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동족
클레온이 갈라테아의 말에 반응하여 나지막이 내뱉은 말에 이오나 역시 조금 놀란 듯했다.
"그녀가 당신과 같은 일족이라는 것은 외견으로 알 수 있습니다만…. 마검사라는 것도 알 수 있는 건가요?"
"그래. 각성했는지 안 했는지 까지는 모르지만."
어딘가, 머리카락의 길이를 제외하면 클레온이 여성의 모습으로 변장했을 때와 비슷한 외견이었다.
단정하게 목의 위까지만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주인을 노리는 자가 주변에 없는지 경계하는 날카로운 흑안.
치마의 단이 짧은 것을 보면 그녀도 전투 요원으로 주인의 호위를 맡는 것이겠지.
하지만, 다리, 손을 모두 검은색의 천으로 이루어진 장갑과 스타킹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야말로 목 아래를 제외하면 단 하나의 노출도 용서하지않겠다는 듯했다.
이오나는 수첩을 꺼내 잠시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름은 루베라. 유스테스의 시종 겸 호위군요. 후작 가에서 일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어릴 때부터."
클레온의 뇌리에 어젯밤의 꿈이 스쳐 지나간다.
"...단번에 저 바보를 공략하는 게 어려워졌군."
클레온은 인상을 찌푸린다.
유스테스를 둘러싼 인원은 아마, 그의 일행이겠지.
수는 유스테스와 루베라를 포함하여 다섯.
나머지 셋은 하나같이 돈을 밝히는 녀석들이다.
적당히 유스테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을 보아 그들 역시 돈으로 묶인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만 이라면 적당히 치워 버리고, 그 자리를 꿰찰 수 있었겠지만.
만약 클레온이 다가간다면 루베라 역시 자신을 눈치 채고 경계할 것이다.
흑마의 일족의 마검사가 귀족 자제한테 다가가는일 따위 긍정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겠지.
"후우~ 쏟아내도 쏟아내도 끝이 없는 이 몸의 무용담에 목이 마르는군. 어이! 물을 대령해라!"
허풍쟁이라도 이 수준으로 오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쏟아낸 다음.
난폭한어투로 책상을 내리치며 턱 하나로 사람을 부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이였다.
어째서 귀족의 자제라는 것은 하나같이 이런 걸까.
"유스테스 도련님. 후작 가의 체통을 위하여 조금 정중한 어투를 쓰시는 것이."
"정중…? 예의란건 동등한 위치의 녀석들과의 대화에서나 차리는 것이지."
조금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유스테스에게 물 잔을 건네는 종업원.
유스테스는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 종업원의 엉덩이에 손을 가져다 댄다.
그러자-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루베라가 유스테스의 뺨을 후려갈겼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얼굴에 날벌레가."
"아…. 어…?"
얼얼해진 볼을 부여잡고 자신의 시종을 바라보는 유스테스.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위축된 것일까.
그 광경을 지켜보는 다른 일행은 웃음을 참기 위해 애쓰는 듯했다.
"...고삐로군."
"네. 후작의 안배겠죠."
클레온과 이오나는 루베라에 대해 같은 평가를 했다.
철없고 막 나가는아들을 지키고 후작 가의 평판도 지키기 위해 배치된 경호원.
어느 정도의 무례는 후작도 용인하고 있을것이고 유스테스는 그런 그녀가 목소리를 깔고 노려보면 지레 겁을 먹고 뭐라고 하지 못한다.
그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분을 삭일 뿐.
일행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면 다시 루베라가 입을 열었다.
"슬슬 의뢰에 출발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작전대로 부탁합니다."
"자, 작전? 나는 듣지 못했는데."
"유스테스님께서 일행의 중앙에 서서 모두를 지휘하시면 저희가 그것에 맞춰 움직인다는 작전이옵니다.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시길."
루베라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몸을 돌려 커다란 가방을 등에 맨다.
안에는 대량의 회복 약이나 모험 도구 등이 들은 것이겠지.
유스테스의 일행에 성직자는 없었다.
마법사, 전사, 그리고 레인저.
성자의 가호 교단 소속의 성직자라면 어느 정도 차별 없이 파티에 참여해 줄 텐데.
"뭐, 뭐어. 그런 작전이라면 어쩔 수 없지. 좋아. 그렇다면 지금 당장 `살아있는 숲`을 향해 출발이다!"
기세 좋게 팔을 올리는 유스테스 일행.
이오나는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클레온에게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미행하…. 클레온?"
이미 그 자리에 클레온의 모습은 없었다.
이오나는 한숨을 내쉬며 혼자서라도 그들을 미행하기로 한다.
001
사샤는 어제부터 정체를 모를 감각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갑갑해지는 마음.
클레온에게 한껏 어리광을 피우고 그와 몸을 섞는 사이에는 그런 불안도 날아갔지만.
클레온이 집을 비우면 또다시 스멀스멀하고 답답함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며, 나무 위에 올라간 사샤.
숲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동물들을 쫓거나 바람을 맞으면 조금은이 기분이완화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클레온이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만이 커진다.
저택이 위치한 위험구역.
그 안의 마물들은 확실히 위험하지만, 나무 위를 지나다니거나 숨을 죽이고 이동하면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숲의 마물의 대부분은 동물과 식물이 마력의 힘에 변이한 것들.
의뢰를 받지 않으면 무의미한 살생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사샤의 생각이었다.
쿵... 쿵...
자신이 올라탄 나무가 무언가의 충격으로 흔들리자 급하게 몸을 세우는 사샤.
아래를 내려다보면 거기에는 집채만 한 곰이 있었다.
그 크기로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땅이 울리는 것이었다.
"...여, 역시 살아있는 숲. 저런 마물들도 있구나…."
아마, 이 일대의 우두머리겠지.
살아있는 숲의 질서를 유지하는 마물 중 하나이다.
다음 순간,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들어 우두머리의 몸에 꽂힌다.
파악! 하고 그 두꺼운 가죽을 뚫고 틀어박힌 화살에 의해 피가 튀어 오르면 우두머리는 곧바로눈을 부릅뜨고 커다랗게 소리를 울렸다
[KRRRRRAA!!]
고막이 터질 것만 같은 울부짖음.
다음 화살이 이번에는 우두머리의 눈을 향해 날아들면-
그 화살에 정확하게 다른 화살이 날아와 그것을 떨어트린다.
그 모습을 보고 움찔하고 위를 올려다보는 우두머리.
그곳에는 사샤가 눈의 각인을 빛내며 우두머리를 공격한 다른 사냥꾼을 바라보고 있었다.
녹색의 망토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손에 든 장궁에 화살을 걸고 사샤를 노려보는 사냥꾼.
우두머리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를 향해 몸을 돌린다.
그러자, 사냥꾼이 우두머리를 쫓기 위해 움직이지만 사샤가 그에게 활을 겨누며 그 진로를 막는 것이었다.
"... ..."
잠시, 두 사람의 사이에 흐르는 적막.
먼저 움직인 것은 사냥꾼이었다.
재빠르게 두 개의 화살을 동시에 걸어 사샤에게 발사한다.
뱀처럼 휘어지는 궤도로 날아드는 화살이 하나는 사샤가 쓰고 있던 모자에, 하나는 간신히 발을 들어 피한 곳에 틀어박힌다.
다만, 그 영향으로 사샤가 서 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비틀거리며 그 자리에서 낙하한다.
사샤는 재빠르게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사냥꾼에게 던졌다.
사냥꾼은 가볍게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여 단검을 피해내지만.
단검과 바로 같은 속도로 이어서 날아오는 화살이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사샤가 땅에 떨어졌다.
낙법을 했지만, 높은 나무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만큼 다리가 저리다.
자신의 볼에서 난 피를손으로 닦아내며, 사냥꾼 역시 나무에서 내려와 사샤를 바라보다가-
쓰고 있던후드를 벗은 것이다.
노을빛과 같은 머리카락. 녹색 눈. 그러면서도 수수한 인상.
사냥꾼의 외견을 본 사샤의 얼굴이 파랗게 변한다.
"...너. 동족이군."
사냥꾼이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의 눈에는 사샤의 것과 같은 사냥꾼의 각인이 빛나고 있었다.
`루벤의 후예`
사샤가거점으로 삼았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수렵부족.
사샤라는 이름이 본명이 아닌 것도.
자신이 거기서 저지른 일을 아는 것도.
그녀 본인을 제외하면 오직 클레온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째서 동족의 여자가마을 밖에 나와 있는거지?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시련을 거친남자들뿐일 텐데..."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갸웃하며 사샤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하지만 이윽고 입 꼬리를 올리며 알겠다는 듯이 웃어 보이는 것이다.
"아아. 그렇군. 너 탈주자인가."
"...큿...!"
사샤는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벗어나기 위해 다리에 마력을 흘린다.
신체 강화는 특기가 아니지만 요령은 알고 있었기에.
"얼마 전에 오랜만에 마을로 돌아가 보니, 떠들썩하더군. 마랑을 20마리가 넘게 도륙하고 사라진 여자가 있다고…."
남자는 조용히 박수를 치며 사샤의 공적을 치하한다.
"대단한 실력이야. 장로들도 눈에 혈안이 되어서 널 찾고 있었지.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불러들여 와서 아이를 낳게 해야 한다나…."
"싫어!"
사샤가거절의 외침을 올리고 남자에게 활을 겨눈다.
"사람에게 활을 겨누는 데에 거리낌이 없군그래."
"당신들은…. 사람이 아니야. 사냥의 신의 후예라고하면서 자신들도 짐승처럼살아가는…."
"하하. 자연계는 어차피 약육강식이지. 그런 의미에서, 너는 약이고, 나는 강인데…. 그렇게 활을 겨눠도 괜찮은 건가?"
다음 순간. 남자가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던진다.
사샤의 각인이 빛나며 그 궤도를 읽고 몸을 움직이지만-
뒤이어 날아오는 화살에 그녀의 마비된 다리에 틀어박힌다.
"-아그윽…!"
순식간에 피가 흘러나오며 고통이 터져 나왔다.
라일라가 마력으로 자신의 다리를 강화하지 않았다면 발목이 관통되었을지도 모른다.
"네가 했던 것의 응용이다. 단검으로 화살의 궤도를 가리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야. 나도 식은땀을 흘렸으니까."
남자는 조용히 사샤를 향해 걸어온다.
그의 손에는 어느 샌가 밧줄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하군. 사람에게 활을 겨누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으면서, 그 목숨을 빼앗는 것에는 가책을 느끼나?"
"...싫어…! 가까이 오지 마!"
마지막 남은 단검을 들어 남자에게 겨누는 사샤. 남자는 그럼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자신의 도축용 칼을 꺼내 드는 것이었다.
"힘줄을 잘라야 반항하지 못하나…."
그 흉악한 칼날이 휘둘러지면 사샤의 단검이 부러지고. 다음에 노리는 것은 그녀의 팔이었다.
"마나쇼크!"
다음 순간, 그의 뒤쪽에서 날아오는 검은 번개가사냥꾼의 망토를 뚫고 몸에 직격한다.
사냥꾼은 몸이 마비되는 감각에 도축용 칼을 떨어트리지만.
망토가 충격을 완화했는지 몸을 굴러 이어져 오는 참격에서 몸을 지켰다.
"클레온씨...!"
폴리모프를 해제하고, 사샤의 앞에 서서 검을 잡은 클레온.
남자는 혀를 차면서 구멍이 난 자신의 망토를 살폈다.
"뭐지? 그 녀석의 주인인가?"
"...아니, 나는-"
그럼, 사샤가 클레온의 망토 자락을 꾹 잡는 감각에 클레온은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가.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소유주가 있었던 건가…. 가치가 떨어졌는걸."
"미친놈인가?"
"얼굴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구먼. 소수문화를 존중해 달라고."
남자는 클레온의직설에 헛웃음을 띄우며 어깨를 으쓱였다.
"미카시아 루펜볼프다. 이름을 듣도록 할까, 동족의 주인."
"... ..."
"도시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예의가 없단 말이야."
남자의 말에 클레온은 인상을 찌푸리지만, 상대해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꺼져라."
"무서운걸. 그 마검으로 날 베어버릴 건가? 알베인인가 하는 용사처럼?"
미카시아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하는 클레온.
"... 알고 있는 건가. 뭐하는 놈이지?"
"보다시피 사냥꾼이다.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이곳으로 귀한 자제분이 올 테니 미리 청소해서 어느 정도 `안전`하게 만들어 놓으라고. 아아, 물론 그 귀족 자제가 즐길 거리가 없으면 곤란하니 `적당하게` 말이야."
"어떤 멍청한 놈이 그런 의뢰를…."
클레온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잠시 전에 도시에서 보았던 멍청이를 생각해낸다.
중간에 사샤의 위험을 감지하고 뛰쳐나왔기에 말을 끝까지 듣지는 않았지만….
"너, 유스테스의 용병인가?"
"유스테스…? 아아. 그 바보? 아니, 나는 그 아버지인 휴즈 후작과 일한다. 모자란 아들이라도 소중하단 거겠지."
미카시아는 어깨를 으쓱하고 몸을 돌린다.
"하지만 여기에 당신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른걸. 정면에서 상대해서 당신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가게 둘 거로 생각하나?"
"당신 혼자였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딱 좋은 짐 덩어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다음 순간, 미카시아는 마력의 화살을 걸어 하늘을 향해 발사한다.
그 눈에는 강렬한 빛을 내뿜는 사냥꾼의각인이 떠올라 있었다.
"창천의 유성우."
이윽고, 화살은 수십, 수백의 갈래로 펼쳐지며 클레온이 있는 곳과 그 주변을 향해 비처럼 쏟아진다.
클레온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마력의 벽을 펼쳐 자신과 사샤를 보호한다.
다행히 화살 하나하나의 위력은 벽을 뚫을만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신이 도망칠 때까지클레온을 붙잡아 두려는 의도였다.
...1분 가까이 이어진화살의 비가 멎으면
이미 그곳에 미카시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클레온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뒤에서 들린 `풀썩`하는 소리에 몸을 돌린다.
"사샤! 정신 차려!"
긴장이 풀린 것과 출혈 때문인가. 정신을 잃은 사샤를 둘러업고, 클레온은 저택을 향해 달려갔다.
002
사샤가 눈을 뜬 것은 저택의 방.
쿠온이 옆에서 치유 주문을 사용하는 도중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클레온도 함께 있었다.
"다행이야, 눈을 떠서."
쿠온이 미소를 지으며 사샤의 상처를 회복시킨다.
사샤는 잠시 침묵한 상태로쿠온과 클레온을 보다가,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당겼다.
"...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쓴 상태로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쿠온은 그런 사샤를 바라보다가, 옆에서 조용히 있는 클레온을 올려다본다.
그럼, 클레온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다. 다만, 도시에 저런 녀석들이 와 있으니 외출할 때 조금 조심해 주면 돼."
클레온 나름의 위로. 사샤는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채이다.
"...어제부터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를 알았어요.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존재가 가까이에 와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제는 조금 이상했던 거로군…."
클레온의 말에 사샤는 살짝 이불을 내리며 눈만 보이도록 그를 올려다보았다.
"... 귀찮으셨나요?"
"아니. 그렇지 않아. 다만 그 이유가 이해됐을 뿐."
사냥꾼의 각인의 힘이 점점 강해지면서, 사샤에게도 동물적인 육감 등이 발현되고 있었다.
이전, 마안술사의 마안에 당한 이후로 무언가가 이상해진 것이겠지.
사냥꾼으로서의 필요한 능력이 상승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그 부작용에는 문제가 있었다.
사냥꾼의 각인은 사냥의 신 루벤의 권능중 하나.
각인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하면 루벤과의 연결이 점점 강해지고.
이윽고 인간을 루벤과도 같은 `짐승`으로 변화시킨다.
그 짐승이 어떤 것인지는 마을의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다만 모두 얼굴을 흐리며 말을 꺼릴 뿐.
"...라일라가 약을 제조해 올거야. 화살촉에 어떤 독이 있었을지 모르니까 그걸 마시고 오늘은 푹 자자."
쿠온의 말에 사샤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클레온씨, 부탁드릴게 있어요."
"...부탁?"
"제 눈의 각인을 봉인해 주세요. 클레온씨와 저 사이에 있는 연결을 사용하면, 제 몸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조종하실 수 있죠?"
클레온은 사샤의 말에 잠시 침묵한다.
그녀가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클레온은 알고 있었다.
사냥꾼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위.
아마, 미카시아와는 죽어도 함께 가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그게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클레온 역시 책임을 질 필요가있었다.
"...좋아.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시술은 짧게. 정식적인 봉인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쿠온에게 돌아본다.
쿠온은 그의 의도를 읽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방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몸에 걸치고 있던 의복을 벗기 시작하는 클레온.
심장 위에서 조용히 반응하는 지배의 각인의 고동을 느끼며.
사샤는 전신에서 힘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