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48화-사죄와 거래
48화-사죄와 거래
"갑갑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루카스의 방, 나는 그가 던져 준 옷을 받았다.
기존에 입던 짧은 옷이다.
나는 곧바로 그가 보는 앞에서 그 옷으로 갈아 입었다.
"네 음탕함을 못 알아보더냐. 성녀란 존재의 감도 별로구나."
"순수한 소녀를 연기하느라...으앗."
아리아를 비웃은 루가스가 날 거칠게 당겨 자기 무릎에 앉혔다.
그리곤 손을 속옷에 찔러 넣고,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나름 머리를 썼더구나."
"그, 그야..아흐윽.."
순식간에 머리가 뜨거워진다. 아리아의 조심스럽고 따뜻한 손길과는 전혀 다른 배려라고는 1도 없는 거칠고 험한 손길.
하지만 천박하게 울리는 찔꺽이는 소리와 더붙어, 나는 이 손길이 너무나 좋았다.
"흐그으..."
"포상은 이걸로 충분하겠지."
"으으.."
그는 내가 절정에 이를 때까지 손을 놀렸다.
고작 손딸 한번이 포상의 전부라니 순간 그가 원망스러웠지만, 그가 내 애액으로 흥건한 손가락을 입에 물리는 바람에 그걸 청소해야 했다.
"성녀는 너와 같은 계집인데, 널 희롱하는게 거북하진 않더냐."
"제가 원하는 건 순수한 쾌락. 그런 건 상관 없습니다. 하음.."
"보통 음탕한게 아니니, 어처구니가 없군."
그의 손가락을 정성스럽게 물고 빨며 말하자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은 아니였다. 아니, 사실 크게 봤을 때 나는 여자가 더 좋다.
남자는 오직 루카스만이 내 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여자들에 대해서는 의외로 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빙의 전 내 성향의 영향일 수도 있고.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이제 어쩌죠?"
"대충 계획이 있긴 하다."
루카스는 내게 계획을 말해주었다. 방금 전 아리아의 모습을 보고 급히 세운 계획이라 했다.
"성녀의 약점을 잡았으니 그걸 천천히 쥐고 흔들어야지. 스스로 조교 당하는 걸 거부하지 못하도록."
"약점이라 하시면..."
"바로 너다 리아."
히죽 웃은 그가 흥건한 손가락을 내 옷에 닦으며 말했다.
"네가 매개체가 되는 거다. 성녀를 조교하는 건 내가 아니야. 바로 너지."
대충 이해는 간다. 나를 이용해서 그녀를 컨트롤 하겠다는 계획.
하지만 이 계획에 제일 중요한게 빠져 있다.
"성녀가 절 포기하면 어쩌죠."
"그러니 그럴 일 없게 만들어야지. 내일 직접 찾아가, 제안을 할 생각이다."
루카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스스로의 판단에 대해 확신이 있어 보였다.
나 역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아리아가 원하는 건 단순한 음욕의 해소가 아니다.
그 행위를 통해 자유를,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 틈을 찔러 들어간다면 일이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뭐?"
하지만 그 루카스조차 그날 밤 몰래 찾아 온 아리아를 본 순간 평정이 깨졌다.
"성녀께서 여긴 무슨 일이시오."
"리아는 어디있느냐."
"지금 무슨 짓을..."
루카스는 갑작스런 아리아의 태도에 당황했다.
아리아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부디 리아를 한 번만 보게 해다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사과하고 싶다."
고개를 든 아리아가 금빛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루카스는 그녀가 고개를 숙였음에도 자신에 대한 적개심이 여전하다는 걸 알아챘다.
고개를 숙인 건, 일종의 대가를 준 것이었다.
"...들어 오십시오."
그러니 거절할 수 없었다.
혀를 찬 루카스는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데려왔다.
방 안에는, 이미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리아가 공손히 손을 모으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다시 이런 파렴치한 옷을..!"
"리아의, 나의 일을 위한 겁니다! 리아는 내 하녀요! 나의 것이오!"
짧은 리아의 치마를 본 아리아의 눈이 다시 꿈틀거렸지만 이번엔 루카스도 강하게 나갔다.
그러자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는지, 아리아는 결국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궜다.
"리아."
"성녀님.."
"미안하다."
아리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넌 절대 더럽지 않아. 정화하겠다 한 건...그것으로 끝났으니 그냥 잊으렴. 그리고 널 금으로 사려 한 것도, 내 진심이 아니었다."
아리아는 착실하게 사과를 이어갔다.
나는 난처한 얼굴로 그녀의 사과를 듣고 있었지만, 사실 좀 바빴다.
[저한테서 완전히 손 뗄 것 같습니다?!]
루카스도 당황했는지 눈을 굴리고 있었다.
침울한 분위기나 말투도 그녀가 마음을 먹었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래선 우리 계획이 말짱 도루묵이다. 다시 그녀를 움직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 루카스가 움직였다.
"정화? 그러고보니 아침에도 그 소릴 하셨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이미 그 정화라는 걸 하신 것 같은데."
"아, 알 것 없다. 신성력으로 리아의 몸을 치유해 줬을 뿐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순간 루카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히죽였다. 누가 봐도 악당의 얼굴이다.
반면 움찔한 아리아는 특유의 성깔은 어디가고 가까스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리아, 네가 말해라."
"주, 주인님..."
[알 것 같습니다]
이번엔 그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의도를 대충 알아차렸다. 루카스는 이미 나와 아리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적나라하게 알고 있다.
안절부절 못하는 아리아의 반응을 보니 확실하다.
"거짓을 말하지 마라. 솔직히 말해! 성녀님의 말이 사실이냐!"
"으, 으으..."
그가 날 윽박지르자 난 겁먹은 척 연기를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아리아의 얼굴은 더 사색이 되어 간다.
"사, 사실입니다. 성녀님은 제게 신성한 축복을 주셨어요."
"...그러냐?"
내 대답을 듣고 표정을 굳힌 루카스는 저벅저벅 걸어, 자기 가방을 뒤지더니 무슨 요상한 수정구 하나를 꺼냈다.
난 저 수정구가 뭔지 안다. 헤이즐이 선물로 준, 무드등이다.
아무 기능 없다. 그냥 빛나는 발광석이다.
"이건 값비싸게 주고 산, 거짓을 탐지하는 주문이 걸린 수정구지.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이에겐 통하지 않지만."
그는 태연하게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는 그 수정구를 내게 내밀었다.
동시에 아리아는 어쩔 줄 모르고 입만 달싹거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수정구에 손을 얹었다.
"방금 네가 한 말,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나는 떨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수정구가 붉게 빛난다. 그냥 불이 켜진 것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뜻이 아니었다.
"감히, 주인을, 배신해..?"
누가 봐도 극대노 했다는 듯, 루카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떨리기 시작했다.
"안 돼!"
"아악!"
루카스가 내 뺨을 강하게 내리치는 일, 기겁한 아리아가 뛰어 든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바닥에 나뒹군 나는 화끈하고 얼얼한 이 감각에 순간 흥분할 뻔 했다. 공짜로 상 받은 기분이다.
"이게 무슨 짓이냐!"
"비키시오! 그 애는 내 하녀요. 훈육하는 것도 나의 정당한 권리고! 이 애가 죄를 지은 것도 사실이지. 방금 보지 않았소! 거짓을 말했다고! 주인을 속였다고!"
아리아가 넘어진 날 껴안은 덕에 그녀의 갑옷 밖에 안 보인다.
안 보이는 시야 너머 루카스는 평소의 그와는 달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말 전부가 팩트기 때문에, 아리아는 그가 소리쳐도 반박할 수 없었다.
"으윽.."
"성녀님은 이제 가시오. 내 이 건방진 하녀를 좀 더 교육해야 겠으니. 불쌍해서 거둬주고 가르치고,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뒤통수를 치려들어!"
내 머리채를 잡은 루카스가 날 침대로 던지더니, 가방에서 회초리를 꺼내들었다.
아리아가 옆에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단 기색이었다.
"치마를 걷어라."
상반신을 침대에 엎드린 나는 그의 명령에 짧은 치마를 걷어, 속옷을 보였다.
아리아는 여전히 이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는 내 속옷을 엉덩이 골에 끼워, 양 볼기를 모두 드러냈다.
"말해! 무슨 일이 있었느냐!"
"꺄흐윽.."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며 엉덩이를 때리자, 찰싹 소리가 방을 울렸다.
짜고치는 고스톱, 오히려 그렇기에 조금의 자비도 없다.
나는 시트를 입으로 물고 흥분해서 애액을 흘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진실을 말해라!"
"하윽..진, 진짭니다. 정말..하악! 아무 것도...분명...수정구가 잘못..꺄아악!"
미친듯이 내리치는데 남이 보기엔 이건 체벌이 아니라 그냥 폭력으로 보일 것이다.
"끄, 끄으.."
그는 엉덩이는 물론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가리지 않고 때렸다.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타액을 질질 흘리면서도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반응할 때까지.
"그만! 그만해라! 내가 말하겠다!!"
뽀얗고 하얀 피부에 피가 터지고 부어올라 더 이상 때릴 곳도 남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 아리아는 눈물 흘리며 주저 앉았다.
'여신이시어.'
그녀는 젖은 눈을 질끈 감으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만 욕보이는 것이 아니다.
리아를 저 가혹한 체벌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은 물론 여신 마저 욕보이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죽음을 각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건..."
"억지로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리아에게 들으면 되니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포션을 뿌리고 다시 벌하고를 반복하면 언젠가는 입을 열겠지요."
"욕장에서! 같은 목욕통 안에서!"
루카스의 시큰둥한 반응에 아리아는 일말의 망설임 마저 던져 버렸다.
눈물 젖은 금빛 눈을 분노로 번득이며, 이를 갈던 아리아는 루카스를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리아를 탐했다."
이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루카스를 노려보길 멈추지 않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거 이거, 설마하니 그 성녀께서..!"
루카스가 경박하게 피식 피식 웃으며 그녀를 비웃었다.
움켜쥔 아리아의 주먹이 금방이라도 그의 머리를 부숴버릴 듯 덜덜 떨렸다.
"괜찮으냐."
"성녀님..어째서.."
"너야말로, 왜 곧바로 말하지 않았느냐. 아프지 않았느냐. 그냥 말했어야지."
하지만 아리아는 그를 공격하는 대신 리아에게 다가가 피투성이 상처들을 치료했다.
껴안은 리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목이 메인 목소리로 물었다.
"성녀님은..절 정화해 주셨으니까.."
"아니야. 나는..!"
힘 없는 대답에 그녀는 결국 눈물을 보이며 리아를 더 세게 끌어 안았다.
"교국의 성녀께서 어린 하녀를, 그것도 남의 하녀를 겁간하다니. 이걸 세상이 알면 어후, 상상하기도 싫군요."
그러나 두 여인의 감동스런 장면은 루카스의 단 한 마디에 산산조각 났다.
이를 악문 아리아는, 리아를 내려 놓고 그를 노려보았다.
"잠깐, 무슨 오해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이런 걸 가지고 파렴치한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전 성녀님을 해칠 생각이 없다 이말입니다. 제가 뭘 얻을 수 있다고 그런단 말입니까. 애초에 사람들이 믿어나 주겠습니까?"
"무슨..."
아리아는 갑작스런 루카스의 행동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여유로이 웃었다.
"저와 게임 하나 하시겠습니까 성녀님? 성녀님께서 이기신다면, 이 일은 불문에 붙이고 리아를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뭐라..?"
"스스로 증명하십시오. 교국의 성녀는 어린 하녀를 겁간하는 변태가 아니라는 것을. 제 조교에, 음심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신다면 성녀님의 승리십니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당히 선언했다.
"하지만 만약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주인을 배신한 건방진 하녀의 교육을 계속하는 수밖에. 다음은 이 부지깽이로 허벅지를 지져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