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부] 검성
일찍이. 세계에 위기가 도래했을 때 성검의 힘을 빌려 악을 퇴치하는 무리 있을지니
그를 용사라 칭하여 사람의 본보기로 하라.
`성자의 교단` 혹은 `성자의 가호 교단`이라고 불리는 대륙에 가장 넓게 퍼진 종교의 교리이다.
`성검` `용사` `성녀`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진 세계의 수호자들만이 세계의 어둠을 거둬낼 수 있는 존재들이라 여겼다.
그들의 일은 새로운 성검의 소재 파악.
용사의 지원.
성녀의 육성.
바로얼마 전, 변경의 도시에 있는 용사가 누군가에 의해 몰락했다.
`성자의 교단`으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악에 의해 타락한 용사가 지금까지 역사에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30년 전의 대 영웅.
용살자 `레시아`가 그러했으니.
허나, 이번의 `알베인`은 무언가가 이상했다.
어찌하여 알베인은 폭주하였는가?
그의 일행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의 대적자로 여겨진 마검사 클레온의 시체와 마검은 어디로 갔는가?
교단이 급하게 아카데미에 그것을 요구했을 때, 그들마저 곤란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식이 끊긴 성녀 후보이자, 알베인의 동료인 `쿠온`.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퍼즐 조각이 마치 강제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상황.
위화감을 눈치 채면,그 사이의 가느다란 연결고리가 보인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조사할 뿐.
도시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교단의 인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001
"~♪"
이제는 완전히 자신들의 것처럼 사용되고 있는 백작 저택의 주방.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이고, 이곳저곳 해진 곳이 많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말끔하게 수선되어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 못지않은 설비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 있는모든 것의 사용법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숙소와 야영을반복하며 3년을 보내왔던 쿠온에게 있어 저택의 생활은 마치 고향에서의 나날을떠올리게 해주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둘이서 지내며 이런저런 집안일을 돕고 살던 시골 소녀.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본질일지도 모른다고.
많은 사람의 아침을 준비하며 콧노래를 부른다.
"호오~. 버터로 구운 빵에 달걀부침. 그리고 샐러드인가. 이거참. 가정적이군. 고기는 없나?"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쿠온이 뒤를 돌아보면 거기에는 키가 210cm 정도 되어 보이는 거한이 서 있었다.
주방에서 식당으로 옮겨지기 전에, 잠시 준비되어 되어있던 요리를 멋대로 시식하며.
맨손으로 달걀부침을 잡아 입안에 쏙 집어넣는다.
"... ..."
"엉? 왜 그러냐."
그런 거한을 보고 표정이 굳는 쿠온.
그리고-
"꺄아아아아아악! 도적이야!"
비명을 내지르는 쿠온과-
"우와아아아아악! 누가 도적이라는 거냐!"
지지 않게 소리를 지르는 남자.
그 소리가 울리고 2초 만에 주방에 나타나는 라일라와 클레온.
잠옷 차림에도 불구하고 지팡이 없이 구속 마법을 사용하는 라일라.
그리고 재빠르게 검을 휘둘러 남자를 공격하는클레온.
두 사람의 공격이 막힌 것은 거의 동시에서였다.
라일라의 주문은 중간에 끼어든 은발의 여성의 주문보호막에 의해 제거되었고.
클레온의 검은 접시 위에 놓여있던 식사용의 나이프를 사용한 남성에 의해 틀어 막혔다.
"치잇…! 뭐야 당신들 누구야!"
표독스러운 소리를 울리는 라일라.
그녀의 주문을 막아낸 여성은 그런 라일라를 잠시 바라보다가 옆의거한에게 머리를 돌린다.
거한은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으면서 다른 손으로 냅킨을 집어 턱의 수염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낸다.
그리고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클레온을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어 꼬맹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탈체크?"
클레온이 거한의 얼굴을 보고 손에 쥔 힘이 살짝 약해지자.
남자는 그대로 식사용 나이프로 클레온의 칼을 튕겨내 클레온의 목을 향해 찔러 넣는다.
하지만-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이프가 두 동강 난다.
이윽고 클레온의 목 바로 앞에서 절반만 남은 나이프가 멈추는 것이었다.
"역시 이런 나이프로 마검을 막는 것은 무리가 있었나."
남자는 크크…. 하고 아쉽다는 웃음을 흘리며, 나이프를 탁자 위에 돌려놓는다.
그 사이 쿠온은 라일라의 뒤에 숨은 채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청객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001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응접실의 안.
상쾌한 아침이 밝았지만, 저택 주민들의 얼굴은 영 밝지 못했다.
클레온은 거한, 그리고 여성과 마주 앉은 채.
영 맘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거한 쪽.
"스승님한테 뭐냐. 그 눈빛은."
"... ..."
그럼, 쿠온은 입을 가린다.
라일라도 조금 놀란 듯했다.
클레온은 남자의 말에 잠시 고개를 돌리다가도, 이내싫다는듯이 중얼 꺼리는 것이었다.
"검으로 어디를 맞아야고통스럽지 않게 죽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스승이라고 할 수 있나?"
"그게 검사한테 가장 중요한 건데 무슨 소리야!"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웃으며 전혀 웃을 수 없는 농담을 하는 남자.
라일라도 쿠온도, 이 남자의 존재에 커다란 경각심을 느끼면서도 클레온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언제까지 저 아가씨들이 나를 이상한 남자로 보게 할 거야?"
탈체크는 그런 여성들의 눈치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야기 한다.
"아뇨. 아버님은 충분히 이상한 남자입니다.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부수고 들어가 주방에서 무전취식까지. 엄연한 범죄자입니다."
분명 같이 온 일행일 텐데도 남자에게 까다로운 여자.
얼핏 보면 물과 기름 같아 보이는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부녀관계`라는 것을 알자 클레온도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듯했다.
"탈체크... 당신, 결혼했었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이건 맡은 애다."
클레온의 말에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젓는 남자. 아니, 탈체크.
옆에 있는 은발의 여성도 탈체크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타, 타..."
그러자, 쿠온의 옆에서 라일라가 입을 크게 벌린 채, 마치 장작이 탈 때 나는 `타, 타`를 반복하며 남자를 가리킨다.
"라, 라일라? 왜 그래?"
"탈체크라고오오오!?!?"
이윽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는 라일라.
그 모습을 보며 은발의 여성은 한숨을, 남자는 `음!`하고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잠깐 클레온! 네 스승이라고 자칭하는 이 고릴라 같은 남자가, 정말 탈체크라는 거야!?"
클레온 역시, 라일라의 추궁에 한숨을 내쉬며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유명한 사람?"
쿠온이 고개를 갸웃하면 라일라는 발끈하여 쿠온에게 이야기한다.
"유명!? 유명 따위가 아니야! 살아있는 전설! 30년 전, 용사 `레시아`와 함께 왕국과 협력해서…. `제국`을 무너트린 4명의 영웅 중 하나!`검성` 탈체크!"
"그리운 이야기구먼.바로 어제 같은 데 말이야. 뭐시기냐. 아가씨는 역사 공부를잘 했구먼."
감탄스럽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탈체크를 보고. 라일라는 또다시 화를낸다.
"역사의 공부 따위가 문제가 아니야! 이건 상식이라고! 쿠온이 이상한 것뿐!"
쿠온이 부끄럽다는 듯이 쑥스럽게 웃어보이며 머리를 조금 긁적인다.
그러자, 은발의 여성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쿠온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4 영웅에 관련된 책입니다. 왕국 권장 도서 100위안에서 20년간 나온 적이 없는 작품이니, 한 번 읽어 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같은 책을 두 권 더 꺼내서 위에 올려놓는다.
"보관용, 포교용으로 써주세요."
"으, 으응...?"
그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해 하던 찰나.
클레온이 이 촌극 같은 상황을 정리하려 입을 열었다.
"... 어째서 날 찾았지? 그녀가 죽은 뒤로는 한 번도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으면서."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일이생겨서."
탈체크는 그렇게말하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여성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우선. 이 녀석부터 소개하지. 이름은 슈발리에. 왕국 기사단 소속의 기사이시다."
"이오나 슈발리에입니다. 이오나라고 불러주세요. 당신들은 이 사람의 말을 도대체 들어 먹지 않는 고릴라와는 다른 품격 있는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지만 아버지를 고릴라라고 부르는 이오나.
그리고 그런이오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 재끼는 탈체크.
클레온은 머리가 아파졌다. 이것은 절대로 분명히 귀찮은 일이다.
"여기 온 이유가 뭐냐고? 알고 있잖으냐. 클레온. 지금왕국의 위쪽은 떠들썩하다. 믿고서 2년간 지원해 온 용사가 그 사달을 내놨는데. 정작 용사를 멈춘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아."
"...알베인의 이야기인가."
그 이야기를 듣고, 클레온은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조용히 얼마 전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지금 옆에 있는 쿠온이나 라일라 역시 그들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였다.
"30년 전. `그녀석`의 대활약으로 왕국은 이미 완전히 `용사`의 추종자들로 가득하지.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용사를 꺾어 제압했다고 하면. 왕국에서도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클레온의 달갑지 않다는 반응에, 남자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래서 내가 왔다는 거지. `왕실직속정보기관 소속 특무조사관` 탈체크님께서 말이야. `우리 소중하고 귀여운 용사님을 쓰러트린 녀석이 누구인지 알 것 같으니 잠깐 가서 확인하고 오겠다.`라고 하니까 바로 보내주더라, 보너스까지 쥐어 주면서."
"잠깐! 그럼…. 클레온을 잡으러 왔다는 거야?"
라일라가 경계하며 머리카락이 붉게 타오른다. 쿠온 역시 손을 꽉 쥐고. 싸울 준비를 한다.
"크하하! 무서운 누님들이구먼. 방금 말했잖냐. 그저 확인하고 오겠다고."
탈체크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전혀 무섭다고 느끼지는 않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응접실의 긴장된 상황 속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라일라도 쿠온도 완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상황.혹시라도 무언가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은 탈체크 하나. 솔직히 말해서, 클레온으로서는 여기서 모두와 함께 싸움을시작하는 것 따위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유지되던 그때.
벌컥- 하고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클레온! 들어봐! 지하실에 비밀 창고가 있어서! 거기에 포도주가 가득…."
잠옷 차림에 한 손에는 포도주병을 들고. 산발한 분홍 머리를 보이며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띤여성. 루티 시온스.
평소의 단정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전된 나태에 타락한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탈체크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석고상처럼 웃는 얼굴인 채. 문을 닫는다.
"으갸아아악! 고릴라가 잡으러 왔어! 도망쳐!!"
바깥에서 쿵쾅쿵쾅 뛰어가며 도망치는 루티.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탈체크는 그녀보다도 그녀의 술이 신경 쓰인 다는 듯이입맛을 다신다.
클레온의 두통이 심화된다.
그러면, 그런 클레온에게 탈체크는 이야기한다.
"꽤 여자를 데리고 있구먼. 방금 건 루티 시온스인가."
"...그래.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아니. 나는 아무래도 다른 쪽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아있으니."
탈체크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 잠시 얼굴에서 미소를 지운다.
그 모습을 본 클레온은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슬슬 진짜로 여기에 온목적을 말해라."
"원래 목적이라... 좋아.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줘야지."
탈체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이야기한다.
"클레온...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
"...내게. 당신이?"
순수하게 가진 무력이나 지위를 생각해봐도 자신보다는 탈체크가 할 수 있는 일이더 많았다.
살아 있는 것을 숨긴 채 살아야 하는 모험가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물론. 보수도 준비해 놨지. 우리들의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네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갖고 싶어 할 물건을 말이야."
"기분 나쁜걸. 그 뭐든지 꿰뚫어 보고 있다는 말투."
"크하하. 너는 나랑 비슷하니까 말이다. 어느 정도는 알게 되는 법이야."
그 말에 쿠온이 발끈한다.
"클레온은 당신처럼 섬세함이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 ... 쿠온. 고맙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아니야."
"뭐 좋지 않으냐. 기세가 좋은 여자는 싫어하지 않는다고."
탈체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하나의 큐브를 꺼낸다.
가운데는 마석으로 보이는 것이 있고. 6면에 빼곡하게 고대 룬 문자로 보이는 것이 조각 되어 있었다.
"메, 메모리아 큐브!"
제일 먼저 그것을 알아본 라일라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맞습니다. 기록을 시작하면 100년 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난 사건, 현상, 사상 등을 모두 빠짐없이 기억하는 궁극의 기록 마도구. 고대의 기술에서도 마검, 성검만큼은 아니어도 그 기술이 비밀에 싸여 있는 물건이죠."
이오나가 그것에 관해 설명하면 라일라도 이어서 보충 설명한다.
"수는 많지만, 재현도 불가능하고 재사용도 불가능. 하지만 하나 발견할 때마다 역사나 마법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발견이 가능한 물건이야. 그거야, 100년이라는 세월을 기록해 놓는걸."
분명, 라일라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갖고 싶은 물건이야 하겠지만.
학자가 아닌 클레온에게는 그다지 매력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여기에 `그 녀석`이 기록되어 있다. 전체의 기록에서 보면 아주 잠깐이지만."
그 말을 들은 클레온은 눈을 크게 뜬다.
그러고는 주먹을 꽉 쥐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 ... 뭘하면 되는 거지?"
"슈발리에. 설명해 줘라."
이오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루티 시온스가 길드 마스터의 자리를 내려놓은 것으로, 왕도에서는 새로운 길드 마스터를 파견하게 됐습니다. 일정에 의하면 내일 도착할 예정입니다."
"휴즈 우드녹커. 작위는 후작. 왕도에서도 최근 왕실의 총애를 받는 가문이다. 상단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돈이많아. 하지만 인간은 덜됐지. 전형적인 무능한 돼지 귀족이다."
클레온은 턱을 문지르며 잠시 생각한다.
이전 알베인에게 후원을 하겠다면서 대량의 모험자금을 보내 왔던 귀족이 그런 이름이었던 같은데….
"얼마 전.정보기관의 수사로 그가 대량의 불법적인 유통 루트를 가지고 있으며. `회귀자`들과 손을 잡고 있다는 증거가 포착되었습니다."
"... 회귀자라니 테러리스트들이잖아."
이오나의 말을 들은 라일라가맘에 들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회귀자란 고대의 문명을 신봉하는 집단.
유적을 발굴하고 유물을 연구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며 그 목적은 세상을 고대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들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그 시대야말로 세계가 본래 가져야 할 모습이라는 것 같다.
말을들으면 조금 과격한 학자들 같지만, 실제로는 연구를 위해 도굴도서슴지 않는다.
불필요하다 판단한 유물을 고가에 팔아넘기는 것이 태반.
유적에 머물며 그곳에서 연구하는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습격한 횟수는 두 손으로 다 세지 못할 정도였다.
"왕국이 조금만 더 대처해 줘도…."
"손이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지."
그 말에 발끈하는 라일라. 그럼, 이오나가 그것을 말린다.
"죄송합니다. 저희 고릴라가…."
"야. 고릴라라고 그만해라."
"이야기를돌리자면, 저희도 휴즈 후작을 조사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만…. 부끄럽게도 기관 내에도 내통자가 있는 듯하여."
이오나가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꺼내 든 것은 화려한 인장으로 장식된 초대장이었다.
발신인은 휴즈 후작. 정성스럽게도 자신을 조사하러 오는 인간들에게 보낸 초대장이었다.
"젠장. 숨어서 조사하려고 했더니 그것도 불가능해졌지 뭐냐."
"당신이 너무 눈에 띄어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오나의 말에 콧방귀를 뀌는 탈체크.
클레온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더니 잠시 고민한다.
"그러니까. 나 보고 휴즈 후작을 조사해서 회귀자들을 잡아들이라는 거군."
"바로 그거다. 역시 어릴 때부터 머리 회전 하나는 빠르다니까. 요 얍삽한 녀석."
"... ..."
그러면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
"클레온, 괜찮겠어?"
"...문제없어. 거절하기엔 보수가 너무 클 뿐이야."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도 찬동한다.
"맞아.맞아. 메모리아 큐브는 못 참지."
"왜 네가 받을 거로 생각하는 거냐. 벌써."
"그야, 클레온은 혼자서 해석 못할 테니까."
라일라가 콧노래를 부르며 미소를 짓는다. 벌써 메모리아 큐브를 해석하는 것이 기대되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일 도시로 와라. 이오나가 도와줄 거다."
탈체크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오나 역시 그의 뒤를 따라간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허리를 숙이며 클레온에게 인사하는 것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클레온님."
"...클레온으로 괜찮아."
클레온의 말에 이오나는 살짝 미소 지어 보이며, 방을 나서는 탈체크를 따라간다.
"집참 넓구먼! 출구가 대체 어디야!"
"이쪽입니다. 고릴라."
클레온은 잠시 눈을 감는다.
탈체크가 말한 `그 녀석`.
자신이모험가가 된 이유.
허나, 너무나도 뜬구름 잡는 듯 한 이야기에 단서조차 손에 들어오지 않아 어느 샌가 포기해 버리고 있었다.
용살자 `레시아`.
자신을구했던 용사의 이름을 머릿속에 다시 한 번 되새겼다.
002
살아있는 숲의 길을 통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탈체크와 이오나.
저택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면 이오나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말씀하지 않으셔도 된 겁니까?"
"무엇을?"
탈체크는 그런 이오나에게 무심한 듯 대답한다.
어딘가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 `절계추방영역`에 대하여."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도 녀석이 해야 할 일이지."
검성은 크크 웃으면서 가방에 들어있는 메모리아 큐브를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당신에겐..."
"그 이상은 말하지 마라. 아무리 너라도 베어버리고 싶어질 테니."
바로 직전까지와는 다른 얼굴.
이오나는 전신을 짓누르는 감각에 무릎이 흔들린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압력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눈. 눈앞의 고기를 어떤 곳에서 어떤 방향으로 잘리면 저항 없이 분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도축자의 눈. 살인자의 눈이었다.
이오나를 짓누르는 것은 살기였다.
이내,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오나가 완전히 무릎을 꿇기 직전.
남자는 고개를 돌려 이오나를 해방한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제대로 따라와라. 너는 네 할 일이 있으니까."
"...네. 아버지."
조용히 탈체크의 뒤를 따르는 이오나.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