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집행
땅거미가 진 어두운 길 위에 검은 섬광이 달린다.
마력의 빛을 띤 마비의 일격.
정통으로 몸에 닿는다면 마력의 순환계통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인간 하나를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이다.
파지직! 하는 플라즈마의 불꽃이 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한번 터져나간 마력의 번개는.
그 자리에서 4방향으로 찢어져, 머리, 심장, 단전, 고간이라는.
마력이 가장 많이 저장되는 인간의 네 급소를 향해 날아간다.
그 모습은 마치,4갈래로 찢어진 필살의 창이었다.
표적은 붉은 제복을 입은 집행과의 남학생.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검은 강철의 검이지만.
시인한 뒤에 움직여서 이 공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앗!"
하지만 그의 옆에 있던 또 한 명의 집행과.
손에 마법진을 띄우고 전투를 진행하던 여성이 마력을 펼치자.
그와 함께 동료를 감싸는 반투명한 결계가 펼쳐지며.
마나 쇼크로부터 두 사람을 지킨다.
여성은 클레온의 마법행사가 가소롭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이런 저급한 마법으로-"
하지만 그렇게 거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한, 그들에게 승산은 있을 리 없었다.
이번에는 하얀불꽃이 직선으로 달려 나가 결계를 뚫고 여성의 복부에 틀어박힌다.
"그렇게 하면 움직일 수 없지."
"커헉…!"
푸른 머리를 휘날리며, 권갑을 낀 주먹을 비트는 데미스.
오른손의 오브에서는 `음양`중에서 `양`을 상징하는 흰색의 마력반응이 보였다.
격통과 충격으로 입에서 숨을 토하는 여학생.
데미스는 곧바로 권갑에 쌓여있던 마력을 해방한다.
강한 빛을 내면서맹렬하게 회전한 흰색 오브에서.
충격을 동반한 `양`의 마력이 작렬한다.
동시에 방출된 흰색의 끈적끈적할 정도로 농도 높은 마력 덩어리가.
여학생의 복부를 강타하면.
"흐기잇!?"
같은 소리를 내며 매직 캐스터인 집행과 여학생은 그 자리에서 눈을 뒤집고 쓰러진다.
"바, 바보 같은. 그녀는 마력 방어의 전문가…. 대체 뭘 한 거지?"
그 옆에서 있던 남학생은 그 갑작스럽고도 놀라운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채.
안경을 고쳐 쓰는 데미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니…. 마력으로 정제한 `생명력`을 `주먹에 담아 쏘아낸`것이다만? 성학과의 학생이라면 모두 기본적으로 할 수 있지."
"뭐라고...?"
클레온은 데미스를 보며 이전의 이론교육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던 것을 떠올린다.
정력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명력.
마력과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조금 다른 개념이다.
성학과의 학생들은 거듭되는 성행위를 통해 정력을 기르며
마력과 함께 생명력을 제어 할 수 있는 능력을 수련한다.
생명력은 마력으로 전환할 수 있고.
마력은 생명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 밸런스를 유지하며, 몸도, 마음도 균형 잡힌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 상태가 되면 훨씬 높은 질의 마력을 몸에서 생성할 수 있게 된다.
그래, 적절한 운동과 식사, 그리고 건전한 정신을 통해 인간이 성능력을 기르는 것처럼.
마력과 생명력의 1:1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성학과가 추구하는가장 높은 경지이다.
데미스가 방금 발산한 마력 역시, 오브의 도움을 받아 발현해 낸 `정제된 생명력의 마력`.
따라서 평범한 마력 방어로는 방어할 수 없고, 물리적인 갑옷으로도 방어하기 힘들다.
그야말로 상대방의 방어를 꿰뚫는 일격이다.
"후, 이것은 성학과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기술이다. `정력을 쏘아내는 기술`이라고 하여 `사정`이라고 한다."
조금 더 제대로 된 네이밍 센스는 없었을까.
"그리고 이것은 나의 오리지널 기술. 상대에게 영거리로 밀착시킨 오른손에서 때려 박는 `우달근(右達近)`."
"데미스. 적에게 그렇게 자신의 패를 밝히지 마라."
클레온은 약간의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데미스는 작전상의 이유라 생각하였는지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광경에 넋을 놓고 있는 클레온이 상대하던 두 사람.
클레온은 재빠르게 그 틈을 타 마력을 갈무리하여 몸에 화염의 마력을 끌어올린다.
주변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더니, 그의 머리 위로 나타난 불꽃의 구에서.
작열하는 덩굴이 뻗어 나가 낫을 든 남학생과 양손에 단검을 하나씩 든 여학생을 노리고 뻗어 간다.
"큭!"
갑작스러운 기습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마력을 담은 무기를 휘둘러 덩굴을 쳐내지만-
그 사이에, 클레온의 모습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 어디로 갔지?"
남학생이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면, 여학생의 쪽이 `핫!`하고 소리를 내며 위를올라보았다.
그곳에는, 달을 등지고 뛰어올라 다리를 회전시켜 내리치는 클레온의 모습이 보였다.
낫과 같은 무겁고 틈이 많은 무기로 머리 위를 지키려 해봤자.
무기가 없는 클레온의 쪽이 빠르고, 날카롭다.
"하늘 기둥."
"크악!"
초승달을 그리듯 마력으로 강화된 다리가 잔상을 남기며 아래로
그대로 남학생의 머리를 발로 차서 길옆의 수풀로 날려버리는 클레온.
"이 변태가...!"
그럼 클레온이 착지하는 것을 노리려는 여학생이 단검을 휘둘러온다.
하지만-.
"너희, 정말로 집행과인가? 어설픈걸."
다음 순간, 클레온은 허공을 박차고 한 번 더 도약했다.
루티가 사용하는 바람 마법의 응용으로, 공기로 된 발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용언마법은 아무리 그래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이 정도의 마법이라면 클레온에게도 흉내 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허공으로 떠오른 그의 손에서 다시 한 번 검은 번개가 벼락처럼 내리쳐진다.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마력을 실어서 뻗어 나가는 굵은 마력의 줄기.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몸에 존재하는 마력기관 전부가 동시에 마비되며.
"어윽..."
하는 소리를 내고, 단검을 든 여학생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오오. 굉장하군요. 클레온 강사님."
데미스는 클레온의 몸놀림을 보며 감탄했다는 듯 적으로부터 몸을 돌린다.
"멍청한 놈!"
하지만 그 순간, 틈을 노리던 검을 들고 있던 남학생이 뒤에서 데미스를 향해 검을 휘둘러왔다.
그가노리는 것은 강력한 일격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단련된 오른손을 피해-
상대적으로 틈이 많은 왼쪽!
덥석-!
"뭐...!?"
하지만 데미스는 권갑을 낀 왼손으로 자연스럽게 그 검을 붙잡았다.
단단한 손은 검에 상처를 입는 일 없이 그대로 힘을 주더니, 손안에서 검을 박살냈다.
"무르다…. 나의 왼손은 오른손보다 강하지.그 무른 검보다도 단단한 것을 매일 붙잡고 있으니까."
"큭…! 대체 어떤 수련을!"
데미스의 안경이 달빛을 받으며 반짝였다.
그리고 그대로 이어지는 몸을 회전시킨 왼손의 일격.
"크허억!"
주먹이 얼굴에 부딪히면, 왼손의 오브에 뭉쳐있던 음의 마력이 마치 덩굴과도 같이 뻗어 나가.
남학생의 몸을 그대로 덮친다.
"음의 부정적인 마력을 더해 방어를 열어젖히는 일격…. `불가개(不加開)`."
그 부끄러운 기술의 이름은 꼭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한지 남학생은 몸 전체를 뒤덮는 마력에 의해 기력을 모두빼앗기고.
결국, 그 자리에 쓰러졌다.
소란스러웠던 곳에 다시 적막만이흐른다.
데미스는 마력을 갈무리하듯 숨을 내쉬고.
클레온은 주변에 널브러지거나, 날아가 버린 집행과의 학생들을 한곳에 모았다.
"클레온 강사님. 이들은?"
"누군지도 모르면서 도왔던 건가…. 일단은,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다. 이전에 좀 악연이 있었거든."
클레온의 말에 데미스는 `흐음….`하고침음을 내뱉는다.
"미안하군, 엮이게 해서."
"아뇨. 저는 어디까지나 같은 취향의 친구를 구했을 뿐입니다."
클레온의 사죄에 데미스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들과 클레온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는것도.
클레온에 대한 배려의 일종이겠지.
낮의 건도 그렇고, 이 남자는 취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클레온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듯했다.
"붉은 제복…. 혹시, 이들이 최근 아카데미 내에서 급격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집행과`입니까?"
데미스의 말에 클레온은 그를 바라보았다.
라일라의 기억에 의하면, 집행과는 그 정체가 학원 내에서도 비밀조직과 같은 위치였다.
학생들은 평소에는 다른 과의 소속된 학생으로 위장하여있고.
그 사이에서 아카데미에 불이익을 가져올 만한 인물을 찾아내어 비밀리에 숙청한다.
그렇기에 데미스와 같은 일반 학생이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이상했다.
"어떻게 그 이름을?"
"한 달 보다 조금 더 전이었을까요…. 집행과의 차석이 행방불명되면서 학과가 내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타이밍 상으로는 클레온이 도시에서 집행과의 여자를 처리한 시기이다.
그 마안 사용자, 집행과의 차석이었던건가….
"차석을 따르던 학과 내부의 학생 중 일부가 수석에 반발하여 학과를 빠져나왔는데. 그때 아카데미 내에도 집행과의 존재가 여기저기 알려졌죠."
"그런가.…."
"나온 이들에 의하면 집행과의 수석은 차석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우려고 혈안이라던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여자를 처리한 것이 집행과에 큰 피해를 준 듯했다.
그것만큼은 다행이었지만….
"이 녀석들은 그럼 어느 쪽이지. 차석을 죽여서 화가 난 쪽인가, 수석의 명령으로 온 쪽인가."
"그건 저도 알 수 없군요."
데미스는 고개를 젓고는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밧줄을 꺼내 들었다.
어째서 모험가도 아닌 학생의 가방에 저런 밧줄이?
"속박플레이용입니다."
클레온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을 묶어 길가에 내버려둬 놓기로 하였다.
데미스는 귀갑 묶기로 이들을 나무에 버려두자고 했지만.
네 명을 그런 식으로 묶기에는 밧줄의 길이가 부족했다.
아카데미 밖에서라면자비를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카데미 내에서 학생을 죽이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크다.
데미스에게도 죄를 지게 할 수는 없으니 아침이 되면 순찰을 하는 교수에게 발견되겠지.
그들의 방치 플레이 준비를 모두 끝내놓고.
클레온은 데미스를 보며 입을열었다.
"고맙다 데미스."
"별말씀을. 저희는 동지이자, 같은 과의 동료니까요."
클레온은 그의 말에 안심감을 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에는 흑마의 일족이라는 이유로 외톨이.
모험가가 되고 나서 유일하게 자주 이야기 하던 동성은 `알베인`과 `볼트`뿐.
알베인은 자신보다 세 살이나 밑이고, 볼트는 한참의 윗세대이다.
지금까지, 클레온에게는 나잇대가 맞는 마음이통하는 남성 친구는 없었다.
어쩌면 친구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클레온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네가 성학과의 수석이었으면 좋았으련만…."
문뜩, 어제의 라일라의 이야기가 떠올라,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음? 성학과의 수석이라면 누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클레온의 말에 이상하다는 듯 데미스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누님?"
"아아. 네. 수석- 리오메스는 제 친 누님입니다."
잠시 클레온의 머리에 아카데미 탑클래스 빗치의 모습이 지나간다.
늘 수수께끼의 액체를 머리에 묻히고 거의 항상 전라.
눈은 흐리멍덩하면서 목에는 명찰을 걸고 있는 여학생.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머리는 푸른색이고.
눈의 색도 데미스와 같다.
"아- 그…. 미안하군.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고생이 많구나."
"어째서 누님이 수석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그런 동정 어린 표정이 되는 겁니까."
데미스는 클레온의 반응에 잘 모르겠다는 듯 말하지만.
클레온은 조용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누님은 누님대로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드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클레온! 어디서 뭐 하는 거야! 혹시 누구한테 습격당했어!?]
그때, 갑자기 귀를 때리는 `쿠온`의 텔레파시.
[쿠, 쿠온 진정해. 아- 이런 상황이니까 빨리 돌아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라일라의 목소리에 클레온은 몸에서 쭈욱 긴장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미안하군, 동거인들이 불러서 말이야."
"호오. 마법과의 수석인 라일라 플레임워치입니까. 강사님께서도 고생이 많으시군요."
데미스는 이번에는 클레온 쪽을 동정한다는 표정이 되며 클레온의 어깨를 두들겼다.
고생하는 두 남자는 그 자리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발을 돌려 헤어진다.
그리고 그런 데미스를 바라보는 질투의 눈총이.
그림자 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001
"아-. 들었어 들었어. 집행과가 여간 난리도 아니라더라. 햐햐! 꼴 좋다!"
저열한 웃음소리를 내며 쿠온이만들어준 쿠키를 집어 드는 라일라.
한 손에는 벌꿀주를 든 채 소파에 널브러지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모험가 길드에 상주하는 노년의 모험가들 같았다.
아카데미로 돌아와 계속 방에 틀어박혀 큐브의 연구에 열정을 쏟아 붓느라 시간을 쓰던 라일라.
`석건`을 사용하는 방침이 정해져 오늘 하루는 다른 과의 수석들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대실패.
어떤 과에서도 동의를 얻어내는 것에 실패했다고 했다.
덕분에 집에 돌아와 쿠온에게 안겨서 엉엉 우는 모습을.
클레온에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라일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사샤가 전부 이야기했지만.
결국 라일라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콤함 + 알코올인 벌꿀주를 계속해서 들이키고 있는 것이었다.
"것보다 클레오온~ 집행과에게 습격을 당했으면 텔레파시로 나아를 부르란 말이야.~"
빈 병으로 클레온을 가리키며 주정을 부리는 라일라.
클레온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라일라씨가 저렇게 취한 모습…. 처음 봐요."
사샤는 신기하다는 듯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그런 그녀도 벌꿀주를 조금 마시고 있지만 조금 얼굴이붉어진 정도였다.
"원래는 술을 잘 마시지 않으니까…. 약하기도 하고."
이 중에서 가장 술이 센 쿠온은 라일라와 비슷한 양을 주스처럼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리고 갈라테아는-
"나는 어째서 안 되는 거야~!?"
클레온에게 안겨서 칭얼대고 있었다.
"갈라테아, 라일라가 말했잖아. 배 속의 아기한테 안 좋으니까 술은 금지라고."
"어차피 인간이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대는 그녀의 모습은.
첫 만남의 매혹적이고 절대적인 그때의 모습이 거짓말 같았다.
`...칼리번을 흡수하고 나서, 성격이 조금 변했나?`
클레온은 갈라테아가 조금 둥글어지기 시작한 것이 칼리번을 흡수하고 난 뒤.
저택에서 그녀에게 신부복을 입힌 행위의 다음부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좋은 변화인지 나쁜 변화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안 가본 학과는 어디 어디야?"
"으음…. 클레온이 있는 성학과랑 사샤가 있는 궁술과..."
라일라가 반쯤 뜬 눈으로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세어본다.
"그 두 과가 협력해준다고 해도 두 명이 부족한걸."
"으아아아앙! 미안해! 클레온! 내가, 내가 인덕이 없어서!!"
이번에는 라일라마저 울면서 클레온에게 매달려온다.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약해지는 타입이었다. 라일라는.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소파위로 되돌려놓았다.
주정뱅이가 된 라일라를 상대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힘든 일이었다.
"...검술과는?"
"거엄수울과아? 하아아아아아아~"
엄청나게 큰 한숨을 내쉬는 라일라.
그녀는 다시 한 번 새 벌꿀주의 병을 따더니 그대로 들이킨다.
"그 녀석들은 수석이랑 만나게 해주지도 않았어~ 내 모습을 보자마자 전원 전투준비~ 이러고…. 사람을 무슨 괴물로 아나…."
그 정도로 미움 받는 건가.
아니 분명, 검술과와 마법과는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으니.
라일라만의 탓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럼, 내가 한 번 직접 가서 이야기해볼까."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와 쿠온이 눈을 크게 뜬다.
사샤만은 쿠키를 아삭아삭 갉아먹으며 그 맛을 음미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크, 클레온? 이미 클레온이 라일라와 동료라는 건 아카데미 내에서 유명한 것 같던데. 괜찮겠어?"
"뭐. 그때는 그때지. 괜찮아, 수석과는 이미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으니까."
쿠온의 걱정에 클레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끄덕였다.
"아아. 아루루인가…. 그 여자는 아카데미에서도 몇 안 되는 이야기가 통하는 녀석이지…."
라일라는 졸린 듯 하품을 하며 아루루에 대한 평가를 입에 담는다.
그건 과연 아카데미를 잠시 비우기 전의 평가일까.
아니면 돌아온 뒤의 평가일까.
"저, 저도 저의 학과의 수석에게 한 번 물어볼게요! 오늘은 수업에 나오지 않아서 만나지 못했지만."
"궁술과의 수석은 어떤 녀석이야?"
클레온의 물음에 사샤는 턱에 손가락을 가져가 댄 채 고개를 갸웃하고 움직인다.
"으음~ 어딘가 귀족의 자제분이라고 들었어요. 다른 분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평판은 좋은 것 같지 않더라고요."
수석이라도 실력이 일반 학생에 뒤처지는 경우는 있다.
과마다 수석을 정하는 기준이 다르지만.
궁술과에는 귀족이 많은 관계로, 귀족이 수석의 자리에 앉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마수를 사냥한 자에게 수석의 자리를 준다.
그러니,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격의 면이겠지.
"괜찮겠어?"
"네! 최대한 조심해서 말을 걸어 볼게요. 조금 무섭지만…."
사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클레온의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 그러니까. 무섭지 않도록꼭 안아주실래요…?"
얼굴을 붉히며 부탁해오는 사샤를 바라보며 클레온은 그녀의 몸을 뒤에서가볍게 안아준다.
"하아아아~!! 요즘 들어 사샤가 클레온에게 어리광부리면 뭐랄까. 가슴의 한쪽이 꾸욱 조여 오면서~ 사샤가 귀여워서~!"
"너는 대체 어떤 위치인 거야. 사샤의 어머니야? 클레온의 정처야?"
그런 사샤와 클레온을 보면서 눈을 반짝이고, 이상한 소리를울리는 쿠온.
그리고 그런 쿠온이 어이가 없다는 듯 냉정한 말을 내뱉는 갈라테아.
배 속의 아기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최근에는 클레온과도 몸을 섞지 못한 채이다.
그렇다 보니 조금 쓸쓸함을 느끼며 볼을 부풀리는 것이었다.
새액- 새액-.
그 틈을 타 들려오는 조용한 숨소리.
모두의 시선이 소파로 향하면.
그곳에는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술병을 껴안고.
조용히 잠이 든 붉은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라일라씨, 잠들었네요…."
사샤가 조용히 말하면 클레온이 팔을 풀고,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에다 데려다 놓을게. 너희도 쉬어."
"네! 안녕히 주무세요. 클레온씨!"
사샤는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을 치우려 하지만,쿠온이 괜찮다고 하며 그녀를 먼저 방으로 보낸다.
갈라테아는 하품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고, 쿠온은 그 자리에 남아 어지럽혀진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고마워 쿠온."
"으응, 아냐."
클레온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일을 계속한다.
그러면, 클레온은 말한 대로 라일라를 방의 침대로 데리고가기 위해 거실의 계단을 오르는 것이었다.
그때-
펄럭이며, 무언가가라일라의 품에서 흘러나와 땅으로 떨어졌다.
"...종이?"
클레온이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떨어진 종이를 들어보면.
그곳에는 라일라와 또 다른 여학생이 그려진 종이가 보였다.
그림 속의 라일라는, 뚱한 표정으로.
옆에서 환하게 웃는 소녀와 손을 잡은 채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었다.
"... ..."
조용히 사진을 라일라의 품으로 되돌린 뒤.
클레온은 그녀를 무사히 방으로 데리고 와 침대에 눕힌다.
그림 속의 라일라는 지금보다도 몇 살은 더 어려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소녀는 라일라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다.
손을잡고, 어깨를 마주할 수 있는 존재.
"...친구, 인가."
이전, 라일라의 기억을 엿보았을 때.
그녀가 가장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억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 기억을 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마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고.
집행과에 대해알아내느라 그때는 무시했지만.
어쩌면.
"라일라. 너는…."
클레온은 머뭇거리며 잠든 라일라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몸을 돌려 그 방을 나가는 것이었다.
그 영역에 허가 없이 발을 들이밀기에는
이제, 라일라와는 너무나도 가까워졌다.
002
다음 날 아침.
아카데미는 어제의 어두운 밤의 소동으로 몇몇 교사진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지도실로 향하고 있었다.
클레온은 모른 척 하며 휴강인 날을 즐기다.
적당한 시간이 되어 검술과로 향했다.
검술과는 마법과에이어 아카데미에서도 가장 큰 학과 중 하나로.
`검`이라는 만인 공통으로 사용하는 무기를 단련하는 만큼.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검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장검으로 퉁쳐지지 않는다.
레이피어, 대검, 장검, 단검과 같은 일반적인 것부터.
사복검과 같이 특수한 것은 물론.
유파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쌍검 등등.
"그야말로, 무한의 검ㅈ..."
"거기의 당신!"
클레온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한 학생이 검술과의 실습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던클레온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딱 보기에도 무인 타입의 여성이었다.
허리에는 레이피어를 휴대하고 있었고, 옷은 검술과의 실습용 제복.
눈에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모범생 타입인걸."
"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은검술과의 허락이 없으면 출입할 수 없어요."
여학생은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랄까, 이 반응은...
"더군다나! 라일라 플레임워치의 동료이자, 파렴치한 성학과의 강사라면 더욱더!"
아아. 역시.
"뭐? 라일라의 동료?"
"성학과의 강사라고!?"
"시, 싫어!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임신당해!"
어떻게 된 성지식이냐…! 그리고 라일라 때문인 거보다 성학과라서 싫다는 게 더 상처받아…!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클레온이었다.
결국, 순식간에 전개된 검술과의 전투 진형을 앞에 둔 클레온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세요!"
"아니, 나는 그저 수석이랑 이야기를…."
"아, 아루루님과!? 이 남자 설마 아루루님을 노리고 있는 건가요!?"
술렁거리는 학생들의 적의가 더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나를 찾는다고?"
다음 순간. 그런 분위기를 깨부수는 듯한 청량한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면.
그곳에는 다른 이들과 같은 제복을 입고.
허리에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유리같이 투명한 검을 건 채.
목에는 땀을 닦기 위한 수건을 걸고 있는 `아루루 트로메이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아루루는 클레온을 보더니 얼굴을 환하게 했다.
"오오! 클레온씨! 약속대로 와줬구나!"
"그래, 오늘은 휴강이니까."
"아, 아루루님이 파렴치한 남자와 대화를…."
"저 남자는 그 라일라 플레임워치의 동료인데…."
"싫어…. 아루루님이 임신해버려…."
묘하게 임신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아는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모두, 미안하지만 클레온씨는 내가 대련을 부탁한 거야. 안으로 들어오게 해 줘."
"아, 알겠습니다. 아루루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안경을 낀 여학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학생들을 물린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갈까! 마검은 들고 왔어?"
"아니. 대신 명검을 들고 왔지."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에 들고 있던 붉은 도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낡았지만,그런데도 잘 손질된 그 검은.
갈라테아도, 이오나도 없는 클레온에게 있어 유일한 무기이자.
스승이 맡긴 약속의 검.
이름은 없지만, 클레온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명검이었다.
"...굉장하네. 보기만 해도, 검에 담겨있는 마음이 느껴지는 무거운 검이야."
아루루는 그 검을 보자마자 들떠있던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정말로. 무거운 검이지."
클레온 역시 아루루의 말에 동의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실습장으로 들어간다.
검술과 전체의 질투의 시선을 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