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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7 스스로 타락하기 (47/53)

00047  스스로 타락하기  =========================================================================

어? 아니...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나는 갑작스런 반격에 당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계속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 아니었어?

 정연이가 말했다.

 아... 그런 건 아니지...

 나는 말을 하면서도 당황하고 있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애매하다. 확실히 우리가 하는 말은 정연이를 그 쪽으로 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쪽으로 모는 것이기도 했다. 정연이가 조금 더 성적으로 너그러워지게 만드는 거 말이다. 하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해야지 강압적이거나 티가 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정연이가 거부감을 느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가야한다. 안 그러면 아예 안 하느만 못하다.

 에이, 언니는 갑자기 왜 그렇게까지 하고 그래?

 정은이가 나를 도와주며 말했다.

 응? 나도 장난이지. 그런데 지금 말이 그렇잖아.

 정연이가 말했다. 정연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기는 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냥 그렇다고. 여러 사람 만나보고 비교도 해보고 싶어.

 정은이가 말했다.

 남자들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 못 들어봤니?

 정연이가 말했다.

 그것도 남자 많이 만나본 사람이 그런 말을 해야지 언니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리고 실제로 경험하는 거랑 그냥 듣는 거랑 같아? 그럼 여행 같은 거 왜 떠나겠어? 에펠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면 그냥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만 해도 되잖아. 그냥 그렇게 겪는 거랑 실제로 겪는 거랑 다르다니까.

 정은이가 말했다.

 잠깐만, 나도 한마디 해도 돼?

 내가 말했다.

 응. 해봐.

 정연이는 발언권을 주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남자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해서 그냥 나랑 결혼한 거야?

 나는 살짝 서운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으... 응?

 정연이 역시 내 말에 당황했다.

 헐... 언니 설마 그래서 형부를?

 정은이 역시 내 말에 동조하며 몰아가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이제 우리쪽으로 왔다.

 아이, 진짜! 그게 무슨 소리야?

 정연이는 화를 냈다. 물론 그건 진짜로 화를 낸게 아니라 장난으로 낸 거였다.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대충 마무리 지었다.

 ***

 그날 나는 정은이와 따로 또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정연이와의 일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계획대로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연이의 마음을 움직여야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걸 보면 제대로 되는 게 없지 않나? 그냥 말이나 몇마디 나눈게 전부였다. 그리고 마음을 돌리는 건 전혀 하고 있지 못 했고.

 정연이... 그냥 저렇게 하면 되는 건가?

 나는 약간은 다급한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음... 근데 사실 한번에 바꾼다는 게 어려운 거 아니겠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정은이의 말도 분명히 맞았다. 어떻게 사람을 한번에 바꿀 수가 있겠나? 그리고 만약에 한번에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정연이는 그렇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앞에서 뭐라고 말할 수가 있었겠나? 그래, 나도 사실 다른 남자를 만나고 싶었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을 만날게. 그게 너도 원하는 거지? 이렇게 말을 했어야 했나? 그건 아니다.

 그래. 그것도 그렇지. 그래도... 뭔가 좀 그렇더라고. 나로서는 아주 좋은 상황은 아니었잖아.

 내가 말했다.

 음... 그것도 그래요. 아무래도 이건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정은이가 말했다. 정은이는 고민에 빠진 듯했다. 정연이도 마음대로 안 되고 있는데다가 나 역시 이런 말이나 하고 있으니까 답답하겠지.

 음... 그래... 그래도 너무 많이 신경 쓰지는 마.

 내가 말했다. 내가 말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을 거였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써야할 것 같아요.

 정은이가 말했다.

 다른 방법? 다른 방법은 어떤 거야?

 내가 물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에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렇기는 그렇지. 우리가 가족인데 그 앞에서 다른 사람 얘기... 그것도 여자가 다른 남자 얘기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 잖아. 근데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고.

 내가 말했다.

 우리가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하게 하면 되는 거죠.

 정은이가 말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스스로 하게 한다는 게?

 내가 물었다.

 말 그대로 스스로 언니가 변하게 할 거에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거기까지는 알아들었어.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한다는 거야?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되는데 스스로 어떻게 하겠어?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에요. 그런건 다른 사람의 강요로 되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반감이 들 수도 있는 거죠. 원래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법이잖아요.

 정은이가 말했다.

 응... 그건 그렇지...

 내가 말했다.

 그래서 스스로 하게 하는 거에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걸 도대체 어떻게 하냐고?

 내가 또 다시 물었다.

 간단해요.

 정은이가 말했다.

 간단하다고? 어떻게 그게 간단하지?

 내가 물었다.

 요즘은 인터넷에도 그런게 많거든요.

 정은이가 말했다. 그건 맞는말이기는 했다. 인터넷에 성인용 자료는 엄청나게 많다. 수많은 야동들이 있고, 수많은 여자들의 알몸사진이 있다. 물론 남자들 알몸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그래?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정연이가 그런 걸 보게 할 거냐고. 내가 아는 정연이는 그런 걸 찾아보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알아요, 저도.

 정은이가 말했다. 내가 정연이를 잘 알고 있는만큼 정은이 역시 자신의 언니인 정연이를 모를리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한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자기도 모르게요. 자기도 모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듯이 들어가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정은이가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정은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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