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1 정연이의 실체 =========================================================================
저... 내가 사실 인터넷에서 봤거든. 자기 남자친구가 조루라는 글 말이야. 그랬더니 댓글로 사람들이 헤어지라고 많이 그러더라. 섹스도 성격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그걸 보면서 느꼈지. 아... 난 진짜 축복받은 거구나! 하고 말이야.
정연이가 말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래? 그걸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다행이다.
내가 말했다.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물론 지금 정연이가 생각하는 걸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말을 직접 듣는 것과 그걸 그냥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
아주 훌륭해!
정연이가 말했다.
그런데 그런 사이트는 어떤 사이트야? 거기에서는 섹스같은 이야기도 해?
내가 물었다. 물론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떠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으... 응... 그게 아주 나쁜 사이트는 아니고 유머 같은 글이 올라오는 곳이야. 거기가 좋은 점이 뭐냐면 여자만 있거든. 남자는 하나도 없고. 그러다보니까 여자들끼리 더 마음 터놓고 이야기 하는 거야. 원래 여자들 모이면 섹스얘기도 하고 그러잖아.
정연이가 말했다.
그래? 어떻게 여자만 모일 수가 있지?
내가 물었다.
그거 아예 심사라고 해야하나? 그런 걸 하거든. 그러니까 여자밖에 못 들어와.
정연이가 말했다. 정연이는 이제 그 사이트를 거의 신봉하듯이 믿는 사람이 됐다. 그게 나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좋은 점은 정연이가 그 사이트를 믿으면서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심사를 한다는게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그걸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구만. 신기한 곳이네.
나는 그냥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넘어갔다.
우리의 섹스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정연이의 카페활동은 끝이 나지 않았다. 어떤 글을 읽었는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었지만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정연이는 생각보다 댓글을 많이 달았다. 정연이의 아이디로 댓글을 쓴 것들을 찾아보면 정연이가 읽은 글들을 알 수 있다. 한가지 명심해야할 것은 정연이가 댓글을 쓴 글만 정연이가 읽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을 하자면 그 게시판을 읽었다는 것이 되겠지. 만약에 책을 펼쳤는데 중간중간 밑줄이 그어져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 건가? 단순히 밑줄이 그어진 곳만 읽었다고 볼 건가? 아니다. 그 책을 본 것이다. 물론 앞부분에만 밑줄이 그어져 있고 뒷부분에는 밑줄이 안 그어져있다면 뒷부분을 안 읽었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정연이가 본 글은 섹스에 관련된 글이 많았다. 정확히 따지자면 섹스에 관련된 글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 사이트에는 유머글도 여럿이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유머 쪽에 치중된 일이 더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조금씩 섹스에 대한 비중이 커지고 있었다. 그건 일반적인 심리라고 볼수도 있겠다. 남자나 여자나 사실 성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똑같다. 그러니 유머글을 보러 처음에 들어갔더라도 성에 점점 눈길이 가는게 일반적인 심리다.
정연이가 댓글을 안 남긴 것도 정연이가 봤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백퍼센트로 확신을 가지고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건 정연이가 댓글을 단 게시물이었다. 나는 정연이가 댓글을 단 게시물을 쫙 펼쳤다. 생각보다 양이 꽤 됐었는데 열개가 넘어서 그 옆을 눌러야 다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정연이가 댓글을 남긴 글들은 이렇다.
원나잇 했는데 위험할까?
남친이 시들시들한데 새로운 남자가 왔어
나 임신한 것 같아 도와줘!
다른 남자가 좋아지면 쓰레기야?
나 변태인 것 같아
남친이 자꾸 이상한 거 하자고 해
쓸모 없는 글들을 쳐내고 정연이가 제대로 댓글을 단 글들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나는 하나하나 글들을 눌러 읽어봤다. 그 글들은 단순히 정연이가 댓글을 달아서가 아니라 그냥 읽기에도 꽤나 흥미로운 글들이었다. 정연이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전부 여자라니까 여자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원나잇 했는데 위험할까?
남친이 있는데 내가 원래 가끔씩 클럽 같은데에서 원나잇 이런 거 하거든. 근데 사귀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진짜 한번 섹스하고 끝내는 거야. 연락처도 안 받아. 그냥 진짜 섹스만 하는 거라고. 근데 얘가 안에다 쌌거든? 근데 내가 연락처도 안 받는다고 했잖아. 위험한 날이고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지? 얘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애 생기면 어떻게 해?
미친년이라는 소리가 나올만한 글이었다. 하지만 그 글에 달린 댓글은 글을 쓴 사람을 미친년이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수 있다는 반응들이었다.
1. 에휴... 조심 좀 하지!
2. 사후피임약 안 먹은 거야? 아니면 병원가봐
3. 아직 생긴지 안 생긴지도 모르잖아 애가 그렇게 쉽게 생기나?
그런 글들 사이로 정연이의 댓글이 있었다. 정연이의 댓글은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남친이랑 자고 그냥 남친 애라고 해.
이게 정연이가 남긴 글이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그럼 남자친구는 뭐가 되는 건가? 자기애도 아니고... 그러니까 바람을 핀 여자의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애를 낳으라는 건가? 아니면 여자가 바람피워서 생긴 애를 지우는 비용을 대주라는 건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글이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이런 댓글을 달았더라면 그냥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네 하고 넘어갔겠지만 정연이가 이런 글을 남길 줄은 몰랐다. 나는 계속해서 글을 읽어내려갔다.
제목 : 남친이 시들시들한데 새로운 남자가 왔어
정연이의 댓글 : 나는 지금 튼튼해서 문제가 없지만 시들시들하면 나도 흔들릴 듯
제목 : 나 임신한 것 같아 도와줘!
정연이의 댓글 : 괜찮은 사람이면 발목잡고 결혼해버려
제목 : 다른 남자가 좋아지면 쓰레기야?
정연이의 댓글 : 쓰레기 아니지. 사랑하는 게 어떻게 쓰레기야?
제목 : 나 변태인 것 같아
정연이의 댓글 : 세상에 변태는 없어. 그냥 조금 다른 취향인 거지!
제목 : 남친이 자꾸 이상한 거 하자고 해
정연이의 댓글 : 근데 여자들도 그런 거 해보고 싶지 않아? 나도 좀 하자고 했으면 좋겠다. 물론 가끔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