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회: 만남, 그리고... -->
괜히 이런저런 말들을 나누다가 마리아교수님에게 들켰던 것처럼 내가 가진 지식이 들키는 게 두려워 그렇게 황급히 자리를 피한 나는.
‘아참! 또 마리아교수님한테 건 최면을 안 풀어줬잖아?!’
혜림이가 기다리고 있는 도서관에 도착하고 나서야 뒤늦게 그 사실을 상기해 냈다.
그 사실에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혜림이가 도서관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몇일 있으면 마리아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냥 다음을 기약하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나를 반갑게 맞이해줄 혜림이를 떠올리며 웃는 낯으로 도서관에 들어서다가.
“혜림...!”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야? 저것들...?’
혜림이가 있는 창구를 중심으로 남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수 없이 드나들면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인파, 그것도 남자들만 득실거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런 내 귀에.
“저,저기 혹시 바쁘시지 않으면 저랑 식사라도...!”
“하아...! 지금 뒤에 줄 서있는 것 안보이세요?! 다음 분!”
“아...!”
조심스러운 어떤 남자의 목소리와 짜증이 가득한 혜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 그렇게 된 거구나?’
그런 둘의 대화를 들은 나는 지금 이 말도 안 돼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겨울방학 전까지만 해도 ‘절벽미인’이라는 소릴 듣던 혜림이가 나로 인해 글래머를 넘어 폭유가 되어 나타나자 절벽일 당시에도 나름 인기가 있었던 혜림이에게 남자들이 몰려온 것이다.
그 덕분에 혜림이는 지금 짜증이 가득한 상태고.
‘한마디로 이것들이 지금 혜림이한테 수작 부리려고 온 것들이라는 말이지?’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괜히 화가 났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 여자를 넘보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위기의식과 분노가 치민 것이다.
뭐, 혜림이가 너무 예쁘다보니, 그리고 나로 인해 뭇 남성들이 로망으로 생각하는 거유미인이 되다보니 벌어진 일이지만 그걸 가지고 혜림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저,저랑 사귀어주세요!”
“하아..! 정말..! 저 이미 임자 있다는 말 못 들으셨어요?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아,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자신이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남자들이 잘못된 거다.
물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사람 없고,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확실하게 거부하는데 달라붙으면 확실히 잘못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미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넣어 경기종료가 된 상황에 백날 공을 차봐야 골로 인정 안 해준답니다. 자! 다음..,!”
그리고 저렇게 꿋꿋하고 확실하게 남자들의 접근을 막아내는 혜림이에게 화를 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또 다시 한명의 남자를 처리한 혜림이가 다음 분을 외치다가 나를 발견하곤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화사하게 웃었다. 덕분에 주변은 물론 줄을 서 있던 남자들의 표정이 헤벌쭉 헤졌으나, 그런 것쯤이야 가볍게 무시할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진우야-!”
혜림이가 나를 발견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날듯이 뛰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많은 인파로 재현되는 모세의 기적 속에 그 누구의 제지도 없이 나에게 달려온 혜림이는.
와락-!
“보고 싶었어...!”
얼른 내 품에 안겨왔다.
그런 혜림이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나를 죽일 기세로 쳐다봤지만 나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왜 이제 왔냐는 듯 내 품에 기대어 나를 올려다보는 혜림이를 향해 나직하게 말하며.
“나도...!”
“으응...!”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연인들처럼 혜림이를 껴안고 혜림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평소라면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절대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나도 그렇고, 혜림이도 그렇고 서로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보란 듯이 키스를 한 것이다.
덕분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뜨거운 키스를 나누게 된 우리는 한참동안이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키스를 나누다가 허탈한 듯, 그리고 부러운 듯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천천히, 그리고 잘 보란 듯이 입술을 떼어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뭐야? 원래 이렇게 안 바쁘잖아?”
“으응...! 그게...나한테 작업 걸려고 온 사람들인가봐...”
“흐음...!”
그리곤 주변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을 쓰윽 훑어보곤. 내 시선을 슬쩍 피하는 이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우리 혜림이가 예쁘긴 하지. 그래서 내가 결혼반지 끼라고 했잖아.”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자.
“나,나도 끼고 싶은데...진우 너도 알잖아. 나 금속알레르기 있어서 악세사리 못하는 거...”
그 뜻을 용케 알아차린 혜림이가 울상을 지으며 내 말을 받아쳤다.
그런 혜림이의 모습에 기특하기도 하고, 우리가 자신들을 속이는 줄도 모르고 벙찐 표정을 짓는 남자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을 이었다.
“에휴..! 그놈의 금속알레르기...! 정말 짜증난 다니까...”
“그러게...”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주변을 쓰윽 훑어보자 그제야 혜림이가 데이트신청 등을 거절한 이유를 알게 된(사실은 나와 혜림이의 연기에 속을 거지만) 남자들이 쭈뼛거리며 자리를 떴다. 물론 개중에는 미심적은 눈길로 우릴 바라보며 자리를 뜨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소수 일뿐이었다. 게다가.
-한! 시!
“앗! 점심시간이다! 언니! 저 이이랑 같이 점심 좀 먹고 올게요.”
“으응! 그러렴...!”
혜림이가 오후 1시를 알리는 핸드폰소리에 반색하며 한때 내가 혜림이의 명찰로 착각했던 ‘박순희’라는 명찰을 차고 있는 동료에게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이끌고 직원휴게실로 향하자 그마저도 발길을 돌렸다.
그 덕분에 무사히(?)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혜림이와 나는.
-끼이익...! 철컥!
“풋! 푸하하하하!”
“쿡! 아하하하!”
직원휴게실의 문이 닫히기 무섭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들이 했던 일들과 그것에 속아 알아서 떨어져나간 이들이 떠올라 웃음을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왔노라! 썼노라! 폭참 하였노라!
라고...외치고 싶지만 그저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옆동네에서 조금씩 연재하다가 그마저도 연중하고 철새처럼 이리저리 다녀서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냥 두곳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으면 격일로 '최면술사'와 '악마의 물방울'이란 신작을 연재할 것이며 다른것은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더 넥타'는...하아...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녀석인지라 어찌할 방법을 모르겠네요.
일단 조금씩 수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력 무기한 연중? 그런겁니다.
아무튼 앞으로 성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