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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4 아내의 함정 (44/53)

00044  아내의 함정  =========================================================================

정은이는 왜 정연이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비볐을까? 나는 그 생각을 해야만 했다. 나는 정은이의 얼굴에 사정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 젖어있는 저 얼굴은 내 정액을 씻어낸 물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정액이 묻어있던 얼굴을 정연이에게 비빈 것이다. 물론 깨끗하게 씻어내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거기에 의문이 조금 들었지만 내가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정연이가 앞에 있었고, 만약에 정연이가 앞에 있지 않다고 해도 그걸 어떻게 물어볼 수가 있겠나? 왜 조금 전까지 정액이 묻어있는 얼굴로 정연이에게 비볐냐고? 그렇게 물어볼 수야 없는 일이지. 만약에 정은이가 그냥 습관적으로 했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테니까.

 정은이는...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다. 그러니까 틀릴 수도 있는 거지만 정은이는... 아마도 일부러 그런 것 같다. 내가 보라고... 내가 보기를 원했겠지. 이런 느낌... 그러니까 일종의 배덕감이라고 해야하나? 내가 정연이를 배신해서 생기는 그런 느낌으로 흥분을 하거나... 뭐... 그런 것을 원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정은이가 스스로 그런 것을 느꼈을 수도 있다. 정연이에게 자랑을 하는 거지. 정은이는 음지에서 나를 만나고, 정연이는 양지에서 나를 만나니까 질투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풀고 싶은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그냥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별다른 이야기들은 없었다. 그냥 둘이 친해보인다는 얘기를 하고, 언니는 어떻네, 형부는 어떻네 정도의 이야기만을 나눌 뿐이었다. 그리고 정은이는 사라졌다.

 여보, 정은이랑 무슨 얘기했어?

 정연이가 물었다. 왜 이런 걸 물어봤을까? 이런 이야기는 아까도 대충했었었는데... 나는 나를 시험해보려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런 용인 거다. 일단 나한테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어본다. 그 다음에 정은이에게도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어보는 거다. 그래서 이야기가 엇갈리면 의심을 해보는 거겠지. 아마 정연이는 나를 그냥 만만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그도 그럴 수 있다. 나는 이런 것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철두철미한 편이 되지.

 무슨 얘기 했겠어? 자기가 저번에 남자친구 문제 있냐고 물어보랬잖아.

 내가 말했다. 나는 저번에 정연이가 했던 말을 꺼냈다. 그러면 당당해진다. 나는 네가 시킨 것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아무런 죄가 없다. 만약에 내가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너의 죄일 것이다.

 아... 그랬지. 그랬던 거 같다. 그래서 뭐래? 남자친구랑 잘 지낸데?

 정연이가 말했다.

 썩 그렇게 잘 지내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내가 말했다. 사실은 나도 잘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뭉뚱그려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단정을 지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만약에 내가 단정을 지어서 여기에서 너무 사이가 좋아서 결혼을 할 것 같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헤어졌다고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내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거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은이는 나를 한편으로 만나고 있으니까. 그말 자체가 잘 지내고 있지는 못하다는 뜻이겠지.

 그래? 얘는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하더니.

 정연이가 말했다.

 나한테도 별 말 안 했어. 그냥 내가 자꾸 캐물으니까 마지못해서 조금 대답해준 것 뿐이야.

 내가 말했다.

 그래? 그렇구만.

 정연이는 그렇게 그냥 넘어갔다.

 나는 정연이와의 대화가 끝나고서 바로 정은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물론 정연이가 모르게.

 정연이가 아까 둘이 무슨 대화를 하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그냥 남자친구 얘기했다고 했어.

 내가 말했다.

 아! 그래요? ㅋㅋㅋ 뭐라고 했는데용?

 정은이가 말했다.

 그냥... 나도 둘 사이를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 한다고. 그냥 대충 듣기로는 사이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어.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내가 말했다.

 에이, 아니에요. 뭐 아예 틀린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어쩔 수 없었던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약간 고맙게 느껴졌다. 어찌보면... 물론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어찌보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기의 사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정부 다 이해해줬다.

 그런데 진짜로는 어떻게 된거야? 요즘 그 사람이랑은 잘 지내고 있어?

 내가 물었다.

 음... 잘 지낸다고 해야하나? 못 지낸다고 해야하나?

 정은이가 말했다.

 응? 왜 그러는 건데?

 내가 물었다.

 헤어질까봐요.

 정은이가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말했다.

 오빠랑 사이도 그렇고... 계속 만나는 거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냥 정리하려고 해요. 아직 정리한 건 아닌데... 그러니까 완전히 정리하려는 건 아닌데 그래도 조금씩은 하고 있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거기에 조금 더 대꾸를 해주고는 정연이가 와서 대충 말을 접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은이가 내게 말을 해왔다. 언니가 자기에게 그때 무슨 말을 했었는지 물어봤다. 내 말을 들었기에 그냥 남자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말을 했단다. 그런데 정연이의 표정이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게 진짜 뭔가를 떠보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지금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다. 정연이에게 최대한 숨기려고 하고 신경을 쓰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이 들고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냥 평범한 가정집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냥 밥을 먹다가도 너 저번에 그건 무슨 일이었냐? 물어볼 수도 있는 일이지. 그런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작은 부분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한다. 왜냐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니까. 작은 부분까지 모두 신경을 쓰지 못 한다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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