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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화 〉제2부. 16화. 복권 일등 당첨되기 (3) (194/195)



〈 194화 〉제2부. # 16화. 복권 일등 당첨되기 (3)

194.

쨍.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수진의 말에
세친구들의 표정이 멈칫 얼어붙고 주변이 싸늘해졌다.
말을 쏟아낸 뒤 수진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말은 내뱉어진 후였다.
평소라면 가볍게 면박을 주고, 밥  끼와 노트 필기를 교환했을 텐데
이렇게 쌀쌀한 말이 나온 것은 무의식에선 아직도 이번 일의 원흉이
영연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연이 사진만 안 보냈어도.....
영연이 수민과 자기를 엮으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영연이 술김에 그런 장난을 치지만 않았어도.....

영연도 수진의 말을 듣고 조금 벙찐 얼굴을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장난스런 웃음을 흘리던 그녀였지만
수진의 앙칼진 말에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수진은 그런 그녀에게 어젯밤 명록과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고
이게 모두 너 때문이라며 원망하며 하소연하고 싶었다.
네가 어제 한 장난이 어떤 일을 만들었는지 낱낱이 말해주며 마구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영연도 그 사진이 명록이 볼 거라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부러 보라고 전해준 것도 아니고 수진이 언제나처럼
집에서 리포트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고 알기에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던 말을 뱉지 못하고 말았다.


" 아.... 응... 에이 왜 그래.....? 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그래도 이번만 보여주면 안 될까?  학기는 열심히 필기해서 너 명록 오빠랑 데이트 하느라 수업 빠지면 내가 대신 보여줄게. 꼬옥~ 약속~! 응? 그러니까 이번만 보여주라~ "

영연은 다시 웃으며 장난치듯 졸라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수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영연의 입장에선 충분히 마음이 상할 말들이었다.
하지만 영연은 전처럼 장난스럽게 웃으며 다시 친근하게 수진에게 애교를 피고 있었다.

수진은 그런 모습을 보며 내심 자신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연이 화를 내며 받아쳤다면 아마 지금 분위기는 이미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색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넉살 좋게 얘기를 이어가자
 이상 수진도 싫다고 하지 못하고 밥 먹고 커피나 쏘라고 말하며 받아줄  밖에 없었다.

수진이 뚱한 말에 영연이 오케이를 연발하며
자리에 앉으면서 싸늘했던 식당의 분위기는 풀어졌다.
다시 설아의 영연 구박기가 이어지면서 아까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연의 과장된 목소리.
설아의 톡 쏘는 말이 섞이면서 식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덕에 자꾸만 마음속에서 영연의 탓으로 미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수진의 기분은 더욱 비참해졌다.

싸움의 발화가 된 영연의 사진.

그 사진을 보낸 영연이 잘했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이 그녀의 잘못도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렇게 따지고 보면 영연이 그런 행동을 한 것조차
그녀의  남자친구와의 이별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수진에게는 그런 일이 있지 않게
어쩌면 위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필 그것이 왜 명록의 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평소에는 전혀 신경도 안 쓰던 자신의 휴대폰을 그가 마음대로 확인했던 것일까.
갑작스런 명록의 돌발 행동.
그가 수진의 핸드폰을 마음대로 들여다볼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얄궂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이런 고통 속에 빠져있어야 하는지 수진은 알 수 없었다.
세 친구들의 웃음소리 가운데 점점 자신만 조그맣게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


쏴아아아.

평소보다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술기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몸에서 빨리 알코올 기운을 날려 보내고 싶은 마음과
길거리에서 뒹구른 때를 벗겨내고 싶은 욕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가운데
벽을 잡고  분 동안 샤워기에서 뿌려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뻗어버리다니.....

새벽 늦게까지 마시고 실제 눈을 붙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에서 공원 벤치에서 잠들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고개가 흔들어졌다.
취객을 노린다는 아리랑치기에 대한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서
쯧쯧 혀를 차며 길바닥에서 정신을 잃었던 취객을 욕하고 비웃던 자신이
정작 그들이 되어서 있었다는 것도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갑도 핸드폰도 무사히  있었고
비록 주지 못했지만 고가의 목걸이도 주머니에 있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아니.....
퍽치기 손에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위험한 밤을
아무 일도 없이 멀쩡한 몸으로 다시 집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목걸이......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집어 던지고 싶었던.....
수진의 선물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다시 급우울해졌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저 멀리 바다를 향해 던지던 남자 주인공들의 장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결국 명록은 그들처럼 할  없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감정을 분출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카드로 결제한 할부대금이 다음달 날아오는 것이 떠오르자
힘껏 머리 위로 치켜들었던 상자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한두푼도 아니고....
거금을 주고 샀던 물건 아니었던가.


제기랄.....
젠장....


명록은 샤워기 아래 얼굴을 치켜들었다.
정수리를 때려대던 물줄기가 얼굴로 따갑게 뿌려졌다.

타다다다....

명록은 양손으로 세수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얼굴을 닦아내며
다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따듯한 물과 함께 씻어내려는 듯 비벼댔다.
어푸어푸 소리를 내며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




집 안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 감사한 토요일 오후였다.

길거리에서 노숙한 차림으로 집까지 오는 동안
받았던 사람들의 시선은 그냥 택시타고 올  하는 후회를 하게 만들었다.
거기에다가 만약  꼴을 어머니가 보았다면
당장 들고 있던 빗자루로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토요일 점심쯤 들어간 집은 고요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외출하셨을 테고
어머니는 오랜만에 외가 쪽에 나들이 가신다고 하셨던 터라
일찍 부지런히 나가신  분명했다.

샤워를 마치고 대충 물기만 닦아낸 
머리에 수건을 얹고 반바지만 홀랑 입고 거실로 나왔다.
햇볕이 길게 들어오는 가운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까보단 많이 나아보였다.

하긴.....
부스스한 머리모양에 여기저기 흙자욱이 가득했던
옷차림만으로도 충분히 모 개그프로에 나오는 거지같았다.
물론 꽃거지가 아닌 그냥 거지.

젖은 머리를 털자 물방울이 허공으로 흩어지며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샤워를 한 탓인지 머리도 아까보단 맑아졌다.

명록은 머리를 말리던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햇살에 데워진 소파의 가죽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졌다.

하아.....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길게 한숨이 쏟아졌다.
어젯밤 태풍처럼 휘몰아쳤던 시간이 숨 쉴 새 없이 하나 가득 감은 눈앞으로 지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수진.
그녀와의 달콤했던 시간.
그리고  안을  소리 나게 울리던 날카로운 목소리.
요란한 소리를 내며 쾅 소리와 함께 닫혀버린 철문과 함께
휭 하니 사라진 모습까지 계속 한편의 파노라마가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아....
젠장......

명록은 젖혔던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밀려오는 후회.


대체....
난 왜 그런 걸까.....


수진의 어깨에서 받아들었던 그 무거운 가방.
 묵직한 무게 속에서 그간 리포트 때문에 바빴다는
그녀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섹스  갑작스럽게 후다닥 일어난 그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 것이 사실이었지만 평소라면 수진도
그의 가슴에서 그대로 같이 잠들었을 것이었다.
유난히 사랑을 나누고는 노곤해져서 햇볕에 드러누운 고양이처럼
쌔근쌔근 잠들곤 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채 여운도 즐기지 못하고 바로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들기는 모습이 마감에 쫓겨서 초조하게 보고서를 작성하던....
명록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런 수진을 거의 억지로 불러낸 것도 자신이었다.

리포트를 써도 된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가뜩이나 안된다고....
힘들다고 하던 그녀를 모텔로 불러내서 같이 하룻밤을 보내자고 어거지를 부린 것은
방명록 그였다.

그렇게 리포트를 쓰던 수진을 가만 두지 못하고...
계속 귀찮게 하던 명록이 깊은 땅 속에 파묻혀 있던 지뢰를 건드려서 폭발시켰다.


왜....
그냥....
그냥  지켜보지 못한 것일까.....

엠티 이후 분명 수진과의 관계가 왠지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자주 보지 못하고 갑자기 바빠진 그녀의 생활에 잠시 보는 것마저 힘들어지면서
왠지 자신만 혼자 애태우는 것 같아 마음 속 한구석에서 자글자글 앙금이 쌓여가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점점 조잔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으......


머리를 쥐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두개골에 느껴지는 압박도 점점 강해졌다.
압박이 통증으로 바뀌어도 명록은 힘을 풀지 않았다.
마치 자신에게 벌을 주듯 조금씩 힘을 강하게 쥐었다.
숙취가 올라오는 두통도 한자리 차지하여 머리에 느껴지는 고통을 더하고 있었다.


제길....
바보 같이 왜 수진의 핸드폰을 본 걸까.....


그리고 선명하게 스치고 지나가던 한장의 사진!
제법 잘생긴 남자애가 수진을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의 사진이라니...
하필 왜 그때....
그런 사진이 왔던 것일까.
영연은 무슨 생각으로 수진에게 그런 것을 보낸 것일까.
마치 명록에게 고자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딱 그 시간에 맞춰서....

정말 인생이라는 것은 사람의 뒤통수만을 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녀석인가 보다.
그 사진만 보지 않았으면 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아니 모든 것은 그런 사진을 전송한 영연의 탓이었다.

옛날 병원에서 갑자기 간호사 코스프레로 병실에 입원했던
모든 환자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던 설아라는 친구도 그렇고
수진 옆에 친구들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인 것은 알고 있었다만
서로 그런 장난을 치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대체 그 사진은 무어란 말인가.

수줍은 듯 볼이 붉어진 수진의 얼굴.
그리고 그곳으로 다가와 있는 남자애의 옆얼굴.

울컥!
뜨거운 것이 다시 마음 속에서 떠올랐다.
수진과 같은 시간대에 있어 보이는 그녀석의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자신만이 차지할 수 있는 수진의 옆자리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다시 가슴 속에 불을 지폈다.


오빠! 오...오해야. "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해하는 목소리.

" 오빠..... 오해하는 거야..... "


하지만 이내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바뀌어져 있었다.

" 대체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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