 남자를 꼬신다고? "


수진이 놀라 되묻자 나희는 힐끔 그녀를 보며 답했다.


" 영연이 실연당했으니  새로운 연애를 즐겨봐야지? 당연한 거잖아. 방학인데 우리 한번 뭉쳐보는게 어때? 머."




" 오케이, 오케이. 남자의 빈자리는 남자가 메꿔야지. 좋은 생각인 거 같다. 난 두 손 들어 찬성."

수진이 차마 싫다고 이야기하기도 전에 설아가 대뜸 자신의 의향을 밝혔다.

" 영연이 너는? "



" 당연히 나도 갈 거야! 그 자식보다 더 멋진 놈으로 골라잡아야지! 싱싱하고 풋풋한 놈으로  움켜쥘 거야! "




영연이 흐느끼는 와중에도 자신도 가겠다고 하자,
결국엔 수진만 빼고는 모두 간다고 말한 셈이 되었다.
수진도 영연이가 걱정되어 같이 실연 여행에 가고 싶었지만
대뜸 그녀들의 말마따나 스키장에서 남자들과 조인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나희야 그렇다고 쳐도, 설아 너는 남자친구들도 여럿 있잖아. 그런데도 가서 꼬시겠다는 거야? "


" 뭐 어때? 다다익선 몰라? 괜찮은 남자애들은 미리 먼저 찜해두는  남는 거야. 어차피 여자 친구들끼리 가는 여행이잖아. 남자 없이 가서 놀아야  맛이지. "




맞아 맞아~! 아마 갓 수능 본 애들도 와있을 걸? 후후, 상큼한 것들....... 싱싱한 애들로 낚아서 신나게 놀아 보자고. "



나희가 웃으며 수진의 어깨를  쳤지만 수진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물론 명록이 수진이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하면 딱히 의심하진 않겠지만 남자를 꼬시기 위한 여행이라니......
그에게 이런 사실을 속이고 가야하는 여행이라니 완전 마음에 걸렸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수진은 갈  없는 여행이었다.



" 재밌게 놀아.  안 갈래."

그녀의 말에 영연이 바로 반응했다.


"  설마? 치사하다. 배수진. 아니..... 이름 개명 해야겠다?! 수진이 아니라 신자로. 배신자. 남자 친구 있다고 그러기야? "

 어차피 가도 남자애들이랑  놀을 거니깐 데려가 봤자 재미도 없을 걸? 그러니까 안 갈래. "



하하하.... 그래~ 열녀 났다. 열녀 났어! 열녀문 세워야 겠네? 너도  꼴이 나야 오늘 일을 땅을 치고 후회를 하지! "


" 우씨!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왜 지금 생각하니? 하여튼 난 안 갈래."



영연이 속상한  수진을 타박했지만 이미 수진은 마음을 정한 터라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들도 수진이 한번 정하면 바뀌지 않은 다는 걸 잘 아는지라  권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스키장 여행에 대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수진이 홀짝이며 술을 마셨다.




이상해.......
남자친구가 있는데 왜 새로운 남자를 꼬시려하는 거지?
남친이 바람피워서 헤어졌다는 영연을 위로한다면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건 모순적이잖아......
난 명록 오빠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나희나 설아는 왜 여러 남자들을 동시에 만나는 걸까......



수진은 도통 그녀들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




오빠~~ "


마치 선물을 받은 걸 자랑하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수진의 얼굴에는 즐거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연신 싱글싱글 웃으며 명록과 통화하는 중이었다.


" 응? "


수화기 너머 명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수진이 애써 감추고 있던 이야기들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


" 엄마 아빠가 이번 주말에 삼박 사일로 여행가신대. "

" 뭐어....? 삼박.... 사일?! "



명록이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약간 늦은 대답이 나왔지만,
이미 오랫동안 맘 놓고 그와 붙어있을 상상을 하느라 잔뜩 기분이 좋아진 수진이 말을 이었다.




" 아마 금요일 날 오전에 출발 하실 거야. 그럼 우리..... 오빠 퇴근하는 금요일 날 저녁부터 만날까? "

" 아항.... 그렇구나.... 하하하. 이런 좋은 일이.... 푸하하..... 흐음..... 그럼 그날 만나서 여행이라도 가보는 건 어때?"

명록도 수진처럼 몇번 없을지도 모를 이번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은지 벌써부터 여행을 가자고 얘기를 꺼냈다.

이번 주말,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는 여행이라......

수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알바도 하지 않고 집에서 논다며 용돈도 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텅 비어버린 자신의 잔고 사정을 생각하니 역시 돈이 제일 먼저 마음에 걸렸다.

늘 하는 데이트에서도 거의 쓰는 비용은 그가 대부분 부담하는 중이었고
수진이 그럴 때마다 명록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
넌 아직 학생이니 자신이 부담하는 게 맞다며 그녀의 미안함을 달래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이미 제주도에서도 명록이 꽤 돈을 많이  것으로 아는데
만약 이번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그 비용은 모두 그에게 부담하게 될 것이 뻔했다.
아무리 가까운데 가더라도 분명 또 그는 무리할 테고 그건 수진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 오빠, 그건 조금 더 생각하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자. "




결정을 미루는 듯한 그녀의 말에 명록은 실망한 듯 약간은 시무룩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넘어왔다.
하지만 완벽한 거절은 아닌지라 우선 그도 수진을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화제는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대로 하루 종일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 그를 생각해서 수진은 더 늦은 밤이 되기 전에  자라는 인사와 함께 통화를 끊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명록이 그녀에게 남긴 굿나잇 인사.


전화를 끊어도 그의 목소리가 남긴 여운은 그녀의 가슴에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가슴에 빼곡히 드러난 상실의 허전함이 그를 더욱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목소리가 함께 했고,
더 이전의 시간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싸늘한 겨울바람이 불고 있는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진은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러기에 이번 기회는 더욱 수진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어주었다.
삼박사일 간의 부모님의 부재.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그의 품에 안겨 있을 수도 있고
그의 말대로 주말동안 여행을 떠나도 되는 달콤한 해방의 시간이었다.

명록이 수진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녀역시 그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수진 역시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괜스런 자존심 때문에 망친 것이 아닐까 싶어서 속상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오빠와 여행을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와 함께 한적한 곳으로 떠나서
소소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매번 다른 모텔방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모텔이라는 곳을 벗어나서 다른 공간에서
같이 일어나고 같이 잠들고 같이 산책도 하면서 보내는 시간.....
겨울이라 설경이 가득한 산 속에서 그와 함께 뽀득뽀득 소리를 들으며 눈길을 걸어보는 것도 즐거울 거 같았다.

잠시 명록과 여행가서 보낼 시간을 그리며 상상하던 수진의 안색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역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엄마......
요근래 매일 같이 늦게 들어오는 수진을 의심하는 엄마의 눈길도 생각이 났다.


회사에서 끝나자마자 나오는 명록을 만나기 위해
해떨어진 저녁에 나가서 지하철이 끊기기 직전에
막차를 타고 간신히 들어오길 벌써 이주일 넘는 시간동안 계속 하고 있었다.


혹시 남자친구라도 생겼냐-며 캐묻는 엄마의 말에
애써 굳은 얼굴로 아니라며 강한 부정으로 대답하긴 했지만
이미 날카로운 엄마의 의심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여행을 떠난 엄마가 혹시라도 집에 전화를 했는데
삼박 사일 내내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커다란 <<문제>>로 발전할  뻔했다.


그리고......

남자친구에 대해 묻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미안했지만 수진은 솔직히 말할 생각도 없었다.
만약 명록의 존재에 대해 순순히 털어놓았다간 엄마의 귀찮은 참견과 관심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힐 것이 뻔했다.

요새 가뜩이나 민감해져 있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혹시라도 모르는 일이니 여행을 가더라도 멀리는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걱정 속에도 수진의 기분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오랜만에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명록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수진은 행복했다.




**************





수진의 부모님이 여행가신다고 알려준 날짜가 어느새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달력을 보면서 명록은 싱글벙글하는 중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직 멀리 있는 금요일이지만 마음은 바로 내일 같은 기분이었다.


삼박사일 간의 여행.

부부간의 간만의 여행이라 수진은 쫓아가지 않는다고 하는 귀중한 찬스였다.


아.....
수진은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지만......
그냥 가까운 데라도 같이 여행을 가볼까?




그녀와 오랜만에 오붓하게 지낼 곳을 찾아서 무작정 떠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또한 그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요새 데이트 코스라는 것이 매일 식사 후 모텔만 찾아가는 듯해서 수진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수진의 몸만 탐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듯 싶어서  귀중한 시간은 조금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잠시 검색사이트에서 서울 근교 갈만한 여행지를 검색해보니
금세 화면 가득 수도 헤아릴 수 없는 게시물들이 검색이 되었다.

차를 타고 떠나는 드라이브 코스....


서울 근교 드라이브 코스 따라 데이트 하기...

데이트 코스 추천 드라이브하며 즐기는 낭만.....


서울 근교 드라이브 코스......


경기도 가까운 당일 코스 다녀오기, 단 자가용 이용......


쩝.....
입맛이 갑자기 쓰게 느껴지는 명록이었다.


언제든 그녀와 바람이라도 쐬러 가기 위해서
조금만 인터넷을 뒤지다보면  이런 게시물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끼는 그였다.
쏠로로 있을 땐 별로 가지고 싶지도 않던 자동차가 수진을 만나면서 왜 그리 가지고 싶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보통 출퇴근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로써는 승용차는 하나의 장식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서울시내에서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은 귀찮은 일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던 그였다.

가끔 출장 등으로 회사차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럴때마다 복잡한 시내상황이나 밀리는 도로에서 속을 태우느니 그냥 편하게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게 편했다.
거기에다가 주차할 때마다 겪는 고민 또한 달갑지 않은 이유였다.

그러나....

수진과 어디라도 놀러가려면 그 불필요하다는 장식품이 자꾸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헐.....
확 그냥 질러버릴까 보다......
중고차라도 하나 알아볼까?



여행지에 대한 홈페이지를 열고는 생각에 잠기는 명록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녀와 여행 다니는데 타자고 승용차를 지르는 건
왠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그머니 마우스로 클릭해서 닫아버렸다.



흠흠....
꼭 여행을 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




잠시 생각해보니 그녀와 함께 극장에 간지도 오래된 것 같았다.
이번엔 영화도 보고 막차시간 걱정하며 시계보지 말고
오랜만에 주점에도 가서 분위기 잡고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영화를 좋아하던 수진.....
생각해보니 처음 그녀를 만난 것도 영화를 같이 보면서 였다.

훗.....
그래.....
오랜만에 영화표 예매해서
같이 극장이라도 가보자.......



명록은 극장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서 요새 어떤 영화를 하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새해를 맞이한 영화관에는 신년 관객을 끌기 위한 신작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하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평을 비교해가며 수진과 볼만한 영화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타격이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아씨....
누가 머리를 때리는 거야.....

명록은 눈썹을 지푸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순간 움찔하였다.
그의 옆에 야비한 산적의 표정을  박 과장이 가재미눈을 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점점 싸늘해지는 온도로 내려가는 것을 보며
명록은 조용히 극장 홈페이지와 감상기를 적은 웹페이지들을 딸깍딸깍 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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