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14/71)

<-- 4 회: 채음지체...? -->

“마,많이 기다렸지? 추,출입문만 닫고 얼른 가자...!” 

“아, 예...” 

-스으윽...! 

‘흐으음... 확실히 얼굴이랑 뒷모습은 예술인데 말이야...’ 

도서관의 출입문을 감구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손을 높이 뻗어 출입문 상단의 잠금장치를 열쇠로 닫는 순희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까치발을 들고 자신의 키보다 높이 있는 열쇠구멍에 열쇠를 집어넣기 위해 온몸을 쭈욱! 뻗어서 자신도 모르게 올라간 짧은 스커트 아래 드러난 늘씬한 각선미와 힘을 바짝! 준 탱탱하고 육감적인 엉덩이의 굴곡이 스커트 위로 고스란히 드러나 도저히 눈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자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완전 평면을 자랑하는 가슴...!

 그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순희누나에게 욕정을 느낀다거나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혜영누나’가 이상형이기 때문이다.

-찰칵...! 

“헤헷, 다 됐다. 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가자...!” 

“예” 

내가 순희누나의 뒷태를 감상하는 사이 어느새 문을 잠군 누나가 혀를 쏙! 내밀고 귀엽게 웃으며 내 옆에 바짝 다가왔다. 나는 그런 누나를 향해 피식 웃으며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한적한 밤거리를 걸으며 들려오는 순희누나의 하이힐 소리가 묘하게 자극적이었지만, 순희누나에 대한 호감이나 애틋한 마음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약간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었다.

 그렇게 도서관을 나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5분여를 걸었을 때였다. 

“저,저기 있잖아...진우야...” 

“예...?” 

“나,남자들을 어,어떤 여자를 좋아해...?” 

“으음...그,글쎄요...?” 

고개를 푹! 숙이고 나와 함께 말없이 걸어가던 순희누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당황도 잠시. 

잠깐 생각하던 나는 머슥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이면서 순희누나에게 말했다. 

“뭐...대충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그래...? 그,그럼 진우 너는 어,어떤 여자가 좋은데...?” 

“에...?” 

내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녀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순희누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이 누나가 왜 그런 걸 물어보는거지...? 설마 나를 좋아하나?’ 

뭔가 이상한 기대감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죄 지은 아이처럼 다시 고개를 숙이는 순희누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아니겠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나랑 이 오밤중에 같이 걸어가기가 뻘쭘해서 그런 걸 거야.’ 

다시 생각해도 말도 안돼는 생각을 21세 동정남의 착각으로 치부하며 쓸데없는 망상을 떨쳐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저 같은 경우도 그렇죠. 저도 남자니까 일단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으면 호감을 느끼긴하죠.” 

“아,아니! 그런 거 말고...! 이,이상형 같은 거 말이야...!” 

“예? 아하! 이상형...!” 

내 대답이 순희누나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중얼거리듯 조용조용말 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소리치듯이 말하는 순희누나의 모습에 잠깐 멍해졌다가 뒤늦게 누나가 원하는 대답을 깨닫고 아무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이상형이라... 제 이상형은...허리까지 오는 검은색 긴 생머리와 만지면 뽀얀 가루가 묻어나올 것만 같은 백옥같은 피부에 반듯한 이마, 마늘쪽을 엎어놓은 듯 수려한 곡선의 코, 청순해 보이는 눈매. 그리고 주사처럼 붉고 윤기 나는 요염한 입술과...에또...”

“지,진우 너...이,상형이 꽤나 사,상세하구나?” 

“하핫, 그런가요? 아무튼 얼굴은 그 정도에 가슴은 최소 ‘D컵’이상...! 허리도 늘씬하고 다리도 예쁘고 엉덩이는 더 예쁜여자요!” 

이상형이 상세할 수밖에 벌써 몇 년간 지켜온 짝사랑이니까... 

어떻게 말하다보니 이상형이 혜영누나가 되버렸지만 그걸 순희누나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혜영누나를 만날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순희누나에게 이상형을 밝히며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으윽...! 여,역시...가슴이 큰 걸 좋아하는구나...” 

“예?” 

“아,아냐! 아무것도...아! 우리 집에 다왔네!” 

“헤에...이 집이에요?” 

쓰잘데없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순희누나의 집에 다왔는지 작은 탄성을 터뜨리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누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누나의 집을 바라봤다.

“이렇게 큰데서 살아요? 혼자...?” 

“으응...아니야, 언니랑, 여동생하고 같이 살아...” 

“아, 그래요...?” 

평소 명품까진 아니더라도 고급브랜드의 옷을 많이 입어서 집이 꽤 사나보다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딱 봐도 100평이 넘어보이는 어마어마한 저택과 뭔가 사람 기죽게 만드는 거대한 대문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정원은 정말 으리으리했다.

 비록 불면증 덕분에 이정도 저택을 살만한 돈이 있긴 하지만 현실은 아파트단지 거주민이기에 괜히 꿀리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뭐...아무튼 저도 이제 가볼께요. 순희누나” 

“아...! 으응, 지,집까지 바래다 준거 고마워...” 

“하핫, 고맙긴요. 별것도 아닌 일가지고...” 

“그런가...훗...! 아무튼 고마워.” 

“예이, 예이 그럼 들어가세요” 

“응...!” 

-철컥...! 

뭔가 할말이 있는 것처럼 우물쭈물거리다가 이내 피식 웃고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희누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몸을 돌렸다. 그때... 

“아참! 진우야...!” 

“......?” 

현관문 속으로 몸을 완전히 들인 순희누나가 뭔가 생각난게 있다는 듯이 획! 하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내 이름은... ‘박순희’가 아니라, ‘윤혜림’이야...!” 

“........!” 

“다,다음부터는 혜림누나라고 불러줘! 알았지?” 

“아하하하...예...!” 

“잘가~!” 

“예이...” 

어쩐지 이름이 시대착오적으로 촌스럽다고 했다. 젠장...! 

나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순희가...아니라, ‘혜림’누나의 모습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진작 말해주지...! 완전 바보가 된 기분이잖아...?’ 

하지만 혜림누나를 욕할 것도 아닌 게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한지 1년 동안 누나의 이름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벌게진 얼굴로 혜림누나가 대문을 닫을 때까지 마주 손을 흔들어주다가 누나가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자 등을 돌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서오세요~ 아가씨~! 많이 피곤하셨죠? 얼른 씻으세요.) 

(응! 고마워.) 

‘쿠,쿨럭?! 아,아가씨?! 혜,혜림누나가...?!’ 

혜림누나의 집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사례가 들려 한동안 켁켁거리다가 집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