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암습 (살짝 고구마 요소 있음, 금방 해결) (4/17 수정)
어둠속에서 어떤 이들의 음모가 태동하던 언제나처럼 태양은 솟아오른다.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모험가 길드의 문이열리면.
가장 좋은 조건의 의뢰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서로 의뢰가 발주되는 게시판을 향해 치고 나아간다.
마치 전쟁.
길드의 직원들은 무질서한 모험가들을 최대한 정렬시켜 질서를 지킨다.
누군가는 최고의 일거리를 찾아내 환호하고.
누군가는 그런 의뢰를 눈앞에서 빼앗겨서 혀를 찬다.
시장 통보다도 더욱 어수선한 아침의 모험가 길드.
하지만- 그곳에.
또각...또각... 하는 높은 힐의 발소리가 울리자.
모험가들은 소동을 멈추고.일제히 그 발소리가 울린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 어이... 저거..."
그들이 주목한 것은 한명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두루마리이다.
여성의 경우, 연분홍색의 머리카락을 허리 아래까지 길게 기른 귀여운 느낌을 가진 인상의 아가씨였다.
눈의 짙은 갈색과도 같은 호박의 색.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비교하더라도,
정돈된 눈 코 입.
실제로 그녀의 나이를 알고 있는 인물은 없겠지만 10년을 길드에서 일 한 것 치고는 굉장히 어리게 보인다.
몸에 걸친것은 주변의 다른 길드 직원들과 같은 제복이다.
흰색 기조의 블라우스와 검은색의 자캣 상의.그리고 치마.
사이즈가 딱 맞는 것일까.
S자의 라인을 그리는 굴곡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뿐사뿐 한 발걸음에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 않는 단정함.
왼쪽 가슴에 걸린 '날개'모양의 금빛 뱃지.
그 것은 자유로 대표되는 모험가들의 상징이며.
모험가 길드 내에서도 길드 마스터만이 몸에 착용하는 것을 허락되는 장식이었다.
"루, 루티씨다..."
"루티씨를 아침부터 볼 수 있다니... 오늘은 분명 의뢰에 성공할거야."
[행복의 바람] 루티 시온스.
클레온이 거점으로 하고 있는 변방의 도시에 위치한 길드마스터이자─
남성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아이돌과 같은 존재이다.
일용직의 잡일꾼들이라는 취급을 밥먹듯이 받아오는 모험가들에게 늘 미소를 지우지 않는 살아있는 여신과도 같은 소녀.
젊은 나이에 길드 마스터라는 높은 위치에 있지만 절대로 거만하지 않고 휘하의 직원들과 모험가들을 진심으로 걱정한다.
평소에는 엄청난 양의 업무 때문에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지만.
때때로 차를 마시거나모험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휴게소에 얼굴을 내미는데...
그 때가 되면 대체 어떻게 안것인지.
의뢰에 나갔던 녀석들이 긴급히 도시로 돌아올 정도이다.
허나, 평소에는 얼굴에 늘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가 오늘은사뭇 진지한-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손에는 붉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쥔 채 게시판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붉은 두루마리─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상 수배' 의뢰.
본래, 모험가 길드에서는 도적단이나 범죄자 같은 확실한 악인을 제외하면 대상의 토벌의뢰 등을 발행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의뢰들이 성행하면 어둠속에 존재하는 '암살집단‘과 다를 게 없어지니까.
허나,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길드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모험가 길드의 조약을 어기고 길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다면.
길드로부터 실행되는 최악의 조치.
그 의뢰의 존재 자체를 길드의 수치로 여길 것을 명심하기 위해 만들어진.붉은 두루마리.
루티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모두의 앞에서 양피지의 봉인을 풀었다.
"들으세요.자유의 아이들.모험가 제군이여."
또랑또랑한 목소리.평소의 상냥함을 배제하고 최대한 사무적이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로부터 내려져 온 길드의 규칙에 의해.바람과, 별의 축복을 받으며.우리는 세상에 발자취를 남겨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시련을 찾아왔고.그 시련은 우리들의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길드 마스터로써 이것을 경시할 수 없다고 여겨...이곳에 수치의 두루마리를 통해 길드의 적을 선포합니다."
적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주저하는 입술.
이윽고 그녀의 눈은 슬프게 변한다.
"마검사. 클레온."
"전 동료를 납치하여, 성적 고문을 가한 죄. 동료를 상처 입힌 죄. 그들 간의 갈등을 조장한 죄로..."
"대상에게. '현상수배'를 시행합니다."
──일순의 적막.
하지만 조금 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길드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불구대천의 적에 대한 분노를 담아.
전투의 함성을 내질렀다.
─양피지가 조금구겨진다.
그것을 잡고 있는 손이 분하다는 듯.
001
"... 이것으로 만족 하시나요?"
문이 완전히 닫혀 있는 사무실.
바깥에서는 흥분한 모험가들의 말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책상 위에 쌓인 엄청난 양의 서류들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루티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금발의 벽안... 귀족의 상징.
루티가 미소녀라면 분명 이쪽은 미소년이라고 불리기에 문제가 없겠지.
하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상냥함'이 없었다.
용사 알베인.
분명 이 도시의 길드에 소속하고 있는 모험가들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
성검의 선택을 받은 용사... 자신감 넘치는 소년.
그리고 그 자신감만큼이나 높은 잠재력을 보유한 모험가.
-이었을터이다.
몇 달 전까지의 평가는.
때때로 의뢰에서 무리를 하여 몸을 다치거나 하는 경우는 루티도 인지하고 있었다.
허나, 아직 나이가 어린편이고.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러한 실패는 오히려 그에게도 좋은 약이 되리라.
독이 되어.파티 전체가 흔들리게 될 줄이라고는 루티도 생각하지 못했다.
"네, 감사합니다. 루티씨. 제 부탁을 친히 들어주셔서."
알베인은 기분이 좋다는 듯 약간의 웃음을 섞으며 루티에게 대답한다.
하지만, 루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큭...하고 침음을 내뱉는다.
"아하하...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시곤. 어쩐 일이신가요?"
알베인은 그 모습이 이상하다는 듯 능청떨듯 이야기 한다.
허나, 이 가증스러운 남자의 행동 하나 하나가.
루티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하필이면.하필이면 이런 사내에게 약점을 잡혀버리고 말다니.
루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알베인을 올려보자.
그는 조용히 루티의 옆으로 가 그녀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한다.
코가 닿을 거리.
루티는 소름이 끼쳤지만 그의 행동에 큰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계속그렇게 해보라고. 그러면 안 되는 건, 당신이 잘 알고 있잖아?"
작게 울리는 목소리.
하지만, 악의에 가득 차 있어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올라오는 듯 했다.
루티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분함과 절박함.
그리고 이 '악인'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그 모습이 재밌다 는 듯.
알베인은 잠시 입맛을다시다가 그녀로부터 떨어졌다.
"좋아요. 당신이 제 의도대로 움직여 준다면...약속대로 '그 일'은 계속 어둠속에 묻어 두자고요."
어깨를 으쓱하며,마치 선심을 쓴다는 듯이 이야기 한다.
루티는 당장이라도 이 남자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어졌지만 참아야만 했다.
"...설마. 당신과 당신의 부하 직원들이 옛제국─"
"그만!"
분해하는 루티의 모습을 보고 흥이 나, 말실수를 하는 알베인.
그러자, 루티가 큰 소리로 그의 말을막는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한쪽에 놓여있던 책들이 무더기로 반 토막 난다.
보이지 않는 풍압의 검.
루티가 감정의 조절에 발생한 현상에 알베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마검사 클레온이 그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은... 당신이 길드는 물론,도시의 모두를 인질로 잡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
침묵하는 알베인.
루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만약에라도 클레온의 범죄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 때는 제 목숨이라도- 원한다면 이 몸뚱아리라도 드리죠."
"호오...그건 꽤 반가운소식이네요."
알베인보다도 클레온을 신뢰한다고 이야기하는 길드마스터.
허나, 그럼에도 자신이 유리하다는 것에 변함은 없다.
알베인은 그렇게 판단했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손을대지 못한다.
영혼에 새겨진 맹약.
강제 종속의 저주.
수백의 저주를 몸에 안고 있는 그녀이지만, 그 중에서 알베인이 알고 있는 것은-
‘루티 시온스는 인간으로부터 물리적인 상해를 받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해 선제를 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루티 시온스는 모든 일에 있어서 길드와 도시의 안전을 첫째로 생각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행동해야 한다.’
‘루티 시온스는 그 자신의 정체가 대중에 공개되었을 경우 왕국의 정화 명령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자신의 발언만으로도 클레온의 현상수배 의뢰를 실행한 것이리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 마스터."
─길드에서.아니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여성.
알베인은 루티를 손에 넣은 듯 한 성취감을 느끼며 성의없는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알베인이 빠져나간 루티의 사무실.
루티는 흩어진 서류들을 정리한다.
얼마 전에 있던 거대한 마법행사에 대한 조사와 보고도 아직 이었는데, 알베인까지 그 지ㄹ-
아니, 미친 짓을 벌이니. 그녀로써는미칠 노릇이었다.
흥분에의해 올랐던 호흡과 세로로 변했던 동공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성검의 선택을 받은 자는 이윽고 세상을 지킬 운명에 있다.
신의 가호를 받은 용사는 사람을 구원한다.
─누군가가 이야기 했던가.
루티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가린다.
"내가 부족한 탓에... 미안... 클레온...“
가족과도 같은 이의 이름을 부른다.
자신이 믿지 않는 신이 이 세상에 정말로 존대한다면.
그 아이가 아니라 자신을 벌해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002
새액...새액...하는 마치 어린아이가 잠에 들어서 내는 숨소리와 같은 것이 한사람이 침실로 쓰기에는 조금 넓은 방에 울린다.
점심쯤, 라일라를 돌려보낸 뒤 그대로 응접실에서 잠이 든 클레온.
해가 완전히 떨어진 뒤에도 그곳에서 죽은 듯 잠을 자고 있었다.
어스름의 달빛이 창문을 통해 그를 비추면.
그로부터 만들어진 그림자.
그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내, 그것은 날카로운 칼날로 변하여.
자고 있던 클레온의 머리통을 꿰뚫는 것이었다.
소파와 함께 뒤로 넘어지는 클레온의 몸뚱이.
허나, 달빛의 그림자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서서히, 융기하여 모습을 바꾼다.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해골과 흡사한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쓴, 검은 머리의 남성.
길게 기른 장발과 똑같은 색조의 망토가 마치 일체화 된 듯 조용히 일렁이고 있었다.
몸에 두른 것 역시 칠흑과도 같은 의복.
재질이 무엇인지는 불명이었지만 몸에딱 달라붙는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경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무하군요. 극악무도하다는 마검사라도 잠이 들면 어린아이와다를 바가없다는 것입니까."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리는 얄팍한 외견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허나, 신사적이고 동시에 지적인 분위기의 음성이다.
허리를 숙여, 자신이 앗아간 목숨을 향해 예의를 표한다.
원한은 없다─그저, 일이었을 뿐.
조용히, 맡은 바를 다 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려 한 다음 순간.
"자기 손으로 죽인 녀석에게 인사를 하다니. 이상한 녀석이군."
응접실의 문 쪽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암살자는 가면 밑에서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이 죽인 그것을 확인한다.
─클레온의 시체라 생각했던 것은 어느 샌가 서서히 흐려지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만,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검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환영마법 입니까. 의외로군요...당신은 마검사라고 들었습니다만. 이정도의 고도의 환영을 부릴 줄 안다니. 기척도 분명히 있었는데."
암살자는 순순히 감탄했다는 듯.
진짜 클레온을 향해 돌아섰다.
팔은 자유롭게 하고 있지만, 틈은 보이지 않았다.
클레온은 그런 암살자의 자세를 보며 무언가를 눈치 챘다.
이 남자는 '인간의 사냥'을 본업으로 하고있다.
"너─ [장막의이빨]이로군."
그러면, 암살자는 다시 한 번 놀람을 표했다.
"...놀랍군요. 설마, 저희들의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이야."
"─이전에 조금. 연이 있었을 뿐이지."
"'암살집단'에 연입니까..."
암살자는 입가에 손을 가져가고 쿡쿡 웃었다.
클레온은 그를 이상한 녀석이라 했지만. 암살자로서는 클레온 쪽이 두 배는 더 이상한 녀석이었다.
환영 마법으로 자신을 방심시켜놓고 뒤에서 공격하지 않았다.
실제로, 클레온이 말을 걸기 전 까지 암살자는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었다.
거기에, 필요 이상으로 자신들에 대해 알고 있는 그의 지식. 마검사는 어둠과 걷는다고 일컬어지지만─
"...길드의 현상 수배인가."
"잘 알고 계시는 군요. 그 분석력. 냉정 침착한 태도. 적으로 두기에는 두려울 정도입니다."
암살자의 솔직한 감상에, 클레온은 눈을 찌푸렸다.
분명, 자신이 먼저 말을 걸었지만.
범행이 발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고 자신과 태평하게 이야기를 하는 태도.
일반적인 암살자와는 다르다고 생각한 순간
암살자의 몸이 흔들렸다.
클레온이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한다.
양쪽 팔이 들어 올려지며 급소를 막는 기본적인 자세.
허나, 다음.
클레온은 자신의 목의 왼쪽에 차가운 감각을 느끼며 눈을 움직였다.
암살자는 천장에 거꾸로 선 채로, 클레온의 목에 단검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중력을 거스르고 똑바로 되어 있는 망토와 머리카락과 함께.
클레온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 남자의 움직임의 궤도는 정상이 아니다.
마법을 통해 녀석을 떨쳐내야겠다고 판단하지만, 의외로 단검은 스스로 떨어지며 남자는 아까와 같은 위치로 돌아와 땅에 착지한다.
"이것으로. 빚은 없는 것으로 하지요. 당신이 제 뒤를 잡고도 저를 죽이지 않았기에."
"─...그래."
클레온은 판단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남자들 중에서도 꽤나 상위권에 속하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꽤나 정정당당 하군.정말로 암살자냐?"
"암살자에게 있어 '암살'이란,첫 일격으로 성공해야 하는 것. 경전에 의해 유일하게 허락된 '기습'입니다."
"그 '기습'에서 실패한다면?"
암살자는 조용히 양손에 단검을 쥐며 자세를 잡았다.
"정면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목표를 처단합니다."
"──"
─ 진짜로 이상한 놈이었다.
몸의 위험을 느낀 클레온은 암살자에 의해 넘어진 소파에 있던 갈라테아를 향해 손을 뻗는다.
암살자 역시, 그것에 눈치 챘는지.몸을 돌려 날아오는 마검을 회피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클레온과 강렬하게 부딪히며─ 창문을 뚫고 바깥으로 날아간다.
강렬한 충격이 저택의 정원을 뒤흔든다.
암살자의 얼굴을 강한 악력으로 붙잡은 채 땅위를 미끄러지는 클레온.
풀밭의 위가 뒤집어지며 흙무리가 올라온다.
이대로 갈라테아를 찔러 넣어 마무리 한다.그렇게 생각하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암살자의 쪽이었다.
가면의 아래, 턱이 비정상적으로 아래로 내려오며입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암기의 일종이었다.
클레온은 재빨리 몸에서 떨어지지만 일부가 얼굴을 잡고 있던 왼팔에 틀어박히며, 피가 튀어 올랐다.
거리를 벌린 클레온은 왼팔의 암기를 서둘러 뽑아 낸다.
상처주위가 검게 물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고통은 있지만 아직은 움직일 수 있다.
"조금 지나면 마비 될 것입니다."
턱을 되돌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암살자.
그 역시 방금 전의 충격이 없지는 않았던 듯. 조금 비틀 거리고 있었다.
클레온은 혀를 차며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 보다가 한 손으로 마검을 든 채 자세를 취한다.
섣불리 움직여서 접근했다간 아까처럼 몸에 숨긴 암기에 의해 반격 당한다.
이번에는 팔이었지만 심장이나 머리에 직격한다면 무사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암살자에게 선제권을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어둠의 장막."
그러자, 마검에서 검은 안개가 빠져나와 클레온을 감싼다.
암살자는 그 광경에잠시 놀란 듯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클레온의 모습이 사라졌다.
"……. 다재다능하시군요. 설마, 은신에도 조예가 있으실 줄이야."
순수한 마음으로 클레온의 기술을 칭찬하는 암살자.
클레온은 조용히 소리를 죽인 채 마검에 힘을 불어 넣는다.
그러자- 갈라테아는 그 모습을 바꾼다.
회색의 마궁. 이전, 라일라를 떨어트렸을 때 모습을 보였던 활.
사샤와의 연결을 통해 그 기술을 빌린다.
지금 쯤 사샤는 갑자기 각인이 빛나서 놀라 하고 있겠지.
검은 화살이 장전되고 클레온은 조용히 언령을 담아 말한다.
"창천의 유성우."
암살자는 자신을 갑작스럽게 하늘로 솟아올라간 검은 빛에 경계한다.
허나. 이윽고 뒷걸음질을 치다 저택을 벗어나 숲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 가는 것이다.
하늘에 떠올랐던 화살은그대로 암살자를 향해서 수십 발, 수백발이 되어 떨어진다.
촤르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비와 같은 마력의 화살.
원래라면 하나하나 실체를 가진 화살을 사용해야 했지만.
마검의 힘을 빌려 재현된 기술에 그런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원본과는 다른 형태로 발현되는 기술.
암살자는 강적의 공격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숲을 질주한다.
아무리 범위가 넓은 기술이라도, 거리를 벌리면 자신을 쫓아오지 못하리라.
탁 트인 정원보다도, 숲으로 클레온을 유도하면 어떤 곳에서도 자유롭게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자신의 쪽에게 승산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판단도.
오산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화살에 쫓겨 정신없이 이동하다도착한 곳.
살아있는 숲의 안에 있는 작은 호수.
마력을 발에 감아 호수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서면-
주변을 감싸는 결계의 존재를 눈치 챈다.그리고 조용히 암살자의 앞에 착지하는 클레온.
이 필요 이상의 화려한 기술이 자신을 이곳으로 몰아넣기 위한 공작에 불과했음을 느낀 암살자는 건조한 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탁 트인 공간.
움직일 때마다 발밑에선 물보라가 인다.
자신이 특기로 하는 변칙적인 움직임도, 물의 존재로 인해 궤적이 남는다.
바깥에서의 침입을 거부하는 결계와 다르게 안에서 나가는 것을 막는 결계.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남자와 정면에서 싸울 수 없다는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암살자는 개인적으로 클레온과 한 번 검을 마주하고 싶었다.
밝은 달이두 사람을 비추면 물 위에 그림자가 진다.
그렇기에 아무 말 없이 단검을 들어 올린다.
클레온 역시 오른 팔 한쪽으로 마검을 잡는다.
약간의 틈 그리고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쇄도한다.
한쪽 팔이 부자유인 클레온 그리고 지형상의 불리함을 가진 암살자.
선제를 가한 것은 암살자의 쪽이었다.
왼쪽 목을 찌르는 단검.
이어서 오른쪽 가슴.
물 흐르듯 어깨의 절단을 노리고 세로로 내려오는 참격
옆구리를 노리는 발차기.
신발에 박힌 칼날로 피해를 노린다.
클레온은 한손의 마검의 칼날과, 손잡이.
그리고 그 사이의 크로스 가드를통해, 차례대로 그 공격들을 막아낸다.
목을 노리는 단검을 손잡이로 막아내고.
칼날로 가슴을 지킨다.
상체를 뒤로 젖히며 어깨 쪽의 참격을 피해낸 뒤.
발차기는 팔꿈치와 무릎을 사용해서 그 발을 붙잡아 막아낸다.
남자는 재빠르게 단검을 물에 떨어트리더니, 손바닥을 펼친 채 클레온의 배를 강타했다.
일순, 충격이 배 위에서 뭉쳤다가 몸을 통과해 등 쪽에서 터지며, 클레온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마력을 통해 물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제어하지만, 이윽고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에몸을 흔든다.
"쿨럭..."
내장에 상처를 입은 듯, 피를 토하는 클레온.
호수에 섞여든 붉은 빛이 물감처럼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 보인다.
"훌륭한 방어입니다. 장기중 하나 정도는 방금 것으로 파괴할 심산이었습니다만."
암살자의 손에도 충격이 있었던 듯.
그의 손바닥의 가죽도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흘리고있었다.
"이걸로양쪽 모두 한 손으로 싸워야 하는 군요."
"......"
물론.거짓말.
달빛에 의해 만들어진 암살자의 그림자가 솟아오른다.
하늘-땅. 그리고 물밑을 달리는 그림자의 칼날.
그 속도는 자신의 최고속도-음속을 돌파해 클레온이 피할 수 없는 궤도로 돌진해 온다.
순식간이었다.
그러자 클레온은 입 꼬리를올린다.
그의 몸 주변에 순식간에 발생하는 화염의 벽
돌진하던 그림자는 화염의 벽이 발하는 빛에 의해 순식간에 증발하고 만다.
2티어의 마법 이라고 판단한 암살자.
재빠르게 거리를 두려 하지만.
"플레임 버스트."
벽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동시에 물보라를 동반한 강렬한 화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화염에 닿은 물은 순식간에 증발하며 수증기를 만들고.
그 압력에 의해 암살자는 뒤로 크게 날아간다.
이윽고 호수의 주변에 있는 절벽에 몸이 틀어 박혀진다.
그리고 늘어지는 암살자의 몸.
지금쯤 배 쪽에서 빛을 내고있는 문양에 당황해 할 라일라를 떠올리며 클레온은 마법을 해제했다.
암살자는 충격으로 머리를 부딪친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클레온은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목에 자신의 마검을 겨누었다.
"......"
무언으로 내려다보는 클레온.
암살자는 조용히 마른 웃음을 내뱉었다.
"제패배입니다."
003
클레온은 암살자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암살집단 [장막의 이빨]은 뒷 세계의 어둠에 몸을 담은 집단.
그렇다면─이라고 생각한 결과 그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집행과."
"번번이 저를 놀라게 하는 군요. 그 이름을 어디서?"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대답해라."
클레온의 말에, 암살자는 어깨를 으쓱 하고.이야기를 계속한다.
"몇 번인가 저희 쪽에도 일을 의뢰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자신들이 처리하는 듯 했습니다만..."
"어떤 녀석들이지?"
"...글쎄요. 접선을 할 때도 철저하게 정체를 숨기고 있었지만. 신경 쓰인다고 한다면 리더 격의 인물이겠죠."
암살자는 조용히 클레온을 바라보며 다음을 이야기 한다.
"그 인물은 당신과 같은 마검사입니다."
"......"
그 뒤에도 클레온은 암살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클레온은 암살자를 놓아주기로 했다.
이상한 녀석이지만, 미워할만한 기색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죽이지 않더라도...
이 이상 일이 귀찮아지기 전에 슬슬 알베인과 결착을 지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