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균열
"하아~~~."
한가한 모험가들이 언제나처럼 모이는 곳인 길드의 휴게소.
오늘도 어제처럼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지 못한 인간들이 아침부터 눌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가운데.
구석에 처박힌 채 이상한 소리를 내는 소녀가 있었다.
이름은 사샤.
신출내기 모험가이다.
그리고 어제 막 처녀 딱지를 떼었다.
`나. 어째서 클레온씨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열었던 걸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제의 자신은 조금 이상했다.
클레온에게 첫 키스를 빼앗긴 순간부터 마치 현실의 감각이 애매해진 듯한 느낌.
달콤한 술에 전신을 담가져 다가오는 모든 것을 거부할 수 없는 몽롱함.
그런데도 똑똑하게 기억나는 클레온의 손길, 자극.
그리고 쾌감.
"아읍."
머리를책상에 박으며 자신의 주황색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주변의 모험가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샤를 보며 잠시 침묵을 했지만.
뭐, 모험가는 태반이 이상한 녀석들이니.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다.
사샤 역시, 그런 모험가들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했던 걸까.
자신의 엉덩이의 가벼움에 후회를 하며 수치심을 달래려 노력하던 중이다.
클레온.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
검은 색 머리에, 검은 색 눈.
알베인이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믿으면 안 되는 인간.
혼자 있으면 검이랑 이야기하는 녀석.
짐 덩어리. 여자의 적. 엉큼한 녀석.
아무리 싸웠다지만 자신의 전 동료를 거기까지 말할까. 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마지막 두 개는 맞을지도 모른다.
라고 조금 생각했다.
`그래도.`
사샤는 복잡한 감정 속에 작게나마 싹튼 클레온에 대한 믿음을 느꼈다.
왼쪽 가슴에 자신의 손을 올린다.
어제, 이곳에 클레온의 송곳니로 상처를 내도록 부탁한 자신의 행위가 떠올랐다.
오늘 아침 확인해 보니 그곳에는 어제는 없었던 옅은 문양이 떠올라 있었다.
독의 부류는 아닌 것 같고 클레온의 영향일까.
하지만. 딱히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클레온에게서 받은 이 문양에서 그의 애정과도 같은 것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아."
그러면 사샤는 자신의 배 아래쪽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기를 느꼈다.
책상에 상체를 파묻은 채 사샤의 손이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주변의 인간들은 사샤로부터 완전히 시선을 돌린 상태.
거칠어지는 호흡에서 사샤가 이성의 끈을 놓은 채 자신을 달래려 한 순간─
"어머, 사샤. 좋은 아침."
"으힉!? 가, 가가가 갈라씨!?"
갑자기 자신의 앞에 앉으며 말을 걸어오는 갈라에 의해 강제적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방금 자신이 무엇을 하려 한 거지?
사샤는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크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미, 미쳤나 봐 진짜.`
"왜 그러니? 얼굴이 빨간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어째서 말해주시지 않은 건가요!"
사샤는 재빠르게 화제의 전환을 위해 갈라에게 항의하듯 몸을 일으켰다.
"마력충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약이란 게. 크, 클레온씨의 정…. 체액이었다니!"
"그야,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전에 네가 가버렸잖니."
갈라는 곤란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럼, 사샤는 `윽.`하고 할 말이 없어지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고, 갈라는 장난기가 동한 듯 그녀에게 물어오는 것이다.
"그 반응을 보니. 제대로 약은 챙긴 모양이네?"
"뭐... 그, 그렇죠. 헤, 헤헤..."
멋쩍은 듯 마른웃음을 흘리는 사샤에게 갈라가 얼굴을 들이민다.
"...어땠어? 그의 물건. 역시 컸어?"
"네? 저는 다른 사람 건 본적이 없어서... 하지만 대용량 포션 병보다는 컸…. 아니, 뭘 물어보시는 거예요!?"
"미안미안~ 대용량 포션 병보다. 호호오"
갈라는 손으로 대충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재보더니, 흐음. 흐음. 하고 무언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사샤는 그런 갈라를 볼수록, 어제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서 입을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용사파티도 이제 부활하는 건가. 축하해."
갈라는 너스레를 떨듯이 웃어 보이며, 사샤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측과는 달리 아직 알베인의 파티가 완전해지는 것은 조금 뒤의 일 같았다.
"약을 먹고 상태가 좋아지신 건 좋았는데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으면서 기도를 올린 후유증이 왔나 봐요."
"어머 그건."
"네. 완전히 나으시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이틀에서 3일 정도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니까."
아침 일찍, 쿠온의 방을 찾았을 때. 그녀가 연거푸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것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파티에 복귀하려고 필사적이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졌다.
"사샤, 여기 있었냐. 라일라가 그러는데, 쿠온의 치유력이 돌아왔다고."
그때, 사샤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티의 리더인 알베인이었다.
어젯밤에도 늦은 시간까지 주점에서 시간을 보낸 것일까.
눈 밑에 진 눈 그늘이나 술 냄새에 사샤는 조금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되도록 티를 내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그런 사샤의 배려도 무의미하게 알베인의 시선은 사샤의 앞에 앉은 갈라에게 향해 있었다.
천천히 그 시선의 끝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사샤는 놓치지 않았다.
“당신은?"
"갈라. 보다시피, 당신과 같은 모험가야."
이전 사샤에게 자신을 소개했던 것과 똑같은 문구.
무언가, 정해져 있는 소개문일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갈라의 모습에 알베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난, 알베인. 사샤와 함께 모험을 하는 용사야."
"알고 있어. 당신, 꽤 유명하니까."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하는 알베인.
그리고 그것을 받아주는 갈라.
손과 손이 마주 잡힌 순간 갈라의 눈가가 초승달과 같이 구부러졌다.
연하의 남성을 자극하는 요염한 눈빛이었다.
알베인의 마음에 이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다는 검은 욕망이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아, 알베인씨. 쿠온씨라면 이제 괜찮을 거예요. 아직 체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파티에 복귀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 치유력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응? 아아, 그래? 잘됐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흘려듣는 듯한 태도에 사샤는 조금 질려버리고 말았다.
이 남자 이렇게까지 자기가 관심 있는 것밖에 모르는 걸까?
어딘가의 누구와는 천지 차이다.
"하지만 그러면 오늘도 의뢰는 무리인가?"
잠시 흐른 침묵에 멋쩍어진 듯, 알베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며칠 째 의뢰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차하면 파티의 평판이 하락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초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들었냐! 그 저택의 의뢰. 클레온이 받았다는 것 같은데?"
"그 녀석, 요즘 잘나가는걸. 뭐, 마검사니 파티로 움직이는 것보다 혼자가 편하다는 거겠지."
그리고 들려오는 재수 없는 말소리.
알베인은 칫! 하고 혀를 차며 쿵 하고 주먹을 책상에 내리쳤다.
"어머, 초조한 것 같네. 용사님."
"누가!? ...아니, 미안. 당신 말대로야 갈라씨. 이런 데서 발목을 붙잡혀 있을 때가 아닌데"
알베인은 순간적으로 화를 주체하지 못할 뻔 했지만.
갈라의 보라색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분을 삭이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쿠온에게 회복을 전적으로 맡기고 용사라면 습득할 수 있었던 치유주문을 습득해두지 않은 자신의 탓이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알베인은 자신들의 순탄하던 모험이 이렇게 좌절되는 것에 너무나도 면역이 없었다.
"알베인씨..."
아무리 다혈질에 자기 멋대로인 인간이라지만 풀이 죽은 알베인을 보면 사샤로서도 동정심이 들었다.
갈라도 그런 알베인에게 무언가 느낀 것일까.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품속에서 한 장의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푸른 인장이 새겨진 양피지. 길드를 통해 작성된 의뢰서이다.
"그럼, 나랑 임시로 파티를맺을까?"
""엣.""
갈라의 제안에.
사샤와 알베인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꺼낸 의뢰서는 A급의 의뢰.
난이도는 조금 있지만, 파티가 완전하다면 클리어 하는 데 별문제는 없는 난이도였다.
"원래는 따로 파티를 구해보려 했지만, 당신들은 마침 치유역이 필요한 것 같고."
갈라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알베인을 바라본다.
알베인은 의뢰서와 갈라를 번갈아 보며, 머릿속에서 계산하기 시작했다.
"갈라씨. 당신, 치유주문이─"
"쓸 수 있어요. 그야, 성직자만큼은 못하겠지만. 저, `주술사`라고 해서, 어느 정도 공격도, 회복도 가능한 클래스거든요."
"주, 주술사. 희귀 클래스."
사샤 역시 침을 삼켰다.
마검사나 용사보다는 아니지만, 주술사 역시 여러 역할을 동시에 담당할 수 있는 만큼 마력의 제어의 난도가 높아 쉽게 찾을 수 없는 직종 중 하나였다.
실제로, 알베인도, 사샤도.주술사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만약 갈라가 파티에 합류하여 준다면 부족한 회복력을 채우면서 파티의 공격력도 늘어나니, 이 의뢰 정도는쉽게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모두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샤가 그렇게 알베인에게 말하려는 순간.
"좋아! 하하, 갈라씨. 잘 부탁해!"
알베인을 말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001
새벽녘.
신전에서 전신에서 땀을 흘릴 정도로 오랜 시간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던 쿠온은 그런 자신에게 뛰어온 사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의 방에서 옷이 갈아입혀 진 채 누워있었고.
그 옆에는 사샤가 펑펑 울면서 `제발 몸 좀 챙기세요~!`하고 자신을 혼내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 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치유력을 회복해서 파티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런 쿠온에게 사샤가 약병을 내밀었다.
무색무취의액체.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쿠온은 알 수 없었다.
정체를 물어보면, 길드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구한 약이라고 하였다.
쿠온은 자신의 몸에 마력충이 기생되어 있으며, 그것을 꺼내려면 커다란 수술이 필요하단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 건네받은 이 약을 마시면 수술 없이도 마력충을 빼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아... 그 때의 그 벌레구나.`
쿠온은 살아있는 숲에서 느꼈던 벌레에 물렸던 감각을 떠올리며, 목의 뒤를 문질렀다.
조금 더 신중해야 했다.
모험을 다니면서 잊어선 안 되는 것. 자신의 상태를 항상 확인할 것.
만약 그 자리에 귀에 닳도록 잔소리를 하던 그 남자가 있었더라면.
지금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까.
한 번에 마시지 말고 몇 번에 나누어 마실 것을 당부 당한 쿠온은 손에 든 액체를 5분의 1 정도 들이킨다.
물과 같이 생긴 생김새와 다르게, 조금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이상했지만.
어떻게든 목을 넘기는 것에 성공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약의 효과인지 몸이 조금 포근한 감각에 휩싸이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하지만, 손끝에 돌아오는 마력의 감각에 잠시 자신의 몸에 치유주문을 걸면, 몇 번이고 무릎을 땅에 찧어가며 생채기가 났던 곳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사샤에게 안긴 채 자신도 눈물을 쏟아내고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 높아진 체온으로 인해 몸에 발열이 있다는 것을 느끼며 쿠온은 조금씩 정신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이마에 올려진 젖은 수건에 기분 좋은 차가움을 느낀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떨어져 가는 손을 향해 자신의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사샤...? 라일라...?"
어느 쪽일까.
하지만 생각보다도 두꺼운 손에, 이윽고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베인...?"
움찔. 하고 그의 손이 멈춘다.
이윽고, 쿠온의 눈이 완전히 떠지며 간호인을 확인한 순간 쿠온의 안색은 새파래졌다.
"크, 클레온..."
거기에는, 클레온이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한 모습으로 묵묵히 자신의 눈을 바라본 채.
손에는 방금 그녀의 머리에서 떼어낸 젖은 수건을 쥐고 있다.
쿠온은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에게 열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상체를 일으켜뒤로 물러섰다.
클레온은 그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내쉰다.
그런 쿠온의 반응에 질린 듯했다.
"어째서 클레온이 여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사샤나 라일라라면 모를까. 어째서 클레온이 여기에…?
알베인의 말에 따라 자신의 상태는 절대로 클레온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을 터이다.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런 쿠온을 보며 대답했다.
"사샤의 부탁이다. 원래라면 자신이 올 예정이었지만, 일이 생겼다고 하더군."
"사, 사샤... 그 아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순수한 선의겠지. 그녀는 내가 너희와 재결합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할 정도니까."
쿠온은 수건이 떨어진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살짝 뜨거운 감각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지만.
그보다도 몰려오는 두통이 더 컸다.
만약에라도 알베인이 클레온이 이곳에 온 것을 알게 된다면─
"알베인에 대해선 걱정 마라. 지금 도시 내에는 없으니까. 나도 곧 나갈 거다."
그런 쿠온의 눈빛을 보고, 생각을 읽은 것인가. 클레온은 쿠온을 진정시키려는 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들려온 이야기는 쿠온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알베인이…. 도시 내에 없어?"
"그래. 사샤와 함께 의뢰에 나갔다. 물론, 라일라도."
영문을 모를 말이었다.
그럼, 파티에 치유역도 없이 의뢰를 나간 것인가?
...치유 주문을 쓸 수 없는 용사만 데리고?
"너, 너무 위험해. 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바보냐,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거야."
몸을 일으키려는 쿠온을 클레온이 억지로 붙잡는다.
그런 클레온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제 상태가 아닌 몸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정상적인 몸 상태더라도 클레온을 힘으로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하지만 그런 클레온을 야속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쿠온.
클레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걱정하지 않아도. 지금 녀석들의 파티에는 `갈라`라는 여자 `주술사`가 붙어 있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안심이겠지?"
"...뭐?"
안심.
안심이라고?
쿠온은 클레온의 말에 전신에서 힘이 빠지면서.
속이 뒤집히는 감각을 받았다.
알베인이 파티에 다른 치유역을─
그것도 여자.
라일라나 사샤에 이어서 또─
알베인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미소가 두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여성에게 향하는 환각이 보인다.
"우읍...!"
"어, 어이!"
쿠온은 이불과 옷을 갈아야 했다.
002
결국, 숙소의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쿠온의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의 이불을 교체한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쿠온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 쿠온이 자신의 앞에서 속을 게워낼 줄이야.
상상 이상이었다.
다행인 것은,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덕분에 내뱉은 것이 적었다는 것일까.
정작 당사자는 수치, 분노, 굴욕, 억울함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표현의 한도를 넘어간 것인가.
차갑게 식은 채 굳어버린 표정으로 침대의 등받이에 등을 맡긴 채 앉아 있었다.
"...뭐, 여기에 더 있을 필요는 없겠군. 걱정하지 않아도 알베인에게 내가 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마."
클레온은 거기까지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쿠온을 잠시 바라보다, 방의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기다려. 클레온. 잠시. 가지 말아줘."
그런 클레온을 조용히.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쿠온이 불러 새웠다.
"뭐냐. 또 할 말이라도?"
클레온 역시 쿠온과 오래 있는 것은 거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쿠온의 놀랍도록 차가운 얼굴에 잠시 자신의 인식을 바로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쿠온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아마 그 상대는 자신이 아니다.
`약효가 있군.`
"네가 알베인과 말을 섞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조금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해."
쿠온은 클레온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럼 클레온은 어깨를 으쓱이며, 의문을 표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내가 그래야 하지? 너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건..."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는 듯, 쿠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클레온은 그 모습을 보며 문고리에서 손을 떼었다.
"예전 상담의 계속이라면…. 들어줄 생각은 있다."
"어?"
클레온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쿠온에게 있어서 클레온의이야기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잠시 고민하면 금방 떠오를 일이었다.
그럼, 쿠온은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평정을 되찾은 얼굴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클레온. 상담을 부탁해도 될까?"
"어쩔 수 없지…. 연애상담 따위, 나한테 해도 의미는 없다만."
3년 전의 언젠 가처럼.
클레온은 지루하다는 얼굴로 쿠온의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