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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9 처제의 남자 (19/53)

00019  처제의 남자  =========================================================================

우리는 식사자리에서 몇가지 기본적인 대화만을 주고 받았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내가 정은이의 형부가 아니고, 정연이가 정은이의 언니가 아니고... 김진우라는 사람이 정은이의 남자친구가 아니었다면 더욱 친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의 선이 있고 벽이 있는 사이었다. 때문에 아주 진지한 얘기를 할 수도 없었고, 아주 사적인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계속 그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는 식사를 끝마쳐야 했다. 그때까지는 처제가 왜 그 남자를 우리에게 소개해줬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겉핥기만 하다가 헤어졌다. 어차피 처제도 금방 집으로 오기는 할 것이었지만 나와 정연이 그리고 처제까지 셋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그 김진우라는 남자 혼자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커플끼리 둘둘이 나뉘어 헤어졌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정은이와 함께 같이 사라졌다.

 참... 신기하네.

 정연이가 말했다. 이미 그 둘은 사라져 들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신기해? 뭐가 신기해?

 내가 물었다.

 그냥... 내 동생이 남자라고 데려오는 걸 보면 말이야.

 정연이가 말했다.

 뭐... 남자가 결혼할 거라고 데려온 것도 아니고, 그냥 남자친구라고 데려온 건데...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말했다.

 그런가? 그런데... 우리는 좀 다르지.

 정연이가 말했다.

 달라? 뭐가?

 내가 물었다.

 우리집이 꽤나 보수적이거든.

 정연이가 말했다.

 에이, 보수적인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데 따지고 보면 자기도 스무살 때 나랑 했었잖아.

 내가 말했다.

 그때 내가 처녀였어? 아니었어?

 정연이가 말했다.

 처녀였지...

 내가 말했다.

 그렇다니까. 요즘은 애들이 하도 까져서 안 그런 애들도 엄청 많다고.

 정연이가 말했다. 그건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래? 뭐... 근데 그게 지금 왜 나와?

 내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자기랑 결혼했잖아. 나랑 잔 사람은 오로지 한명뿐 당신이라고.

 정연이가 말했다.

 응. 나도 알지. 그래서 뭔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내가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처녀라는게 뭘 노력해서 생긴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고맙다.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남자도 만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그니까... 우리집이 약간 그런 경향이 있거든. 한사람 좋아하면 쭉 좋아하고... 뭐 그런 거. 그런데 쟤는 지금 저 남자를 데려왔잖아. 저거 저거 뭔가 이상해.

 정연이가 말했다. 나는 그제야 정연이가 어떤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갔다. 정연이네집은 보수적... 그래서 남자들을 잘 안 만난다... 그냥 한번 만나면 결혼까지가는 경향이 강하고, 그렇게 배워왔다. 흠... 그런가?

 뭔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정은이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정연이는 자기네가 보수적이고 성적으로 개방이 안 되어 있고 그렇게 보는데 그건 정연이한테만 해당하는 말 아닌가? 나하고 정은이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데... 그리고 정은이의 손놀림이 예사 손놀림이 아니던데... 자매끼리도 이렇게 모르는구나. 정연이가 이 사실을 모르는게 다행이다 싶었다.

 ***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나는 처제와 단 둘이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기회? 기회라고 하기는 그렇다. 셋이서 같이 사는 집에서 둘이서 같이 있는 경우야 언제든지 있는 일이다. 그냥 둘이서 있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 때 처제는 우리가 같이 만난 김진우에 대해서 물었었다.

 형부, 저번에 데려온 제 남자친구 어땠어요?

 처제가 물었다. 이런 질문은 저번에도 했었었다.

 응? 저번에 얘기했었잖아.

 내가 말했다.

 근데 저번에는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었잖아요.

 처제가 말했다. 그랬다. 저번에는 정연이도 같이 있을 때 말했었다. 그때 나는 굉장히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그냥 뭐 사람 괜찮아 보이네... 뭐 그 정도 답만 주고는 얼버무렸었다.

 그런가? 음... 사람이 괜찮아 보여... 그러니까 좀 듬직해 보이더라고. 난 요즘에 남자들 삐쩍말라가지고 막 기집애처럼 하고 다니는 것 싫더라고.

 내가 말했다.

 또요?

 처제가 다시 물었다.

 또? 글쎄... 뭐가 있으려나?

 나는 잠깐 고민을 하며 말했다.

 저랑 잘 어울려요?

 처제가 물었다.

 음...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말했다.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처제가 물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래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은 하지마. 이제 스무살이라고. 저번에 언니랑 같이 얘기를 해봤는데 뭐 처제네 집안은 한번 좋아하면 결혼까지 하고 그런다며. 그런데 그럴 필요 있을까?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냥 많은 남자 만나보고 그랬으면 좋겠네.

 내가 말했다.

 음... 저는 우리집하고는 방향이 달라요.

 처제가 말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괜히... 아! 그렇다고 언니가 불행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야. 정연이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내가 말했다.

 알아요... 알아!

 처제는 살짝 짜증을 내듯이 말했다.

 왜 그래?

 내가 물었다.

 어차피 저는 제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랑 뭐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언니가 살짝 질투나서 그래요.

 처제가 말했다.

 왜? 벌써 헤어진 거야?

 내가 물었다.

 헤어졌다고 할 수도 없겠네요.

 처제가 말했다.

 안 헤어졌어? 그러면 뭐... 사귀어보지도 않은 거야?

 내가 물었다.

 처음부터 사귀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처제가 말했다.

 그래? 유부남... 뭐 그런 거였나?

 내가 물었다.

 뭐... 비슷한 거죠. 그러니까 저는 어쨌든 첫사랑이랑 잘 될 수는 없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거에요. 그래서 지우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처제가 말했다. 나는 처제의 말이... 뭔가... 뭔가 있다고 여겨졌다. 처제가 좋아했다는 사람... 유부남과 비슷하다고 했던 사람... 어쩌면 그게 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자들은 원래 착각의 동물. 언제나 착각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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