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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3 두 여자를 사랑해? (33/53)

00033  두 여자를 사랑해?  =========================================================================

딱 거기까지가 금방이에요. 거기에서 더 갔으면 금방이 아니라고 인정을 하는데 거기까지는 금방이에요. 역까지는 안 갔으니까.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지금 분위기가 많이 좋다고 느꼈다. 지금은 아까처럼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나와 정은이, 둘 다 웃고 있다. 이런 게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반가웠다. 앞으로도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평범한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냥 있었던 일을 가지고 떠들고 웃고 그러는 거.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 했다. 얽히고 설켰으며 미래에 대한 걱정만을 할 뿐이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다. 우리는 술을 시켰다. 물론 안주도 함께. 대단한 걸 시킨 건 아니고 이번에도 평범하고, 또 평범한 메뉴였다. 치킨에 생맥주. 그냥 같이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에 딱 적절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치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단번에 무거운 이야기로 들어가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걸 먼저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오랜만에 찾은 평화와 행복이었다. 일단 그걸 좀 누리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렇게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정은이는 웃고, 나도 따라 웃고 하는 시간을 한참을 보냈다. 우리 둘 모두 어느 정도 배가 차고, 술도 어느 정도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 남자친구랑은 어때?

 내가 말했다.

 남자친구요? 뭐... 있기는 있는데 없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정은이가 말했다.

 응? 왜? 남자친구랑 싸웠어?

 내가 말했다.

 사실 남자친구를 좋아해서 사귄게 아니잖아요. 왜 그런지는 오빠도 잘 알구요.

 정은이가 말했다.

 아... 알지. 그래서 헤어지려고?

 내가 말했다.

 그냥... 그냥 만났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싫어하는 건 아니거든요. 차라리 좋아해서 만났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런게 없으니까 막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그 사람이 착하기는 착하거든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래... 뭐... 남녀관계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건 없지.

 내가 말했다.

 왜요?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정은이가 말했다.

 음... 내 생각에는...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내가 말했다.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오빠는 언니를 사랑해요?

 정은이가 물었다. 이건 심각한 질문일 수도 있다. 나는 정연이를 사랑한다. 이건 사실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정은이 앞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까?

 사랑하지... 그러니까 결혼을 했겠지.

 내가 말했다. 나는 정은이 앞이라고 그걸 숨기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더욱 이런 걸 말해줘야겠다.

 사랑이라는게...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사랑은 원래 그렇다. 딱 정해진 게 없지 않나? 너는 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이걸 공식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지... 그건 딱 떨어지게 말을 할 수도 없으니까.

 내가 말했다.

 오빠...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사랑이 딱 하나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은이가 말했다.

 어... 음...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말했다. 나는 정은이가 뭘 말하는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정연이를 사랑한다면 그것 외에 다른 사랑은 불가한가? 그러니까... 정연이를 사랑하면서... 자기를 사랑할 수는 없는건가를 묻는 것이다.

 요즘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인기 많은 거 아세요?

 정은이가 말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인기 많지. 애기들 나오니까 귀엽기도 하고.

 응. 알지. 애기들 나오는 거 말하는 거지?

 내가 말했다.

 거기에서 제일 인기 많은 가족이 송일국네 가족이거든요. 삼둥이! 대한, 민국, 만세. 이렇게 셋을 키우는 거에요. 그런데 걔네들이 받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추성훈이 키우는 사랑이도 물론 귀엽고 사랑을 받지만, 그런 사랑을 셋이서 나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그냥 사랑은 늘기만 하는 걸요. 자식을 하나 낳는다고 그 전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줄지는 않잖아요. 그건 그렇죠?

 정은이가 말했다.

 그건 그렇지...

 내가 말했다. 그건 맞는 말 아닌가? 내가 반박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정은이의 그 말은 정말이었으니까!

 그렇죠... 그렇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면 다행이네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래... 다행인 건가...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는 이게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정은이를 사랑하고 있는가?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정확하게 대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사랑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정연이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겠으나... 정은이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주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이 단순히 다른 사람의 눈 때문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정은이를 사랑하고 있는건가? 좋아하는 건 인정을 하고... 알겠는데 사랑은 잘 모르겠다.

 저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어쨌거나 사랑인 거니까.

 정은이가 말했다.

 사랑... 그래... 여럿을 사랑할 수도 있다고 하자. 하지만 그 여럿 중에 하나가 그걸 원치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예를 들어서 내가 자식이 하나 있어. 나는 둘째를 낳아도 사랑을 할 자신이 있는거야. 그런데 그 첫째인 애가 그걸 너무 원하지 않는 거지. 그렇게 되면 자기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일단 내가 데리고 있는 애는 첫째잖아.

 내가 말했다. 나로서는 일종의 반격이었던 셈이었다. 이렇다면? 이러면 뭐라고 답을 할건가?

 일단 둘째를 낳아요. 그러면 걔의 생각이 바뀔 거에요. 원래 다들 집에서 그렇잖아요. 아이가 싫다고 한다고 무조건 안 낳는 집이 어디 있어요? 낳고... 첫째가 둘째를 잠깐 동안 괴롭힐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잠깐인 거고... 다시 화목하게 살 수도 있죠.

 정은이가 말했다. 그럴까?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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