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대가
쿠온과 클레온이 손을 잡고 차원문을 통과하는 것을 복도에서 지켜본 라일라.
그녀는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켜고 몸을 돌린다.
그러자 그곳에는 기척을 죽인 채 몽롱한 표정으로 서 있는 흑발의 시종.
루베라가 서 있었다.
"좋은 아침. 루베라. 몸 상태는 어때?"
그런 그녀를 보며 상태를 묻는 라일라.
루베라는 살짝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벽에 기댄 채 입을 연다.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군요. 몸 전체가 공중에 떠서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말하자면 그녀는 제대로 몸에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것도 목 아래를 전부 감싸는 평소와 같은 시종 복장이다.
"약효가 제대로 돌고 있다는 증거야. 어제는 하룻밤. 내가 만든 약탕에서 지내게 했으니까."
"몸이 퉁퉁 불어오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001
각종 허브, 약초. 그리고 약간의 마비성 독이 들어있는 식물을 우려낸 욕조.
페르디아에게 안내를 받아 이곳에 찾아온 루베라에게 라일라가 안내한 것은 그런 약탕이었다.
약간의 녹색 빛을 띄운 그 욕조를 보고, 루베라도 처음에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부터 어떤 인체실험을 당하게 되는 걸까.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오해하지 마. 이건 몸의 감각을 임시로 날려버리는 약탕이야."
"어떻게 하면 그 설명을 듣고 오해하지 않을 수가 있죠…."
라일라의 말에 정확한 딴죽을 건 루베라.
라일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추방의 문양은 어찌 되었던 각인의 한 종류야. 보이는 것이야 손등에 있지만 실제로는 심장과 연결되어있어."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며 루베라의 손등에서부터 팔을 따라 왼쪽 심장까지 손가락을 움직인다.
"조사하려면 손등이 아니라 전신을 조사해야 하고.적출이 필요하다면 절개해야 할지도 몰라."
"... ..."
그 말에 루베라의 인상이 조금 구겨진다.
"실제로 적출을 행하지 않는다면 흉터는 남지 않겠지만…. 고통은 어쩔 수 없거든."
라일라는 이전에 아픈 꼴을 보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이 약탕을사용해서 하루 동안 몸 전체의 감각을 지우는 거야. 일종의 전신 마취지. 물론 문답을 해야 하니까 의식은 남지만."
"...과연. 알겠습니다."
그제야 루베라는 이해했다는듯 자신의 의복을 탈의하기 시작한다.
"흐음…."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라일라.
잠시 루베라는 라일라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옷을 벗는다.
"아. 미안. 잘 훈련된 여자 마검사의 신체를 보는 건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클레온 때문에 상식이 이상해졌네~ 아하하.`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윽고 속옷을 제외하고 모두 벗어버린 루베라.
그녀의 몸은 이곳저곳 얕은 상처로 가득했고 곳곳에는 길게 이어진흉터마저 보였다.
강해지기 위해 훈련을 거듭해온 그녀의 노력 성과였지만.
여성으로서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은아니었다.
하지만 그런상처를 고려하더라도 그녀의 육체는 매우 아름답게 완성되어 있었다.
확연하게 갈라진 복근. 절제된 지방이면서도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가슴.
팔이나 다리의 근육은 가벼운 몸놀림을 위하여 철저하게 필요한 부분만 단련되어 있었으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는 날렵한 라인은 마치 장인이 조각한 전쟁의 여신상의 그것과 같았다.
"속옷도 벗어야 합니까?"
"아- 어떻게 할래? 입고 들어가도 문제는 없지만, 그 속옷은 더는 못쓸 텐데."
루베라는 잠시 자신의 싸구려 속옷을 바라보더니 주저 없이 욕탕에 몸을 담근다.
따뜻한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시작하여 어깨까지를 감싸면.
자신도 모르게 `하아….`하고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때때로 조금 저릿한 감각이 몸을 지나가고 약의 향이 코를 자극하지만.
그런데도 몸 전체를 감싸는 적절한 온도의 목욕물은 전시에 쌓여있던 피로를 씻어내는 듯했다.
"그대로 24시간. 얌전히 있으면 돼."
"24시간…. 꽤 길 군요."
라일라는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 뒤 옷가지를 정리해서 옆에 놓는다.
"혼자서는 옷도 입기 힘들 거고…. 사샤에게 말해놓을 테니까. 아 사샤는 우리 저택의 일원이고 주황 머리의 여자아이."
또 다른 여자의 이름.
루베라는 잠시 라일라를바라보며 물었다.
"그 아이도 클레온의 소유인가요?"
"소유랄까…. 아니 뭐. 소유긴 하지. 응."
"클레온은 혹시 로리콘입니까...?"
그 말에 잠시 굳는 라일라.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이나 키에 가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고 살짝 이마에 핏줄을 띄우며 이야기한다.
"아니. 그냥 수비범위가 넓은 거로 생각해."
"...그렇습니까. 확실히 쿠온씨를 보면…."
이윽고 고개를 떨어뜨리는 루베라.
그대로 욕조에서 잠이 든다.
라일라는 잠시 자신의 가슴 앞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우울한 표정으로 그 방을 나선 것이다.
002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라일라를 따라 그녀의 연구실로 들어가는 루베라.
이미 며칠 만에 개조를 끝내 놓아 붉은색의 방이 되어버린 그녀의 연구실에는.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커다란 솥.
가끔가다 시선을 돌리는 플라스크 속 눈알.
그리고 사방에 퍼져 있는 논문의 종이쪼가리나 서적들.
루베라는 잠시 이 돼지우리 같은 방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정신이 확 드는 듯한 충격이었다.
잠깐이지만 잊고 있던시종으로서의 습관과 본능이 눈을 떴다.
"시작하기 전에 방을 좀 치워도 될까요."
"뭐? 그 몸으로 무슨 청소야. 더 어지러워질걸?"
라일라는 루베라에게 괜찮다고 하며 대충 발로 길을 만들어 적당한 의자에 앉게 한다.
루베라는 어쩔 수 없이 라일라의 말대로 의자에 앉는다.
여전히 몸 전체에 감각은 없고, 조금 멍한 기분이었다.
"혹시라도 아픔이 느껴지면 말해. 약효가 떨어졌다는 거니까."
"...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는 되어있으니까요."
그럼, 라일라가 루베라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문양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신경과 접속되어 결국 심장으로 향한다. 중요한 건 루베라가 얼마나 마력 적성이 있느냐는 것.`
만약 라일라가 상정한 것보다도 그녀의 마력 적성이 높다면
각인과 신경의 접속이 필요 이상으로 치밀하여 일반적인 수술로의 분리는 불가능해진다.
어제 자신이 이야기한 것처럼 몸을 절개하고 마력 신경 자체를 제거해야 할지도 모르는 대수술.
실패하면 반신불수, 성공하더라도 평생 마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루베라의 사정을 알고 있는 라일라로서도 그런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걱정이 곧 기우였다는 것을 라일라는 깨닫게 된다.
"...뭐야, 이거?"
라일라가 확인한 루베라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본래, 그녀의 마력적성은 나름대로 뛰어난 것이었겠지.
흑마의 일족의 특성상 마력적성이 아예 없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의 마력기관과 연결된 신경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모든 것을 태우고 재만 남은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강제적으로 끊겨있고. 비틀려 있고. 마모되어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형태의 마력신경이 생성될 리 없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신체를 개조시키거나, 약을 먹게 해서….
그녀의 몸에 있는 잠재력을 모두 가지치기로 잘라낸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서, 핫. 하고 라일라가 떠올린다.
`마검사가 각성하게 되면 우선 자신의 몸을 성장시키고. 적대하는 이에 대항할 수 있도록 적합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
클레온과 몸을 섞으며 그로부터 흡수한 지식.
`휴즈 후작은 그걸 알고 있던 거야. 그래서 혹시라도 루베라가 각성하는 일이 없도록…. 아니면 각성하더라도 자신들에게 반항할 수 없도록.`
"...왜 그러십니까?"
"으, 으응. 아니야. 저기, 루베라. 혹시 후작 저택에 있을 때 음식을 따로 준비 받거나 했어?"
그런 그녀의 말에 루베라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물론입니다. 저는 시종이었으니 주인과 겸상을 할 수 없지요."
"그건 그런데…."
약인가, 아니면 자는 사이에 이런 짓을?
라일라는 손을 꽉 쥐면서 훌륭한 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인재에게 이런 처사를 해놓은 후작의 만행에 분노를 품었다.
"...문양은 어떻습니까?"
그런 라일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것일까.
루베라는 조심스레 자신의 상태에 관해 물어보았다.
라일라는 인상을 찌푸린다.
마력적성이 너무 심하면 수술이 큰일이 된다고 했지만.
완전히 반대의 경우라도 같은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망가져 버린 신경에 허투루 손을 대었다간.
문양을 벗기기도 전에 루베라의 몸이 완전히 박살이 날 것이다.
라일라는 재빠르게 사고를 정리한다.
자신의 기술이나 이곳의 설비로 그녀를 고치는 것은 불가능.
문양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몸의 마력신경을 재접속 시키는 것도 해야했다.
다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카데미의 원로 수준의 음흉한 능구렁이 마법사들뿐.
그들에게 손을 빌리는 것만큼은 절대 할 수 없었고, 오히려 루베라 자신을 위험하게 할지도 몰랐다.
그때, 라일라의 머릿속에 사샤에 관한 것이 스쳐 지나갔다.
"...저기 루베라.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고 했지? 그거. 어떤 의미로든?"
"... 말 그대로의 이야기입니다만."
루베라는이상한 것을 묻는다는 듯 라일라를 바라본다.
그럼 라일라는 조용히 루베라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다.
"그 대가에,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몸을 섞는다는 것은…. 포함되어 있어?"
"... 무엇을…."
이번에야말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지만, 라일라는 조금 호흡을 고르며 루베라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몸은 일반적으로는 치료할 수 없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위험하고."
"... ..."
"하지만 클레온의 힘을 빌린다면 이야기가 달라."
마검사의 지배의 각인은 대상의 몸을 자유자재로 지배한다.
그 영역은 지배당한 이본인이 자각할 수 없는 곳에도 손이 닿는다.
사샤의 사냥꾼의 각인을 봉인한 것.
그역시 사샤 본인은 불가능한 일이었지.
"지배의 각인의 힘을 사용해서 당신의 몸을 안에서부터 재구축. 그리고 추방의문양에 지배의 각인을 덮어씌우는 거야."
추방의 문양도, 지배의 각인도 상대의 의지를 강제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부류였다.
다만 추방의 문양의 강제력은 지배의 각인보다 아래이다.
상위의 명령[지배의 각인]으로 하위의 명령[추방의 문양]을 덮어씌운다면 그 효력을 지울 수 있다.
"...그게 제일 나은 방법입니까?"
루베라는 조용히 라일라에게 물었다.
라일라는 이미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하여 내놓은 결과이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지금 나의 실력이나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는 그게…. 가장 안전하고 최고의방법이라고 생각해."
프라이드 높은 라일라가 루베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마법사로서의 지식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녀를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행동이었다.
루베라는 그럼 조금 고민하는 듯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필요하다면 클레온과 몸을 섞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 몸에는 순결을 보호하는 결계가 펼쳐져 있어요."
"순결을 보호하는결계? 잠깐만."
루베라의 말에 라일라가 다시 한번 그녀의 몸을 마력으로 훑어낸다.
"저, 정말이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몸 전체에 전개되어 있어서 몰랐어……. 이건 휴즈 후작이 한거야?"
"아뇨. 돌아가신 어머니입니다."
"...술식의 계통이 오래된 건 그래서였구나…. 이게 있다면 클레온과 몸을 섞는 건…. 아."
라일라는 여기서 무엇이 떠올랐다는 듯이 루베라를 바라본다.
"...원한다면 이 결계를 조금 개조할 수 있어. 완전히 없애는 건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하지만."
"개조입니까?"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허공에 결계의 술식을 펼친다.
거기에는 마법적인 언어로 결계가 보호하는 대상,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발동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응. 이 결계 길어봐야 앞으로 2년이지만…. 그건 `구분 없이 모든 생명체를 대상`으로 발동하고 있기 때문."
루베라는 머릿속에 자신을 범하려 한 남녀노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하나같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던 것마저도.
"하지만 한명이라도 예외를 둔다면 비약적으로 지속시간을 늘릴 수 있거든."
"그 한 명을 클레온으로 하자는 이야기입니까?"
라일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맞아. 사실, 그렇게 큰 개조는 하지 못해. 워낙 강력하고 마음이 담긴 술식이라."
"... ..."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어머니의 최후의 마법.
거기에 예외를 둔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자신은 강제적인 추방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어머니의 술식과, 그녀의 마음과 조금 더 같이 있을 수 있다.
루베라는 조용히 허공에 떠오른 술식을 바라보다 라일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탁합니다. 라일라씨."
"...알았어. 맡겨만 줘."
각오를 굳힌 루베라의 눈길을 본 라일라는 팔을 걷으며 옆에 기대 둔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남은 준비는, 그녀의 몸뿐이었다.
003
신전에서 나온 후,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 조금만 더 도시를 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양손에 디저트를 잔뜩 든 채 광장의 벤치에 앉아있는 이오나 슈발리에와 마주쳤다.
물론, 두 사람은 체인질링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지만.
"...클레온, 쿠온양?"
이오나는 그 뛰어난 안목으로 두 사람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했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사람을 관찰하고 기억하기 좋아하는 `정보기관`의 인물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이미들켰다면 부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클레온과 쿠온은 그녀의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데이트 중이십니까?"
"아, 아니에요~"
얼굴을 붉히며 부정하는 쿠온.
이오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어 보인 뒤 클레온을 향해 말을 건넸다.
"가끔은 휴식도 필요한 법이죠. 오늘은 저도 격무를 잊어버리고 쉬는 중이랍니다."
"...유스테스는?"
눈치 없이 일 이야기를 꺼내는 클레온.
이오나는 잠시 볼을 부풀리지만,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하는 표정이 되어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택에 무사히 돌아간 것 같아요. 아버지께 물어보면 재밌는 일이 되었으니 이쪽은 맡겨 둬라…. 라고 하시던데."
"그 인간이 재밌다고 하는 일은 대체로 제대로 된 일이 아닌데."
클레온의 그 말에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는 이오나.
쿠온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때.
"여러분! 신께서는 언제나 저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혼란과 위험이 도사리는 인간의 세상을!"
광장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세 사람이 동시에 그쪽을 돌아보면.
그곳에는 흰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남성이 목소리를 높여 지나가는 이들에게 설교하고 있었다.
"저건…."
"우리 교단 사람이네? 이 도시에서도 설교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쿠온이 그렇게 말하자 이오나가 고개를 갸웃한다.
"원래 성자의 가호 교단은 자주 저렇게 거리로 나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 도시에서는 한 번도 못 봤거든요."
이오나의 질문에 쿠온이 답하면 시선은 그대로 클레온에게 옮겨진다.
"...루티가 교단을 싫어해서 도시에서 설교를 못 하게 막아놨었어. 어차피 모험가들도 신은 잘 믿지 않으니까."
"그랬었어!? 모, 몰랐어…."
설마 자신이 미움 받고 있었다니.
같은 표정이 된 쿠온.
"루티가 싫어하는 건 어디까지나 교단 그 자체야. 뭐, 몇몇 고위층과는 앙숙일지도 있겠지만."
"하지만 당연히 불만이 나왔을 텐데요."
이오나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별로. 그런 거에 불만을 느끼는 건 어디까지나 성직자나 교단 사람들뿐이지."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모험가들은 대부분 얼굴을 찌푸린 채 그 설교를 무시하며 지나갈 뿐이었다.
"이 도시는 모험가의 인구 비율이 정말 높으니까.모험가들은 교단의 설교 따위 시끄러워할 뿐이고."
무엇보다, 그 외모와 함께 모험가들의 목숨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치던 루티의 인기를 이기는 것은 힘들었다.
"아마, 길드 마스터가 휴즈 후작으로 바뀌면서 정책이 바뀐 거겠지."
이오나는 클레온의 추측에 고개를끄덕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 답은 어디에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이 무질서한 모습을!"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계속하는 교단의 성직자.
쿠온은 그의 전형적인 교단의 설교에서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대의 인간들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문명을 일으키고, 신께서 보시기에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회를 일구었습니다."
그 말에 클레온과이오나가 반응했다.
쿠온보다 교단의 교리에어두운 두사람이지만 이 말에는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귀하십시오! 오직 과거에 가르침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클레온. 저 성직자…."
"...그래, 틀림없어. 회귀자다."
이오나의 말에 클레온이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교단도 `성검`이라는 고대의 유물에 의지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교리는 어디까지나 '용사' '성녀' '성검'의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한 질서 있는 사회의 구축.
이 남자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그 방식이 달랐다.
"어째서 교단의성직자가 회귀자…. 아니 그 반대인가?"
이오나는 남자의 정체를 추측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어느 쪽이든 조사할 필요가 있겠군. 이대로 저 남자를 조사하자."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끄덕이는 이오나.
클레온은 가방에서 차원문 스크롤을 꺼내 쿠온에게 건네주었다.
"쿠온은 이 스크롤로 먼저 저택에 돌아가 있어."
그럼 쿠온은 잠시 스크롤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일이 교단과 관계가 있다면 나도 도울게. 교단에 관해서라면 내가 두 사람보다 아는 게 많으니까."
그럼 그 말에 당황하는 클레온.
하지만 이오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쿠온의말이 맞아요. 상대가 정말로 회귀자라면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그녀가 함께 와주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이오나. 하지만 쿠온은..."
어디까지나 오늘은 기분을 풀기 위해- 라고 이어 말하려는 클레온의 손을 쿠온이 붙잡았다.
"클레온. 잊었어? 나도 일단은 성녀 후보라고 불렸다는 걸. 당신만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없어. 나도 돕게 해줘. "
각오를 굳힌 강인한 눈동자.
클레온은 잠시 그 눈을 바라보다 자신을 잡은 쿠온의 손을 조금 강하게 마주 잡았다.
"...고마워 쿠온. 하지만 조심해야 해."
"응. 물론이야."
그사이에 설교가 한차례 끝난 것일까.
누구에게도환영받지 못하던 성직자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그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때,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 사람.
쿠온, 클레온, 이오나를 보더니 환하게 얼굴을 밝혔다.
"오오. 저쪽에서 설교를 들어주시던 분들이시군요. 어쩐 일이십니까?"
반갑게 자신들을 맞이하는 그의 태도에, 이오나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방금 들었던 성직자분의 설교가 굉장히 인상 깊어서요. `회귀`라니…. 정말로 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나요?"
그러면 성직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이야기한다.
"물론입니다. 이 교리는 아직 교단 내에서도 세력이 작은 편이지만 조금씩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죠. 고대의 문명에 분명 인류의 구원에 대한 열쇠가 있을 것입니다."
조금 광신도 같은 표정.
쿠온도 클레온도 살짝 질린 얼굴이 되었지만, 이오나는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혹시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고대의유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편이라…."
"오오!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같이 가시죠! 분명 저희의 동료도 기뻐할 겁니다!"
남자는 신이 난 듯 두 팔을 벌리며 세 사람을 안내한다.
움직이는 방향은 교단의 신전이 있는 곳과 정 반대.
이오나와 클레온은 서로를 마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뒤를 따라간다.
쿠온은 긴장한 손을 감추기 위해 뒤로 돌려 꽉 쥔 채.
그런 두 사람을 쫓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