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71)

세상은 불완전하다..물론 나도 그걸 잘 알고 있다..어쩌면 세상은 

불완전한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그것은 살

아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완벽함이란..모든 것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다면..말이다..그렇다면..아마도 그것은 아무것도 움직

이지 않는 그런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죽음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불완전하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불완전하기 때문에..그것을 완전한 균형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그것이 바로 세상이 움직이는 근원적

인 원동력이 아닐까.. 

어쩌면 망상일지도 모르지만..아무튼 내 생각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 뿐이다..다른 의미는 없다..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윤영호..윤영호...네 말 안들리니...윤영호..." 

"아..예..." 

이상한 일이다. 언제나 뭔가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꼭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 

"예..선생님..." 

"너..무슨 생각하고 있었니..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물론 나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

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다..사실 난 청아하다는 말의 뜻은 잘 모

르겠다..단지..그런 말을 자주 쓰기 때문에..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아무튼 그러니까..그건 듣기 좋고..깨끗한 목소리라는 그런 

의미다... 

"아니..뭐..그냥...아무 생각도 안했는데요..." 

사실 거짓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곧이 곧대로 

말하자면..너무 많은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이럴때는 

그냥..아무렇게나 둘러대는게 편하다.. 

반듯한 이마에 살짝 주름이 지며..갸름한 하얀 얼굴에..못마땅한 

표정이 감돈다..하지만 많이 화가 난 얼굴은 아니었다..금새 주름

은 펴지며..예쁜 얼굴 가득히 어렴풋한 미소가 감돈다...그 미소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좋아..그러면..방금 배운 부분을 불러봐..뭘 배웠는지는 알고 있겠

지..." 

"흠..아..그게..." 

앞에 놓인 음악 교과서를 힐끔 쳐다보았지만..오늘 처음 보는 노

래였다..가사야 써있기는 하지만..악보를 볼줄 모르는 나로써는..노

래를 부르는 건..아무래도..어려운 일이었다.. 

마지못해 일어서기는 했지만..멜로디를 모르니..어쩐다...그냥 모른

다고 할까...하지만 서미연 선생님의 성격으로 봤을때..그보다는 못

불러도 대충이라도 부르는 시늉이라도 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작은새..노래하니..봄이 왔어요.." 

막 한 소절을 끝내자 마자..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

다.. 

"작은새..노래불러..봄이 왔어요.." 

"즐거운 이 봄날을 모여서 노래하자.." 

"다 같이 노래하자..즐거운 봄날을..." 

주변의 반응은 무시한채.. 전혀 멜로디를 모르는 노래였지만.. 가

곡풍으로 가사에 맞추어 대충 떠듬거리며 불러보았다..노래를..아

니..사실은..가사를 읽는 수준이었지만..끝까지 노래를 부르고 나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서미연 선생님의 얼굴을 살펴 보았다... 

뭐랄까..그건..좀..멍하다고나..해야 할까..아니면..넋이 약간 빠졌다

고나 할까..뭔가 꿈이라도 꾸는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저..선생님..." 

"어.." 

"노래 다 불렀는데요..." 

"어..그래...음..그런데..윤영호..너..노래를 알고 부른거니..아니면..노

래를 지어서 부른거니...음정 박자 모두 엉망이야.." 

"크크큭..." 

"와하하하.." 

"그래도..목소리는 좋네..나중에 성우해도 되겠다...듣고 있으니까..

마치..아니다..그게 중요한게 아니지..너..윤영호..수업시간에..한번만 

더 딴짓하고 수업 안들으면..알지.." 

서미연 선생님은 뭔가 엄한 표정이라도 지어보이려는 듯이 두 눈

에 힘을 잔뜩 주고는 인상을 써보았지만..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

이는 것은 왜일까... 

아무튼 수업은 대충 마무리가 되었고...나는 음악책 한권을 손에 

든채..시끄러운 복도를 지나 교실로 돌아왔다.. 

고등학교의 교실이라는게..원래..좀 엉망이다..몸도 크고..마음도..훌

쩍 커버린 아이들을 좁은 닭장같은 교실안에 몰아넣으니..갑갑하

고 좀이 쑤신 아이들이..쉬는 시간이면..그야말로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혼돈..혼란..뭐..그런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되는게 바로 고교 2년생 

교실의 쉬는 시간인 것이다..아니..쉬는 시간이 아니라..점심시간 

말이다... 

음악 수업이 4교시여서..수업 종료와 함께..점심 시간이 되었던 것

이었다..느릿느릿 복도를 걸어왔던 내가 교실에 도착했을 무렵에

는 벌써..도시락 까먹는 아이들로..교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야..한동주...너..죽고 싶냐..." 

"아니..그게..아니고..." 

막 교실 뒷문으로 들어선 나에게 낮익은 두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로..먹을 것도 없고..반찬이라고는 김치 하나뿐인데..그래도 먹

을래.." 

"내가..먹던 말던..그건..니 알바가 아니고..도시락이나..내 놓으라

고..." 

"알았어..여기..." 

힘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은..한동주..말하자면..우리반 왕따라고나 

할까..사실..이건..절대적으로 맞는말도 틀린 말도 아니다..동주를 

괴롭히는 건 기껏해야..서너명 정도다..사실은..두 명이라고 하는게..

더..정확하겠지만... 

하지만..뻔히 괴롭히는 걸 보면서도..누구하나 나서서 막아주는 녀

석도 없으니..사실상..우리반 전체가 동주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해

도..아니라고 발뺌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동주의 도시락을 손에 쥐고..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도시락

을 열어보는 놈은 이준석...하는 짓은 싸가지가 없지만...솔직히 생

긴것도 잘생기고 키도 181인가 2인가..그 정도면 큰편이고 공부

는..전교에서 5등안에는 드는 수재에...집도..우리 학교가 있는 K

시에서는 알아주는 부자다... 

"이런 씨벌..뭐야..도시락 졸라 맛없네... 반찬은 이게 뭐야..그지같

이..." 

"내가..말했잖아..반찬.. 김치 하나라고..." 

"됐으니까..너나 먹어라..." 

"퉤..퉤.." 

반찬이 맘에 안들었는지..준석이 녀석은 동주의 도시락에 침한번 

뱉어 주고는 그대로 동주의 책상위에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아무튼 하는짓이 정말 정나미가 떨어지는 놈이다..꼭..그래야..하나..

잘살고..집에서..먹을 것도 잘 먹는 놈이...돈도 많으니까..매점가서..

맛있는 것도 실컷 사먹을 수 있는 놈이 꼭..지 녀석 도시락은 쉬

는 시간에 미리 까먹고..남의 도시락..그것도..지지리도 가난해서..

제대로..도시락도 못싸오는 그런 녀석의 도시락을 뺐으려고 하니 

말이다.. 

그것도..먹을 반찬 없다고..곱게 주지도 않고..침뱉어서..먹지도 못

하게 하니..말이다.. 

동주 녀석을 쳐다보니..눈에서..뭐랄까..슬픔같은 것이 느껴졌다..분

명히 분노는 아니었다..분노를 느끼기에는 그 동안 너무 많이 당

하고 살았던 것일까... 

동주는 가만히 도시락 뚜껑을 덮어 버렸다..그리고는 어디론가 나

가버렸다.. 

마음이 씁쓸하다..뭐가 무서워 저런걸 보고만 있어야 하나...아니 

사실..무섭기는 하다..이준석도 그렇고..그 녀석의 단짝인..(여러모로 

그 둘은 단짝이다..단짝이라기 보다는 쌍둥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만한 녀석들이다..) 오명진..이 두 놈은 둘다 집안도 비슷하

고 덩치도 둘 다 좋은 편이고..싸움도 잘하는 녀석들인데다가.. 둘

다..전교 5등안에 들정도로 공부도 잘하는 놈들이다... 

솔직히 두 녀석 다..얼핏 봐서는 상당히 괜찮은 녀석들이다... 그 

지랄같은 성격만 빼면 말이다.. 솔직히 좋은 집안에서..사랑받고 

자란 녀석들이..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뭐 하나 남부러울께..

없는 녀석들이.....성격은..왜.. 그런지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수 

없다... 

뭐..어쩌면 특별히 이상한 성격은 아닐지도 모르겠다..사실..동준이

를 이상하리만큼 잔인하게 괴롭히는 것만 빼면...다른 아이들과는 

그런 대로 잘 지내는 편이니까...물론..싸가지가 없고..힘없는 애들 

잘 괴롭히고...기타 등등..상당한 악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야..영호야..도시락 아직 안먹었지..." 

"어..아..그래..같이 먹을까..." 

아마도 유일하게 나보다..늦게..교실에 돌아왔을 녀석...김도인..키는 

165센티미터 정도..통통하게 살이 올라..꼭..곰인형 같은 녀석이다... 

생긴건 이래도..전교 1등의 천재다..평소에 하는 짓으로 봐서는 어

떻게 1등하는지 모르겠지만..아뭍튼 1등은 1등이다..  

내가 도인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전교 1등..왜냐구...

하긴 녀석이 1등이라고 해서..내가 특별히 덕볼 것은 없다...하지

만..아까부터 쭈욱 말해왔지만..우리 반에서..가장 재수 없는 두 

놈...나란히 전교 5등안에는 드는 그 녀석들...도인이 녀석이 우리

반 1등겸 전교 1등을 해주는 덕분에..그나마..두 녀석이 일등하는 

꼴은 안봐도 되는 것이다... 

"야..도인아..넌..살좀 빼야돼...키도 쪼그만 녀석이 남들하고 똑같이 

먹으려고 하니..살이 찌지..넌..작으니까..좀 덜 먹어도 된다고..." 

막 도시락 뚜껑을 연 나와 도진이의 도시락에 어디선가 큼지막한 

팔하나와..그 팔에 어울리게 큼지막한 포크 하나가..쑥하고 들어오

더니..도인이 녀석의 도시락에서는 도시락의 3분의 1쯤은 될 것 

같은 밥 한덩이를 그리고 내 도시락에서는..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까스를 반쯤 푹푹 찔러 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 뭐..이런 개같은 경우가..하는 얼굴로...그 양심없는 팔의 주인

을 올려다 보았다..185센티미터에 90킬로는 되보이는 건장한 체

격..하지만...왠지..얼굴에 비치는 표정은...순박하게만 보이는...박대

호... 

녀석과는 사실..초등학교때부터..잘 아는 사이다..이런 말 하면..믿

지 않겠지만..초등학교 시절만 해도..녀석은 곧잘 나한테 얻어 맞

고 다니고는 했다...요새는 키가 많이 커서..173센티의 내 키로는 

녀석에게..어림도 없지만 말이다.. 

뭐 사실..지금도..때리라면..못때릴 것도 없다..덩치만 크지..순해서..

어쩌면..나한테..몇대 맞고 옛날처럼..울어 버릴지도... 

"영호야..역시 넌..내..친구야..친구..알지..친구..의리..우정...잘 먹었

다...맛있어..굿..." 

녀석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나에게 씨익 미소를 짓고는 

또..다른 녀석들의 도시락을 뺏어 먹으려는지..여기저기...돌아다니

기 시작했다.. 

"너도..내가..작으니까..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영호야..." 

도인이가..뭐랄까..심각하다고 하기에는 좀 약하고..장난스럽다고 

하기에는 좀..진지한 얼굴로..물었다.. 

"아니..대신..넌..머리를 많이 쓰니까..에너지 소모가..흠....내 생각엔..

운동을 좀..많이..하고..." 

나는 또 횡설수설 하기 시작했다... 

"그래..내 생각도.." 

도인이 녀석은 내가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더니..

마지막에..자기 생각도 같다고 말했다...도대체..그게 무슨 말인가..

말을 한 나도..내가..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데..내 생각과 같다

니...아무튼...난 복잡한건 질색이다..대체 뭐가 같냐고 묻고 싶었지

만..그냥..모른척 하고..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5교시는 수학시간이었다..난 수학은 딱 질색이다...특별히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왠지 골치가아프다.. 

"자..그러니까..여기 x와..y의..교차점에..." 

"선생님..질문 있습니다..." 

"명진이...그래...어디가 이해가 안되니..." 

"아..여기..방정식이..미분한 다음에..어떻게 하는 건지..선생님이..한 

번 봐주세요..." 

"그럴까..." 

수학 선생님인..최윤아..선생님...작년에 우리 학교에 처음으로 발령

을 받았으니..올해로 2년차 다..그러고 보니..서미연 선생님과 같이 

왔군...그 때의 풍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어느날..아침의 조회시간이었다..교장 선생님이 두 명의 새로운 선

생님을 소개했느데...바로 그 둘이 서미연 선생님과..최윤아 선생님

이었다..둘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처음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했

다... 

교장 선생님이 대충 소개를 하고는 한 사람씩 마이크를 손에 잡

고..운동장에 서 있던 아이들을 향해...자기 소개를 했을때..그야말

로 운동장은 난리가 아니었다... 

두 명의 새로운 여선생님..그것도...둘 다 늘씬한 키에...스타일 발

군의 미녀들이었다..굳이 우열을 가르자면...물론..개인적인 취향으

로 말이다... 솔직히 나는 왠지 심은하를 연상시키는 차분하고..청

순한 아름다움의 서미연 선생님이 좋다..사실..좋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반했다고 하는게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자주 그녀를 꿈에서 보고는 한다...흐흐흐... 

하지만..일반적인...우리학교 아이들의 평가는 심은하도 좋지만.. 쭉

쭉 빵빵 슈퍼 모델급의 몸매에.. 왠지..전지현을 연상시키는 상큼 

발랄...아뭍튼..섹시한 느낌의..스타일 굿의..최윤아..선생님이말로..우

리 학교의 진정한 퀸카라고들...좀..이상하기는 하지만..그렇게..생각

하는 것이 대세다.. 

"그러니까..선생님..여기 이부분에서..엑스 플러스..알파..다음에...어

떻게..." 

"뭐야..오명진..이런 쉬운 것도 모르고..명진이 답지 않네...그건..이

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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