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아내의 눈치 =========================================================================
어? 둘이 놀고 있었어?
정연이가 말했다. 정연이의 눈에는 우리 둘이 어떻게 보이려나? 우리 둘은 그냥 친한 형부와 처제로 보이려나?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응. 안 오길래 둘이서 놀고 있었지.
나는 아무일 없다는 듯 대답했다. 정확히 따지자면 정말로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생각이 맞다면 대단한 얘기지만, 둘 중 한명이라도 아니라면 아닌 얘기들이었으니까.
처제랑 형부랑 이렇게 친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우리집은 참 친해?
정연이가 말했다.
처제랑 형부랑 같이 사는 집이 몇집 없잖아. 가끔씩 얼굴보고 하면 처제랑 형부가 아니더라도 다 어색할 수 밖에 없지.
동생인 정은이가 말했다.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다. 정은이의 말과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렇게 가까울 수 있는 건 가끔씩 얼굴 보는 게 아니라 매일 같이 보고 같이 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말이야. 뭐 그게 좋은 거지. 지금처럼 둘이 남아있을 때 어색하지 않고 말이야.
정연이가 말했다.
언니. 그래도 신혼인데 질투 같은 거 안나나?
처제가 말했다.
질투? 뭔 질투를 동생한테 느끼냐?
정연이가 말했다. 그게 맞는 말이었다. 좀 이상하지 않나? 질투를 느끼는 대상이 자기의 동생이라는 것은.
그래도... 뭐... 신혼이잖아. 나도 여자이기는 여자이고... 그런데 그런거 안 느껴?
처제가 또 말했다.
됐다. 그런거 일일히 어떻게 신경 쓰냐? 그리고 네가 무슨 여자야?
정연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음... 생물학적으로는 여자라는 말이지. 남자는 아니잖아.
처제가 말했다.
넌... 그냥 정은이야. 내 동생 정은이.
정연이가 말했다.
이거 왜 그래? 나도 남자들한테 꽤 잘 먹히거든?
처제가 말했다.
그래? 잘 먹혀? 그런가? 뭐가 예쁘다고 그러지?
정연이는 정말로 알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자기의 동생이다. 원래 가족은 못나보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왜 김태희도 동생인 이완이 보기에는 별거 아니지 않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 같은 가족끼리는 못나보이게 만들었다는 말이 맞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형부! 형부가 보기에는 저 어때요?
처제는 나에게 물었다.
처제? 처제 훌륭하지.
내가 말했다.
봐봐! 형부가 나 예쁘다고 하잖아.
처제가 말했다.
야! 그럼 형부가 처제한테 못 생겼다고 하냐?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정연이가 말했다. 그것도 그렇다. 처제한테 못 생겼다고 하는 형부가 어디에 있겠나?
아니야. 나는 여자 얼굴에는 늘 솔직하다고. 처제는 정말 예쁘지.
내가 말했다. 이건 사실이었다. 처제의 얼굴이 못 생겼다고 못 생겼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처제의 얼굴은 정말 괜찮지.
봐봐! 형부는 아니면 아니라고 한다고! 그렇죠?
처제가 물었다.
그렇지! 처제 예쁘다!
내가 말했다.
그럼요, 언니가 예뻐요? 아니면 제가 예뻐요?
처제가 말했다.
당연히 우리 처제가 더 예쁘지!
내가 말했다. 내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미의 기준이라는 게 애매하지만 그냥 내 눈에는 처제가 더 예쁘게 보인단 말이다.
아유, 둘이서 잘들 하고 논다.
정연이가 말했다.
그렇지? 우리 잘 놀지?
처제가 말했다.
응응. 둘이 아주 잘 어울려! 아주 둘이 살아라, 살아!
정연이가 말했다.
정말? 정말 형부랑 살까?
처제가 물었다.
응. 그냥 둘이 살아. 데려가라.
정연이가 말했다.
형부! 언니랑 헤어지고 저랑 결혼할래요?
처제가 나에게 물었다.
그럴까? 이혼남인데도 받아줄거야?
내가 물었다.
형부 정도면 이혼 세번하고 와서도 받아주죠!
처제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지!
내가 말했다.
으유!
정연이는 잘 논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했다. 그렇게 셋이 있을 때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둘이 있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처제는 당연히 처제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당연히 정연이와 우리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정연이의 시선이 조금은 바뀌었다.
정은이... 뭔가 좀 바뀐 거 같지 않아?
정연이가 물었다.
응? 처제가? 처제가 왜?
나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물었다.
쟤가... 예전에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요즘에 보면 조금 여우가 됐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아?
정연이가 말했다. 아무래도 아까의 그런 대화들 때문에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나는 모르는 척 답했다. 정연이가 왜 저러는 거지?
음... 뭔가 애가 끼를 부리는 것 같은데?
정연이가 말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직감이 뛰어나다. 혹시 정연이가 정은이에 대해서 뭔가 눈치챈게 아닐까?
근데 그거야 뭐 다 컸으니까. 고등학생 때랑 지금이랑 같을 수는 없잖아.
내가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조금 이상한 거 같은데...
정연이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지금이 정상인 거야. 지금 스무살 먹었는데도 애가 헤롱헤롱하면 안 되지. 지금은 끼 좀 부릴 줄도 알아야하고... 어장도 관리 당하는 사람이야 안 좋지만 관리도 잘만 하면 좋은 거 아니야?
내가 말했다. 처제에 대한 그런 부분을 감싸줄 필요가 있었다. 괜히 더 파고 들어가다보면 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지금 처제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가... 음... 뭐... 하긴 스물이니까.
정연이는 그렇게 말을 했다.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정연이의 눈에는 그래도 떨떠름하다는 게 보였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내가 처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지만 조심해야할 것 같다. 지금 아내가 처제를 더 유심히 볼 것이 확실하다. 괜히 나에 대한 부분도 신경 쓸 수 있다. 정연이는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여자는 자기의 딸에 대해서도 질투를 하는 동물이다. 정연이의 앞에서는 되도록이면 처제와 엮이는 일을 피하도록 해야겠다. 그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