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목마
도시의 서쪽에는 지금은 광산으로서 이용되지 않는 폐광이 있다.
학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던 고대의 드워프 들의 흔적이라고 하던가―
인간들보다도 수백 년을 앞서간 그들이 내버려둔 채 남겨두었던 장비들은 가끔 폐광에 증식한 마물들에 의해 발견되어
같은 레벨의 녀석들보다도 그 위험도가 훨씬 높아지게 된다.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낮의 실외처럼 밝은 갱도.
인간의 기술력으로는 재현 불가능할 정도로 넓은 면적.
벽에 걸려 있는 반영구적인 등불들 덕분에
이곳에 찾아오는 모험가들은 `횃불 값을 아낄 수 있어서 좋아~` 같은 말을 하지만.
조금만 심부로 들어서면 드워프산 장비로 무장한 광산 고블린들에 의해 호되게 당하게 된다.
물론, 어중이떠중이에 준비부족인 녀석들에 한정되는 이야기이다.
이미 경험해본 적이 있거나, 준비가 좋은 모험가들에게 있어서는
조금 색다른 모험의 스파이스일 뿐이었다.
"2마리 격파! 나머지 셋, 그쪽으로 갔어!"
"그래!"
라일라가 발동한 화염 마법이 동시에 두 마리의 광산 고블린을 꿰뚫었다.
작은 태양과도 같은 화염 구에서 뻗어 나간 가시가 틀어박힌 순간 녀석들의 몸을 발끝에서 머리까지 전소시킨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재로 변하는 고블린들.
하지만 생각보다도 재빠른 움직임에 몇 마리를 전위인 알베인이 있는 곳으로 흘려버린다.
알베인은 달려오는 고블린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능숙한 솜씨로 세 마리를 동시에 틀어막으며 후위로 넘어가려는 녀석들의 발을 묶는다.
그럼, 라일라는 다시 한 번 마법을 위해 마력을 끌어 올리면서 만약을 위한 지시까지 빼먹지 않는다.
"좋아…. 사샤, 가장 오른쪽을─"
"세인트 버스트!"
갑작스럽게 전위에서 터져 나오는 신성마력의 폭발이 고블린들을 비틀거리게 한다.
"잠깐!?" "어라!?"
알베인의 돌발 행동에 라일라는 순간 정신의 집중이 흐트러져 마법의 영창이 멈춰린다.
덤으로 사샤는 조준해 두었던 고블린이 갑자기 넘어지는 바람에 화살이 빗나가고 말았다.
"훗, 지금이야."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베인은 라일라와 사샤를 되돌아보며 한껏 자신에 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Kieasaaaa!]
그러자
분노의 괴성을 내지르며, 고블린 중 하나가 드워프제 단검을 알베인의 옆구리에 찔러 넣었다.
"끄아악!"
"알베인! 아아, 정말!"
여기까지 와서 또 마을로 돌아가는 건 사양이야!
라일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력의 소모량이 크지만, 단숨에 세 마리를 동시에 처리할 마법을 준비하려 했다.
다음 순간─
"체인 마나 쇼크."
객원 모험가─ 갈라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검은 마력의 번개가 고블린들의 사이를 왕래하며 그들을 지져버린다.
재조차 남지 않았던 라일라의 마법과는 달리, 속과 겉을 바삭하게 튀겨버리는 갈라의 주술에 고블린을 산 채로 구워낸 악취가 올라왔다.
`저런 간단한 마법으로 세 마리를 동시에…!?`
라일라는 알베인으로부터 이 갈라는 여성을 소개받았을 때부터 내심 놀람의 연속이었다.
`실력을 좀 볼까요.` 라고 말하며 한 발짝 물러서 있지만, 사용하는 주술의 하나하나가 자신의 마법과는 궤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체계의 술식.
학자로서의 호기심과 동시에 미지의 기술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으윽..."
알베인은 성검을 떨어트리고, 옆구리에 박혔던 단검을 뽑아낸다.
다행히, 단단한 갑옷에 틀어 막혀 그렇게 깊게 박히지 않았지만
출혈의 양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이렇게 출혈이 발생한 상태에서 포션을 사용하면 일반적인 회복보다도 더 많은 양이 필요했다.
거기서 필요한 것이 파티의 치유역이다.
"자. 지금 낫게 해드릴게요."
갈라는 알베인의 옆구리에 손을 가까이 대더니 마력을 흘려 넣는다.
그러자, 쿠온의 치유술처럼 점점 알베인의 상처가 아물어 가며 출혈이 멎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괴, 굉장해요...!"
사샤 역시, 마을의 장로들이 낮은 등급의 치유술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있었지만.
대체로 몇 줄 이상의 기도문과 함께 사용해야 하는 것이 치유술의 기본이었다.
쿠온 정도의 성직자라면 기도문을 생략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상처들을치료해낼 수 있지만.
이 여성은 그런 기색도 없이 순식간에 알베인의 상처를 치료했다.
"고, 고마워 갈라씨..."
알베인의 감사에, 갈라는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어른스러운 여성의 반응에 알베인 역시 얼굴을 붉혔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온 발길질이 알베인의 머리를 강타하기 전까진.
"뭐가 고마워야! 이 멍청아!"
"아파앗!?"
조금 전의 알베인의 독단적인 행위에 분노한 라일라의 철퇴였다.
라일라의 근력으로 알베인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극한에 고통을 가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하나뿐인 전위가 공격 기술에 마력을 소모해서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그 세인트 버스트인지 뭔지 하는 쓰레기 좀 쓰지 말라고 했지!"
갸아아악! 입에서 불을 뿜을 기세로 알베인을 쪼아대는 라일라.
세인트 버스트─ 몸에 축적한 신성 마력을 전 방위로 방출하는 기술.
기습적으로 적의 틈을 만드는 데에 사용할 수 있지만
물리력인 살상력이 없는 것에 비해 사방팔방으로 마력을 발산해야 하니
당연히 마력의 소모량이 비효율적으로 높은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알베인이 이 기술을 사용하는가 하면─
"머, 멋있잖아!"
"""... ..."""
알베인은 이런 남자였다.
라고, 사샤와 라일라는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결국, 이 이상 태클을 걸 기력이 다 소진된 라일라는 사샤에게 말해 전리품을 회수하게 하고.
소비한 자신의 마력을 보충한다.
그 사이에 갈라는 땅에 떨어졌던 알베인의 성검을 집어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정비를 끝마치고.
레인저인 사샤를 선두로 보내 정찰->전진을 반복한다.
알베인에게 후방을 맡긴 채.
그 가운데를 걷는 라일라와 갈라.
알베인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갈라씨. 당신, 정말로 주술사?"
솔직히 말해, 라일라의 갈라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알베인이 또다시 새로운 여자에 눈독을 들였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쿠온의 복귀를 기다리지 않고 새 치유역을 들인 것.
그리고그것을 자신이나 쿠온에게 상담조차 하지 않은 것.
갈라 본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프라이드가 높은 라일라로써는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거기에 더해 상식의 궤를 벗어난 마법 행사.
"정말로 주술사냐고 물어보면…. 정말로 주술사인데?"
갈라는 라일라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 없이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대답한다.
그런 능청스러운 모습마저 라일라의 눈에는 의심의 재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 주술사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래봬도 아카데미 출신이라서 말이야. 기본적인 마법의 체계는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알고 있거든?"
라일라가 기억하고 있는 주술사의 마법- 주술의 사용에는 고도한 마력의 제어가필요했다.
주술사의 마법은 자연계의 원소 정령들로부터 그 힘을 빌려오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자신의 몸에 마력을 통과시켜 심장에 있는 마력기관에 새겨진 주문을 끌어올려 사용한다면─
주술사는 그 마력기관을 체외의 다른 존재.
즉, 정령으로 대신하여 주문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정령들의 바늘구멍에 실 같은 마력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고행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각각 다른 원소 정령들이 가진 주문을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하는 마법의 속성이나 종류의 범위가 한 명의 마법사보다 넓다는 것이 주술사의 특징이다.
"하지만 갈라씨의 치유술은 달라. 마력을 과도하게 소비해서 그걸 바탕으로 억지로 현상을 일으키고 있어."
"... ..."
"알베인의 상처를 낫게 한 건, 주문의 힘이 아니야. 당신이 마력을 때려 부어 넣어 활성화된 알베인의 재생력의 힘이지. 그런 엉망진창인 치유술은 마법이라고 하지 않아."
라일라의 지적에 갈라는 곤란하다는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 태도에 라일라가 또다시 열이 받았는지 큰 소리를 내려 한순간.
"으음~ 그렇게 말해도…. 나는 이 방법밖에 모르는걸."
"모른다니…. 그럼, 역시 당신 주술사가 아닌 거잖아…?!"
어이가 없어진 라일라가 발을 멈추며 갈라에게 항의한다.
"애초에, 라일라가 알고 있는 주술사의 정의가 정말로 맞는 걸까? 직접 만나본 적 없다며?"
"그, 그건…. 아니, 아카데미는 대륙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야. 그곳의 서적이 잘못되어 있을 리 없어."
"그렇다면 그수재들은 공부 부족인 거네, 나 같은 주술사가 있다는 사실도 책에 적어둬야 했을 텐데."
"다, 당신…!"
긍지 높은 아카데미의 학자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라일라의 인내의 끈이 완전히 끊어지려 한순간, 알베인이 라일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하는 거야? 라일라."
"들어봐 알베인! 이 여자는 주술사가─"
"그런 거, 아무래도 좋잖아."
"──에?"
알베인의 표정은 입 꼬리가 올라간 채,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느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귀찮은 일은 사양이라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었다.
"실제로 갈라씨는 우리들의 도움이 되어주고 있어. 치유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고, 여차하면 공격도 가능하니까. 이 이상의 인재는 없단 말이지."
"... ..."
"아, 그래! 갈라씨! 괜찮다면 우리랑 정식으로 파티를 맺지 않을래? 쿠온이 돌아오면 치유역도 두 명이 되고, 공격마법도 가능하니까. 분명 더 어려운 의뢰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될 거야."
"──윽...!"
라일라는 식은땀이 흐르는 절망을 느꼈다.
알베인에게 있어 갈라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 따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의 제대로 된 모험.
일면을 보인 갈라의 유용함.
덤으로 미인.
전화위복이라고 함은 이런 것일까?
알베인은 갈라가 자신의 파티에 들어오는 밝은 미래로 머리가 가득했다.
"그러네... 용사님의 권유이니 생각해볼까? 나도 슬슬 혼자서 다니는 건 질렸고…."
"정말이야?! 물론 강제할 생각은 없으니까!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할게!"
알베인은 신이 나서 갈라의 손을 붙잡는다.
라일라는 그런 두 사람을 보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
그리고 알베인의 고간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커져 있는 것이 라일라의 눈에 들어왔다.
`아.`
──역겨워.
001
태양은 중천을 지나 서서히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노을빛이 방 전체를 감싸면서.
어딘가 서운하면서도 따뜻한, 저물어가는 날의 감각이 두 사람에게도 찾아오고 있었다.
그런 방 안에는 소녀의 재잘거림만이 끊이질 않으며 때때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알베인이 서큐버스에게 유혹 당했던 거 기억나? 클레온이 드랍킥으로 등을 차서 겨우 정신을 차리게 했잖아."
쿠온은, 평소에 담아두고 있던 것을 모두 쏟아내듯, 클레온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클레온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담담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3년 전─아니, 2년 전의 언젠가는 이런 광경이 흔했다.
아직 모험자로서 미숙했던 쿠온.
알베인의 앞에서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그녀였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언제나 파티의연장자인 클레온이었다.
"솔직히, 나도 라일라도. 거기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는데…. 더 가관인 건, 기절에서 깨어나자마자 `가슴!`이라고 외치는 알베인이었지."
"나는 그때 선행해서 일행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으니 못 들었는데…. 그랬던 건가."
"아, 그... 그랬나?"
기절해 둔 알베인을 두고 의뢰를 진행할 수 없으니 혼자서도 활동이 가능한 클레온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으러 간 사이에 일인 듯했다.
쿠온이 하는 이야기의 태반은 알베인.
알베인의 실패담.
알베인의 성공담.
알베인을 바라보는 자신의 감상.
그녀에게 있어서 알베인이란 운명의 동반자이며 떼어낼 수 없는 존재였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떨어진 마물 포획 마도구를 감추느라 얼마나 애를 쓰던지…."
"서큐버스는 악마형.마물포획도구로는 잡을 수 없다고 이전에 이야기해 줬는데 말이야."
가르치고 3보 걸으면 머릿속의 어딘가.
라일라와 클레온이 유일하게 동감하는 알베인의 단점이다.
"맞아 맞아. 거기에 어디에서 말도 안 되게 싸구려를 사 왔는지, 쓰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망가져 버리고..."
거기에, 귀도 얇다.
타인이 감히 용사인 자신을 속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자신감인가.
설령 속더라도 타인을 용서하는 자신이라는 역할극에 취해 제대로 된 처벌도 하지 않는다.
"... ... 생각해 보면, 그게 마지막으로 즐겁게 웃으며 완수한 의뢰였네."
그 뒤에는─ 알베인의 독주가 더욱 강해졌다.
서큐버스 토벌의뢰에서 실패한 자신을 만회하기 위해서일까.
파티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그 기세가 심해진 알베인을 가까스로 붙들어 매고 있던 것은 클레온이었다.
일행의 연장자로서, 동료로서.
긴 시간을 함께 해 온 알베인을 억제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알베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겠지.
─결과, 파티는 파국을 맞이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곳에 클레온과 쿠온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이야기다.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태양의 위치가 아까보다도 낮은 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클레온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이 있다면 이제 자라."
"...응. 그렇게 할게. 고마워 클레온. 오늘 와줘서."
쿠온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물수건을 보며, 나지막하게 클레온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을 돌린다.
"그만둬."
"... ..."
"어디까지나 옛정을 생각해서 온 거야. 이야기를 들어준 것도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말하는 클레온의 등은 쿠온이 이전에 봤을 때보다도 커져 있었다.
그 등에서 느껴지는 거절의 감각에 쿠온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내가 여기 온 건 알베인에게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물론, 내 쪽에서 말하는 일은 없을 거고."
"괜찮아.알베인은 여기 한 번도 안 왔으니까."
"... ..."
마치 자기 자신의 처지를 비웃는 듯한 쿠온의 말투에 클레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이제 만날 일은 없겠지."
"──어?"
클레온의 갑작스러운 말을 쿠온은 잠시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알베인과 클레온이 다시 결합하는 일 따위 사샤 외에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같은 길드를 거점으로 하는 모험가라면 싫더라도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클레온의 말은 그럴 가능성조차도 부정하는 듯한 말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도시를 떠날 거다. 길드에는이미 이야기해 두었어."
"자, 잠깐. 언제─"
"알베인에게 붙잡혀 비아냥거림을 듣는 건 사양이니 말하지 않으마."
조금 전의 쿠온처럼 클레온 역시 자기 자신을 비웃는 듯 내뱉었다.
"이걸로 문제없겠지. 녀석과는 얼굴을 마주치면 싸우게 될 것 같으니까. 나도,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클, 레온..."
"잘 있어라. 쿠온. 너희랑 지냈던 시간…. 조금이라도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착각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클레온은 쿠온의 방을 나섰다.
초봄의 밤 해가 지는 속도는 겨울의 그것과 비슷하다.
빠르게 저무는 태양의 빛이 서서히 방을 빠져나가면.
또다시 어둠 속에서 혼자가 된 쿠온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