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파국 (9/72)



〈 9화 〉파국

"우하하! 대박이다 대박!"

길드 내에 위치한 식당.

해가 완전히 저물고 난 뒤에는 모험에서 돌아온 모험가들이 하나  자리를 채워간다.

피로와 상처를 간직한 채,

성취감과 전리품을 양손에 들고 거품이 일어나는 술을 잔에 따르며

목소리를 올려 자신을 자랑하거나, 서로를 헐뜯거나. 칭찬하거나, 울거나.

세상 군상에서도 가장 독특한 녀석들이 가장 이상해지는 시간이다.


알베인 역시 그런 인간 중 하나였다.

한 손에는 술잔을 잡은 채 호쾌하게 웃으며 의자 위에 발을 올린다.

"알베인. 창피하니까 좀 조용히 해!"

그런 알베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라일라는 얼굴을 붉힌다.

모험가가 된 지 1년이지만 아직 이런 자리나분위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핀잔을 주는 라일라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알베인은 잔에 든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푸하-! 어이 라일라! A급 의뢰를 완수한 거라고! 좀  들떠도 괜찮다니까!"

"넌너무 들떠 있는 거야!"

폐광의 탐색은 순조롭게 종료.

최심부를 지키는 고블린 광부들의 거점을 박살내고 대량의 드워프산 도구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것들은 길드를 통해 여러 가지 연구에 사용되며, 환전된 금화는  짭짤한 액수였다.

오랜만의 모험에 성공적인 의뢰 완수.

그리고 돈까지 벌면서 새로운 미인과 아는 사이가 되었다니

알베인은 최근의 묵은 스트레스가 싹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일라도, 그런 알베인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실력행사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알베인에 비해 라일라와 사샤는 각자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라일라는 눈앞의 조용히 잔을 들이키는 여성.

자칭 `주술사` 갈라에 대한 의심.

사샤는 클레온에게 병간호를 부탁한 동료.

성직자 `쿠온`에 대한걱정이었다.



"덕분에 의뢰도 완수했고. 모험가로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니까."

알베인을 옹호하며, 갈라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폐광의 최심부에서 발견한 보석으로 장식된 상자가 쥐어져 있었다.

"정말 보수는 그거 하나로 괜찮은 건가요?"

찾던 물건이라고 말하며 다른 보수를 극구 사양한 갈라.

사샤는 그런 갈라를 걱정하며 입을 열었다.

"본인이 그걸로 괜찮다니까. 문제없잖아."

라일라는 신경 끄라는 듯 사샤에게 내뱉었다.

물론, 라일라로서도 갈라가 들고 있는 물건이 신경 쓰였다.

마력시를 통해서 내부를 살펴보아도 안쪽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내용물이 마력과 관련 없는 물건이라면 주술사가 다른 보수를 포기하면서까지 탐을 낼만한 물건은 아니다.

그것을 갈라에게 넘겨주는 것은 안에 있는 물건을 확인한 뒤. 라고 알베인에게 이야기해 보았지만.

완전히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한 알베인은 상자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고, 역으로 라일라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럼, 라일라는 두통을 느끼면서도 화를 삭이며 알겠다고 한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하아~ 역시 모험은 좋다니까. 믿음직한 동료와 스릴 넘치는 전투. 그리고 보물까지."

"그러네, 나도 이번의 파티는 꽤 즐거웠어."

알베인의 말에 대답하는 갈라.

알코올에 의해 살짝 달아올라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본 알베인이 기회가 싶어 갈라에게 가까이 간다.

"그런 말이야, 갈라씨. 아까의 대답 들려주지 않을래?"

"아까? 아아, 정식으로 파티를 맺자는 거?"

"잠깐, 알…."

기우하던 대화의 화제가 펼쳐지자, 라일라는 그런 알베인을 저지하려고 했다.

그녀의 실력은 확실히 굉장하지만 숨기는 것이 있는 수상한 인물을 파티로 들이는 것은 사양이다.

하지만, 불붙은 알베인의 폭주를 말릴 수 있는 것은 지금은 이 자리에 없는 쿠온 정도였다.

알베인이 라일라를 잠시 바라보며 입을 막자, 라일라는 입술을 깨물며 갈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으음~ 확실히. 합은 잘 맞는 것 갖고.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는 생각해."

"오오…! 그럼!"

고조되는 기대에 알베인이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들이밀자, 갈라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의 의견만으로 정해도 될까? 내가 알기엔, 한 명 더 있는 거로 아는데…."

그런 기대에 물을 끼얹는 듯한 말에 일행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설마 하던 정론.

용사의 파티에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험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갈라의 대답은 여러모로 의외의 것이었다.

이것이 어른의 여유라는 것일까. 하고 내심 감탄하는 사샤

이젠 이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혼란에 빠지는 라일라.

"...쿠온인가. 확실히,그 녀석의 의견도 중요하지."

"─그, 그래. 알베인. 너, 문병에 한 번도 안 갔다면서? 지금이라도 찾아가 보는 게 어때? 거기서 쿠온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거야."

라일라는 우선 갈라와 알베인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여 알베인에게 제안한다.

그럼 사샤는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크, 클레온씨가 아직 쿠온 씨와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말릴 수도 없고…!`

그런  사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베인은 ‘훗.’ 하고 웃음을 지어 보인다.



"...뭐, 쿠온의 대답 따윈 뻔하지."

"하아..."

"물론 찬성해 주겠지!"

001



"반대야."

"─어이어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쿠온의 숙소.

결국, 라일라에 의해 등을 떠밀려 그곳에 찾아온 알베인은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어두운 방 속에 침대에앉아서 가만히 있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순간 공포를 느꼈다.

방안의 불을 켜고 안색을 살피면 치유능력은 돌아왔다는 것 같지만 얼굴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알베인은 그런 쿠온에게 대뜸 본론부터 전달한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리 없다.

파티를 위한 결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단칼에 반대의 의견이 나오자 알베인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라일라가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가네. 우리 파티는 나를 포함해서 후열만 3명이야. 파티의 규모가 커지면 밸런스를 생각해야지."

후열의 규모가 커지면, 마물의 주의도 자연스럽게 후열에 집중된다.

따라서 나라의 군대와 마찬가지로 모험가 역시 전열과 후열의 밸런스가 중요시 된다.

갈라가 파티에 들어오면 전열 1 : 후열 4. 알베인이 지게 될 부담도 커질뿐더러,

그가 쓰러지면 후열은 곧바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밸런스는 아니었다.


라는 것은 표면적인 이야기.

알베인이 갈라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느낀 것은 갈라가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이라는 것.

사샤를 영입할 때도 내심 반대했지만.

사샤라는 소녀를 보고 느낀 그녀 자신의 선함과 파티의 전력부족이라는 이유로 넘어갔다.

클레온이 빠진 파티에는 윤활유의 역할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라의 영입에는 찬성할 수 없었다.

더욱이 아까의 일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진 상태의 쿠온에게 있어

알베인의 제안은 철없는 소꿉친구의 투정일 뿐이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의견의 차이에 알베인은 조금 짜증이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쿠온 역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그에게 실망의 기색을 내비친다.

3년 전. 알베인이 성검의 선택을 받지 않은 평범한 검사이며 모험가일 시절.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용감하고. 타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질  알던 소년.

쿠온이 마음을 바쳐 아끼지 않던 그녀만의 용사님.


지금은 비록 그때 보다 키도 커지고, 힘도 강해졌다.

성검의 선택을 받았다는 명예로운 칭호까지.

하지만, 알베인은  힘에 취해 있었다.

용사라는 명함, 주목과 호의와 권력에.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클레온이 알베인의 폭주를 경계하였지만 쿠온은 마음이 가는 대상의 편을 들기 일쑤.

덤으로 라일라의 등장으로 완전히 기세를 얻은 용사의 의지를 꺾는 것은 어지간한 말싸움으론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럴 거라면, 클레온을 보내는 게 아니었어."

"...뭐라고?"

쿠온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

조용했지만 놓칠  없던 단어에 알베인은 바로 반응했다.

얼굴이 찌푸려지며 거칠게 쿠온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가누구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더 빨리 깨달았다면…. 클레온을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쿠온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소리를 높였다.

그런 쿠온의 모습을 보며 알베인은 충격을 받은 것인지, 혹은 분노한 것인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금세 험악한 표정으로 바뀌며, 그 역시 언성을 높였다.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중요한 때에 힘을  써서, 녀석에게 뒤처지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그 말은, 쿠온의 가슴을 가장 강하게 때리는 폭언이었다.

쿠온도 알고 있다.

자신의 부주의함으로 파티에 폐를 끼쳤다는 것을.

사샤도, 라일라도. 그런 쿠온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라일라는 쿠온 못지않게 많은 시간을 그녀를 치유할 방법을 찾기 위해 소모했고.

사샤는 자신의 순결을 클레온에게 바치고, 탈진한 쿠온을 옆에서 간호했다.

하지만 알베인은 그런 자신의 심정을 모르기에 그런 말을  수 있다.

쿠온은 가슴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느끼며 양손으로 가슴을 쥐었다.

목을 태우는 감각이 느껴지며,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듯했다.

알베인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어느 정도 진정을 하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무겁고 고통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뜻밖에 쿠온이었다.

"클레온,  도시를 떠난댔어."

"...뭐? 언제. 어디로?"

예상조차 하지 못한쿠온의 말에, 알베인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이 반응은 쿠온 역시 예상한 듯했지만 그의 질문에는 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클레온은 쿠온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몰라. 가르쳐주지 않을 거래. 너와 마주치기 싫으니까."

"─하, 하하. 녀석. 최근에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결국, 스스로 여길 떠나는 건가…. 그래, 그편이 낫겠지. 용사와 싸워서 파티에서 쫓겨났다니…."

알베인은 그런 클레온을 비웃듯 웃으며, 떨리는 눈빛으로 주먹을 쥔 채 혼잣말을 계속했다.

스스로가 하는 말을 정당화하는 듯한 그의 초점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클레온과 화해하자."

"..............................─뭐?"

쿠온의 말에, 알베인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쿠온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 성검의 용사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클레온밖에 없다.

이 이상 알베인이 자신의 멋대로 움직이면….

알베인은 물론이고, 파티 역시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클레온에게 화해를 신청한다 해서 그가 이것을 받아들여 줄지는 모른다.

다만, 이 상황이 계속되는 것만큼은 막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쿠온도 간과한 게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것이었다.

클레온은 물론. 알베인도. 쿠온 본인도.

화해라던가, 사과라던가.

그런 것이 가능한 시점을.

너무나도 너무나도 멀리 지나친 것이다.

"─꺄악…!"

알베인의 손이 쿠온에게 뻗어왔다.

오른손목과 왼쪽 팔을 붙잡았다.

같은 레벨이지만 용사와 성직자.

힘이 강한 것이 어느 쪽인지는 명백했다.

거기에, 제 몸 상태가 아닌 쿠온으로써, 알베인을 떨쳐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베인은 무섭게 뜬 눈으로 쿠온을 바라보며 서서히 그녀를 밀어 넘어뜨리기 시작했다.

쿠온의 머리가 침대에 완전히 밀착하고, 알베인은 그런 쿠온에게 올라탄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지옥과도 같이 낮은 곳에서 끌어 올라오는 목소리였다.

"너…. 클레온에게 마음을 돌린 거냐…?"

"하…. 아…?"

그런 알베인의 모습에 쿠온은 심한 공포심을 느꼈다.

이것이 정녕, 성검의 선택을 받은 용사란 말인가?

귀신같이 비틀려 그늘진 얼굴 속에 광기 어린 안광을 내뿜는 흉악한 남자가….

자신이 알던 알베인과 동일인물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내 의견에 이렇게까지 토를 단 적이 없었던 네가…. 이제 와서 클레온의 편을 들어…?"

"틀려, 편을 든  아니야…! 나는 어디까지나, 널 생각해서…!"

"닥쳐!  내 거야…. 클레온 따위에게는 넘기지 않아…!"

알베인이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쿠온의 팔을 묶은 채,

다른  손을 그녀의 가슴팍으로 가져가려 한 순간─


"마나 쇼크."

"크아악!?"

순간적으로 발생한 검은 섬광.  거리에서 발현된 공격주문이 냉정함을 잃은 알베인의 전신을 마비시켰다.

화력을 억제했지만 기절해서 한동안은 눈을 뜨지 못할 것이다.

"하아... 하아..."

쿠온은 자신의 위로 쓰러진 알베인을 옆으로 치우는 그 커다란 손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클레온...!"

"... ... 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002

"잠깐…. 어디까지 가는 거야…?"

"도시 안에 있으면 알베인이 찾을 테니…. 하룻밤 정도는 밖에서 보내는 게 맞겠지."

도시를 빠져나와 걷는 숲길.

살아있는 숲의 위험지역.

쿠온은 클레온의 등에 업힌 채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의 마검에서 흘러나온 마력의 장막이 마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에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실제로, 여기까지 오면서 마물과 만나지 않은 것은 클레온의 덕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윽고, 위험지역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과거의 영광을 잃은 채 그저 그곳에 있는 저택이 있었다.

이 도시의 모험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고르티안 백작`의 전설.

과거, 드워프들을 노예로 부리며 각종 보석이나 귀금속을 이용하여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졌지만….

유적에서 나온 거대한 재앙 때문에 몰락하고 그의 저택만이 이곳에 남아있다고 한다.



지금은 마물들의 거처가 되어 사람들이 찾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었다.

"어째서, 여기에?"

설마, 자신을 이곳에 버리는 것으로 복수하려는 것일까.

쿠온은 지금이라도 클레온에게서 떨어져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일로 전신의 힘이 모두 빠져버린 그녀로서는

그의 행선지에 몸을 맡긴 채. 부디 클레온이 자신을 용서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너와 헤어지고 나서.  저택을 청소했다."

"...응?"

하지만 클레온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자신이 예상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의뢰…. 여서 말야. 저택에 사는 마물을 청소해 줬으면 한다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쿠온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살아있는 숲은 분명 도시 주변의 지역 중에서도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곳이긴 하지만

이 저택이 있는 위험구역은  이름대로 고위의 마물이 출현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하물며, 그런 마물들의 소굴로 쓰이는 저택이라니.

레벨이 20은 넘어야 파티로 겨우겨우 해낼  있는 일이 아닐까.

"마물이라고 해도 기척을 숨긴 나를 찾는 건 불가능해. 숨어서 뒤를 공격하고, 아이템을 활용하면 문제없지."

그런 쿠온의 의문을 눈치챈 것인가.

클레온은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저택의 안으로 들어갔다.

과거, 호화의 극치를 누렸던 귀족의 저택.

마물들이라도 청소를 하는 것인가 내부는 생각보다도 깨끗한 상태였다.

거기에 부지 내로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위화감.

아마, 마물을 쫓아내는 결계를 설치한 것이겠지.

"...이 안은 안전하다. 걸을  있겠어?"

"─으, 응…. 아니, 미안. 역시 아직 무리."

"그러냐. 그럼, 침실에 데려다주마."

결국, 클레온의 등에서 떨어질  있던 것은 낡은 침대가 있는 커다란 방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백작 본인의 방이었겠지.

성인 한 명이 몸을 눕히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침대에 올라가면

 오랜 세월이지났는데도 몸이 푸욱 감기는 감각에 쿠온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신에 돌았던 긴장이 단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부자의 취향은 확고하군. 침대에도 상태유지의 주문이라니."

클레온은 그런 침대의 다리 부분에 새겨진 룬의 조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쿠온이 누운 것을 확인한 뒤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


"... 나는 시종의 방에서 하룻밤. 내일 아침에 도시로 돌아가자. 알베인 녀석이 길길이 화를 내겠지만…. 본인도 잘못한 게 있으니."

"...알베인."

쿠온의 슬픈 목소리에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면서 바라보았다.



"구해줄 필요가 없었나?"

"그, 그런 게 아니야. ...고마워, 클레온."

"...알베인이 제멋대로 하는 게 싫었을 뿐이야."

"그래도. 고마워."

그러면, 클레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

그런 그가 떠나간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쿠온은

이내 몰려오는 피로감에 조용히 눈을감는 것이었다.

어둠이 깔린 방에서 홀로.

하지만 아까와 같은 공포도, 고독도 없었다.

그녀의 몸에는, 클레온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었다.


003

"...하아... 하아..."

전신에 열이 올라오는 감각.

땀이 나고, 목이 말라온다.

몸 안을 무언가가 기어 다니며 중요한 부분에 달콤하게 흐르는 자극이 점차 판단력을 약화했다.

그것은 마치, 부드러운 여성의 손길과도 같이.

때때로, 탐욕스러운 남성의 욕망과도 같이.


끈적끈적하고, 질척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성직자의 몸을조금씩 파고들고 있었다.

결국, 수면의 욕구는 다른 욕구로 전환되어.

그녀의 몸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게 한다.

뚜욱... 뚜욱...

땀과 함께  다른 액체를 떨어트리며, 고급스러운 복도의 바닥재에 자국을 낸다.

어째서일까, 이 저택에 온 것은 처음인데.

찾아야 할 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감각으로  수 있었다.

아니, 분명 이어진 것이다.

그 약을 마신 순간.

쿠온은 성직자이다.

라일라보다는 아니지만, 치유주문을 사용하는 만큼 마력에 대해서는 민감한 편이었다.

사샤가 자신에게 내민 약의 정체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단을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클레온이 자신의 방에 찾아와 사샤의 이름을 냈을 때.

쿠온은 어느 정도 퍼즐의 조각이 맞추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이 그 퍼즐을 망치로 박살 냈다.

완성되면 안 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으니까.


하지만…. 마력은 인간을 미치게 한다.

그 영향은 신체능력의 강화. 회복력의 향상. 감정의 고양. 흥분.

그리고 생식 본능의 증폭- 즉. 발정.

간격을 두고 몸에서 필요로 하는 마력을 보충해 주면 스스로 그런 것을 제어할 수 있다.

마력 충에 의해 텅 비었던마력의 창고에 한 번 마력이 채워지는 것으로.

쿠온의 몸은 다시 마력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의 마력이 부족해지면 준비된 그릇에 다시 마력을 담기 위해 자연스럽게 가까운마력의 근원지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작은 랜턴의 불에 의지한  의자에 기대 책을 읽고 있던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클, 레온…."

듣기만 하더라도 물이 살결을 타고 흐르는 듯한 애절한 목소리였다.

호흡은 거칠고, 살구색 상기된 피부는 평소의 백옥 같던 그녀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자리에 멈춰 서면 그곳에 웅덩이를 만들 것만 같았다.

"나…. 몸이, 이상해…."

"... ..."

그런 쿠온을 잠시 바라보던 클레온은 읽고 있던 책을 책상 위에 올린다.

주저함이 없는 발걸음으로 쿠온에게 가까이 가면, 그녀를 다리부터 올려 안아 사용인의 침대에 던져 넣었다.

"햐앗...!"

클레온의 손길이 얇은 쿠온의 다리에 닿았던 순간.

그녀는 전신을 타고 흐르는 미지의 감각에 교성을 내뱉으며 침대 위로 떨어졌다.

사용인의 침대는 백작의 것만은 못했지만 그런데도 숙소의 것보다는 훨씬 크고, 푹신했다.


쿠온은 지금부터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본능과 이성이 서로를 죽이며, 서서히 바보가 되어가는 순간에도 알베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얼굴은 이윽고.

자신을 죽일 듯이 바라보던 귀신과도 같은 얼굴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 것은 알베인이 아니야.

내 용사님이 아니야.



나의 용사님은…. 상냥하고….

"클레온…."


강하고….

"클, 레온…."

그리고─ 언제나…. 진짜 나를 바라주는 사람….

"클레온…."



아아, 나. 이상해졌어.

클레온의 표정이 슬퍼 보인다니.

그럴  없는데…. 클레온이 나를 동정할  없는데.


"쿠온..."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분명. 알베인에게는 돌아갈 수 없다.

쿠온은 본능적으로 그러한 예감이 들었다.

클레온은 분명, 자신을 알베인으로부터 약탈한다.

가장 깊숙한 곳에서 연결되는 이가 알베인이 아니라 클레온이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가능한 만큼 상냥하게 해달라고부탁했다.

이것은, 자신의 사죄. 그리고 감사.

동시에,



자신의 파국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