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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0 언니 오려면 얼마나 남았죠? (20/53)

00020  언니 오려면 얼마나 남았죠?  =========================================================================

뭐... 비슷한 거죠. 그러니까 저는 어쨌든 첫사랑이랑 잘 될 수는 없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거에요. 그래서 지우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처제가 말했다. 나는 처제의 말이... 뭔가... 뭔가 있다고 여겨졌다. 처제가 좋아했다는 사람... 유부남과 비슷하다고 했던 사람... 어쩌면 그게 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자들은 원래 착각의 동물. 언제나 착각을 하니까.

 음... 그렇구나... 그래. 뭐든 노력을 해봐야지. 근데 나는 그래도 그 남자랑 한번 잘 해보려고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에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착각이 아니라 처제가 정말로 나를 좋아한다면 그래도 이 생각이 맞다. 맞는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유리하다. 어쩌면 결혼을 하고서도 어장관리처럼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내 생각이 틀렸다. 그냥 착각일 뿐이고, 처제가 좋아한다고 말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이 말을 한 것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래도 조금 제대로 해볼 필요가 있지. 시작도 안 하고 저렇게 속앓이를 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낫지 않나? 물론 처제의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글쎄요... 사실 저는 다가간다고 다가가본 것 같아요.

 처제가 말했다.

 그래? 어떻게 했는데?

 내가 물었다.

 유혹을 한거죠.

 처제가 말했다.

 유혹을?

 내가 답했다.

 예. 유혹을 했는데 넘어오지가 않더라고요... 뭐... 제가 부족한 탓이겠죠.

 처제가 말했다. 유혹이라... 그럼 저번에 그게 유혹이었나?

 처제가 뭐가 부족하겠어?

 내가 말했다.

 음... 글쎄요. 저는 좀 통통한 편이지 않아요?

 처제가 말했다. 통통이라... 그런가? 내 생각은 아니다. 저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지. 매력으로 느껴지는데?

 에이, 처제가 무슨 통통이야. 처제 정도면 늘씬하지.

 내가 말했다.

 늘씬한 건 언니죠. 언니는 정말 늘씬하잖아요.

 처제가 말했다. 처제는 언니에게 살짝 열등감이 있었다. 그게 심한 수준은 아니었고, 그냥 동생이 언니에게 가지는 그 정도였다.

 음... 그런가?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처제가 몸매 더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에이, 아니에요.

 처제가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정말로 더 좋은 것 같다니까?

 내가 말했다.

 그래요?

 처제가 다시 물었다.

 응. 정말이야.

 내가 답했다.

 근데 그때는 왜 그랬어요?

 처제가 물었다.

 응? 뭐가?

 내가 말했다.

 에이, 아니에요.

 처제는 그렇게 화제를 마무리 지었다. 그때는 왜 그랬어요... 그때가 뭘 의미하는 걸까? 그리고 그때 나는 왜 그런 것일까... 왜... 무엇을 한 것을 의미할까... 처제는 정확하게 콕 집어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었지만 나는 그것이 오로지 한가지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제와 나의... 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이야기.

 그... 그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잘 못했다면 사과를 할게. 뭐든 다음에 그런 일이 있더라면 잘 하도록 노력할게.

 내가 말했다. 처제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처제 역시 그날의 그 일을 생각하고 있고, 내가 말하는 게 그날의 그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를 섹스에 눈이 먼 사람으로 보려나? 그때 못 먹은게 후회되냐? 뭐 이런 생각을 할까? 아니면 처제는 이제 나에 대한 마음이 없어서 그냥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데 혼자 오버 하는 건가?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은 언제나 읽기가 어렵다.

 정말요?

 처제가 물었다.

 응... 뭐...

 내가 대답했다.

 언니 오려면 얼마나 남았죠?

 처제가 물었다.

 한... 한시간?

 내가 말했다. 그리 긴 시간이 남아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 안 되겠네요.

 처제가 말했다. 뭐가 안 된다는 것일까... 한시간이면... 아주 짧은 시간은 아니지 않나? 아주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그냥 대화나... 뭐 그런 거라면 얼마던지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 그런데 안 된다... 안 된다니... 뭐가?

 뭐가?

 내가 물었다.

 그건 나중에 보면 알겠죠?

 처제가 말했다.

 나중에?

 내가 물었다.

 예, 나중에요. 그리고 저는 마음을 먹었어요.

 처제가 말했다.

 마음? 어떤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물었다.

 그 동안 많이 고민을 하면서 살았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된 기분이에요.

 처제가 말했다.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정이 되었다면 다행이다.

 내가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알아들을 수 없다는 연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 것일 수도 있다. 혹시나 자신이 상처입을까봐? 아니면 상대방이 더 다가와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어쩌면 이번 대화가 저번에 처제와 나눴던 스킨십과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타격이 이렇게 서로를 몸 사리게 만든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술자리를 한번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제와 둘이서 술자리를 가져야겠다. 그러면 저번처럼 상황이 이루어질까? 저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면 그때와 똑같이 행동을 하게 될까? 계속 모르겠다고 얘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안다. 분명히 그때와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시간 동안 그런 대화에서 벗어난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아까의 이야기는 정연이와 같이 할 수 없는 대화였지만 이제 나누는 대화들은 정연이가 들어도 상관이 없고, 끼어들어서 같이 대화를 해도 상관이 없는 그런 내용이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정연이가 왔다.

 어? 둘이 놀고 있었어?

 정연이가 말했다. 정연이의 눈에는 우리 둘이 어떻게 보이려나? 우리 둘은 그냥 친한 형부와 처제로 보이려나?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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