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19/71)

<-- 9 회: 최면, 그리고... -->

“왜,왜 그래? 서,설마 무슨 방법이 있는거야...?!” 

“이,있기는 한데 이게 확실한 방법이 아닌지라...” 

“뭔데? 뭔데?” 

“그게...”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혜림누나의 모습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그러니까 일종의 최면요법과 같은건데요...” 

“최,최면요법...? 그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확실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거고요.” 

크게 낙담하는 혜림누나의 모습을 보다가 불현 듯 생각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최면술’을 이용한 치료(?)였다. 현시대에서 종종 쓰이곤 하는 치료요법이지만 그것이 심리적 치료가 아닌 신체적인 치료인지라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장담도 못하겠고, 더군다나 나는 최면술을 ‘알고’있을 뿐이지 직접 ‘사용’할 줄은 모른다.

 한마디로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혜림누나 스스로가 나의 학습도구가 되어야한다는 단점과, 설혹 최면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누나가 원하는대로 가슴의 크기를 키워줄 지는 의문이라는 소리다.

 나는 그런 점을 혜림누나에게 말했다. 내 욕심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은 그때의 그 범죄자, 하나면 족하니까... 

“...게다가 저는 최면술을 알고 있을 뿐이지, 할 줄은 모르거든요. 즉, 누나가 저의 실험대상이 되어야만해요.” 

“시,실험대상...?” 

‘실험대상’이라는 말에 움찔하며 생각에 잠기는 혜림누나의 모습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그리고 설혹 최면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이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고요. 알다시피 최면요법은 심리적 충격 같은 정식적인 측면을 치료하는 방법이라서...”

“...하겠어!” 

“예, 역시 그런 위험부담을...에엑?! 자,잠깐만! 뭐라고 하셨어요? 방금?!” 

“하겠다고! 기꺼이 네 실험대상이 되어줄게...! 내 콤플렉스만 고칠 수 있다면...!” 

“.........” 

도대체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건지 만 건지, 자세한 설명도 들어보지 않고 결연한 얼굴로 냉큼 ‘하겠다!’라고 말하는 혜림누나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래도 누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니요, 혜림누나! 일이 그렇게 쉽지 많은 않아요. 일단 최면요법이라는 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혜림누나의 모습에 내가 다시 한 번 누나에게 최면술에 대해 설명하려는 찰나, 누나의 입이 먼저 열렸다. 

“왜?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그 최면요법이라는게?” 

“예...?” 

“내가 알기론 최면술이건 최면요법이건 일단 피술자가 시술자의 최면에 걸려야한다는 전제조건하에 모든 게 성립되잖아. 그렇다면 네 최면에 내가 걸려들지 않으면 아무런 치료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설사 최면에 걸린다고 해도시술자가 피술자에게 건 최면을 풀어주면 그 최면에서 깨어나는 거잖아. 안 그래?”

“아...!” 

혜림누나의 조리 있는 설명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누나의 말로 인해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 나였군...!’ 

확실히 누나의 말대로 ‘최면술’이라는 것은 시술자가 최면을 걸고자하는 대상에게 최면을 걸어, 대상자가 최면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즉 바꿔 말하면 최면에 걸리지 않으면 그저 시술자는 뻘 짓을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다는 말이다. 게다가 최면이라는 것은 시술자가 대상자에게 건 최면을 깨버리면 대상자는 최면을 걸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온다.

 나는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채음진경’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끔찍한 파급효과 때문에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최면술은 안전해! 오히려 이건 나한테 기회다...!’ 

이번 일은 불법적으로나 음성적으로 최면술을 수련할 필요 없이, 상호간의 동의하에 최면술을 연마(硏磨)할 좋은 기회였다. 그것도 사람을 대상으로!

“그,그렇군요. 제가 착각했네요...생각해보니 누나의 말이 맞아요!” 

“그렇지?!” 

“예!” 

내 실수를 인정하기 무섭게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혜림누나에게 싱긋 웃었다. 

설혹 누나가 최면에 안 걸리거나, 최면에 걸려서 치료를 받던, 효과가 없던 간에 나에게는 좋은 기회이자, 경험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내가 환하게 웃는 혜림누나의 모습을 보며 최면술을 사용해보기로 결정했을 때. 

“그럼 어서 시작하자!” 

“에엑?! 지,지금요?!” 

“응!” 

혜림누나가 내 손을 잡아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설마 누나가 지금당장 최면치료를 하겠다고 나올지 몰라 당황한 표정을 짓자 혜림누나가 나를 바라보며 ‘뭐 문제 있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 예. 마음대로 하세요...” 

“헤헷! 그럼 일단 조금 편한 곳으로 가자!” 

“예...” 

혜림누나도 TV나 기타 매체에서 최면을 걸 때 대상자가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최면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를 데리고 도서관 한쪽에 마련된 직원휴게실로 향했다.

 게다가 어차피 이 시간에는 도서관에 올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누나나 나나 잘 알고 있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찰칵...! 

“이정도면 괜찮겠지, 진유야?” 

“아,예...” 

뭔가 혜림누나에게 질질 끌려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혜림누나의 다급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혜림누나가 뭐 때문에 이렇게 절박한지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나중에 최면요법을 하자고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직원휴게실에 들어오기 무섭게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는 혜림누나의 모습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기 소파에 누워 계세요. 간단한 준비를 해야 하니까...아참! 그리고...” 

“응?” 

내 말대로 소파로 걸어가 누우려다가 말끝을 흐리는 나 때문에 누운 것도 아니고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는 혜림누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누나의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냈다.

-톡...! 

“앗, 따가!” 

“머리카락 한 올좀 빌릴게요. 누나, 후훗!” 

“이잇! 진우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에이, 오해에요 누나” 

갑작스럽게 머리카락이 뽑히며 느껴진 따가움에 인상을 찌푸린 혜림누나가 샐쭉한 얼굴로 나를 쏘아보자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누나를 진정시키고는 소파에 눕혔다.

“자자, 괜히 생사람 잡지마시고 편하게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울 때처럼...” 

“이,이렇게...?” 

“예, 그렇게 편하게요..” 

신고 있던 검은 하이힐을 벗어서 가지런히 소파 옆에 놓아두고는 긴 소파에 몸을 누위는 혜림누나의 고혹적인 각선미가 조명은 받아 반짝이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어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이내 나는 누워있는 누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혹시 몰라 미리 만들어 두었던 구멍 뚫린 동전을 주머니에서 꺼내 정 가운데 뚫린 구멍에 누나의 머리카락을 넣어 간단한 최면도구를 만들었다.

“아직 입문자 단계라 이런 도구가 반드시 있어야지...” 

‘하지만 나중에는 분명 눈빛이나 목소리로도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최면술에 숙련이 되면 눈빛과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대상에게 최면을 걸 수 있다고 내가 얻은 ‘최면술’에 적혀있었다. 뭐 지금의 내게는 너무나 멀고 먼 이야기지만...

 그렇게 간단한 최면도구를 즉석에서 만들어낸 나는 양손을 가지런히 아랫배에 올려두고 이따금씩 자신의 짧은 미니스커트를 끌어내리는 혜림누나에게 다가갔다.

“자아, 누나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고요. 아시다시피 최면이라는 건 시술자와 피술자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저를 믿으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고 이 동전을 가만히 바라보세요. 아셨죠?”

“으응...!” 

나름 무방비하다면 무방비한 모습으로 내 앞에 누워있는 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대답하는 혜림누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머리카락에 꿰인 동전을 누나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자, 눈으로는 이 동전을 계속 주시해주세요.” 

“아,알았어...” 

“그럼, 시작합니다.” 

-흔들...흔들...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며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동전을 지긋이 바라보는 혜림누나의 눈동자가 동전을 따라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최면술’에 저술된 바에 의하면 이런 것은 상대에게 자신이 최면을 걸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 시켜주기 위한 행동이다. 시술자와 피술자간의 믿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랄까? 즉, 보다 최면에 쉽게 걸려들게 하기위한 장치라는 소리다.

“자아...천천히...아주 천천히...심호흡을 하세요...아주 천천히...천천히...” 

“스으으으으읍....하아아아....스으으으으읍....하아아아....” 

“아주 잘 하고 있어요. 그렇게 천천히...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몸을 이완시키는 거에요...마치 달콤한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호흡을 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잠에 빠져드는 거에요...아주 아주 달콤한 수면에...천천히...천천히...”

“스으으읍...하아아아...스으으읍...하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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