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5화 〉제2부. 13화. 바람이 분다. (16) (145/195)



〈 145화 〉제2부. # 13화. 바람이 분다. (16)

145.

수진은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나희는??? "


그녀의 물음에 설아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독한 년.....한번을  쉬네. 같이 나가서 바람 좀 쐬자고 했는데 자긴 좀 더 공부하겠데. 씨도 안 들어가더라. 머.. 우선 우리끼리 쉬지 머."



수진은 잠시 나희를 떠올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도 나희처럼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이미 깨져버린 분위기였다.
집중도 안 되는데 앉아서 지금처럼  생각을 하고 있느니
차라리 나가서 바람도 쐬고 커피라도 마시면서 쉬는 게 나았다.



" 그래. 그렇구나..... 흐음. 아~ 나도 좀 쉬어볼까? 잠시 바람 쐬고 다시 공부하는 게 낫을 거 같긴 하다. 하하... "



왠지 나희가 없다는 말에 조금 안심이 되는 그녀였다.
냉랭한 지금 왠지 마주치는 건 부담스러웠다.
순간 그녀가 없는 사이 영연과 설아한테도
나희의 일을 말하고 싶은 충동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일순 수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이래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외쳤나보구나.....
내가 이렇게 입  여자였나...
하...하.....




영화에서 비밀을 알게 되면 자꾸 입이 가벼워지는
등장인물을 보면서 속으로 욕을 했던 그녀였다.
촐싹거리는  입을 보면서 곧 죽겠네 이러며 비웃곤 했는데
지금 정작 자신이 말하고 싶어서 입술이 달싹거리는 중이었다.

어쩌다 알게 된 친구의 비밀.....

타인의 비밀을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 속에만 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 비밀의 주인공과의 껄끄러운 시간이 계속 되고 있으니....
피부 깊이 박히 가시처럼 빼고 싶은 마음에 더욱 신경이 곧두서 있었다.






**************


도심에 자리 잡은 생태공원치고는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뻗어있는 길들도 폭신한 재질로 만들어져
가벼운 조깅도 즐길  있게 되어 있어서 그런지
휴일 오후 나이든 분들도 꽤 많은 수가 운동복 차림으로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가족들끼리 도시락을 싸와서는 자리를 펴고 앉아서 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도란도란 거리며 일요일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사라락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하윤과 함께 걷고 있는 명록의 얼굴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부드러운 햇살 아래 선선하게 부는 바람.
하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걷는 산책.

천천히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작은 저수지에 도착했다.
나무판으로 되어진 팻말에 서식 중인
식물들이 적혀져 있고 작은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가을에 온다면 마른 갈대를 볼 수 있다고 적혀 있었지만
계절이 달라 그런 풍경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통나무로 된 울타리에 기대서 물가를 바라보는데
그들의 곁으로 자전거를  사람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있었다.


돌아서서 지나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산책로와는 다르게 따로 자전거를  수 있는 전용도로가
외곽으로 준비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길 쪽으로 걸어가 보니 안내판이 보였다.

<<자연을 만끽하며 즐기는 자전거 하이킹 코스>>

그리고 자전거 대여도 하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안내판 앞에서 멀거니 바라보는 명록에게 하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록씨 자전거 탈  알아요? "

돌아보니 그녀의 얼굴에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담겨있었다.
명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당연하죠. 하하. "


그녀는 그의 대답이 나오기 무섭게 바로 말을 이었다.



" 그럼..... "

길게 늘어지는 그녀의 말.
명록은 왠지 모를 설레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커플 자전거?

방금 나간 무리 중 연인들이 열심히
같이 페달을 밟으며 지나가는 이인용 자전거가 보였다.
즐거운 듯 웃고 있는 남녀의 얼굴.
그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밝게 들려왔다.
약간은 심장이 시끈해 지는 모습.

그때 하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럼 저하고 경주해볼래요? "


예상하지 못한 제안.
그의 생각을 깨는 하윤의 말이었다.
명록의 시선에도 전혀 피하는 것 없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장난을 걸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명록은 씩 웃었다.



" 에이..... 그럼 나보다 한 오십 미터 앞에서 출발하세요. "




" 푸하.... 너무 저를 얕보는  아니에요? 훗.... 그럼 우리 내기 하죠.  사람이 시원한 맥주 사기. 어때요? "




하하.... 좋아요. 하윤 씨가 쏘는 맥주 한번 얻어 먹어보죠. "



그는 생각도 할 거 없이 바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하윤은 자신보다 작고 여려보이는 몸매였다.
다리도 그리 두터운 타입도 아니었고 보기 좋게 말라있는 그런 각선미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한 남자 아닌가?
그런 그가 하윤에게 자전거로 질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자전거를 마지막  게 언제더라......?



생각해보니 탈 줄은 알지만 고등학교 때 마지막 탄 게 끝인  같았다.
운전을 한 뒤로는 두 바퀴로 다니는 물건은  적이 없었다.
걷기.
대중교통.
그리고 회사차.
심지어 뛰는 것도 거의 힘든 생활.

그래도 몸으로 익힌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에
믿음을 올인하며 어느새 하윤의 손에 잡혀서 자전거 대여하는 곳으로 도착했다.
낡은 자전거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제법 깨끗한 것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하윤이 이번 내기에 꼭 이기고 싶었는지
타이어도 보고 페달로 살펴보며 자전거를 골라 빌렸고
명록은 여유만만 대충 깔끔해 보이는 것으로 골라 잡았다.



나중에 딴 소리 하기 없기에요? 후후.... "


하윤은 히쭉 웃고는 그가 말한 대로 먼저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략 오십 미터 정도 앞서 가고 명록이 타고
쫓아오는 것을 뒤돌아 힐끔 보더니 쑥쑥 스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지는 것을 보며 명록은 당황했다.


아니....!?
엥????




놀랄 새도 없이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몸을 낮추고 달리는 하윤의 자세는 이미 초보의 모습이 아니었다.

쉭쉭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힘껏 페달을 밟았다.
왠지 묵직한 느낌이 그의 마음처럼 휘저어지지 않고 있었다.


에이...
헉헉......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숨이 차오고 있었다.
그래도 많이 차이를 줄였는지 페달을 젓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까보다는 조금 더 커져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도톰한 청바지가 탱탱하게 당겨지는
하윤의 히프라인에 저절로 머물렀다.

옛날 노래가 머리에서 떠올랐다.

'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


정장을 입고 있는 하윤의 모습도  괜찮다고 느꼈지만
이렇듯 청바지를 입고 활동적인 모습도  어울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공원에서 그녀 뒤를 쫓으며 바라보는 하윤의 뒷모습이 예쁘게 보였다.

어느새 속도를 내던 그들은 자건거를 타는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면서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명록은 내기를 잊어버린 채 하나로 묶은 머리를 말꼬리처럼 흔들며
달리는 하윤의 뒤를 얌전히 쫓아가고 있었다.







**************




득실득실한 손님들.
약간 어두운 조명.
명절을 앞둔 시장 골목과 같은 소란스러움이 가득한 곳이라
대화하면서 옆자리에 방해가 될까 목소리를 아끼지 않아도  지경이었다.
하긴 이곳 안 좌석을 채우고 있는 어떤 사람들도
아무도 다른 사람들 대화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만의 이야기에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에 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와  여직원들이
부지런히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기본안주인 뻥튀기를 채우며
서빙을 보고 있었는데 일부러 벨을 울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연신 손님들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살펴주고 있었다.
정말 많은 손님들를 받고 있으면서도 친절과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집이었다.

공원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해가 붉게 타오르며 저물고 있었다.
승부는 결국 명록이 지고 말았다.
애초 이기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달리다보니
사람들이 많아진 상황에서 앞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전에 한 작은 내기를 둘다 잊은 것처럼
서로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공원을 돌고 있었다.
명록은 그냥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하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생각도 못한 즐거운 일요일 하루.
길고 긴 주말을 어찌 보낼까 생각해왔던 한주였다.


회사마저도 한가해서 그 지루함이 배가 되었던 시간이
지금은 꿈결처럼 희미해지고 일요일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도 짧게만 느껴졌다.

어느새 대여한 시간이 다되가고 있었다.
명록도 알고 있었으나 아쉬움에 말을 하지 않았는데 결국 하윤이 먼저 말을 꺼냈다.
결국 자전거를 반납하고 공원 입구를 나서니 도시의 저편에 예쁜 노을이 지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이젠 헤어져야할 시간.
이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시작될
새로운 한주의 일상을 준비해야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명록의 입에서는 전혀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 아까 내기는 제가 졌으니 맥주는 제가 쏴야겠네요. "

옆에서 걸음걸이를 맞춰 걷던 하윤의 눈동자가
잠시 커지는 듯 싶더니 금세 초승달을 그리며 환하게 웃었다.




하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후후후.... 그러고 보니 목이 좀 마르긴 하네요. 근처에 맛있는 맥주집이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

그리고 채 명록이 답하기  하윤이 찡끗 거리며 말을 이었다.

" 아까 승부는 어차피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못했으니 더치페이로 하기로 해요. 어때요? "



두말하면 잔소리.
명록은 혼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호프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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