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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0 다시 찾은 처제 (30/53)

00030  다시 찾은 처제  =========================================================================

아마도 정은이는 그날 아침까지만해도 집을 나갈 생각이 없었을 거다. 그냥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를 만나면서 일이 틀어졌겠지. 집에 돌아가기는 싫고 그랬겠지. 그래서 친구집에 갔다고하면 정은이는 아무런 짐도 없다. 옷도 없고... 뭐 아무것도 없다. 그런 상태로 다른 사람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며칠째 묵는다. 그 친구가 과연 좋아할까? 그럴리 없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내 머릿속에는 정은이가 그려졌다. 정은이는 기분이 안 좋고 우울했다. 그리고 그 얼굴로... 버티고 있었다. 정은이의 친구는 정은이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다. 정은이는 그걸 다 눈치챘다. 정은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충분히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정은이는 버티고 있었다. 이 곳이 아니면 도저히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버티고 있었다.

 죄책감이 든다. 그것도 무겁게 든다. 내가 정은이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그러면 안 되는데도 정은이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정은이를 찾으러 나섰다. 정은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 했으나 일단은 찾으러 나서야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너무나 불편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일단 집밖으로 나오긴 나왔으나 어떻게 해야할 바를 모르겠다. 아마도 정은이도 이랬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겠지. 나는 정은이의 생각을 따르기로 한다. 정은이는 여기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친한 친구... 뭐 그런 아이에게 전화를 했겠지. 나 또한 전화를 하기로 한다. 나는 곧장 정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지만 받는 사람은 없다.

 다시 전화를 건다. 다시 신호가 길어질 때쯤이 되어서야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도 반가워 나는 주저 앉을 뻔 했다.

 정은아! 지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내가 반가워하는 목소리로 말하자 전화기에서도 떨림이 느껴졌다.

 어... 지금... 친구네집에 있다니까요.

 정은이가 말했다.

 친구네 집에 가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있고 그러면 실례잖아. 집에 좀 오고 그러지...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내가 말했다.

 어... 아니에요... 안 오셔도 되는데...

 정은이가 말했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서 그래...

 내가 말했다.

 그제야 정은이는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말했다. 정은이는 이걸 원했을 수도 있다. 내가 보고 싶어한다는 걸. 내가 보고 싶어해서 자기를 찾아주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로 정은이가 걱정이 되고,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정은이를 찾을 수 있었다.

 정은이는 조금 지쳐보였다. 역시나 단순히 친구의 집에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뭔가 부시시하고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를 본다고 해서 그런지 꾸민 느낌은 있었다. 그래도 화장을 했고, 옷도 그나마 정리를 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래도 지쳐있는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

 뭐 하고 있었어?

 나는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친구네... 거기에 가 있었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왜 갑자기 말도 없이?

 내가 물었다.

 그래도 말은 하고 나왔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말은 하고 나간게 아니지. 나간 다음에 말 한 거잖아.

 내가 말했다.

 그건 그런데...

 정은이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별일 없었어? 왜 이렇게 지쳐있어?

 내가 말했다. 나는 약간의 울음같은 것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별일은요... 그냥 친구네서 잘 지냈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친구네도 좋지만 오래 있으면 실례라니까... 앞으로는 그러지마. 앞으로는 집에 오래오래 있어.

 내가 말했다.

 형부...

 정은이가 조심스레 말했다.

 응? 왜?

 내가 말했다.

 이러지 마세요.

 정은이가 말했다.

 뭘? 뭘 이러지마?

 내가 물었다.

 보고 싶다고 하지도 말고... 찾으러 다니지도 마세요.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정은이가 왜 그렇게 말을 하는지 알것 같았다.

 왜?

 나는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

 이러면... 저 더 힘들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더 힘들어? 우리는 그럼 그냥 형부와 처제 사이도 되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말했다.

 그게... 우리는 이미 그 선을 넘어버렸잖아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러면 우리는 다시는 봐선 안 되는 거야?

 내가 말했다.

 글쎄요... 어쩌면요...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우리가 이런... 그러니까 단순히 형부와 처제 사이를 넘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래도 네가 보고 싶어. 물론 나는 이제는 선을 지키려고 할 거야. 그래도 보고 싶어. 그리고 단순한... 형부와 처제 사이라고 해도 같이 사는 사람이잖아. 갑자기 나가서... 그리고 네가 무슨 이유로 나갔는지... 나와 어떤 일이 있고 나서 나갔는지를 뻔히 아는데 그걸 어떻게 안 찾아? 어떻게 안 찾을 수가 있겠어?

 내가 말했다.

 그... 그래도요... 집에 들어가기는 좀 그래요.

 정은이가 말했다.

 왜? 나 때문에?

 내가 물었다.

 언니도 있고요... 언니한테도 미안하기는 미안한데 저도 참... 모르겠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말자.

 내가 말했다.

 예? 집에 안 들어가면요?

 정은이가 물었다.

 그래도 나랑 같이 있어. 너 이제 불안해서 다른 곳에 못 보내겠다.

 내가 말했다.

 그럼... 우리 어디서 자는데요?

 정은이가 말했다.

 몰라. 그래도 너 집에 가기 싫다며. 여기서 같이 있던지 어디 뭐 모텔이라도 가던지.

 내가 말했다. 모텔을 가자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정말로 정은이에게 어떠한 일을 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모텔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변질되었다. 하지만 모텔의 기능은 숙박이다. 모텔은 숙박시설이다. 그런데 모두 다 모텔은 섹스를 하러 가는 곳으로 생각을 한다.

 모텔이요?

 정은이가 말했다. 정은이도 모텔을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숙박시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을 할까? 그에 대한 어떤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정은이는 나와 같이 모텔에 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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