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약속 (48/72)



〈 48화 〉약속

"네가 죽는다고?"

"응."

그것은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제국을 무너뜨린 영웅으로서 약속된 왕국의 지위를 포기하고.

시골구석으로 내려와 작은 모험가 길드를 열은 녀석이 내뱉을만한 대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말하는 장본인이 세계 최강의 용사 `레시아`라는 것이.

그야말로 난센스였다.

"뭐냐. 너 병이라도 걸렸냐?"

탈체크의 질문에 레시아는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완전 쌩쌩해."

"그래 보이는걸."


둘의 나이 차이는 거의 30에 가까웠지만.

그런데도 서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이자동료로서.

어느 정도의 장난을 받아줄  있는 것은 당연했지만.

레시아의 말은 장난으로도 웃어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뭐냐. 그럼 누가 널 죽일 거란 거냐?"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으려나."

레시아는 곤란하다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탈체크의 얼굴은 찌푸려졌다.


"마검 황제와드래곤을 모두 토벌한 용사가 누구에게 살해당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모두의 도움이 있었으니까."

탈체크는 그 말을 듣고,  하고 혀를 찼다.

이 녀석은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겠지.

하지만, 그 자리에서 같이 싸운 인간들.

누구에게 묻더라도 의견은 같았을 것이다.

용사 일행과 세계의 적의 싸움이 아닌.

용사와 세계의 적의 싸움이었다고.



성검의 힘. 압도적인 마력. 신기에 가까운 검술.

그야말로 땅을 달리고, 하늘을 날며.

산을 자르고, 바다를 가르는 싸움을 벌인 그녀.

다른 일행들에게 가능했던 것은, 그저 뒤처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뿐.

"나. 자살할 거야."

"뭐?"

 말에탈체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이번에야말로, 웃을 수 없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정작 레시아 본인은 어딘가 순수하고, 모든 것을 깨달은 듯한 얼굴이어서.

탈체크는 그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나의 힘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계의 균형을 무너트려. 이래선, 또 다른 싸움이 반드시 일어날 거야."

"그 싸움에서 도망치겠다는 거냐?"

레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탈체크가 손을 뻗어, 자신보다 훨씬 키가 작은 그녀의 멱살을 잡는다.

레시아가 진심이라면 바로 뿌리치거나, 그 전에 피해낼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탈체크. 싸움에서 도망치는 건 그렇게 잘못된 걸까?"

"뭐라고…? 네 녀석은 세계를 구한 용사다. 그런 녀석이 대체  도망칠 필요가 있단 거냐!"

탈체크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레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도 베지않아도 돼."

"... ..."

용사 레시아는 세계의 검이었다.

잔학하고 포악했던 마검의 황제를 베었다.

그 황제에게 지배당하던 드래곤을 베었다.

그것으로 용사 레시아의 역할은 끝이었는가?


제국 잔당들과의 싸움에서 수많은 병사들을 베었다.

흑마의 일족의 마을에서 참살 극을 벌인 인간들을베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행 도중에 대체 몇의 목숨을 빼앗았는가.

용사라는 것은 결국

세계에 있어서 위협이 되는 잔가지를 쳐내는정원사일 뿐이다.

성자의 가호 교단이 없었더라면

용사도 마검사도 위험한 검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에 차이는 없다.

레시아와의 모험 속에서 탈체크 역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찬란했던 금발도, 살짝 색이 빠진 백금색이되어버렸고.

평상시에도 갑주를 벗지 않게 된 그녀.

서서히 레시아의 인간성이 마모되어 간다는 사실이 전해져왔다.

그렇기에, 탈체크는 그녀가 길드와 학교를 세울 테니 도와달라는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평생을 검과 함께 살며, 짐승처럼 지냈던 자신이고.

아이를 싫어하고, 속박 받는 것을 싫어하는 자신이지만.

레시아를 위해서라면 몇 년 정도는 그녀와 어울려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온 대답이 이것이라면.

탈체크의 분노는 합당했다.

"너…. 그러면 그 꼬맹이와 루티 시온스는 어떻게  거냐."

"끝나기 전에 최대한 정리는 할 생각이야. 클레온에 관한  마침 믿을만한 소식도 들었고."

멱살이 잡힌 상태에서 레시아가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왕도에최근 들어 세력을 넓히는 귀족 중에, 흑마의 일족으로 추정되는 소녀를 시종으로 데리고 있는 인간이 있다고 한다.

그와 이야기를 해서 클레온에게도 다른 일족의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바보냐 너…! 그 녀석들은 너를…!"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은 탈체크는 역시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인간의 감정에 무감각한 자신이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이 녀석은스스로 깨닫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미안. 하지만 이미 결정한 거야."
"큭…."

그런 주제에 힘만큼은 남아있다.

탈체크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레시아를 놓았다.



"다른 녀석들은…. 알고 있는 건가?"

"아니. 아직 이야기 안 했어."

의외의 대답에 탈체크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자신보다도 오래 여행을 다니며 알고 지낸 사이인  사람보다 자신에게 먼저 말했다?



"어째 서지?"

"약속을 지키려고."

탈체크의질문에, 레시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의눈의 빛에 아주 조금 남은 빛이 반짝이는 듯했다.

"약속?"

"그래. 황제를 쓰러트리고 나면, 다시 한 번 검을 겨루기로 했잖아."

레시아에 말에 탈체크가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그런 약속, 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에는 지지 않는다. 반드시 검으로 네 녀석을 이겨주마`

...뻔해 빠진 패배자의 대사.

레시아는 그때 고개를 끄덕였던가.


"그게 정리의 일환이라는 건가."

"응.그편이 탈체크도 안심하겠지."

안심이라.

무엇을 두고 안심할 수 있을까.

녀석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파멸시키는 것이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일까.

아니면 그전에라도

마지막으로 검을 겨룰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안심할까.


"좋아…. 하지만 거기서 내가 널 죽일지도 모른다."

탈체크의 살기가 순식간에 레시아를 덮쳤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자리에서 전신의 힘을 모두 잃고 기절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시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웃어 보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게 말하며 돌아가는 레시아를 뒤에서 붙잡지 않고 보낼수밖에 없었던 탈체크.

그 날은 술을 잔뜩 마시고, 고기를 잔뜩 먹어서 화를 풀고.

다음 날은 어떻게든 평상시의 모습으로 클레온의 수행을 봐 줄 수 있었다.



레시아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와의 싸움에서 녀석을 꺾고.

팔을 자르던, 다리를 자르던 해서.

자살을 못 하게 막으면 되는 것이다.

탈체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기회마저 빼앗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용사 레시아는 추방되었다.

이차원의 틈으로.



001

마검사들과 검성의 싸움.

클레온은 어느 정도 탈체크의 경지에 따라잡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루베라 또한, 귀족의 호위로서 몸에 익힌 암살검.

정면 승부에서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클레온이틈을 만들어주면 저렇게 커다란 덩치의 남자.

머리를 밟고 올라가 목을 베어내면 그것으로 끝날 것이라고.



너무나도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있었다.

"뭔가요…. 저 괴물은, 정말로 인간인가요?"

휘두르고있는 검이야말로 성검 `슈발리에`이었지만.

그는 검을 휘두르는 데에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수십 년에걸쳐 숙련된 근력과 순발력만으로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자신들의 목이 떨어지지않았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두 사람이마력을 통해 강화한 신체능력을 갖추고서야

겨우 끝을 따라갈  있다는 사실에.

클레온도 루베라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공격을 흘려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몸에는 이미 이곳저곳, 베인 흔적이 있었다.

다행히 절단되거나 급소를 공격당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다시 한  내가마법으로 틈을 만들지. 그 사이에."

"알겠습니다."

클레온이 각인을 통해 마력을 끌어올리면, 그  위로 화염의 원소들이 모여든다.

루베라는 클레온의 영창이 완성될 때까지 그를 지키기 위해 탈체크와 클레온 사이에 섰다.


"또 어쭙잖은 흉내 질이냐?"

탈체크가 그런 클레온을 보며 도발하지만, 클레온은 무시하고 조용히 영창을 개시한다.

"그대, 천상에서 강탈된 신들의 위용을…."

"클레온!"

갑작스럽게 사고를 끊어오는 루베라의 외침.

바로 위에서 느껴지는 기백에 퍼뜩 고개를 들면.

그곳에는, 슈발리에를 들고 자신에게 뛰어든 탈체크가 있었다.


"큭...!"

급하게 영창을 취소하고 손을 뻗는다.

공중에서의 일격.

이전, 알베인과의 싸움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는 공격이다.


"마나 쇼크!"

뻗어 나가는 검은 번개.

공중에서 이동할  없는 인간이라면 이것을 맞고 땅에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절차다.

"크크…."

하지만, 탈체크는  알베인보다 성검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순간 슈발리에가 빛을 내며 검신에서 발생한 신성마력의 폭발이 추진력을 만들었다.

클레온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강하하는 탈체크의 몸.

덕분에 탈체크의 궤도가 크게 뒤틀리며 클레온의 마법이 허공을 가른다.



덕분에, 탈체크의 검은 클레온에게 직접 닿지 않지만.

탈체크는 무사히 땅에 착지하여 화살보다도 빠른 속도로 클레온에게 접근한다.


"무르구먼. 검도, 마법도."

탈체크의 검이 크게 위에서 아래로 베인다.

클레온이 급하게 갈라테아를 들어서 막아보지만.

서걱-!

하는 허무한 소리와 함께, 몸 전체가 그곳에서 두 동강 난다.

"클레온!"

"칫…."

그런 클레온을 보며 소리를 높이며 루베라가 달려들지만.

탈체크는 그런 루베라를 돌려차기로날려버린 뒤.

재빠르게 하늘을 올려본다.


그곳에는, 장막과 환영을 해제하고 영창을 끝마친

클레온의 모습이 보였다.



"프로메테우스 게이트!"

화염의 창이 비가 되어 탈체크 하나에 떨어진다.

아무리 탈체크라지만 피할 틈조차 없는 마법을 받아내고 무사할 리가 없다.

성검의 힘으로 창들을 쳐내지만.



몸에 화염이 스쳐 지나가며 데미지를 입는다.

플레어 스파이크와 마찬가지로, 그 완성도는 라일라에 비해서 낮았지만.

그 탈체크를 자리에 붙잡아두고, 데미지를 입힌 것이다.

창의 쇄도가 끝난 다음 순간.

탈체크가 한쪽 무릎을 비틀거리며 쓰러질 뻔하고,

루베라가 다시 한 번 탈체크에게 달려들었다.



"바람 연못…!"

실재하는마검과 마력으로 이루어진 도신이

마치 가위처럼 동시에 휘둘러지며

탈체크의 몸을 절단하려 한다.


"크크…! 정정하마. 꽤 하잖느냐! 클레온!"

하지만 다음 순간.

탈체크가 성검을 땅에박아 넣자, 그 충격으로 주변의 지면이 튀어나오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루베라는 물론, 공중에 떠 있던 클레온에게도 돌덩이가 날아왔다.

클레온이 재빨리 몸을 비틀어 피하려 한순간.

튀어 오른 지면을 밟고달려든 탈체크가 다리를 휘둘러, 클레온을 내려 찬다.

"크악!"

고통의 목소리를 흘리는 클레온.

땅에 떨어지며 피를 토했다.

정작, 몸에 화상을입었던 탈체크는.

성검에서 퍼져 나온 신성마력의 힘으로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루베라는 재빨리 달려와 클레온을 일으키고 땅에 착지한 탈체크를 바라본다.

"성가시군요. 탈체크는 물론이지만, 저 성검…. 이오나 슈발리에도."

"그래. 가뜩이나 괴물 같은 녀석이 성검의 힘까지 사용하니…."

클레온은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성검의 힘이 없다면…. 탈체크는 확실히 데미지와 피로를 축적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그래. 예전의 그보다도 몸이 느린 게 느껴져. 나이…. 아니,병인가?"

클레온의 말에 눈을 찌푸리는 루베라.

저게 병자의 몸이라고?



대체 전성기의 그는….



"왜 그러냐. 이 늙은이랑 놀아주는데 지친 거냐?"

탈체크가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어깨를 푼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다시 싸움을 준비하는 두 사람.

그리고 다시격돌하기 직전.



"뭐, 뭐야 이건…!?"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유, 유스테스...?"

클레온도 당황한 듯 그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보다도 놀란 것은 루베라였다.

그 겁쟁이가 경갑옷에 평범한 장검을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믿기지 않았다.


"호오. 온 거냐 유스테스.

"탈체크! 그리고…. 루베라!?"

어떻게 봐도 싸우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 유스테스는 놀란듯했다.

그리고 루베라 옆에 있는 클레온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뜨지만, 이윽고 탈체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버지와 맥스웰은 어디 있지?"

"네 아비는 죽었다. 저쪽에 있는 여자가 베었지."

"뭣…."

유스테스의 시선이, 결계의 틈 옆에 널브러진 커다란 시체로 향한다.

그곳에는, 자신의 아버지 휴즈 후작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



"... ..."

루베라는 조용히 자신의 검에 손을 올렸다.

혹시라도 유스테스가 자신에게 달려들면 곧바로 목을 베어버릴생각이었다.


"큭... 지금은,  일은... 나중에 이야기 하지. 중요한건 맥스웰이야...!"

"...!"

그 말을 들은 클레온도, 루베라도 눈을 크게 뜬다.


유스테스의 눈에 두려움은 있을지언정, 진실을 외면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탈체크는 크게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이 열어젖힌 틈을 가리킨다.

"맥스웰은 결계의 안쪽이다."

유스테스는 잠시 그를 노려보더니, 결계의 틈으로 달려간다.



루베라도, 클레온도 그런 그를 눈으로 좇을 뿐.

잠시, 루베라와 유스테스의 눈이 마주치지만.

유스테스는 루베라로부터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우리는 막으면서, 저 바보는 보내는 겁니까?"

루베라가 탈체크에게 물었다.

"그래. 저 녀석과는 싸워도 재미가 없을 것 같고…. 안으로 들어가 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말이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클레온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바로 쥐었다.

"이오나도, 유스테스도. 당신이 생각하는것보다도 강하다."

"아무것도 못 하고 조용히 검으로 사용되는 녀석과. 겁을 집어먹고무모하게 달려온 녀석이 말이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그래. 적어도, 옛 동료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폭주해서, 세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려는 녀석보다야."

"크크…."

클레온의 말에 탈체크가 마른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탈체크의 살기가 퍼져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루베라와 클레온의 몸이 무거워졌다.



"쓸데없는 도발. 정말 감사합니다."

루베라는 혀를 차며 클레온에게 이야기했다.

"미안하군. 조금만 더 어울려 줘."

"죽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고릴라, 진심으로 올 겁니다."

클레온은 루베라의 말에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대책이 없는 건 아니야. 대책을 위해 탈체크를 조금 흔들었을 뿐."

"또 뭔가요?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나쁜 계획에 어울리다 죽을 것 같은데."


클레온이 갈라테아를 탈체크에게 겨누면, 그 검 끝에서 검은 마력의 빛이 몰려들었다.

"이전, 이오나와 내 몸 사이에서 마력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 그때 미약하지만, 그녀에게도 연결 통로를 만들어 놨지."

"... ..."

그 말을 들은 루베라의 얼굴이 복잡 미묘한 표정이 된다.



"...말해두지만 몸을 섞은 건 아니야."

"누가 뭐라고 했나요?"

루베라의 대답에, 클레온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탈체크가 냉정함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그가 가진 성검에도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틈이 있다는 거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온.



마력으로연결된 대상에게는 텔레파시로 의사를 전달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잃고 완전히 탈체크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성검 슈발리에 안에서

이오나의 자의식을 깨우기 위해선, 그보다도  깊은 의사전달이 필요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저 성검에 내 의식을 보낼 거야."

"그럼 당신의 몸이 무방비해질 텐데요."

"그래. 잘 부탁한다."

그런 클레온의 말에 루베라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손해 보는 장사군요."



그리고 바리사다를 뽑아 클레온을 지키기 위해 그의 앞에 선다.

"당신을 지키겠다고약속하죠. 다녀오십시오. 클레온."

002

클레온은 자신의 의식이 몸에서 떠나는 것을 느낀 뒤.

빨려 들어가듯이 슈발리에의 도신의 안으로 정신이 이동한다.

그 안의 풍경은 클레온이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살풍경한 방의 안이었다.


그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은  머리의 여자아이.

나이는5살 정도일까.

붉은 눈에, 살짝 뾰족한 귀가

그녀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오나.”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손에 들고 있는 책을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책의 이름은 ‘가족’.

표지는 검게칠해져 있고.

그 위에 덧그려진 듯 흉악해 보이는 남성의 얼굴이

아이의 손에 의해 그려져 있었다.

“...슈발리에.”

“응.”

그때가 되서야 반응하는 여자아이.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여기서 나가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탈체크를 멈추기 위해.

성검이 아닌 여자아이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