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3화 〉제2부. 14화. 평행선 (12) (163/195)



〈 163화 〉제2부. # 14화. 평행선 (12)

163.

서...설마...
여기서?

그러고 보니 자신도 학교 캠퍼스에서 명록과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온몸을 뜨겁게 덥혀 버렸다.


선배는 자연스럽게 재희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서는
그녀의 허벅지를 옥죄고 있던 청바지를 풀어 내렸다.
재희의 귓가에 뭐라고 소곤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도리질치며 답했다.

싫어.... 지저분하단 말이야.... 아흑... "

적당히 떨어져 있다고 안심하는 건지,
술기운을 빌린 때문인지, 어둠 속에서 고스란히 노출되는
자신들의 소리에는전혀 신경 쓰지 않고 둘은 유희에 빠졌다.


싫다고 하면서도 나무에 기댄 
온몸을 비틀며 재희가 야릇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야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타인의 사생활을 직접 본다는 것은 오락과 유희가 목적인 그것들과 다르게
충격적으로만 느껴졌다.


수진이 야한 동영상을  번도 안봤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직접 눈앞에서 아는 사람들이 펼쳐지는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고 당장 입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어마어마한 쓰나미 같은 충격.


언제나 영화에서는 아름답고 예술적, 그리고 관능적으로 그려졌던 정사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재희와 강우선배의 섹스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달빛에 취해 발정기에 들어선 짐승들의 교미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추하고...
역겹고....
그래서 더욱 눈을 뗄  없게 만드는 그런 정사.

또렷하게 들리는 거친 신음소리.
잔뜩 헝클어진 옷가지에 바지를 발목에 걸친 채 나무를 붙잡고 있는 여자.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에 추리닝 바지를 대충 걸쳐 입은 남자가 그 뒤에 서있었다.


재희의 뽀얀 둔부에 밀착해 있던 강우 선배가 어느새 추리닝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탄식 섞인 여자의 목소리.

" 아흑.... 선배....."


강우 선배가 어느새 자세를 잡고 그의 엉덩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이 점점 커졌다.
짐승처럼 재희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 들 때마다
철썩거리는 살쳐대는 소리와 함께 재희가 기댄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고,
나뭇잎들이 사락거리면서 요란하게 부딪혔다.

싸아아아....
쩍  쩍...


살과 살이 닿는 소리가 그 와중에도 크게 들렸다.




" 헉헉...."

" 아아.... 악.... 아앙...... "

매직미러의 반대편처럼 보이는 재희와 강우 선배의 모습.
마치 그들 두 남녀의 귀에는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다른 곳의 신경을 차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 속에 완전히 빠져 서로의 몸을 탐닉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하나 그늘 속에 있는 두 남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굳어져 있었다.
특히 수진은 뜨겁게 달궈진 철판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었다.
지글지글 타고 있는 듯한 느낌.

달빛에 드러난 선배의 엉덩이도,
위로 올라간 옷 아래로 흔들리는 재희의 유방을 보는 것도
모두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수민과의 아까 시간 못지않는,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불편한 지금이라는 시간.
원치 않았던 이 상황.
그녀의 속마음은 이 장소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더군다나 지금 그녀는 혼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더욱 그런 마음을 부채질 하고 있었다..
수진 옆에 웅크리고 있는 수민이라는 존재.
그 사실이 그녀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재희의 신음소리가 커질수록....
강우 선배의 숨소리가 점점 짐승의 그것과 비슷해질수록....
남자.
수민도 남자라는 생각이 그녀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그러나....!
너무도 가까운 거리였다.


그곳을 벗어나려 하다가는
당장이라도 저 둘이 눈치챌까봐 두려웠다.
한창 행위 중에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난다는 가정이라는 것 자체가 생각도 하기 싫었다.
서로 얼굴이라도 마주친다면.....
아니 알고 있다는 사실이 저들에게 발견된다면
이후 학교에서 어찌  것인지 정말.....
그냥 이대로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했고, 숨소리마저도 크게 내지 못한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관음증이 있어서 재희와 선배의 행위에 흥분이 되는 것도 아닌데
보기 싶지 않아도 자석처럼 두 눈은 자꾸 두 사람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 흐억...헉헉... "




" 아...악.....악.... 아아.... 아 "



 마리 짐승의 흐느낌은 빨라져 가고 있었다.
유독 한 곳만 집중적으로 흔들리는 나뭇잎이 누가 봐도 한눈에도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높아지는 신음소리.
거친 숨소리.


" 아~ 선배... 아악! "


" 으윽! 헉! 학! 학!"


두 사람이 절정을 치달아 가고 있을 때,
 둘을 몰래 바라보는 수민과 수진의 손에도 식은땀이 가득 차올랐다.







**************






두근두근.
두근두근.

아직도 심장이 진정하지 못하고 큰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수진은 어떻게 방으로 돌아왔는지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재희와 선배가 정사를 마치고 천천히 옷을 주섬주섬 입고 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 그늘진 그들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진과 수민은 한참동안 숨을 죽이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휴우... "




무겁게 가라앉아있던 정적을 깨트린 건 수민의 한숨 소리였다.



이제 우리도 가자...... "


한숨 소리를 시작으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폭풍처럼 거세게 흔들었던 시간 뒤로 멍해져버린
수진은 그의 말이 너무도 반갑게만 느껴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수진은 빠르게 그곳에서 벗어났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말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해서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올 때만 해도 오랫동안 걸었던  같은데,
전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은 무지 짧았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얼굴.
수진은 수민을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어서 빨리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충격적인 장면을 본 덕분에 하얗게 비어져 버렸던
머릿속엔 이제 오만가지 생각들이 빽빽하게 들어차고 있었다.

드디어 보이는 자신의 방.
수진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 나... 나 먼저 들어갈게. "




" 그..그래 어서 들어가..."

" 응.... "

숲 속에서 나와서 서로 처음 입을 열어 나온 말은
문 앞에서 들어가라고 하는 작별인사였다.
수진은 수민과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바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쿵 하고 닫히는 문을 뒤로 하고 수진은 빈자리를 찾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이미 숙소엔 불이 꺼져있었다.
밤새 놀 사람들을 제외하고 잠자리에 든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누워있었다.


그들 사이에 한구석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수진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베개에 머리를 묻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잠은 도통 오질 않고,
아까 보았던 재회와 강우 선배, 두 사람의 섹스 장면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반복되고 있었다.


두 남녀의 신음소리.
거칠게 흔들리던 나뭇잎소리.
그리고 살과 살이 거칠게 부딪치며 내는 박수소리까지....


어둠  공간에서 계속 그들의 모습과 소리가 맴돌면서 수진을 번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떠오르는 생각들.
한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상념은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새 그것은 그녀를 향한 질문이 되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




재희와 복학생 선배는 아는 사이였을까?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일까?
숲속까지 들어왔던  섹스를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을까?
재희가 어떤 아이였지?
강우 선배가 그런 남자였나?
대체 둘은 어떻게 그렇게  걸까?
대체 언제부터....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사람의 접점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평소 학교에서 둘이 같이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물론 재희와 같이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강우 선배 또한 학년이 달랐다.


혹시.....
술 때문이었을까?

알코올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최음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술이라는 매개체에 젊은 두 남녀의 눈이 맞아버렸다.
이런 건 할리퀸 소설에서도 많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생각은 자신에게로 이어졌다.
아까 수민과의 시간.
물론 그녀만의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수민은 키스를 하려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수진은 얼굴이 달아오르며 빠르게 뛰는 심장고동을 느꼈다.


만약 재희와 강우 선배,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수진 역시 술과 분위기에 취해 수민과 키스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야릇한 신음을 내고 있던 사람이
재희가 아닌 수진 자신일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그녀를 엄습하고 있었다.

신음소리를 내던 재희의 얼굴이 자꾸 자신의 얼굴로 바뀌는 것을 보며
가지 말라고 자신을 붙잡던 명록의 말이 떠올랐다.

엠티 가는  걱정하던 명록.
그땐 그의 반대가 싫어서 아니 자신이 명록의 믿음을 그렇게 주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명록에게 미안해해야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수민과의 일을 생각하면 아슬아슬했던 아까의 시간이
자꾸만 실망하고 있는 명록의 얼굴로 이어지며 머릿속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낮에 피구 시합에서 자신을 가로 막으며 안았던 수민에게서 맡았던 진한 땀냄새....

하아....



수진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익숙한 번호.
자존심 때문에 참고 기다리던 전화를 그녀가 걸고 있었다.


꾹꾹....
삑.
삐릭.


전자음과 함께 수진의 가슴에 작은 파문이 생기고 마침내 신호가 걸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뛰는 심장소리.
약간 말라있는 입술의 감촉.
신호음 하나하나가 그녀의 신경을 바짝 서게 만들었다.

어렵게 걸고 있는 전화였다.


쑥스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어색함으로 수진의 마음은 초초한 기다림을 담고 있었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바로 씻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명록은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바로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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