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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화 〉제2부. 13화. 바람이 분다. (13) (142/195)



〈 142화 〉제2부. # 13화. 바람이 분다. (13)

142.

살포시 덧붙이고 웃는 하윤의 목소리가 귀엽게 느껴졌다.
왠지 쑥스러움이 묻어 있는 그녀의 말이
명록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 그래요. 그럼. 나도 사람들 많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



수진이 벚꽃 축제에 가자고 조르던 때도....
북적거리는 여의도 공원의 인파를 먼저 머리에 떠올렸던 그였다.
사람들 어깨사이를 누비며 돌아다닌 것은 그리 달갑지 않는 느낌이었다.


사람....
사람.....
서울엔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살아야했다.

출근길 버스....

전철....


한참 시간대의 거리에도 서로를 피하며
걷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차있는 사람들.


영화관에서 애라도 우는 날이면 그날 영화 감상은 종친 것이었다.
하긴 수진과 조조 상영하는 영화를 볼 때 그런 애들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영화 만을 골라서 보았으니까.
그곳에서 둘은 과연 어떤 시간을 보냈더라?

영화는 그녀가 예매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늦은 시간대라 있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곧이어 예약했다고 하윤으로부터 날아온 문자가 수신되었다.

하아...
참....
능력도 좋아.....


새삼 감탄하는 명록.
하긴 그녀와 같이 일할 때도
빠릿빠릿한 하윤의 일처리 능력에 놀라곤 했었다.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꼬여있는 일도
그녀의 손에 들어가면 스르륵 뜨거운 물에 녹아버리는
얼음처럼 너무도 쉽게 풀려버리곤 하였다.

[ 훗 나오셨어요? ]


휴대폰이 소리를 내며 들어온 문자 메시지를 보니 하윤이 보낸 것이었다.

[ 네. 가는 중이에요. ]

후후 저도요. ]


어느새 시작된 하윤과의 문자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계속 이어졌다.


손가락을 놀리며 문자를 보내는 것이 왠지 즐거웠다.
마치 수진과 연애를 시작하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던
그 시간처럼 설레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지루하게 보낼  같았던 주말이
이렇게 바뀌는 것에 나름 기분이 좋아진 명록이었다.
토요일 남의 결혼식을 보고 지루한 일요일을 보냈다면
아마 그 우울함이 두 배는 되었을 것이다.

띵동 도착한 문자를 보니 그사이 그녀는 먼저 극장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하아....
여자는 화장도 하고 몸단장하느라 시간도 꽤 많이 걸리던데.....
대체 하윤씨는 언제 일어나서 집에서 나온 것일까?

수진과 사귀면서 여자들이 외출을 하면서
들이는 시간이 과연 얼마큼 들어가는지 알게 된
명록으로썬 하윤이 그 시간에 극장에 도착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흐음.....
직장생활도 꽤 오래된  같던데....
혹시 화장 같은 건 3분 만에 뚝딱 해버리는  아닐까?
하하....


대학 아니 더 이전부터 화장을 했다면
그것도 기술이라고 오랜 시간 경험을 쌓으며
노하우가 생기는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뭐든지 하면 는다고 하지 않던가.
요령도 생기고 후다닥 해치워버리고도 정성껏 한 거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만드는 것이 바로 숙련자의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언제나....
하윤의 화장한 얼굴은 꼼꼼히 공들여 되어있었다.
짙지 않은 화장이지만 눈에  안 띄는 곳까지
세심하게 되어있는 모습을 보며 화가가 그린 그림을 연상하곤 했다.


수진도 화장할 때면 거울 앞에 앉아서
꼼꼼히 터치를 하면서 단장하지 않던가.


물론 점점 가벼운 화장으로 바뀌고 있었지만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오는 날이면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오기 싫다고 애써 단장하던 그녀였다.


그런 수진보다도 더 세심하게 되어 있던
화장이란 과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명록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윤이 도착했다는 문자 이후
몇 정거장 안 되는 거리인데 유난히 길게 느껴지고 있었다.
초초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가운데
마침내 극장이 있는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었다.
명록은 지갑을 요금계산기에 찍고는
삑 소리를 들으며 뛰어내리듯 서둘러 내렸다.


저 멀리 극장 커다란 로고 간판이 보이고
그는 거의 뛰듯 극장이 있는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하윤이 도착해있는 터라.....
약속시간은 아직 많이 여유가 있었지만
급해진 마음에 다리를 빨리 휘저었다.

커다란 유리현관을 밀쳐 열고는 통과해서
가쁜 숨을 고르며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타자마자
몸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뛰어서 올라가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로 꽉 막혀있는 터라
결국 멈춰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상 위에 다다르자 뻣뻣하게
서있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명록도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자
극장 안 표사는 곳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넓은 그곳에 얼마 없는 사람들 가운데....
그가 찾는 모습이 바로 눈 안으로 들어왔다.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서있는 그녀.
평상시 회사에서 보던 얼굴보다
좀 더 민낯에 가까운 얼굴이 꽤 어리게 느껴졌다.
거기에다가 매번 정장 만을 입고 있는 하윤을 보았는데
오늘은 캐주얼하게 입고 있는 옷차림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정장치마 사이 보이는
그녀의 각선미가 예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몸에 착 달라붙은 스니키진을 입은 하윤의 하체는
수진 못지않게 날씬하고 아름다웠다.

이래서 몸에 맞는 청바지를 입는
여자에게 홀딱 남자들이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설현의 입간판이 그녀의 이름을 높였던 것도....
보자마자 눈이 번쩍 떠지는
청바지 차림의 설현의 몸매가 한몫
단단히 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는 듯 육감적인 다리 라인이
밝은 하늘빛 청바지 색과 어울려 시원하게 보였다.
단색으로 이루어진 브이라인 넥의 티가 자연스럽게 늘어져
그녀의  머리와 함께 더 어려 보이게 하였다.

아마도 수진과 나란히 서있어도 같은 나이처럼 보일 정도로
마치 여대생 같은 그녀의 옷차림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하윤도 명록을 보았는지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들어 봉긋 솟은 가슴 앞에서 가볍게 흔드는
그녀의 손짓을 보며 명록은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집에서 나오며 수진에 대해 들었던 감정은
어느새 하윤의 모습과 함께 희미해져 버렸다.
멀리 있는 죄책감은 가까이 있는 설레임에 지워져 버렸다.

명록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흔들고는
빠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


아직은 이른 일요일 아침,
월요일에 보는 시험을 위해서
수진은 일치감치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가고 있었다.


학교로 가는 버스에는 일요일답지 않게 그녀 또래들로 붐비고 있었다.
딱 보아하니 자신의 학교 학생들이 분명했다.
버스 안 풍경을 보아하니 오늘도 도서관은 가득 차 있을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 앞 정거장에 도착하자 수진을 비롯한 학생들이 우르르 내렸다.


하....
이 사람들은 쉬지도 않나?



경쟁사회.
오늘도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향해 군중들은 경쟁하고 있었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더 나은 삶을 위해
매순간 다른 이들과 조금이라도 앞서 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나의 수정을 위해 달려드는 정자들.
보다 나은 대학을 입학하기 위한 입시공부.
조건이 좋은 직장에 다니기 위한 취업활동.
그리고 심지어 사랑을 위한 연애까지도.....
경쟁이 아닌 것이 없었다.

수진도 경쟁장들에게 불만을 쏘아보내고 있지만
그녀 또한 그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중간고사도 이제 절반을 지나갔다.
도서관을 향하는 학생들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짙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일주일 간 하드코어한 시험공부 덕분에
지친 기색을 보이면서도 힘든 마라톤 후 받을
달콤한 보상을 위해 오늘도 그들은 작은 희망과 함께
무거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수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겐 그 보상이란 명록이었다.

물론 좋은 성적을 받아 장학금을 받는 것이
제일 먼저 노리고 있는 목적이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가장 위로가 되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바로 달려가서 보고 싶은 그녀의 소중한 사람.
방명록.
목소리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나희와의 일로 마음 고생이 깊을수록....
그를 보지 못한 날이 길어질수록....
명록을 보고 싶은 애달픔이 쌓여만 갔다.

절반이 지난 시험.
그리고 이번 주만 지나면 그를 볼  있을 것이다.

오늘 만나자는 명록의 말을 거절한 것도
지금 그를 보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말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가 그만 가겠다고 해도
먼저 잡을 것 같은 자신의 마음이 엿보여서
결국 거절 할 수 밖에 없었다.

시험을  보고 싶다는 이유 만으로 그와 보지 말자고 한 것도 자신이었다.
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마음에 품고 있는 미안함이 자꾸 커져만 갔다.
그가 살짝 던져오는 말을 거절할 때마다 수진도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장학금이 뭐라고......
그 때문에 보고 싶은 명록을 보지 못하는 것인지.....
그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건지....
가끔 공부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대학 졸업할 때까지 올A 성적을 받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포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껴가며  성취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녀 자신도 자신할  없었다.
거기에 걱정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거절을 들어야 하는 오빠의 마음은 어떨까?
정말 이해하고 받아주는 걸까?
자신이 가끔 만날  없는 그를 원망했던 것처럼
나에 대한 서운함을 키워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런 마음.
혹시나 이런 시간이 자신과 명록의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근심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그와 만나 시간을 함께 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이번 주만 지나면....
마음 놓고 오빠를 만날 수 있어...
조금만....
조금만  힘내자...
오빠...
기다려줘....




수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지루하게  터널의 끝이 드디어 보인다는 것이
학교로 향하는 그녀의 걸음을 점점 빨라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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