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52 결국은 섹스 (52/53)

00052  결국은 섹스  =========================================================================

                                                      

제목 :  남친이 시들시들한데 새로운 남자가 왔어

 정연이의 댓글 : 나는 지금 튼튼해서 문제가 없지만 시들시들하면 나도 흔들릴 듯

 제목 : 나 임신한 것 같아 도와줘!

 정연이의 댓글 : 괜찮은 사람이면 발목잡고 결혼해버려

 제목 : 다른 남자가 좋아지면 쓰레기야?

 정연이의 댓글 : 쓰레기 아니지. 사랑하는 게 어떻게 쓰레기야?

 제목 : 나 변태인 것 같아

 정연이의 댓글 : 세상에 변태는 없어. 그냥 조금 다른 취향인 거지!

 제목  : 남친이 자꾸 이상한 거 하자고 해

 정연이의 댓글 : 근데 여자들도 그런 거 해보고 싶지 않아? 나도 좀 하자고 했으면 좋겠다. 물론 가끔씩만!

 나는 댓글을 쭉쭉 읽었다. 정연이... 정연이를 스스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하긴 사람을 온전히 다 안다는 건 어렵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그게 모두 사실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운전 중에만 난폭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운전하는 모습만 보고 난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인터넷에서만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니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인터넷에서는 성별을 바꾸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이 현실세계에서 성별을 바꿔서 활동하거나 그러지는 않지 않나?

 그래도... 대충은 알 수 있는 거다. 아주 진중한 사람이 인터넷에서 까불까불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만약에 그렇게 군다면 속으로 까불까불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정연이는 어떨까? 정연이도 내심 변태같은 마음을 숨기고 있는 건가? 정연이...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나와 섹스를 할때도 그런 면모가 살짝 보이기도 했다.

 나는 정연이의 가장 처음 남자다. 그리고 유일한 남자다. 여기에서 글을 읽어볼 때도 정연이는 다른 남자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자기가 나랑만 잤다고 말하는 꼴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나는 정연이의 유일한 남자라고 믿고 있다. 적어도 내가 정연이의 처음인 것은 확실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거지. 그러니까 정연이의 섹스에 대한 변화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정연이는 처음에 섹스를 무서워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섹스 뿐만이 아니라 처음 겪는 일은 누구나 두려워한다. 그래도 정연이는 꽤 늦은 편이었다. 그리고 더 무서워했지. 섹스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몰랐고, 서툴렀다. 처음에는 정말 섹스하다가 잘뻔 했으니까. 하지만 급속도로 성장했다. 어떻게 그렇게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금은 처음과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 하다가... 시작하고 나서도 너무나도 서툴렀던 애가 이제는 위에서도 하고 아래에서도 하고... 그러니까 모든 체위에 거부감 없이 임하는 것은 물론이고 코스프레까지 해주지 않나? 내가 말하는 것에서 빼는 것은 없었다. 야외에서 섹스를 하고 싶다고 하면 야외에서 섹스를 할 수 있게 해줬고, 밖에 나갈 때 아예 속옷을 못 입게 하면 그냥 노팬티 차림으로 밖으로 나가줬다. 그게 나가준 걸까? 나가줬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강요를 하지 않았다. 이랬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스스로 거기에 임한 것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 정연이의 마음 속에도 약간의 변태끼가 있는게 분명했다.

 정연이는 지금 어떤 생각일까? 인터넷에 남긴 저 글이 사실일까? 정말로 일탈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인터넷에서 허세를 떨기 위해 저런 것일까? 그렇다면 그 심리는 뭘까? 인터넷에서 저런 허세를 왜 떠냐는 말이다. 글쎄... 알 수가 없다. 나는 지금도 정연이를 잘 모르고 있었다고 인정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정연이의 심리를 어떻게 알겠나?

 "어때요?"

 정은이가 말했다.

 "응? 뭐가?"

 내가 말했다.

"대충 봤을 거 아니에요? 저도 좀 살펴봤는데 놀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되는 입장에서 보면 더 그런 거 아니겠어요?"

 정은이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정은이는 나보다 위에 있었으니까.

 "음... 나도 놀랐어. 이거... 정연이를 나름대로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그냥 자만이었나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들을 하네. 그런데 저게 진심일까? 나는 잘 모르겠어. 어떻게 알 수 있겠어?"

 내가 말했다.

 "하긴 그것도 그렇죠. 인터넷에서 하는 행동이 진짜 성격이라고 보기도 애매하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속마음이라는 게 있지 않겠어요? 우리 한번 떠보는 거 어때요?"

 정은이가 말했다.

 "떠본다고? 어떻게 떠볼 건데?"

 내가 말했다.

 "뭘 어떻게 떠봐요? 직접 물어봐야지."

 정은이가 말했다.

 "직접 물어보는 건 떠보는게 아니잖아."

 내가 말했다.

 "그런가? 아무튼 물어봐봐요."

 정은이가 말했다.

 "뭐라고 물어봐야 하는데?"

 내가 말했다.

 "아까 얘기가 나왔던 거 있잖아요. 변태같은 섹스들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보고, 원나잇 이런 것도 이야기 해보고 그래요. 어차피 부부잖아요. 부부사이에서 그런 이야기 하는 건 이상한게 아니라고요."

 정은이가 말했다. 정은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부부다. 정연이와 나는 부부인데 못할 말이 뭐가 있겠나?

 "그래. 정은이 말이 맞아. 못할게 뭐가 있어?"

 내가 말했다. 나는 그날 밤 바로 정연이와 마주했다.

 정연이와는 매일을 마주한다. 우리는 부부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긴장되는 게 있었다. 지금 괜히 말을 꺼냈다가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도 그러지 않은가? 평소에 별 말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얘기를 꺼낸다면... 그러면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이 뭔가?

 바로 섹스다. 섹스만 하면 된다. 섹스를 하게 되면 정연이는 지친다. 술을 마신 것 이상으로 지치고 내가 보내버리면 오르가즘에 젖어있어서 마약을 한 것처럼 이성이 조금 풀리게 된다. 그때를 덮치면 된다. 그리고 그때는 이런 말을 할 명분도 충분하다. 섹스를 하고 나서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왜 이상하겠나? 그리고 변태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섹스의 여흥을 돋구는 것이 될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