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5 처제와의 아침 =========================================================================
나는 정연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동생인 정은이는 뭐든 하나에 꽂히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이룰 때까지 하고 만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보니... 딱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정연이는 그렇게 동생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언니를 속일 수 있을까? 서로 같은 배에서 태어나서 같은 부모님 밑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을?
글쎄... 사실 나도 조금 갑작스럽다... 생각할 시간을 주겠니?
내가 말했다.
네... 알겠어요. 저도 바로 답을 듣기를 원한 건 아니었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래... 그럼 조금 더 생각을 해볼게...
내가 말했다.
그날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었다. 두사람 다 알몸인 상태였지만 무엇을 더 진행해야할 지 몰랐다. 처제 역시 이걸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거겠지. 처제는 그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상황이니 둘 다 당황할 수 밖에 없었지. 우리는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돌아갔어야 했다.
우리만 조용히 입을 다문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불에 피가 묻어있었다. 이불에 묻은 피. 처제의 처녀막이 터져서 묻어버린 것인데 이건 쉽게 속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코피를 흘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르다. 이건 그냥 그런 피와는 달랐다. 빨아서 없애야 하는데 이불을 빨면 그렇게 순식간에 마를 수는 없었다. 하루도 안 남은 상태이니까.
처제에게 이걸 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기분이 안 좋을텐데 어떻게 이런 일을 시킬 수가 있겠나? 나는 혼자 이불을 걷고, 이불을 빨기 시작했다. 처음의 진한 색은 금방 빠졌지만 하얀 색 이불에 묻은 붉은 피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한참을 빨고 있으니 처제가 들어왔다.
형부... 뭐하고 계세요?
처제가 물었다.
어... 응... 지금 빨래하고 있어.
내가 말했다. 나는 조금 창피했다.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서 손빨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창피했지만 지금 내가 빠는 건 처제의 피가 묻어있는 이불이니 더 그럴 수 밖에.
아... 이게... 두세요. 제가 할게요.
처제가 말했다.
아니야. 내가 할게.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이게 제가 묻힌 건데 왜 형부가 하세요?
처제가 말했다.
이게 왜 처제가 묻힌 거야? 내가 묻힌 거잖아.
내가 말했다.
아니... 그래도 제 피잖아요...
처제가 말했다.
정은아...
나는 나지막하게 처제를 불렀다.
네?
처제가 말했다.
아까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하지 않았어?
내가 말했다.
음... 그랬어요...
처제가 말했다.
이 피가 정은이거지만... 그럼 정은이는 내 거잖아.
내가 말했다. 나는 큰 의미를 두지도 않았고, 별 큰 생각을 하고 말한 것도 아니었지만 처제는 그런 내 말에 감동을 받은 모양이야.
아... 그래요... 고마워요... 오빠...
처제는 나에게 형부가 아니라 오빠라고 불렀다.
그래. 걱정마. 내가 금방 빨고 널어놓을게.
내가 말했다. 정은이는 그제야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빨래를 다 하고 건조대에 널었다.
오빠... 당장 내일 언니가 오니까 그렇게 하는 것보다 그냥 드라이기로 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런가? 하긴 빨리 말라야 하니까.
내가 말했다.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정은이는 드라이기를 가져와 빨래를 말렸다.
저 때문에 고생하네요.
정은이가 말했다.
아니야, 이게 무슨 고생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만든 거라고.
내가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사람이랑 해보는 건데...
정은이가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큰일 날 소리야. 그런 걸 아무나하고 하면 안 되지!
내가 말했다.
사실... 이건 꼭 오빠랑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건 노력 많이 했는데 이건 꼭 지켰어요. 제 처녀는 꼭 오빠한테 주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렇게 됐네요.
정은이가 말했다. 기쁠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처제가 전에 그렇게 능숙했던 것에 대한 해명도 담겨있었다. 처제는 자기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다른 쪽으로 더 능숙해진 거지.
잘 했어. 나도 감사해. 처제의 첫남자가 된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데...
내가 말했다. 나는 처녀라는 것을 따지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나를 위해 처녀를 지켰다고 하는데 어찌 안 기쁘겠나.
다음 번에는... 다음 번에는 꼭 제대로 하게 해드릴게요.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정은이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 날,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잤다. 정연이가 언제 올지 정확하게는 몰랐으나 우리가 일어나는 시간보다는 늦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정은이를 껴안고, 정은이도 나를 껴안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마치 연인처럼 다정한 대화들을 나눴다. 두근거림은 정말이지 정연이와의 연애초기가 생각나게 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뽀뽀를 했다. 자고 있는 정은이의 입술에 내가 뽀뽀를 하자, 정은이도 일어나 내게 뽀뽀를 해줬다. 정말 신혼부부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입술에서 나온 말은 여느 신혼부부의 집에서 들을 수 없는 그런 말이었다.
이따가 언니 오면 조심하도록 해.
내가 말했다. 분위기를 깨는 말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이 말은 분위기를 깨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꼭 해야하는 말이었다.
알았어, 오빠. 오빠나 조심해요.
정은이가 말했다. 짜증이 조금 섞여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무 서운하게 하지마... 나도 우리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이러는 거니까...
내가 말했다. 약간의 애교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자 정은이의 표정도 금세 풀렸다.
그래도 우리...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매일 매일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건 아는데 가끔씩 기회가 생길 때면 이렇게 해주세요. 알았죠?
정은이가 말했다. 여자가 존댓말을 한다는게 이렇게 귀여운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같이 아침에 눈뜬다는 것에 기쁨을 느껴주는 것이 좋았다. 정연이와 잠을 자고 일어날 때면 그냥 아침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그냥 그런 아침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