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6 처제와의 아침 =========================================================================
으... 좋아요... 오빠... 깊은데... 깊어서... 너무 좋아요!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오늘밤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주겠다 다짐을 했다.
정은이를 엎드리게 해줘서 뒤로도 박아주고... 정은이를 아예 끌어안고 들어올려서 그 상태로 계속해서 박기도 했다. 정은이는 그래도 정연이보다는 무게가 조금 더 나갔기 때문에 그건 오래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사정을 하는 건 무리다. 그거는 잠깐 곁들이는 용이다. 잠깐 내 힘을 보여주는 용이랄까? 우리는 그렇게... 섹스를 하고 또 했다. 처음 관계를 가질 때는 그렇게 나약하게 끝나버렸는데 바로 다음부터 이렇게 달려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폭주기관차였고, 정은이는 그런 나를 잘 받아주었다.
***
날이 밝고 나는 내 옆에 누워있는 정은이를 바라보았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속이 뒤틀린 것처럼 쓰려왔다. 어제 너무 많은 것이 변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정은이에게... 다시는 전과 같이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결정을 한 셈이다.
집에 돌아가면 정연이에게 말을 해야할까? 아니면 지금 이렇게 둘이 있어야하나...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정은이를 만나야 되나? 아니면 만나지 말아야 하나? 그 고민에서 나는 만나겠다는 선택지를 뽑았다. 그러고 나니 또 다시 선택지가 있었다. 정연이에게 말을 해야하나?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나?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 만약 한쪽으로 너무 쏠려있다면 나는 이렇게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둘은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먼저 정연이에게 말을 한다면 최악과 최상의 경우가 있었다. 최악은 정연이가 화를 내고 나와 정은이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할 경우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셋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모두가 따로 따로 있게 될 것이다. 나도 혼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쪽으로는 최고가 될 수도 있었다. 정연이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하더라도 이내 우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셋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정연이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럼 중간은 갈 것이다. 우리는 새로 연애를 하는 사이처럼 지낼 수 있을 거고, 정연이는 우리의 사이를 눈치채지 못 할 것이다. 그냥 형부와 가까이 지내는 처제 정도로 생각을 하겠지. 그럼 우리의 체제는 유지될 것이다. 물론 들켜버린다면 아까의 선택보다도 더 최악으로 치달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때 정은이가 눈을 떴다.
으... 오빠... 일어났어요?
정은이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응. 그냥 눈이 일찍 떠졌네.
내가 말했다.
아... 그렇구나. 저는 어제 술 조금 마셨다고 그러는지 피곤하네요.
정은이가 말했다.
응. 나도 속이 좀 불편하다. 속쓰리고 그러네.
내가 말했다.
응? 그래요? 저는 속 그냥 편안한데... 그냥 좀 피곤하고 졸릴 뿐이에요.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정은이가 부러웠다. 단순히 지금 말하고 있는 속. 그러니까 몸 속의 위장이 편안해서 좋다는 게 아니다. 정은이는 속이 좋았다.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정은이는 그냥 눈 앞의 일을, 눈 앞의 일로 볼 수 있었다. 그 뒤의 일은 고민하지 않은 채로 맞설 수 있는 아이였다. 그 점이 부러웠다. 나도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응. 그럼 조금 더 자도 돼.
내가 말했다.
에이... 그래도 일어나야죠. 오빠 속 안 좋으면 같이 해장국이나 먹을까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래? 그럴까? 그럼 해장국 먹고 집에 가자.
내가 말했다. 집에 가자는 말에 정은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집에 가면 우리 이렇게 못 있는 거죠?
정은이가 말했다.
아마도... 그러겠지? 집에 있으면 신경을 써야할 게 많을테니까.
내가 말했다. 내 말에 정은이는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면... 이렇게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요? 오래 안 있을게요.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있어요, 우리.
정은이가 말했다. 정은이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그 간절함을 거절할 만큼 힘이 센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정은이의 품에서 한참을 있었어야 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5분쯤 정은이는 나를 그렇게 안고 있고는 놓아주었다. 정은이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힌 것 같이 보였으나 나는 그걸 모르는 척 해주었다.
가자. 이제. 배고프네. 속도 쓰리고.
내가 말했다. 정은이는 별 말 없이 내 말에 따라 옷을 입고는 따라나왔다. 우리는 근처의 해장국 집으로 갔다. 깔끔하거나 하지않고 오래 되어보이는 허름한 가게였다. 가게에 들어가자 이미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할머니 한분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은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믿음이 가게 생긴 얼굴이었다. 나는 선지해장국을 주문했고, 정은이는 뼈다귀해장국을 주문했다.
정은이는 뼈다귀를 살짝 쥐고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골라먹었다. 그러고보니 해장국을 먹으러 오기를 잘못한 것 같다. 가더라도 메뉴가 조금 더 있고 깔끔한 집을 갔었어야 했다. 지금의 이곳은 너무나 허름했다. 그리고 해장국의 메뉴도 뼈다귀 해장국과 선지해장국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둘 모두 여자가 남자 앞에서 먹기에는 불편한 음식이었다.
뼈다귀를 뜯어먹는 여자에게 호감을 갖는 남자도 있겠지만, 그 모습은 흔히 말하는 깰 때의 모습이 아닌가? 물론 나는 그렇지 않은 편이지만 여자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예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선지해장국을 먹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어쩌면 선지를 수저로 푹푹 떠먹는 것이 뼈다귀를 한손으로 쥐고 뜯는 것보다 더 흉해보일 수도 있으니까.
다른 걸 먹을 걸 그랬다.
내가 말했다.
왜요? 맛이 없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아니, 네가 뭔가 눈치 보는 것 같아서.
내가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는 지금 맛있는데요?
정은이가 말했다. 분명히 해장국의 맛은 좋았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식당이니 그런 것이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 미안했다. 맛있는 음식이지만 맛있게 먹지 못 하니까. 정은이는... 평소에는 그렇게 눈치를 안 보더니. 그렇게 당당하던 애가 지금 내 앞에서는 뼈다귀도 제대로 못 뜯는다. 그런 면이 더 귀엽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