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바늘
"어둠의 장막."
우거지게 자라난 나무의 그림자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살아있는 숲`.
그 그늘 속에 숨은 클레온이 나지막하게 주문의 이름을 내뱉으면,
손에 쥔 갈라테아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이 전신에 휘감긴다.
갈라테아와 재계약을 했던 마력의 소영역을 응용한 기술.
바깥에서 간섭하지 못하는 결계로써의 방어력을 없앤 대신
고도의 마력시를 사용하지 않으면 클레온을 볼 수 없게 하는 일종의 은신 능력이다.
그야말로 라일라 정도의 마력을 가진 인간이 전력을 다해 눈에 마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클레온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재계약을 통해 마검을 완전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된 클레온이 가장 먼저 만들어낸 것은 타인의 눈을 피하기 위한 능력이었다.
클레온이 파티에서 추방된 날.
그리고 마검의 지배자로 다시 태어난 날로부터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계약을 끝마친 갈라테아는 핵의 재구축을 위해 하루 정도 휴면 상태에 들어갔고.
클레온 역시 그 영향을 받아 숙소에서 죽은 것처럼 잠이 들었다.
그 후,
상태를 회복한 주종은 새롭게 얻은 능력을 차근차근 확인해나가며 알베인의 파티를 향한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아주 빠르게 찾아왔다.
001
몸을 회복한 클레온이 모험가 길드에 얼굴을 내밀면 길드의 직원들은 어딘가 불편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혼자서 명성을 쌓아올렸던 시절부터 알고 있던 인간들에게는 그 정도가 덜하기야 하겠지만─
─역시 용사와 좋은 끝을 보지 못한 모험가의 평판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길드의 직원들은 파티 외부의 인간들이고 손님인 모험가들의 내부 사정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자유를 추구하는 모험가들의 사상에 어긋나거니와 그것이 길드로써 공정하게 파티를 대하기 위한 방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클레온 역시 그들에게 필요 이상의 말은 건네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클레온의 복수 대상은 `알베인`과 그 일행뿐이니까.
"저... 클레온씨...?"
그런 클레온에게 유일하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이전에 본 적이 없는 한 명의 소녀였다.
나이는 클레온보다 두세 살 어린 알베인, 쿠온보다도 조금 밑일까.
아마, 라일라와 비슷한 나이겠지.
머리색은 타오르는 노을빛과 같은 주황색.
몸의 중간- 등의 가운데까지 내려오는 길이이며, 빛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여우의 털가죽의 색처럼 느껴졌다.
살구색의 피부. 초록색 눈. 어딘가 활기차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다.
몸에 걸친 것은 평범한 가죽과 천으로 만들어진 갑옷.
가볍고, 활동성이 좋으며, 유연하게 움직인다.
클레온은 그녀가 전위에 서거나, 후열에서 마법을 캐스팅하는 직업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전신을 감싼 의복 아래에서 움직이는 단련된 근육.
그중에서도 팔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근육은 성검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강력한 검을 휘두르는 알베인보다도 단련되어 있었다.
엄지, 검지, 중지를 감싸는 두꺼운 장갑을 보고 나서,
그녀가 궁수, 길잡이의 역할을 겸하는 `레인저`라고, 클레온은 판단했다.
클레온은 그녀에게서 3년 전의 쿠온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머뭇거리며 말을 걸어온 것도 그렇고, 아직 도시가 익숙하지 않은 듯한 분위기.
아마, 그들처럼 이곳보다도 더한 변방에서 올라온 풋내기 모험가이겠지.
"누구지?"
그렇기에, 그다지 좋은 인상은 없었다.
혹시라도 또다시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다가온 신참이라면….
부숴버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사, 사샤라고 합니다. 오늘은, 클레온씨께 인사를 하고 싶어서…."
"인사를…? 나에게?"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나가는 사샤의 태도에 클레온은 조금 흥미가 돋았다.
확실히 모험가는 선배가 후배에게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구조가 많이 보인다.
그만큼, 먼저 획득한 지혜나 경험이 모험가에게 있어서는 최후의 조커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배를 겉으로나마 존중하는 후배들도 꽤 있지만─
"저, 어제부터 알베인 씨의 파티에서 함께 모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아, 아뇨. 그…. 일단은 제가 클레온씨의 대신이라는 것 같아서….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에맞지 않나 해서…."
"그런 도리는 없다. 녀석들에게 듣지 못한 건가? 내가 파티를 나갈 때 있었던 일이라던가, 나에 대해."
클레온의 싫증이 난 듯한 말투에 사샤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물론, 모두에게서 사정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험가들끼리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라고 들었어요."
그녀는 쓴 미소를 지어 보이며 클레온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어딘가 동정과도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조금 시간을 두고 냉정해지면. 분명 알베인씨도 클레온씨와 화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클레온씨를 포함해서 다섯 명의 파티로 돌아갈 수─"
"──..."
사샤의 말을 들은 갈라테아가 작게 진동했다.
그 떨림은 클레온만이알 수 있었으나, 클레온은 그런 갈라테아를 진정시키며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연다.
"그렇군. 다시 다섯 명이서…. 인가."
"네! 그렇게 되면 밸런스 적으로 굉장히 안정적인 파티가 될 거에요!"
"꽤 낙관적인 희망 사항이군. 알베인이 그런 걸 바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클레온은 한껏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샤에게 답했다.
"기대하고 있겠다. 너희와 다시 모험하는 날을."
"──! 네!"
이후, 사샤는 클레온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인 뒤 그 자리를 떠났다.
클레온은 조용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감정과 사고를 정리하려 했지만 옆에서 끼어드는 목소리가 그것을 방해했다.
"순수하지만 멍청한 여자."
차갑고 어두운 여성의 목소리.
그것은 클레온의 귀에만 들리는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머릿속에 울린다고 해야겠지.
"그런평가는적절하지 않아. 저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지능과는 관계없어."
클레온의 목소리 역시, 입을 통하지 않고 갈라테아에게 전달된다.
영혼의 결속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사념의 대화이다.
"그걸 멍청하다고 하는 거지."
갈라테아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알베인 녀석. 사샤를 미리 점찍어 두고 있던 거군. 이렇게까지 빨리 새 인원을 영입했다는 건..."
"라일라와 쿠온. 그 여자들은 파티에 새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을 테니까…. 클레온을 방출해서 부족해진 전력을 빠르기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득한 거겠지."
클레온과 갈라테아의 예상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
알베인의 행동 패턴은 이 3년 동안 거의 분석되어 있었으니까.
아직 상경하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 여성 모험가 사샤.
외모는 라일라와 쿠온에 비해서 조금수수하지만 그녀들에게는 없는 건강미가 느껴졌다.
자신에게 향해지는 다양한 여자들의 호감, 호의,
선망에 취해있는 알베인이 다음 먹잇감으로 노리기엔 적합한 대상이다.
덤으로, 눈엣가시 같은 클레온을 치울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의 기분이겠지.
"하지만. 우리로서는 좋은 기회다."
클레온 역시, 알베인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감지한 갈라테아는 주인의 생각에 의문을 표한다.
"어떻게 하려고?"
"저 여자를 이용하지. 사샤. 그녀부터 시작하자."
알베인을 중심으로 단단한 유대감을 가진 파티.
겉으로 보기에는 절대 균열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 사이에
작은 구멍을 만들기 위한 바늘로써 사샤는 선택되었다.
002
"아얏."
일행과 함께 숲을 나아가던 쿠온은 목 뒤에 따끔한 아픔을 느끼고 재빠르게 오른손을 그곳에 가져갔다.
"왜 그래? 쿠온."
그런 쿠온을 본 라일라가 그녀에게 의문을 표하자 쿠온은 `으응.`하고 고개를 저었다.
"날벌레한테 물렸나 봐."
"아- 너도? 확실히. 여기 벌레들이 많아서 짜증나지."
라일라의 공감의 쿠온은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알베인은 앞에서 마물들의 공격을 막아주고 있는데 벌레 정도에 물려서 소리를 낸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서였다.
"살아있는 숲에 독을 가진 벌레나 몬스터는 나오지 않는다고, 도감에 쓰여 있었어요."
나무 위에서 길을 찾던 사샤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땅에 착지하며 쿠온에게 이야기한다.
"여기 오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도 그 정도는 알거든?"
라일라의 조금 오만한 핀잔에, 사샤는 오오! 그렇군요! 하고 악의 없이 반응한다.
거기에 라일라도 독기가 빠져, `흥` 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런 모습을 흐뭇하다는듯이 알베인이 바라보는 상황.
클레온이 빠져나가고 새롭게 들어온 사샤라는 모험가는 며칠 전 일행이 있는 도시에 나타났다.
자신들처럼 시골에서 올라왔으며
모험가가 되어 명성을 떨치길 바라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미리 영입의 제의를 귀띔해둔 것은 정답이었다.
가만히 두었으면 그녀 같은 세상 물정 모르는 여성.
다른 모험가의 절호의 표적이 되었을 테니까.
이렇게 또 한 명.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여성을 옆에 두는 것에 성공했다는 성취감이
알베인과 성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좋게 보더라도 선의라고 할 수 없는 플러스 감정에도 성검은 반응했다.
"사샤. 정찰 결과는?"
"아, 네. 목표는 150m 앞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있어요. 중간에 길을 막고 있는 대형 몬스터- 아마, 식물류의 골렘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지만. 문제없을 것 같아요."
"플랜트 골렘인가. 하급이려나, 중급이려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사샤의 말에 라일라는 화염계열의 마법을 미리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라일라는 그렇게 화염 마법을 최대한 준비하고…. 사샤는 아직 우리보다 레벨이 낮으니. 후열에서 싸움을 지켜보며 견제를 위주로 움직여 줘."
"네! 맡겨만 주세요!"
다인으로 이루어진 파티의 모험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호흡과 합을 맞추는 것.
의사소통되지 않는 다수 따위, 혼자서 움직이는 것만 못하다.
알베인도 단순하긴 하지만 모험에서 바보는 아니었다.
클레온과 함께 쌓은 경험 덕분에 옆에서 보면 그의 지시는 정확하게 보였다.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비하고,
자신들이 가진 패에서 적합한것을 내놓는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모험은 성공으로 이어진다.
"쿠온. 플랜트 골렘은 화염 마법에 약하지만, 그래도 재생을 해. 아마 몇 번 저항해 올 거야. 그러니까, 네 회복마법이 중요해.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잘 보조해줘."
"응. 알겠어."
하지만 알베인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자신들의 패`에는 반드시 `그들의 상태`를 확인해서 갱신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령 여러 번 온 적이 있는 곳에서라도.
무언가 이변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고 대비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예를 들면.
쿠온의 회복마법의 위력이 반감되어 회복이 제때 맞지 않는다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알베인의 파티는 또다시 의뢰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