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28/71)

<-- 18 회: 천사와 악마 그리고 인간... -->

-물컹! 물컹! 

‘호오? 저승의 지면 상태는 다 이런 건가? 엄청 부드럽고 푹신푹신한데? 게다가...흐으음~! 이 향기...! 정말 마음에 들어...!’ 

얼굴이 파묻힌 지면(?)을 손으로 주물럭거리자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감촉에 한동안 그 독특한(?) 촉감을 만끽하던 나는 콧속으로 들어오는 아찔할 정도로 자극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음란한 냄새에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더욱더 얼굴을 지면(?)에 파묻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흐으응~! 역시 젊은 인간 수컷은 꽤나 대담한걸...? 이런 상황에서도 본능에 충실한 걸보니...” 

“.......?”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오르는 색기 넘치는 목소리가 지면(?) 상태를 확인하는 내 귓가에 들려왔고, 나는 그 요염하고 색기 넘치는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헉!?” 

눈을 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두 눈에 비친 목소리의 주인공. 그는 아니 그녀는 숫양의 뿔과 박쥐의 날개를 가진, 흔히 말하는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와 악마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도,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도 경험한 바가 있었지만 이렇게 코앞에서, 아니 악마로 추정되는 여성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그 존재를 확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나는 그대로 몸을 딱딱하게 굳히며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나에게 자신의 가슴을 희롱당한 악마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고는 자신의 몸을 내게 바짝 밀착시키며 입을 열었다. 

“흐으응~♡ 이제 그만두는 거야...? 한창 달아오르는 중이었는데...” 

“아,악마...?!” 

“헤에...?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인간인가?” 

나에게 몸을 밀착시키는 악마의 품에서 떨어져 나오며 그렇게 소리치자 악마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그때. 

“역시 네 녀석들의 소행인가...?” 

“어머나? 불청객이 오셨네?” 

“저,저건...!” 

등 뒤에서 한기가 느껴지는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순백색의 한 쌍의 날개와 머리위에 새하얀 링을 지니고 있는 천사였기 때문이었다. 

천사와 악마. 이 둘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아까 나를 죽이려 했던 괴물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럼 저건...마수(魔獸)!” 

“호오? 그것마저도 알고 있다니...재밌는 인간이네?” 

“.......” 

악마가 천사들을 공격하기 위해 지상계에 소환한다는 마수였다. 

그 사실을 입 밖으로 중얼거리자 상반되는 두 존재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들의 시선에 위축이 되어 뒤로 물러섰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천사와 악마 중 악마가 예의 그 아찔한 미소를 지으며 천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아 어쨌든 이번일은 우리 잘못이아니라고. 저 망할 하등생물이 폭주해버리는 바람에 제멋대로 숙주를 변화시킨 거니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하여간 매정하다니까...아무튼 이번일은 우리 쪽 실수를 인정하고 그냥 넘어가자고.” 

“닥쳐랏!” 

-파밧!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하고서, 왠지 모르게 겁먹은 표정으로 악마를 바라보는 마수를 향해 손짓을 해서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괴물을 사라지게 하는 악마를 향해 천사가 어디선가 검을 빼들고 휘둘렀다.

 적어도 10여미터 떨어진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악마에게 검을 휘두르는 천사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는 사이, 마찬가지로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으로 솟아오른 악마가 자신의 검은 날개를 활짝 펴며 허공으로 피하며 입을 열었다.

-펄럭! 

“이크! 정말이지 성질 급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뭐 어쨌든 볼일은 마쳤으니 나는 이만...그럼!” 

-핏! 

자신에게 검을 휘두른 천사를 바라보며 혀를 찬 악마가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는 나에게 교태어린 눈웃음을 짓고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넋이 나간 얼굴로 악마가 사자진 허공과 분한 표정으로 검을 회수하는 천사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다가 천사와 눈이 마주쳤다.

“어린 네피림이여. 괜찮은가?” 

“예? 예...구,구해줘서 감사합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 상태를 확인하는 천사의 모습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천사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 임무를 다했을 뿐, 그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아...!” 

“...아직 각성조차 하지 못한 어린 네피림이여, 그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팟! 

“아앗...!” 

악마가 사라질 때처럼 눈앞에서 사라지는 천사의 모습에 황급히 그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그녀는 사라진 이후였다. 그 덕분에 빈 허공에 손을 휘두른 나는 이 꿈만 같은 현실에 멍하니 천사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슬쩍 볼을 꼬집어 보았다.

-꽈악! 

“으윽! 아픈걸 보니 꿈은 아니네...!” 

손을 들어 볼을 꼬집자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에 방금 일어난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고개를 돌려 괴물의 촉수가 내리 꽂혔던, 내가 숨어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촉수가 땅에 깊숙이 박히며 만들어낸 작은 고랑이 파여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내가 정말로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멍하니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한주희!” 

-타다닥! 

괴물의 습격을 받았던 여성. 

내 소꿉친구이자, 같은 아파트에 살고,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한주희를 떠올리며 황급히 그녀가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아...! 다행이다. 무사하구나...!” 

“........” 

다행히 괴물의 습격은 천사와 악마가 등장하면서 그쳤는지 의식을 잃은 그 모습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있는 한주희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그녀를 들쳐 업고 그곳을 벗어났다. 혹시나 그 흉측한 괴물이 또 다시 등장할까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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