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제1부. # 11화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6)
75.
목소리로 분명 감기에 제대로 걸렸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와서 보니......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아파보였다.
명록은 옆에서 물수건을 만들어와 그녀의 이마에 올려주고 지켜보고 있었다.
옛날 할머니가 자신이 열이나고 아프면 해주던 물수건이었다.
열이 펄펄 날때 올려주던 찬수건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계속 올려놓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물론 너무 차가울까봐 꽉 차서 물기를 뺀 쥐 수진의 이마에 올렸다....
약효가 도는건지 수진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약간 괴로운 표정의 그녀는 어느새 쌕쌕 소리내며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원래 감기약이라는게.....
뭐....
잠을 재우기도 한다니까......
잠든 수진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침대 옆에 앉아서 그녀의 방을 둘러보았다.
잘 정리되어있는 그녀의 방.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가 언제나 맡던 수진의 향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면에 보이는 책장에 이것저것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있었고 좌측편에는 조그만 화장대에 색색의 화장병이 있었다
예쁜 디자인의 병들부터 화장품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까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확실히 여자 방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큰 거울 앞에 따로 있는 조그만 거울까지......
등교 전에 저 앞에 앉아서 화장하고 나갈 준비를 하는 수진을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오른편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책상이 있었다.
컴터가 있는 책상에는 대학교 전공도서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고 노란 포스트잇이 몇개 붙어있었다.
휘휘 고개를 돌려 방을 샆여보았지만 생각 외로 인형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 자신이 상상하던 여자방과는 조금 달랐다.
다만 자신의 방과는 달리 화장품 때문인지 좋은 냄새가 난다는 점 정도가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는 은은하게 나는 듯 하더니 지금은 온통 수진의 향기가 가득차 있는듯 싶었다.
명록은 다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자는 얼굴을 보았다.
그냥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스해 지는 것이 이런게 여자를 지켜주고 싶은 남자의 마음인가 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그렇게 보다가 수진의 이마에 있는 수건을 살짝 들어보았다.
역시 생각대로 그녀의 열로 미지근해져 이었다.
수건을 들고 일어났다.
욕실에서 다시 찬물로 빨아서 가져올 생각이었다.
잠든 상태니까 물기는 최대한 많이 짜서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방문을 나서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침대에서 자고 있는 수진의 표정이 아까보단 조금 풀려 있는 느낌이었다.
후......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짓던 명록은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
**************
" 으응........ "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수진이 눈을 뜨고 있었다.
옆에 명록은 바로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상체를 일으켜서 수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아.... 오빠..... 몇시야? "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수진이 물었다.
명록은 시계를 보았다.
거의 11시를 향해 시침과 분침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시간을 말해주자 벌써 그렇게 됐어 라고 중얼거리는 수진.
명록은 피식 웃고는 수진이 자는 동안 전화가 왔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사실 울리는 핸드폰 액정을 이미 보기는 했다.
발신자에 뜬 <<엄마>> 라는 문구에 바로 내려놓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이란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수진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까?
확실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좀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아직......
그녀의 전화를 대신 받으며 당당하게 누구라고 밝히기는 어려울 거 같았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길 희망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뭐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수진이 핸드폰 좀 달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바로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건네주었다.
<<엄마>> 라고 써져 있는 발신자 목록을 이미 봤을테지만 그녀는 별 말이 없었다.
명록은 잠시 그녀의 모습을 살피다가 아까 먹는게 시원찮았던 것을 떠올리고 물었다.
" 수진아.... 죽이라도 더 먹을래? "
수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오히려 그에게 물어왔다.
" 오빠는..... 머 좀 먹었어? 저녁은......? "
생각해보니 바로 죽을 사자마자 바로 수진의 아파트로 달리듯 걸어왔다.
그러고보니 배가 고파오는 것 같았다.
아까 수진이 남긴 죽을 먹어치운 거 말곤 따로 저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먹진 않았다.
아니라고 하니까 수진이 같이 먹자고 말한다.
" 그래. 같이 먹자. 나도 좀 배고프긴 하다. 하하...... "
명록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수진이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좀더 누워있으라고 만류하는데도 그녀가 굳이 준비하겠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진짜 자신이 하려는 모양이었다.
명록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다.
" 우선 세수라도 좀 하는게 어때.....? 조금 열때문에 땀흘리는 거 같던데....... 그리고 양치질도 하고...... 감기걸리면 입 안도 자꾸 헹궈주는게 좋다더라...... 욕실부터 가서 땀부터 씻어......"
수진은 그의 말에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만지더니 알았다고 하며 욕실로 향했다.
그새 명록은 서둘러서 바로 부엌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온 전복죽을 냉장고에서 꺼내 냄비에 덜었다.
그냥 끓이면 안될 듯 싶어 물을 조금 붓고 가스렌지에 올리고는 불을 켰다.
금세 보글거리며 기포가 올라왔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타서 늘러 붙지 않게 저어주었다.
어느새 부엌에 고소한 전복죽의 냄새가 올라와 퍼졌다.
죽을 젓던 명록은 반찬도 꺼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줄이고 냉장고에서 죽 전문점에서 포장한 봉지에서 반찬들을 꺼냈다.
욕실에서 나온 수진이 식탁에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의자를 빼서 앉으라고 권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명록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아마 수진의 미소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은 없을 듯 싶었다.
얌전히 자리에 앉자 바로 가스렌지 불을 끄고 냄비를 식탁으로 가져왔다.
꺼내놓은 반찬을 열어서 먹을 수 있게 셋팅하고 덜어 먹을 수 있게 그릇도 꺼냈다.
젓가락과 숟가락도 나란히 그녀 앞에 놓아주자 수진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그리고 명록을 올려다보는데 유난히 그녀의 눈동자가 빛나보였다.
**************
달그락 거리는 소리.
명록이 주방에 서서 그녀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제주도를 놀러갔던 그때처럼.
씻고 나니 아까보다 훨씬 나아진 기분이었다.
가디건을 걸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부엌에서 그가 서툰 솜씨로 식탁에 음식을 늘어 놓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 갑자기 우스워서 수진이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당겨 올라간 입술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 거기 앉아서 기다려. 다 됐어."
수진이 천천히 식탁으로 걸어오자
명록이 그녀를 눈치채곤 앉으라고 하고는
또다시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스렌지에서 죽을 데웠는지 그가 냄비를 식탁 위로 들고 왔다.
바보......
그냥 전자렌지에 데워도 될텐데.....
자취를 안해봐서 그런지, 집안 일에 서툰 명록의 모습이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름 정성을 다하는 그의 행동에 수진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식사.
그녀가 아프다는 걸 배려해서인지 식탁에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조용한 식탁.
수진은 아까 약을 먹어서 그런지 조금 입맛도 돌아와서
천천히 입안에 뜨거운 죽을 넣으며 명록의 모습을 살폈다.
그가 차린 죽을 먹고, 옆에서 이렇게 자신을 돌보는 명록.
이래서 연애라는 것을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죽을 비워가자 명록이 금세 또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진이 왜 그런가 싶어 그를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명록이 냉장고에서 멜론을 꺼내더니 먹기좋게 잘라 수진에게 가져왔다.
" 시원할거야. 먹어봐. "
그는 멜론을 콕 찍어 수진의 입에 가져다 주었다.
왠 멜론인가 하고 주는 대로 수진은 앙 하고 입으로 받아 먹었다.
멜론을 씹자 감기로 매마른 입 안을 시원한 육즙이 흘러나와 적셔주고 있었다.
달콤함......
그리고 시원한 느낌.
수진을 보며 반응을 기다리는 명록을 보자
그녀도 그에게 그가 먹여주었듯 자신도 똑같이 하고 싶어졌다.
멜론 조각을 포크로 찍어서 그의 입 안에도 하나 넣어주고 웃자
그제야 명록도 오물오물 씹으며 따라 웃는다.
서로의 입에 과일을 넣어주며 먹다 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다 먹고 나서 시계를 보니 이미 12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수진이 시계를 보자 명록의 시선도 따라서 시계에 멈춘다.
늦은 시간......
그의 말이 부엌을 울렸다.
" 흐음.... 이제 가봐야 겠다. 저건 그대로 둬. 내일 와서 내가 치울께. "
명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챙겨 입었다.
이미 버스도 전철도 끊어진 늦은 밤.
여기서 명록의 집까지 택시를 탄다면 요금이 많이 나올게 뻔한데,
너무 늦었다며 집에 돌아간다고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수진의 마음이 이상해진다.
외로운 집에 다시 홀로 남아야 한다......
그가 그녀의 옆에서 간호를 하며 있었주었던 그 시간을,
그 행복을 느끼지 못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미 알아버린 행복이라,
명록이 떠난다는 생각에 금방 우울해 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준비를 다하고 현관으로 나가는 명록을 쫓아 수진도 따라 나서고 있었다.
구두를 신고는 돌아선 명록.
그의 앞에 서있는 수진을 보고 씩 웃고는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살짝 떨어져서 속삭였다.
" 나 갈게, 문 잘 잠그고. 나한테 전화 하지 말고 곧장 자. 알았지? 내일 점심 전에 올께. 그때까지는 푹 자고 있어."
부드러운, 멜론 향이 가득한 그의 입술이 떨어지고 이제 곧 그가 문 밖으로 사라질 때가 됐다.
수진은 마음이 어지러워지며 망설이다가 입술을 열었다.
" 오빠...."
" 응? "
밖으로 나가려던 명록이 수진의 부름에 뒤돌아 봤다.
하지만 수진은 부끄러움에 머뭇거리며 아무 말을 못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 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말.
" 나... 나도 사랑해. "
수진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안다는 듯 명록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명록의 사랑 고백에 잠시 멈짓했다.
사실 그를 잡고 싶었다.
떠나지 말라고.....
같이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명록이 사랑을 말하다니......
수진은 볼을 붉게 물들이며 수줍어 하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 오빠... 자고 갈래? "
떨림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의 의도를 그가 어떻게 해석할까?
**************
낯선 공간.
모텔도 언제나 새로운 공간이긴 했지만
그곳은 서로 어느 정도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수진과 그의 부모님이 사용하는 곳이라는 것이 조금 더 명록에게는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녀의 가족들이 쓰는 공간에 자신이 서있다는 것이 왠지 조금 설레이기도 하고 쑥쓰러운 느낌을 주었다.
이미 먼저 수진이 샤워를 하고 난 다음이라 욕실은 습기와 더운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명록은 옷을 벗어서 한쪽에 걸었다.
입고 있는 옷이라고 해봐야 바지, 와이셔츠, 흰티, 그리고 팬티 정도라 금세 벗을 수 있었다.
홀랑 옷을 벗고 나니 왠지 쑥스러운 느낌이 좀더 강해졌다.
쳇.....
처음 옷을 벗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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