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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화 〉제2부. 16화. 복권 일등 당첨되기 (1) (192/195)



〈 192화 〉제2부. # 16화. 복권 일등 당첨되기 (1)

192.

영원할 것 같았던 밤이 끝나고, 결국 해가 떠올랐다.
아침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소리가 울리자마자
퀭한 눈을  수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포트를 쓰느라 책상에서 밤을 샌 것이지만
그녀의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시간이었다.

창밖에 밝아오는 것을 보니 머리가  도는 기분이었다.
찌뿌둥한 몸이 마치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아팠다.
아니 그것보단 마음 한구석이  강하게 시려왔다.

언제부터야.....?


명록의 차가운 얼굴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싸늘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마치 그녀가 바람을 피우는 걸 예상했다는 듯
휴대폰을 수진의 눈앞에 내밀며 해명을 요구하는 그.
그리고 명록의 눈빛에 짙게 깔린 불신을 읽었을 때의 실망감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일을 생각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연이야 그렇다 쳐도 나희의 이름을 명록이 꺼낼 줄은 몰랐다.
그가 나희를 입에 올렸을 때 치밀어 오른 분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뛰쳐나온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대체....
명록은 나희의 이름을 어떤 의미로 꺼냈단 말인가.

하혈하는 친구를 병원에 아무 말 없이 데려다주고
그리고 남자친구인양 행세하며 불편했던 의사와의 대면도 알아서 해줬던 그를
얼마나 고마워했었는데 그런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희의 이름을 부르는 그를  줄이야.
그리고 그 연장선에 바로 자신이 놓여져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불쾌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해도 모자란 판에
결국 그녀가 주었던 기회마저 져버리고 명록은 모텔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 뒤로 전화한통....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명록에게 실망을 떠나서 다시 분노가 끓어올랐다.

잡지 않았던 명록에 대한 서운함이 모두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변해버렸는지
버럭 뛰쳐나와서 느꼈던 미안함은 눈 녹듯 사라져버리고
잠시 동안 가라앉았던 분노는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씩씩거리며 집에 도착해서  번이고 버려버리고 싶었던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을 때, 명록에게 전화가 오긴 했었다.
진동으로 바꿔버리고 내팽개친 휴대폰이 색색의 불빛을 깜빡거리며
온몸으로 부르르 떨고 있었지만 수진은 아이처럼 화가 났다는  표시하기 위해 받지 않았다.

한번.
두 번.
전화가 울릴 때마다 조금씩 화는 삭혀졌지만
네 번째 계속해서 오던 전화는 얼마 시간이 흐르기 전에 끊어졌다.

전화가  번만 더 오면 받아서 못이기는 척 사과를 받아주려 했는데,
결국 다섯 번째 전화는  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것이 명록에게  마지막 통화시도였다.

그 뒤 그에게 전화를 먼저 걸까 생각하다가도
마음 한구석에선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 있나
-하는 생각에 결국 들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말았다.
리포트를 쓰며 간간히 시선이 전화기를 향했지만 애써 외면하며 제출해야할 과제에 집중했다.

마음은 마치 장마철 개천처럼 온통 진흙탕이 되어
거센 여울을 그리며 마구 요동치는 동안 날이 하얗게 새버렸다.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맞이한 새벽.
리포트는 결국 다 썼지만 하나도 개운하지 않은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

처음으로 갖은 냉전의 밤.
명록과 다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화를 내고 감정이 상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경험의 시간은 정말로 끔찍했다.

그나마 리포트를  때는 무언가 계속 하고 있을 것이 있어서  했지만
이렇게 비어버린 시간이 닥치자 더욱 힘들고 괴로웠다.
자꾸만 쌓이는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잠시 눈을 붙일까 했지만
잠은 오지 않고 복잡해진 머릿속으로 두통이 생길 거 같았다.
이 상황에서 잠을 이룰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명록....
그가 내뱉었던 말들.
보지 못했던 싸늘한 표정.
삐죽거리는 입술이 눈을 감아도 앞에서 계속 움직였다.
생각하기도 싫은 장면에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재생되며 그녀를 괴롭혔다.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악몽과 같이
그리고 씹을수록 쓴맛이 나는 껌과 같이 벗어나지도 못한 채 수진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아....
차라리....
학교에나 가자.....
어차피 애들과 만나기로 했잖아.....


현실은 잔인했다.
수진이 어떤 상황에 빠진다 해도
주어진 리포트도 다가오는 기말고사도 멈추거나 취소될 리 없었다.

장학금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그녀를 더욱 무겁게 눌렀다.
아빠가 명예퇴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졌다고는 하지만 언제든 다시 닥칠 수 있는 일이었다.
취업에 실패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똑같은 길을 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모든  불확실한 미래.
결국 닥쳐있는 현실을 알차게 채우지 않고는 견딜  없었다.

바보 같아!
오빠는.....
바보~!
멍청이~!!


수진은 갑자기 다시 떠오르는 명록 생각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긴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세수를 하고 간단히 옷을 차려입고는 집을 나섰다.
하루의 잠을 채우지 못해 정신은 몽롱하고, 몸은 무거웠지만
그녀는 도서관을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무거운 가방.
어제 명록을 메고 갔던 가방을 꼴도 보기 싫어서
다른 것에 담아서 들고 나왔지만 가죽으로 된 백이 유난히도 무거웠다.
평소에도 다른 가방에 비해 무거워서 안에는 거의 텅 비우다시피 하고 다녔던 것인데
그냥 잡히는 대로 쓸어 담고 나오느라 들고 나온 것이 실수였다.

유난히도 아침부터 더운 하루.
여름이 코앞이긴 했지만 이렇게 덥지는 않았는데
아침 출근길에 나온 사람들 속에 끼어서 흔들리는 동안 후끈 거리는 기운과 함께 너무도 더웠다.
거기에다가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이 그녀의 신경을 계속 건들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스도 짜증스러웠다.
평일도 아니고 토요일인데 왜 이리 사람이 많은지 거슬리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진의 머리에 떠오르는 얼굴 하나.
방 명 록.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내내 머릿속은 여전히 명록과의 다툼만이 채워지고 있었다.
생각을 떨치려고 서둘러 집에서 나왔던 것인데 제자리걸음 하듯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 하하.... 친구들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프.라.이.버.시? 이건.... 영연이 그렇고 다 알고 있었던 거지? 너희 정말..... 너무한다..... 하하.... 나희도 그렇고 정말...."

그때 명록의 표정.
비웃는 듯한 그의 입가에 도는 그 감정.

나희의 이름이 명록의 입에서 튀어나오던 나오던 순간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감정이 느껴질 것 같았다.

유산을 한 나희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짧은 말에 담긴 그의 본심을 들었다.
나희를  알지도 못하면서, 명록은 자신에게 친구들을 폄하했다.
그건 수진 자신을 깎아내리는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수민과 함께 찍혀있던 그녀의 사진을 보며
나희의 모습에 자신을 덧대어 보았을 명록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건 수진 자신이 그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잘못이 있을지도 몰랐다.
언제나 왼손 약지에 자리 잡은 커플링처럼, 명록과의 관계도 늘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잘못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잠시라도 자신을 의심했다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희를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는 것도 참을  없었다.
여자애들에게만 순결을 강요하고 자신들은 마음껏 몸을 놀리는
그런 남자애들과 그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 수진을 화나게 하고 한편으로는 슬프게 만들었다.

순간 손에 쥔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져서 액정을 켜보지만, 아무런 연락도 들어온 것이 없었다.

대기화면을 덩그러니 채운 시간은 오전 9시.
명록이 평소라면 회사에 출근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토요일.
주5일 근무로 쉬는 날이 분명 했다.

아직......
자는 걸까?

수진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연락이 없으니 주말이라 아직까지 명록이 자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어쩌면 그도 그녀처럼 밤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지금쯤에나 잠에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최면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 하고 싶었다.



**************


시끄러운 소리가 아까부터 귀에 거슬렸다.
그리고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기에 절로 소름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굴이 마비된  뻣뻣한 느낌.
가뜩이나 무거운 눈꺼풀이 오늘따라 더욱 그 무게가 늘어난 거 같았다.


" 으으...... "

손바닥에 차가움을 느끼며 잡히는 대로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절로 명록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깨질  같은 머리.
누가 자는 사이 그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는지
금이 쩍쩍 간 것처럼 찌르르 통증이 울리며 깊은 곳까지 쑤시듯 아려왔다.


침대가 왜 이리....
딱딱해....
이불은 어디가고....
완전 차갑고......
제길....

입술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목이 칼칼했다.
입 안에 염화칼슘이라도 물고 잔 것처럼 습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하라 사막을 옮겨놓은 느낌이었다.

냉장고를 찾아 걸음을 옮기려는데 발이 무겁게 느껴졌다.
양말을 신고 잤다고 하기엔 너무 이상한 감촉.
거기에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남달랐다.

방이라고 생각하기엔 무언가 이상한 느낌.
힘겹게 눈을 떠서 아래를 보니 구두가 보였다.
먼지가 잔뜩 묻어서 뿌옇게 되어버린 구두코.

순간 깜짝 놀라 절로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멀리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서로 수군거리며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옆에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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