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제1부. # 외전 이야기 하나. 오빠, 나 믿지? (1)
87.
둘 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비틀비틀 가게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명록은 수진의 어깨를 감싸고 부축하며 걸어가고 있었고
그녀 또한 그런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손이 명록의 등을 지나 옆구리로 들어와서는 감싸 안으며 껴안고 있었다.
슬슬 취기가 오르는 것이 왠지 평안한 곳에서 쉬고 싶었다.
수진의 몸도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듯 해서 어깨에 있던 손으로는 지탱이 되지 않았다.
명록은 할 수 없이 그녀의 허리를 잡아 부축했다.
잘록한 수진의 허리.
한손에 다 들어오고도 남는 허리를 경계로
위로는 봉근한 가슴과 탱탱한 엉덩이가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부드러운 그녀의 몸이 그의 옆구리에 안기자마자
허리 위 손으로는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 부분이 닿을락말락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했다.
힘들게 걸음을 옮길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뭉클 뭉개지는 감각까지 선사해주자
모락모락 아랫도리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는 듯 싶었다.
명록은 눈을 들어 그들이 쉴만한 장소를 찾아보았다.
카페....
술집....
그리고.....
현란한 모텔 간판들.....
한바퀴 휘휘 돌아보는데 역시나 눈동자가 다시 찾는 곳이 있었다.
모텔.....
자꾸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고 해도 사방이 모텔 천지였다.
그러나....
명록에게 모텔은 그리 좋은 이미지로 박혀 있지 않은 곳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내내 들었던 이야기들이....
술에 꽐라가 된 여자를 데려가서 냠냠 따먹었다고 자랑질하는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명록은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따먹힌(?) 여자들에게 동정심이 가는 명록이었다.
대개 여자에게 술을 먹이는 남자들의 꿍꿍이는 뻔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여자를 헤롱헤롱한 상태로 저항 못하게 만들고는 자신의 시커먼 욕망을 채워보리라......
그런 얕은 술수에 말려들어서 하룻밤의 유희꺼리가 되어버린 그녀들에게 진정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자랑하던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모텔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고 있었다.
약간의 욕망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명록도 불끈불끈 쌩쌩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혈기왕성한 젊은 이십대 남자였다.
거기에다가 탱글탱글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육감적인 이십대 초반의 수진 같은 여자애를 끌어안고 가면서
활활 뜨거운 욕망의 불꽃이 타지 않는다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것보다는 점점 무거워지는 듯한 수진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변명이라고 해도 좋고 자기 합리화라고 해도 좋다.
휘청거리며 같이 걸어가던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무거워지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명록의 취기도 점점 심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처음 만난 수진의 친구라는 세 여자애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서 너무 급하게 술을 마신 탓이었다.
그리고 수진에게 낙찰된 술마저 흑기사 노릇하며 자기가 다 원샷해버리지 않았던가.....
역시 너무 무리해서 자신의 주량도 가늠하지 않은 채 술을 마신 것이 지금의 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러다가 경험상 갑자기 확 취기가 올라서 정신줄을 놓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물론 옆에 있는 어여쁜 수진을 길바닥에서 노숙시키게 만들 순간이었다.
아니!
이건 단순히 노숙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옆에 있는 여자애는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 외모를 가진 아이였다.
싱싱한 여대생이 길거리에서 자고 있다면 또 다른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냥 말 그대로 누군가 흑심을 먹고 그녀를 업고 데리고 간다면 어쩔 것인가.....
명록은 더 이상 취기가 올라오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했다.
차라리 아침까지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자......
술집에서 둘 다 엎드려 있는 건 정말 꼴불견이잖아.....
거기에다가 그런 곳은 소매치기가 있을 수도 있고 길바닥과 다를 바 없어......
그래.....
내가 흑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야.......
수진 씨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평안한 잠자리를 위해 그런 거야......
저얼대~!!!
양아치 같은 그런 놈들처럼 그런 맘으로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니니까.......
명록은 마침내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중에서 엠(M)이나 에이치(H)로 시작되는 간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표를 찾은 그의 발걸음이 방향을 잡고 그 쪽을 향해 수진을 부축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
한잔 두잔.
술이 들어갔다.
하나 둘씩 눈치 빠른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빠져주고, 어느덧 술자리에는 명록과 수진만 남았다.
평상시에는 철옹성 같은 그녀도 술이 들어가고 나면 남자가 그리워졌다.
한 번도 안 해본 여자는 있어도, 딱 한번만 한 여자는 없다고 했다.
그녀는 명록의 모습을 힐끗 훔쳐봤다.
훔쳐본 명록의 몸......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그에게 합격점을 준 수진은 술에 취해 어지러운 척 명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남자는 하나같이 늑대라더니,
명록 역시 그녀의 연기에 속아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모텔로 가요....
후후.....
번화가의 뒷골목은 으래 그렇듯 모텔들이 밀집해 있었다.
명록의 시선도 근처의 모텔에 멈췄다.
모두 그녀의 의도대로 흘러가자 수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술에 취해 남자를 모텔로 끌고 가는 색에 취한 여자보다는
'어쩌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술김에 당하는 여자 쪽이 그녀에게 이미지 관리상 낫다고 생각했다.
고작 이번까지 세 번째 만나는 사이 아닌가.
그의 팔을 끌고 모텔로 향해서 가는 가벼운 여자로 보이기는 싫었다.
그리고 만나면서 지켜보니 명록이란 남자......
아저씨라 생각했는데 나름 괜찮아 보이고 있었다.
조금 진지한 마음이 드는 수진인지라 이렇게 술에 취한 연기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이제야 마음을 정한 듯 보였다.
자.....
이제 그가 이끄는 대로 모텔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의 발걸음이 그녀가 의도하고 있는 장소,
천막이 내려진 모텔의 으슥한 후문으로 향하자,
고개 숙인 수진의 분홍빛 입술의 끝이 명록 모르게 슬쩍 위로 들렸다.
**************
수진을 엘리베이터 엪에 잠시 세우고 카운터로 갔다.
다행히도 방이 하나 있었다.
아니, 대체......
이렇게 커다란 모텔에 방이 고작 하나 남아있다니......
순간, 이 많은 방 구석구석에서 화르르 타고 있을 연인을 생각하니 살짝 얼굴이 붉어지는 명록이었다.
뭐....
사실 꼭 그런 건 아니고 단순히 숙박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지금 그는 그런 사람들보단 연인 또는 남녀들이 같이 있는 그런 모습만 상상이 되는 중이었다.
아무튼 달아오른 표정을 간신히 관리하며 계산을 마치고 키를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꾸벅거리는 수진을 부축하고 올라가는데
수진의 쭉쭉빵빵한 몸이 완전 그의 몸에 밀착되어 부비적 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기대선 수진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입김이 명록의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약간 뜨거운 듯한 그녀의 숨결이 명록의 심장박동을 높였다.
두근.....
두근.....
갑자기 힘이 들어가는 아랫도리가 부담스러워진 명록은
수진을 다시 바로 세우며 어서 자신들이 묶을 층에 도착하길 바라고 있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긴 복도를 걸어 모텔방에 들어섰다.
그 사이에도 수진의 봉긋한 가슴이 그의 팔에 뭉클거리며 특유의 탱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약간 거칠어진 숨소리로 변해가는 자신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킨 그는 구두를 벗고 수진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이대로 살짝 눈을 붙이려면 수진은 침대에 눕히고 자신은 작은 소파에서 잠들어야 할 거 같았다.
자극 받지 않기 위해 불 하나만 켜놓은 상태에서 약간 어두운 상태로
수진의 힐를 벗기고 침대 쪽으로 그녀를 조심스레 부축하며 다가가는데
심장이 뚝 떨어질 만한 일이 벌어졌다.
순간 갑자기 수진이 달려들으며 그의 입술에 키스를 날리고 있었다!!!!!!!!!!!
명록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면서 깜짝 놀랐다.
키스를 마치고 떨어진 수진의 눈동자가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앵두빛 입술 위 립스틱이 뭉개지고 그 벌어지며 매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까..... 영연이가 가슴으로 비비고 그래도 가만히 있고..... 치이.... 그렇게 좋았어요? "
엥?!
그녀의 말에 주점에서 옆자리에 앉아 애교를 부리던 수진의 친구가 떠올랐다.
어깨와 팔로 살짝살짝 느껴지던 그녀의 가슴이 생각나며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피하는 게 이상해서 가만히 있긴 했지만 어쩜 수진의 말대로 즐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명록의 볼이 화끈거렸다.
수진의 말이 좀 더 낮게 깔리며 말을 잇고 있었다.
" 말해 봐요.... 영연이가 예뻐요....? 내가 더 예뻐요? "
수진이 더욱 명록의 품에 안겨들며 그녀의 가슴을 명록의 상체에 비비고 있었다.
비록 옷 위라고 해도 뭉클한 감촉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결국 코너에 몰린 명록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 다...당연히 수진이... 너지.... 네...네가 더 예뻐! "
수진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토라진 목소리로 바뀌었다.
" 치... 그런데 왜 자꾸 한눈 파는 거예요.......? 아무리 내 친구들이라도 그렇게 흘깃거리는 거 싫단 말이에요! "
생각해보면 이제 그녀와 만남은 세 번째였다.
첫 번째 점심식사.....
그리고 두 번째 영화 관람과 잊지 못할 매운 떡볶이.....
이때는 정말 육각얼음의 새로운 용도를 깨닫게 되었던 그 화끈거렸던 만남.
그 뒤에 세번째로 이어졌던 지금 이 시간......
그녀의 친구들까지 같이 볼 수 있었던 술자리....
그런데 지금 수진의 태도는 그전과는 전혀 달랐다.
좀 더 친밀해지고......
부드럽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명록의 마음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의 연인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다시 천천히 그녀의 입술이 다가왔다.
아까의 짧은 키스로 살짝 촉촉해진 수진의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좀 전의 시간보다 더욱 농도가 짙어진 키스가 시작되었다.
서로 비비며 감촉을 즐기는가 싶더니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며 수진의 혀가 명록의 입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뭉클하다고 해야 할까....
짜릿하다고 해야 할까.....
묘한 감촉을 주는 그녀의 혀가 들어오자
명록은 자신도 모르게 다물었던 이를 벌리고 자신의 입 안으로 맞아드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바로 안으로 들어온 수진의 혀가 명록의 혀를 감싸 안으며 엉켜들었다.
혀와 혀가 꼬이며 춤을 추는데.....
호흡이 가빠지고 감은 눈앞이 핑 돌며 명록의 정신은 점점 아득해지고 있었다.
**************
어두운 복도,
수진은 일부러 술에 취해 몸을 가누기 힘들어 쓰러질 듯
휘청이는 걸음으로 전보다 더 깊게 명록에게 기대었다.
슬쩍 기대면서 명록의 귓가에 약간의 거친 숨을 불어넣고, 매달린 그의 팔을 그녀의 가슴으로 눌렀다.
이쯤 되면 그도 슬슬 달아올랐을 게 뻔했다.
이렇게 예쁜 나를 두고 한눈을 팔아?!
아주 오늘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어!
지갑을 줍고 수진에게 작업을 걸어놓고는
술자리에선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 앉아 꽃의 향기에 취한 사람처럼
해롱거리는 그의 모습에 슬슬 약이 올랐었다.
수진은 이를 갈면서 이미 길거리에서도 그를 유혹했었다.
그런데 이 남자....
그녀가 휘청거리며 주저앉으려고 하면
허리에 가있던 명록의 손은 겨드랑이께로 올라와서 가슴을 만지게 되어 있었다.
다른 남자들이면 옳다구나 하면서 슬쩍 만져보았을 텐데....
이 멍청한 방명록이란 남자는 불이라도 난 듯 화들짝 놀라며 손을 위로 올리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한술 더 떠서 모텔 안으로 들어와선 아무런 흑심도 없는 조선시대 선비처럼
전혀 다음 액션이 없는 명록의 행동에 수진의 속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녀는 지금 섹스를 원하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 '잠만' 잘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고 있었다.
씨이.....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결국 수진은 명록에게 달려들었다.
세랭게티의 순수한 눈망울한 귀여운 토끼를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가 되어....
연애는 약육강식, 기회를 보던 하이에나는 결국 사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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