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실패 (12/72)



〈 12화 〉실패

도시 내에 있는 숙소에도 여러 가지 등급이 있다.

쿠온과 알베인, 클레온과 같은 중견 모험가이면서도 경제적으로도 하루 벌어 하루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중급 숙소`

사샤처럼 막 도시에 상경해 와, 아직 경제적으로 여유가 부족한 이들이 지내는 `하급 숙소`

그리고 아카데미 수석 출신.

7년 전액 장학금에 매해 새로운 논문을 제출하여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는 엘리트.

라일라 플레임워치가 사용하는 `상급 숙소`


이 중에서도 상급 숙소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손에 꼽는 정도라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의 숙소는 반쯤 개인 주택과 같이 어느 정도 방의 개조 등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었다.

라일라의 방. 파티의 일행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그녀의 방은─

취향이 확고한 붉은색의 기조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벽, 천장, 바닥. 침대나 카펫. 등등.

살다 보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지만.

라일라의 경우 이 모든 것이 마법적인 근거에 기초한 배치이다.

특히나 불의 원소와 상성이 좋은 그녀는 붉은색이 가득한 방에 있을수록 마력의 회복이빨라지는 것이다.

그 대부분은 찢겨나간 스크롤, 휴지조각.

논문을 작성하고 그대로 방치된 잉크통.

즉석식품의 용기 등에 의해 가려져.

오히려 사람 사는 방이라는 느낌을 내고 있었다.

그런 어수선한 방의 중앙.

라일라는 아침 일찍부터 오른손의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해 하고 있었다.

어젯밤. 알베인을 쿠온의 숙소로 보낸 뒤, 계속 이런 상태이다.

`예상 밖의 사태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어….`

원래대로라면, 클레온을 추방하고 쿠온과 적당히 이 질질 끄는 관계를 유지하다가

때를 봐서 선수를 치는 것으로 알베인을 자신의 것으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샤, 갈라의 등장으로 알베인이 생각보다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거기에, 쿠온의 좋지 않은 몸 상태.

라일라 본인이  수 없는 현상에 호기심이 동해 정신이 팔려.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타가 되는 어제의 일.

수상한 주술사에게서 떼어놓기 위해서라지만 알베인을 쿠온에게 보낸 것은 실책이 아니었나.

몸도, 정신도 약해진 쿠온.

그런 쿠온을 걱정하는 알베인.

깊은 밤. 이전에 없이 약해진 친구를 바라보며….

서로의 마음을 재확인한다.

밀실. 젊은 남녀. 짝사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리 없...



`아니 아니.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어. 그 알베인이야. 분명. 분위기도  읽고 이상한 소리를 해서 상황을 파토 냈을 거야.`

라일라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사고를 정당화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자신이 생각한 일이 일어났다면.


 똑

그런 라일라의 사고를 끊어 내듯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라일라씨, 일어나 계신가요!?"

다급한 사샤의 목소리.

라일라는 잠시 방을 돌아보더니 손을 휘둘러 환영 마법으로 자신의 방의 모습을 감춘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방의 문을 열어 사샤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있어.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큰일이에요! 알베인씨가 기절해 있어서 쿠온씨가 납치당하고 클레온씨가..."

안절부절 못하며 눈알이 핑핑 돌아가는 사샤.

라일라는 그런 사샤의 어깨를 통. 하고 내려친다.



"진정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 잠깐. 뭐라고?"

"클레온씨가 알베인씨를 기절시키고 쿠온씨를 납치했어요!"

잠깐의 침묵.

라일라의 `하아아아아!?` 하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상급 숙소에 울려 퍼졌다.

001

"...그러니까. 알베인과 쿠온이 좋은 분위기였는데…. 클레온이 거기에 난입해서 알베인을 기절시키고, 쿠온을 데려갔다?"

라일라는 사샤에게서 전달받은 내용을 정리한다.

쿠온의 숙소에서 아침이 되어야 정신을 차린 알베인은 길길이 날뛰며 도시 내를 뛰어다니며 쿠온을 찾아다닌 듯하다.

그 과정에서 사샤와 만나 이야기를 전달받고 이 이상 그의 추태를 볼 수 없던 사샤가 갈라에게 그를 맡긴 뒤.

사태의 해결을 위해 라일라를 찾아온 것이다.


`뭐. 이 경우엔…. 클레온에게 감사해야 하려나.`

라일라는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알베인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일선을 넘지 않게 방해해 준 듯하니까.

"하지만 쿠온 씨. 어디로 간 걸까요? 도시 내에는 없는 것 같은데…."

"음습한 클레온이라면, 도시 바깥에서 노숙이라도 하는 거 아니야?"

라일라는 대충, 사샤의 말에 대답하면서 도시의 바깥으로 향하는 출구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크, 클레온씨는 음습하지 않아요!"

"어떨지. 실제로, 마력의 흔적은 바깥으로 향하고 있고."

"그, 그런  보이나요?"

라일라는 후. 하고 웃어 보이며 눈에 마력을 집중한다.

마력으로 인해 시야가 확장되며.

자신이 이전에 본 적이 있는 마력의 잔향을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마력시`.

라일라 수준의 마법사라면, 몇 시간이 지난 흔적이라도 뚜렷하게 쫓아갈 수가 있었다.

라일라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보이더니.

방의 창문을 열고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앗!? 라일라씨?"

깜짝 놀라 그 뒤를 쫓아 창문 너머를 내다보는 사샤.

라일라는 공중부양의 주문으로 하늘에 떠오른 채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샤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가서 확인해 볼게."

"저, 저는요?"

"마음대로 해. 알베인에게 전해주던지."

그렇게 말하며 곧장 빠른 속도로 비행하여 도시를 빠져나간다.


그녀는 비행하면서도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사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클레온의 목적. 쿠온의 상태. 알베인의 행동.

혹시라도 쿠온과 클레온 사이에 만약의 일이 있었다면….

자신에 것에 대한 독점욕이 강한 알베인으로써

쿠온에 대한 이런저런 감정이 부정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 있어서는 좋은 기회였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충 그런 방향으로 사태가 돌아가 준다면.


그리고  과정에서 불필요한 인물을 무대에서 내려오게 한다면….


`마침 잘됐어. 이걸로 예상 밖의 상황의 종지부를 찍는 거야. 멍청한 클레온, 스스로 제 명을 재촉하다니.`

라일라는 마력의 흔적을 쫓아 살아있는 숲의 위험구역까지 진입한다.

이어지는 길은 백작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헤에, 여기에 숨어 있는 거구나. 성실하게 결계까지."

라일라는 영창하지 않고 거대한 화염구를 생성한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업화가 형태를 이루어 저택으로 쇄도한다.


"자아, 불태워 죽여줄게, 클레온."



002



라일라는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자연스럽게 인상을 구겼다.

그리 위생적이라고  수 없는 공간.

돌로  벽과 천장. 낡아빠진 쇠창살.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있는 자기 자신.

아마, 저택의 지하에 있는 감옥이겠지.

본인의 처지는 이해하고 있다.

창살 너머,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클레온.

무장을 해제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승자의 여유라는 것이 존재했다.


라일라는 시험 삼아 자신의 팔다리를 움직여본다.

반쯤 나았던 어깨의 상처도, 떨어지면서 생긴 골절상도.

그리고 복부를 꿰뚫었던 마지막 일격.

검은 화살에 의한 상처도 말끔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것은  빈 마력뿐.

마력이 없는 마법사 따위, 칼을  어린아이보다 무섭지 않다.



"이거. 쿠온이 한 거야?"

라일라는 있는 힘껏 냉정함을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눈앞의 남자가 조금이라도 냉정함을 잃으면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그녀에게 감사해라."

"흥….  죽이면 어떻게 되는지, 네가 더 잘 알 텐데."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코웃음을 친다.

그녀의 말대로, 라일라를 죽이는 것은 그다지 상책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카데미의 학생.

지금은 학교를 벗어나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그 신분은 유효했다.

무엇보다도, 수석이라는 위치.

그녀를 죽이게 되면 아카데미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것이다.

귀족도, 권력자도 아닌 일개 모험가인 클레온이 지기에는 너무나도 큰 짐이었다.

라일라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니 클레온에게 어느 정도 커다란 태도를 보일  있었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의 말에는 별 흥미가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에서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지만, 라일라는 우선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쿠온은?"

"사샤가 찾아와서 그 대응 중이다. 위에서 이야기하고 돌아오겠지."

사샤가...!

라일라의 머릿속에 희망적인 관측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착한 아이.

 상황을 보고 클레온에게 분개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런 상황이 된다면, 클레온도 자신을 해방하지 않을  없다고 판단하고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꽤나…. 여유롭군. 라일라."

"이런 연극에 어울리는 것도 지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뿐이야. 안됐네! 클레온. 쿠온은  구슬렸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쉽지 않거든."

클레온은 잠시 라일라의 얼굴을 바라보다,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돌린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라일라가 평소에 하는 목걸이였다.

붉은 보석이 특징적인 마도구의 일종.

안에는 이런저런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어

마법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더라도 그런 부류의 물건이라는 것을   있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그것을 보자마자 안색이 파래졌다.

재빠르게 가슴팍으로 손을 올리지만. 그곳에 원하는 물건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머리가 이해하고 있었다.

"그, 그거..."

"겉보기에는 마력의 제어를 도와주는 마도구.  만들어졌군. 이걸로 지금까지 있던 일을 보고하고 있던 건가?"

가슴의 깊숙한 곳에 무거운 돌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

클레온이─ 눈치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빠르게 머릿속에서 구축되어 간다.

"이제야 가면이 벗겨졌군."

클레온은 창백해진 라일라의 얼굴을 보며 목걸이를 바라본다.

그 목걸이는, 일종의 송수신기이다.

알베인과의 모험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라일라의 의지를 통해서 마력과 함께 아카데미에 전송하는 것이다.


라일라에게는 보고의 의무가 있었다.

아카데미의 학생이자.

동시에, 용사 포획 임무의 수행원으로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의 수석씩이나 되는 네가, 아무리 용사라지만 이런 촌구석에 있는 알베인을 찾아올 줄이야."

대륙의 용사는 하나가 아니다.

알베인은 그중에서도 무명인 편에 속하는 젊은 신인이었다.

라일라가 처음 알베인을 찾아왔을 때 했던 인사말이 떠올랐다.

`나의 이름은 라일라. 라일라 플레임워치. 긍지 높은 아카데미의 수석이야. 용사 알베인.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

"너무 유명하거나 강한 녀석을 아카데미로 데려가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나? 알베인 정도면 적당한 표적이었을지도 모르지."

"그, 그건─"

클레온의 말이 이어질수록, 라일라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솟아오른다.

이 남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절대로 숨겨야 하는 자신의 비밀.

아카데미의 치부와 연결된 어둠.



"알베인도 놀라겠지. 설마, 라일라가 자신을 실험동물로 보고 접근해 왔다는 것을 알면."

"─ 트, 틀려. 나는 알베인을 그렇게 보지 않아."

이것만큼은 진실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무식한데 용감한,

그저 남보다 조금 힘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1년간.

그와 쿠온과 함께 지내면서 알베인에게 친구,

그리고 그 이상으로써의 감정을 품게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임무의 수행을 위해 모두를 속이고

방해되는 클레온을 파티에서 배제한 것 역시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래…. 내가 방해였던 거군.  임무에서. 쿠온과 알베인에게 끊임없이 내 험담을 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

"...읏…."

클레온의 추측은 정확했다.

파티의 중심인 알베인.

하지만, 소년의 나이에 강한 힘을 손에 넣고 폭주하는 기질을 가진 그를.

옆에서 조절하는 고삐의 역할을 하는 것이 클레온의 존재였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파티를 와해시키고

알베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아카데미로 데리고 돌아가야 하는 라일라에게 있어.

알베인의 냉정함을 유지하려는 클레온의 존재는 눈엣가시였다.


"그거, 어떻게 할 거야?"

라일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클레온에게 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을 알베인에게 알리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은아니었다.

사실을 들은 알베인은 폭주해서 날뛸지 모르고. 그 과정에서 다치는 사람이 나올  있다.

개인적인 복수를 하기에는 너무 사건의 규모가 커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길드에 보고하는  맞겠지."

그렇기에, 정답은 이쪽.

라일라는 가장 원하지 않는 대답을 들은 절망에 다리에서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는다.

"길드엔, 소속된 모험가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용사 같은 국가 클래스의 주요 인력으로 취급받는 모험가라면 더더욱."

"그, 그만둬…."

냉정한 클레온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공포에 물든 라일라의 목소리.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클레온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만약, 아카데미에 관한 보고를 듣게 된다면. 길드 측에서 정식으로 아카데미에 항의…. 너의 임무는 실패로 끝난다."

"그만…!"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클레온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아카데미의 체면을 박살 낸 너에게 남은  어떤 결말일까."

"부탁이야! 그만해─!"



라일라가 여기까지 평정심을 잃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클레온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전, 사샤에게 사용했던,

마력으로 연결된 대상의 과거를 읽는 능력.

라일라와의 이야기에서 우위를 점할 심산으로 그녀를 살펴본 클레온은

1년간 자신들을 감쪽같이 속여 온 그녀의 연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임무를 실패한 라일라가 어떻게 되냐고?

그런 것, 클레온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모든 답이 있었으니.

`집행과`. 아카데미 소속의 징벌부대와 같은 위치.

임무에 실패하거나, 학원을 배신한 학생들을 찾아와 그 뒤처리를 한다.


실력이라면, 라일라가 앞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진가는 그 잔혹함에 있다.

본인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간들을 하나하나.

도움의 손길을 끊어내고 옥죄여 온다.

어느 샌가 남은 고독 속에 실패자는 쓰러져 간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집행당한 다른 학생의 기억도 있었다.

확실히, 좋은 풍경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수자는 멈추지 않는다.

라일라가 절망하고, 공포에 몸을 떨더라도.

그가 멈출 이유는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와 라일라는 동료 따위가 아니니까.

처음부터.

라일라는 자신의 위에 드리운 그림자에 고개를 들어 올린다.

감옥의 불을 등지고 선 채, 자신을내려다보는 클레온.

그 눈빛은 변함없이 차가운 어둠을 발하며, 자비의 마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라일라에 대한 동정심 따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네 사정으로 타인을 속이고 짓밟아 놓고. 자신은무사할 거라 생각한 거냐?"

얼음 같은 분노가 담긴 목소리. 등줄기를 타오르는 공포에 라일라는 몸을 움찔거린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호흡이 가팔라진 탓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런데도, 클레온에게서떨어지기 위해 뒷걸음질 치려 한순간.

창살 너머에서 뻗어온 클레온의 손이 그런 라일라의 손목을 붙잡았다.


"너는 도망칠 수 없어. 나로부터도, 네가 벌인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시, 싫어…!"



"후회해라. 반성 따위는 바라지 않아. 네게 그럴 여유는 없을 테니. 다가오는 결말에 끊임없이 공포에 떨어라."

"아, 아아…!"



라일라는 보았다.

그의 그림자에서 꿈틀거리는 악마와도같은 여성의 웃음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듯한 그 실루엣을.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 따위는 남지 않았다.

이 남자가, 나를 죽일 것이다.

 자신이 직접 손을 대지 않더라도.

라일라에게 도망칠 수 있는 구색은 존재하지 않았다.



"클레온."

그때. 나지막이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

클레온과 라일라 사이에 돌았던 어두운 긴장에 틈이 생기며.

두 사람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감옥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쿠온의 모습이 보였다.

라일라와 클레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것일까.

그녀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그녀의 눈에는 클레온에게는 없는 동정이 엿보였다.


"쿠, 쿠온...!"

라일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나타난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의 빛과도 같았다.

쿠온이라면, 클레온을 말릴  있을지도 모른다.



"클레온. 라일라에게 너무 심하게 대하지 않기로 했잖아."

"... ... 아아. 그랬지. 미안."

그 말에 클레온은 붙잡고 있던 라일라의 팔을 놔주며 쇠창살에서 떨어졌다.

계속해서 클레온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라일라는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사샤는?"

"위에서 기다리게 했어. 그다지 보여주고 싶은 광경은 아니니까."

쿠온이 다가오자,

라일라는 감옥 안에서 쇠창살 너머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며 눈물을 흘린다.

"드, 들어줘 쿠온! 나, 분명 모두를 속였지만…. 그래도, 동료라고─"

"응. 알고 있어. 라일라."

그런 라일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쿠온.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상냥했다.

오랜만에 본 쿠온은 이미 원래의 상태를 되찾은 듯했다.

라일라는 그런 쿠온이 진정한 성녀처럼 보였다.

쿠온이라면 자신을 구해줄지도 모른다.

클레온이라는 악마로부터.

"그러니까. 클레온에게 제대로 사과하자."

"어?"

하지만 기대와는 달랐다.

쿠온은 성녀와도 같은 목소리로.

어머니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라일라를 절망시킨다.

조금 돌아온 마력이 라일라의 마력시를 회복시켰다.

그러면, 동시에 보이는 것은 쿠온과 클레온을 연결하는 마력의 통로.

그런가, 이 둘은 이미

여기에 희망 따윈 없었다.

클레온의 몸에서 이어지는 마력의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천장을 통과하여, 아마 이 위의 저택에 있는 소녀.

사샤 역시 쿠온과 마찬가지이리라.

의지를 조종한다거나 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저. 영혼의 깊은 곳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존재.

고독. 상실. 절망. 상처. 부정적인 감정을 이해하기에

긍정적인 면만을 공유하는 이들보다도 더욱─

그것은, 동료라던가.

자신과 같은 배신자가 파고들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라일라는 편해지기로 했다.

이 이상 울어봐도. 머리를 굴려도.

자신이 클레온을 이길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깨닫게 되었다.

라일라는 비틀거리며 쿠온에게서 떨어져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라일라는 허리를. 무릎을. 머리를 숙여. 땅에 엎드렸다.

"부탁... 드립니다…. 클레온...씨…."

영창을 외우던 긍지 높던 입.

고고한 영혼.

하지만─

이젠, 그 모두가 공포와 절망에 집어삼켜 진다.

한마디,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요, 용서해 주세요…. 살려 주세요…."


라일라는 현명했다.

현명했기에 행동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실패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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