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66/71)

 "결정한거야?"

이지헌은 안절부절하는 김다연을 향해 물었다. 그 말과 동시에 거리를 걸어가던 김다연의 몸이 멈추어서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허둥대는 모양을 이지헌은 지켜보고 있었다.

 "그,, 그게 말이야... 꼭 그렇다기 보다는... 뭐랄까"

 "풋, 그러니까 결정한거네"

 "아,, 그, 그게 아니라"

 "그럼 나도 니 번호 "내 여자"라고 저장한다? 너 설마 내가 저장해 둔 이름 바꾼거 아니지?"

 "아, 자, 잠깐만!! 그게..."

 "응? 뭐 할말이라도 있어? ....혹시 내가 착각한건가?"

이지헌은 살짝 서운한 말투로 물었다. 김다연은 당황하며 대답해왔다.

 "아, 아냐 그게 아니라"

 "그럼 너도 받아준거네"

 "자, 잠깐만!!"

 "응?"

 "나, 나는 아직 남자 사귀어 본 적도 없구,,, 니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구,,, 그래서,,, 저어,, 그게,, 그래서"

 "무튼 너도 내가 마음에 드는거잖아"

 "아,, 그건 그런데,,, 그게 말이야,,"

 "그럼 된거네, 뭐가 더 필요한데?"

이지헌은 순진하게 반응하는 김다연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예상한대로 김다연은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고 있었다. 이미 이지헌에게 홀랑 빠져버린 모양인데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지헌은 이번 의뢰 대상은 좀 더 특별하게 사랑해 주리라고 다짐했다.

 "하아,,, 난 모르겠어... 근데"

 "그런데?"

 "후우,,, 모르겠어 정말... 너를 믿어도 될지... 엄마가 남자들은 전부 짐승이라고,, 앗!"

한숨을 내쉬던 김다연은 갑자기 뒤에서 자신을 누군가가 안아오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김다연의 눈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이지헌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남자들은 전부 짐승이지 나만 빼고"

김다연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이지헌을 보며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학원을 마치고, 이지헌과 김다연은 나란히 학원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제 어디가?"

이지헌은 김다연을 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손을 맞잡고 있는 상태였다. 김다연은 살짝 붉어진 볼로 이지헌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집에 가야지... 너는?"

 "음, 이제 겨우 7시인데 집에 간다구?"

 "딱히 갈 데두 없구, 늦게 들어오면 걱정하시거든"

 "잠깐만 놀다가자"

이지헌은 김다연의 손을 잡아끌었다. 김다연은 난색을 표하며 살짝 저항했지만 이내 얌전히 이지헌의 뒤를 따라왔다. 이지헌의 손을 잡고 걷는 김다연은 불안한 듯 계속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왜 그래?"

 "이런 일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엄마 걱정하실텐데"

 "집에 연락드려, 친구랑 잠깐만 놀다 간다구, 한 두시간만 같이 놀고 집에 들어가면 될거야"

 "두 시간,,?"

 "응, 친구들하고 노래방이라도 간다구 그래"

 "아, 알았어"

김다연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지헌은 김다연의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맑은 미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김다연의 모친일 것이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처녀 못지 않은 몸매와 미모를 자랑하는 먹음직스러운 사냥감...

 "10시 전에는 꼭 들어오라셔"

김다연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쉽게 허락을 받아서인지 표정이 조금은 밝아져 있었다. 이지헌은 김다연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자, 내가 아는 노래방 있는데 거기 무지 좋아, 노래 잘 해?"

 "아, 아니,, 나 노래 못해"

 "내가 가르쳐 줄게 그럼,, 가자!"

김다연은 쭈뼛거리며 망설였지만 이지헌이 강하게 잡아 끌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끌려가는 것이었다. 이지헌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10분 정도 거리의 한 노래방으로 김다연을 끌고갔다. 

 "앉아"

이지헌은 작은 룸으로 김다연을 데리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김다연은 현란한 미러볼의 불빛이 반짝거리고 어쩐지 향긋한 향기가 흘러들어오는 듯한 노래방 룸의 안쪽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이지헌은 음료수 두 컵과 마이크에 씌우는 커버를 두고 나가는 여종업원에게 눈웃음으로 인사했다. 김다연은 이지헌을 향해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말야,, 여기는 왜 전부다 여자밖에 없는거야?"

김다연은 카운터에서부터 아르바이트 생들까지 전부 여자들 밖에 없는 이 노래방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지헌은 말 없이 붉은 빛의 음료수를 김다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글쎄? 일종의 마케팅이 아닐까? 자, 이거 마셔"

 "으응"

김다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음료수를 받아 마셨다. 김다연은 어딘가 몽롱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기,, 기분이 이상해"

이지헌은 조용히 김다연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흐릿하게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김다연의 눈동자가 하얗게 흐려진 순간 이지헌의 입에서 사이한 분위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면 코드 도입.. 더럽혀진 이슬"

 "더럽혀진.. 이슬"

김다연의 입술이 힘없이 열리며 이지헌이 내뱉은 말을 반복했다. 이지헌은 주머니에서 팬타그램을 꺼내 김다연의 눈 앞에서 흔들며 본격적인 최면 암시에 들어갔다.

 "너의 이성은 이제 깊고 깊은 심연의 암흑속으로 잠기어 들어간다... 세상의 빛을 내다볼 수 없으며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나락의 동굴속으로 한없이.. 한없이 떨어져 내린다... 천천히 너의 눈은 감기고, 호흡은 조용해지며, 온 몸은 나른하게 편안해진다...."

이지헌은 천천히 김다연의 상태를 살피며 최면술을 계속 펼쳐나갔다. 어느새 방으로 들어온 두 명의 여종업원,,, 이지헌의 인형들인 엘리스와 레아는 최면 향로를 꺼내 스위치를 올려두고 방 한켠을 가득 채우고 있는 TV스크린의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굉장한 사운드의 기묘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스크린에는 끈적한 땀으로 번들거리는 남녀의 나체가 엉키며 안타까운 탄성을 질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너라는 존재는 깊고 깊은 심연의 감옥에 갇혀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 너는 김다연이라는 존재가 아니다... 너는... 마스터인 나를 위해 봉사하는 인형이다... 나는 이제부터 너의 본능을 깨워주는 선도자이자 너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사용하는 마스터이다... 이제 너의 잠재된 본 모습에 눈을 뜨거라"

이지헌은 점멸하는 팬타그램의 불빛을 김다연의 흐릿한 동공에 비추며 낮은 목소리를 계속 반복해서 내었다. 이윽고, 흐릿하던 김다연의 동공에 빛이 돌아오고 천천히 움직이는 김다연의 눈동자는 이지헌의 미소 띈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김다연의 입술이 열렸다.

 "당신은 나의 마스터...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인형입니다."

이지헌은 성공적으로 최면 상태에 돌입한 김다연의 모습을 보며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김다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 두었던 최면향과 룸 안의 최면진법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제 암브로시니의 약효가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하면 이지헌의 최면술은 김다연의 이성을 완전히 구석으로 쳐박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지헌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김다연의 뺨을 훑듯이 타고 내리며 김다연의 조금씩 떨리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가댔다.

 "아읏,"

김다연은 입술에 와닿는 낯선 촉감에 몸을 움츠리며 경계했다. 하지만 이지헌의 손이 턱을 붙잡아 더 이상 머리를 빼내지 못하게 하고 입술을 들이밀자 김다연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김다연의 부드러운 입술에 이지헌의 입술이 겹쳐지고 더 없이 달콤하고 짜릿한 감각이 빠르게 덮쳐왔다. 이지헌은 김다연이 숨을 들이쉬는 타이밍을 보고 있다가 재빨리 혀를 김다연의 입 속으로 들이밀었다.

 "꺄으읏!"

김다연은 이런 경험이 처음인건지 입 속으로 들어오는 이지헌의 혀의 감촉에 기겁하며 몸을 빼려했다. 하지만 이미 이지헌의 최면술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이지헌의 손이 강하게 김다연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물어나지 못했다. 이지헌은 입 안에서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김다연의 혀를 쫓아가 자신의 혀로 감싸며 빨아들였다.

 "츄르릅!"

김다연의 입이 살짝 벌어지며 안에서 타액이 흘러넘쳤다. 이지헌은 김다연의 입 안으로 자신의 타액을 흘려보내며 온통 끈적하게 차오른 그 속에서 자신의 혀를 이용해 김다연의 무방비한 혀를 농락했다. 김다연은 입 안에 가득한 침을 삼키며 몸을 떨었다. 이지헌은 김다연의 혀를 감아 돌리고 김다연의 가지런한 치열을 훑으며 계속해서 김다연의 순진한 입속을 괴롭혔다. 이지헌은 자신의 손에 닿아있는 김다연의 뺨이 뜨겁게 달아올랐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지헌의 손은 빠르게 김다연의 몸을 쓰다듬으며 옷을 밀어올렸다. 교복 치마를 밀어올리고 그 안의 속옷을 벗겨내린 이지헌의 손은 은근한 습기를 내비치는 김다연의 그곳을 건드리며 자극하고 있었고 다른 손은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어내리며 그 안의 튼실한 유방을 드러내 보이게 하고 있었다.

 "오오,,"

흰색의 브래지어를 끌러내고 드러내 보인 가슴을 본 이지헌은 탄성을 내질렀다. 한 손으로는 그 일부도 잡아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가슴은 쳐지지도 않고 탄력있게 치솟아 있었다. 커다란 공을 보는 듯 탱탱하고 매끄러운 가슴의 모양은 이지헌이 보아왔던 것들 중 가장 성숙하고 멋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중앙의 유두의 맑은 분홍색은 아직 한 번도 그것을 외인의 손길에 허락하지 않았음을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이지헌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못하며 그 분홍의 유두에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이지헌의 눈에 가슴의 위쪽에 자리잡은 세 개의 점이 보였다. 이등변의 삼각형을 그리는 특이한 모양의 점들... 그 것을 본 순간 이지헌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이,,, 이것은?"

이지헌은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본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그의 눈 앞에는 절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처절한 싸움이 떠올라 스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으로 인해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사랑했던 그녀, 아마 그녀의 가슴에도 저런 점이 있었지... 

 "채희,,,"

이지헌은 슬픈 듯한 눈빛으로 김다연의 가슴에 있는 그 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하아아..."

이지헌은 김다연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이지헌은 여전히 어두움을 간직한 눈동자로 김다연의 풀어 헤쳐진 옷들을 하나씩 걸쳐주고 있었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잠그던 이지헌은 김다연의 가슴 위쪽의 점들이 가려지자 질끈 눈을 감았다. 

이윽고 옷을 다 입힌 이지헌은 김다연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김다연의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인형들을 시켜 룸 안의 최면향을 지우고 최면진을 해제했다.

그것을 확인한 이지헌은 김다연의 눈 앞에 푸른 빛과 붉은 빛이 번갈아 점멸하는 팬타그램을 들이대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의 인형,,, 이제 깊은 잠에서 깨어나 원래의 당신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의 존재가 나의 인형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나의 것이며 나의 행복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절대의 법칙입니다.... 자,, 이제 다섯을 세면 잠에서 깨어납니다... 하나,, 둘,,"

이지헌은 흐릿하게 풀어진 김다연의 눈동자를 보며 천천히 숫자를 세어나갔다. 숫자를 세어감에 따라서 김다연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맑은 빛깔이 올라오고 있었다.

 "셋,,, 넷,,, 다섯."

 "아아,,"

김다연은 이지헌이 다섯을 세자 룸의 소파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지헌은 머리를 움켜쥐며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아,,, 뭐,, 뭐지?"

 "일어났어?"

이지헌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우며 김다연의 몸을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김다연은 이지헌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으응? 지헌이구나,, 아,, 기분이 이상해... 머리도 아프고...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들어와서 한 10분쯤 지나니까 혼자 잠들어 버리길래,, 깨울려고 했는데 너무 곤하게 자서,, 그냥 가만히 보고 있었어"

 "아,, 그렇구나, 미안해,,, 기껏 놀러 온건데.."

 "아냐, 피곤한데 억지로 놀자고 잡아둔 내가 잘못한거지, 이제 집에 가야지?"

 "으응"

 "나가자, 내가 태워줄께"

 "응?"

김다연은 태워주겠다는 이지헌의 말에 놀란 기색이었다. 이지헌은 피식 웃으며 김다연의 팔을 잡아 끌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김다연과 이지헌이 룸을 나서서 밖으로 나서자 노래방에 돌아다니던 여종업원들이 모여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김다연은 급히 손을 흔들며 마주 인사했지만 이지헌은 살짝 눈길만 던져주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김다연은 그런 이지헌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어딘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타,"

 "우와! 이거 니꺼야?"

 "응"

밖으로 나온 김다연은 미리 대기중인 고급스러운 리무진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타시지요 도련님, 옆에 분은,,,"

 "아, 여자친구야, 집에 데려다 주려구, 어서 타 다연아"

 "아,, 저,, 저기.. 나 그냥,,"

 "타라니깐 그러네"

이지헌은 머뭇거리는 김다연을 억지로 차 안에 밀어넣고는 자신도 차에 올라탔다. 그런 이지헌과 김다연을 바라보던 세바스찬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을 태운 리무진은 김다연의 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정적이 깔린 방 안,, 이지헌은 김다연을 데려다주고 저택으로 돌아온 뒤로 내내 우울해하고 있었다. 그런 이지헌을 바라보던 세바스찬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

이지헌은 세바스찬의 걱정어린 표정을 바라보고는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지헌의 입에서는 싸늘하기 그지없는 대답만이 나올 뿐이었다.

 "신경 꺼"

 "기분이 좋지 않으시면 인형 아이들이라도 불러서,,,"

 "짜증나게 하지 말고 꺼져"

 "......"

세바스찬은 정말로 화가 난 듯한 이지헌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세바스찬은 이지헌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이지헌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이지헌은 세바스찬이 나가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초이 녀석의 무의식 조작 때문이라는 건 알지만... 하아,,, 아버지,, 당신은 너무 변해버렸어"

이지헌은 조용히 책상의 세 번째 서랍을 열어보았다. 이지헌의 시선은 그늘속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자신과 세바스찬,,, 이지영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세바스찬의 품에 안겨있는 젊은 여자, 지금은 그 행방 조차도 알 수 없는 자신의 어머니... 이지헌은 얼굴에 한껏 비웃음을 담으며 그 서랍을 닫아버렸다. 

인형술사에게 가족 따위는 없다. 

이지헌은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오랜만에 쉬는 주말, 이지헌은 김다연을 불러내어 놀기로 했다. 여기는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영화관... 이지헌은 집이 비어서 할 수 없이 김태연도 데리고 온다는 김다연의 전화를 받았다.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한 번에 두 사람을 작업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귀찮음을 덜 수도 있었다. 이지헌은 미리 사 두었던 팝콘에 붉은 가루를 뿌리고는 주머니에 챙겨둔 팬타그램과 작은 향수병들을 잘 갈무리 해 두었다.

 "지헌아~!"

 "어,,,? 어 다연아! 어서와"

 "미안, 늦었지?"

 "아냐, 나도 방금 왔어, 옆에는 동생?"

 "응, 인사해 태연아"

 "안녕하세요~?? 우와,, 진짜 잘 생기셨다"

이지헌은 김다연의 손을 붙잡고 다가와 자신을 보며 놀라고 있는 김태연의 귀여운 얼굴을 보며 웃어주었다. 짧은 단발에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페이스, 하지만 어딘가 치기어린 듯 하면서도 생각이 깊은 듯한 모양도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양은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의 것이었다. 이지헌은 단정한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온 김다연의 청초한 모습을 보며 손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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