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회: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간... -->
어렵사리 상담을 수락하는 내 모습에 나에게 살짝 윙크를 하며 강의실로 들어서는 마리아 교수님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방과 후에 이런 미인과 단둘이라...나쁘지 않긴하네...!’
강의실로 들어서는 마리아교수님은 확실히 한국에선 잘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외국인들이, 특히 여성은 한국사람이 보기에 예쁜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졌다. 아,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어쨌든 강의실로 들어서는 마리아교수님은 미국인답게 새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보이는 맑고 하얀 피부와 살짝 웨이브를 넣어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금발, 그리고 흔히 서구적이라고 말하는 작고 갸름한 얼굴형에 반듯한 이마, 그리고 금빛이 감도는 연한 갈색의 아름다운 눈썹, 또 그 아래 자리하고 있는 맑고 투명한 눈 속에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풍성한 속눈썹이 그녀를 이지적인 도시미녀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곧게 뻗어있는 오똑한 코, 새하얀 피부와 대조적으로 선홍빛이 아름다운 입술을 하고 있어 어딘지 모르게 요염하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확실히 외국인답게 늘씬한 키를 자랑하며 아름다운 얼굴아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어깨와 목선을 진한 회색빛의 터틀넥티셔츠로 가리고, 하늘거리는 검은색 가디건을 입어 그 가녀린 팔의 온기를 유지하는 한편 한국의 추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해 빨갛게 상기된 교수님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애처롭게 보였다. 게다가 니트로 이루어진 터틀넥티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져 위태롭게 보일만큼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스커트위로 그 육감적인 곡선을 완연하게 드러내는 탱탱한 엉덩이와 검은 스타킹으로 뒤덮여 스커트의 옆트임 사이로 살짝살짝 그 모습을 보이는 늘씬하고 고혹적인 각선미, 또 도도하게 느껴지는 교수님의 발걸음을 부각시키는 검은색 하이힐이 나를 만족스럽게 하고 있었다.
-드르륵...!
“Um...이제...뭘 하면되, 진우?”
“아...!”
내가 마리아교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끽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내 앞에 앉은 교수님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음? 아! No, No, 괜...찮아”
“하하, 다행이네요. 아, 뭘하면 되냐고 물으셨죠?”
“응!”
“별로 하실 건 없어요. 그냥 저한테 교수님의 고민을 말씀해 주시면 돼요.”
“고...민...?”
“아...!”
확실히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뭔가를 상담 받는다는 것이 어색했는지 어색해하다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반문하는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아무래도 안돼겠는걸...? 내가 아무리 최면으로 교수님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고 하지만 언어적 문제 때문에 효과가 별로 없겠어...!’
자고로 상담이라는 것은 받는 사람이나 들어주는 사람이나 마음이 편해야하고, 두 사람간의 유대감을 형성해 원활한 상담을 해야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언어적인 문제가 있어 교수님도 불편하고 나도 불편했다. 특히나 언어적인 차이는 자칫하면 상대의 말을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문제가 더 심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마리아 교수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마리아교수님,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 생각해서 잘 모르시는 한국어 쓰실 필요는 없어요.”
“Really?”
“예, 제가 회화능력이 뛰어나거든요.”
“흐으음...!”
그냥 편하게 영어로 말하라는 내 말에 나를 바라보며 ‘과연 네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이거 아무래도 못 믿는 눈치인데...? 하긴, 나라도 안 믿지 영어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강의시간에 맨날 딴전만 피우니...’
확실히 마리아교수님이 믿지 못할 만했다. 강의시간에 매일 딴 짓하기 일 수고, 성적도 안 좋으니까...하지만 그건 겉만 보고 판단한 것. 불면증에 걸린 나로서는 그 기나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미 옛날 옛적에 영어를 마스터했다. 더불어 몇몇 언어도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뿐.
결국 미심적은 표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속여서 죄송해요. 교수님, 저 영어할 줄 알아요.”
“.........?!”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능숙한 영어에 예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죄송해요...”
“아,아냐 그,그럴 수도 있지. 근데 그동안 왜 숨긴거야? 진우, 너 그 정도 실력이면 내 강의를 안 들어도 되잖아 근데...왜...?”
“아, 그거요? 그냥...평범하고 싶었달까...? 뭐, 그런 이유 때문에요. 외국 한번 가보지도 않고, 혼자서 독학한 학생이 능숙하게 영어를 쓰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거든요.”
“독학? 설마 너...!”
‘이런...! 말이 헛 나왔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놀란 기색이 역력하게 말하는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오랜만에 마음 놓고 말을 했더니 말이 헛 나왔다.
‘독학했다.’는 말에 ‘설마...!’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나는 난감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고, 교수님은 뭔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독학했다는 말...사실이야?”
나를 향해 뭔가 기대어린 눈빛을 보내며 말하는 마리아교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영어가 아니라 불어(佛語)였다.
‘이럴 줄 알았다...젠장!’
느닷없이 튀어나온 불어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야 했지만 그 뜻을 알 수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 해버렸고, 마리아교수님은 ‘이것봐라...?’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즉, 딱 걸렸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마리아교수님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리아교수님을 향해 대답했다. 불어로...
“하아아...예, 독학했어요.”
“세상에...!”
“아,아 너무 그러지 마세요...그게 싫어서 숨기려고 한거니까요.”
“아, 미안...!”
내가 불어마저 능숙하게 사용하자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마리아교수님을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리자 교수님이 사과를 했다. 확실히 한국인보다 표정이 다양한 미국인이라서 인지 얼굴에 그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교수님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고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하아아...뭐, 괜찮아요. 다만...”
“비밀은 지킬게.”
“감사합니다.”
“후훗, 뭘 이런 걸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