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2 달라진 처제 =========================================================================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내가 처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지만 조심해야할 것 같다. 지금 아내가 처제를 더 유심히 볼 것이 확실하다. 괜히 나에 대한 부분도 신경 쓸 수 있다. 정연이는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여자는 자기의 딸에 대해서도 질투를 하는 동물이다. 정연이의 앞에서는 되도록이면 처제와 엮이는 일을 피하도록 해야겠다. 그래야 겠다.
하지만 처제는 그런 걸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처제는 나에게 접근을 해왔다. 나의 머리 속으로는 처제를 멀리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아내인 정연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처제는 언제라도 멀리해야하는 상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는데 처제는 나에게 접근을 해왔다.
아내의 말이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다. 아니, 아내는 처제를 유심히 지켜보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냥 뭔가 이상하다고만 했지. 그런데... 그래도 지금은 뭔가 불안했다. 하지만 같은 집에 있으면서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처제에게 정연이가 한 말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날도 처제와 내가 단 둘이 있게 되었다.
아내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친구를 만나고 저녁에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친구와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친구 다섯명이서 여행을 가는 것이었고, 모두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물론 정연이는 여고를 나왔고, 여자 다섯이서 여행을 간 것이다. 거기에 결혼한 사람은 정연이 뿐이어서 부부동반이니 뭐니 말을 할 수는 없어서 그냥 혼자 가라고 보내준 것이다. 집에는 나와 정은이 둘만 있었다.
형부. 오늘 언니도 없는데 다시 술 한잔 할까요?
처제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약간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저번의 대화가 있지 않았나? 다음에는 전과는 다르게 할 거라는 말. 그 말이 있고 나서 곧바로 이런 자리를 마련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게다가 아내가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아내의 시선도 평소와는 다를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이런 제의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나? 만약 들킬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멈출 수 없다.
그래? 그럼 가볍게 한잔 할까?
내가 말했다.
그래요. 그럼 같이 마트나 갈까요?
처제가 말했다. 집에 술이 없나? 어쩌면 있을 수도 있는데 찾아보지도 않고 바로 마트로 가자고 했다.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내가 말했다.
우리는 마트로 갔다. 마트는 컸고, 우리는 도시에 살았으므로 마트 안에서 우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누구가 여기에서 우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겠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처제의 행동 때문이었다.
오빠! 이리 와서 카트 좀 끌어줘.
처제가 말했다. 오빠... 오빠였다. 형부가 아니라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으... 응... 알았어. 내가 끌게.
내가 말했다. 내가 카트를 끌러가자 처제는 내 옆으로 와 팔짱을 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연인이나 신혼부부처럼 보이겠다. 그때 나는 여기에 우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형부... 여기는 우리 아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있어요. 같이 장도 보고요.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처제가 말했다.
응... 그래. 처제 편한대로 해.
내가 말했다.
에이... 그럼 제가 뭐가 돼요?
처제가 말했다.
응? 뭐가?
내가 물었다.
아니... 저는 형부한테 오빠라고 부르잖아요. 형부라고 안 부르고요. 그런데 오빠가 저한테 처제라고 부르면 어떻게 돼요? 그냥 처제하고 형부지간이 되는 거잖아요.
처제가 말했다.
그... 그런가? 그러면 뭐라고 해야지?
내가 물었다.
뭘 뭐라고 해요? 그냥 정은아. 정은이라고 부르면 돼죠. 제 이름 몰라요?
처제가 말했다.
아... 그래? 그럼 정은아!
내가 정은이를 불렀다.
응! 오빠? 왜 불렀어?
정은이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내 팔짱을 더욱 세게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장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오빠, 정은이 이런 식으로 불렀고 가끔씩 정은이는 나에게 자기야, 여보 같은 호칭을 써서 불렀다. 나도 거기에 피하거나 하지 않고, 응 그래 여보 같은 소리를 해가며 정말이지 부부와 같은 모습으로 시장을 봤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우리를 평범한 신혼부부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의 장보기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다. 정연이가 나가있는 상태였지만 내일이면 돌아온다. 흔적을 많이 남겨서는 안 된다. 그냥 하루에 먹어서 치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이면 충분했다. 이거 저거 안주거리를 사는데 처제가 집는 것은 조금 많았다. 이걸 다 먹으려면 꽤 무리를 해야한다 싶을 정도?
정은아. 그런데 지금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니야?
내가 말했다.
에이, 오빠! 이 정도야 다 먹을 수 있죠. 술을 좀 많이 사면 되잖아.
정은이가 말했다. 정은이는 나와 대화를 할때 존댓말과 반말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이야기했다.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정은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은이는 꽤 많은 안주에 맞게끔 술을 샀다. 술을 다 먹어야할텐데...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단순히 맥주만 산다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겠으나 맥주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해외 맥주 대여섯캔을 고르더니 보드카가 있는 쪽으로 갔다. 내가 취할 정도는 이미 맥주로 끝나버린 상태였다.
보드카? 보드카 마시려고?
내가 물었다.
응. 보드카 한번 마셔보고 싶었단 말이야.
정은이가 말했다.
한번도 안 마셔봤는데 마셔본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한번도 안 마셔본 건 아니고... 그러니까 한두잔 마셔봤나? 술집에서?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마셔보려고요.
정은이가 말했다. 정은이는 그렇게 한참 동안 보드카가 있는 쪽을 기웃거렸다. 나 역시 술을 잘 알지 못했기에 어떤 조언을 하거나 그럴 수는 없었다. 정은이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같은 것을 들락날락거리기도 하더니 보드카 한병을 집었다. 그리고 몇병의 토닉워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