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엄마는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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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시간이 이렇게...
나 가야겠다 얘들아 미안해, 누구 만나기로 했거든”
“이 시간에 누굴 만나~ 여덟신데?”
“쿡쿡, 초저녁인데 왜~
친구랑 더 재밌게 놀다와, 아들, 엄마는 먼저 갈게”
당황한 규복은 ‘어, 안되는데..’하면서도
벌떡, 일어나 자기도 모르게 45도로 허리를 엉거주춤 구부렸다.
“아, 안녕히 가세요..”
“응~ 착하고 귀엽게 생긴 규복아~ 다음에 또 보자~
아줌마가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아이고.. 이렇게 바빠..”
“네.. 헤헷.. 담에 또 뵈어요..”
“으이구~ 얼른 가~ 핸드폰이나 챙기고”
“에고~”
선혜가 가고 난 후, 두 아이도 가게를 나섰다.
중심가에서 가까운 강인의 집 쪽을 향해 두 사람은 터덜 터덜~ 사이 좋게 걸어간다.
약간 쌀쌀한 날씨.
두 소년은 얇은 옷 위에 걸친 조끼를 당겼다.
(규) “쫌 추워졌네.. 오늘 이상하게 춥다”
(강) “응 그러네~ 약간 쌀쌀해~
너 집에 바로 갈거야?”
“가야지 그럼, 저녁인데..”
“우리집 가자~ 심심한데~”
“지금? 안돼, 나 집에 가야돼”
강인은 혼자 있기 심심한지 또 규복에게 집에 가자고 꼬드긴다.
규복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말을 거절하며 걷기만 한다.
걷다가 불쑥, 계속 생각하던 것을 강인에게 물었다.
“강인아 너네 엄마.. 누구 만나러 가셔..?”
“어?”
그러자 강인도 멀뚱 멀뚱 걷다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헤에~
왜 우리 엄마가 궁금해? 하하”
“아니야 그냥.. 할 말이 없어서..”
“큭큭, 야, 우리 엄마 이쁘지 않냐?”
“어? 어어.. 이, 이쁘시더라..”
“그치~?”
그런 자랑을 본인 입으로 할 줄은..
이런 표정을 하며 규복은 강인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아빠 만나러 가는 거야”
“아~”
“엄마 일 끝나면 아빠랑 같이 집에 들어오거든.
나는 같이 아빠 회사로 엄마랑 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너랑 있으니까~”
“아아”
규복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도블럭 위의 잎사귀를 밟았다.
꽤 사이가 좋은 부부구나...
이번엔 강인 못지않게 그 부친도 부럽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어느 정도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오자, 강인과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버스에 올라타서 창밖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쉬는 규복.
쪼그만 체격의 어린이가 내쉬는 한숨이 어째..
오랜 세월과 풍파에 시달린 아저씨와도 같은 모습.
‘장난 아니었어, 확실히..
좋은 향기도 나고.. 아~~ 강인이는 진짜 진짜 좋겠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이뻤으면..’
규복은 강인의 모친과 처음으로 만나던 그 짧은 시간, 침묵만 지켰지만
얼굴을 못들고 시선을 내리깔다보니 자연히..
그녀의 아름답고 근사한 각선미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얼굴을 감히 바라볼 용기가 없으니..
친구 엄마의 근사한 옷 맵시와 예쁜 다리만 훑고..
그렇게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
나름의 눈 호강을 했던 것을 기억해낸다.
“조금 늦게 왔네, 밥 먹었니?”
“네, 강인이랑 같이 먹고 왔어요..”
차분한 인상의 어머니를 향해 간단하게 대꾸한 뒤
규복은 자기 방문을 탁- 닫고 침대 위에 누웠다.
그리고 풀썩-
몸을 누이기 무섭게 바로 스르르.. 잠에 빠진다.
-
시간은 훌쩍 지나...
그로부터 9년 후.
어느새 규복은 자라서 스무살의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중반까지는 학급 내에서 중간 정도의 애매한 성적을 내던 규복.
어느 순간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과 미래에 대한 갈등들을 느끼면서
크게 철이라도 든 것인지 공부에 부쩍 열을 올렸다.
그러더니 놀라울 정도로 성적이 쑥쑥 오르면서
따로 과외활동이나 사교육에 많이 의지하지 않았음에도..
고교 졸업 후 지망하던 학교와 학과에 무난히 합격하게 된다.
따스한 3월의 봄 날씨.
신록이 아름답게 우거지는 잔잔한 풍경 가운데..
감수성 충만한 소년 규복은 캠퍼스를 거닐고 있다.
‘무슨 벚꽃이 벌써부터 피는 거야..
금방 따듯해져서 그런가?’
본래 선한 인상의 규복은, 눈이 작은 편이다.
어릴 적부터 ‘단추 구멍’이라고 종종 놀림을 받았지만
밝은 성향답게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더 큰 신체적 콤플렉스라고 한다면
아마도 규복은..
감정이 쉽게 드러날 정도로 금방 빨개져버리는 얼굴,
그리고 작은 키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
아름답게 가꾸어진 캠퍼스 내의 조경을 구경하던 규복은
문득 지난 겨울,
엄마와 주고받은 대화를 떠올린다.
- J대를 붙었다고?? 정말??
- 붙었다니까~ 두번 말했자나 정확하게~~ 안 그랬어?
- 아니, 아니..
아들, 다른데도 아니고 J대를.. 붙었다고는 안 했는데..
- 풋... J대 맞아.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 공부 열심히 했다니까~ 엄마?
그러자 규복의 모친은 어찌나 감격했는지,
수화기 너머로도 복받쳐 흑흑~ 우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규복 역시도 엄마의 진실된 울음에 가슴이 찡해진다.
- 훌쩍.. 아니야.. 대견해서 그러지... 장하다, 우리 아들..
고맙다, 애 많이 썼어..
- 엄마는.. 징그럽게..
- 아냐.. 정말 기뻐.. 엄마는..
- 알았어, 그만해.. 나도 눈물 나오게 참~
- 응.. 좋다, 좋아. 우리 착하고 잘생긴 아들, 자랑스럽구나..
- .....
- 집에 언제 올거니?
- 한 시간 정도면 갈거야..
전화를 끊고, 규복은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근처의 벤치에 털썩- 주저 앉는다.
그 정도로 어머니에게는 큰 감격이었을까.
미처 몰랐다.
그저 스스로 대견하다고 여겼을 뿐.
저 정도로 울먹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죽다 살아난 사람이라도 보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하다니..
평소에 무덤덤한 성격의 엄마가 저렇게 격한 감정의 변화를 보일 줄은
규복으로서도 예상 밖이었다.
‘엄마...’
규복 역시 감정이 북받쳐 올라 사람들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려
‘흑흑...’ 조용히 울었다.
그리고는 빨개진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집에서 pc 모니터로 합격 여부를 확인해도 되지만 어딘가 내키지 않아
직접 해당 학교에 와서 대자보를 통해 합격 여부를 확인한 직후였다.
곧바로 근무 중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알린 참이다.
자기 나름대로는 성실하게 공부했고
그것에 합당한 결과를 얻었다고 자부했기에..
사실 비교적 담담하게 어머니에게 통지를 한 것인데,
이렇게까지 엄마가 격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열심히 했으니까..
아부지 돌아가시고 더 바둥거리면서 이 악물었으니까 말이지.
대단하다 이규복, 넌 칭찬받을만 해..’
사실 규복이 붙은 대학은 성적이나 평판도 좋거니와
그가 ‘이 학교를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두번째 이유가 더 클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규복의 오래된 이상형, 친구 강인의 어머니가..
서울 상위권으로 평가받는 명문대의 교수로 재직중이라는 팩트였다.
‘하나, 둘..
햇수로 벌써.. 세상에, 9년이나 되었나..
이제 곧..
볼 수 있겠지..?’
벤치에 몸을 기댄 짧은 시간 사이
규복의 비상한 머릿속은 엄마에 대한 생각으로 바쁘다가
또다시 어릴적 친구 강인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니까 겨우 열살 때 만났고
그 이듬해 11세 때, 갑자기 강인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난데없는 소식..
어린 두 소년은 이제 좀 친해지고 추억이 쌓일만 하니 이별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참아왔던 진한 아쉬움을 담아 눈물을 흘렸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친해졌던 두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안부조차 모르고 지내게 된다.
몸이 멀어지면 기억도 자연히 잊혀지는 법.
지금도 강인의 연락처와 사는 곳 등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그러던 규복은...
-
어느날 시내의 대형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규복.
인문학 서적 코너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면서
어릴적 느꼈던 그 벅찬 설레임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고... 선혜?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
.... 아.. 이.. 이건...
강인이네 엄마 이름이잖아..’
특유의 어리숙한 표정으로 허공을 빤히 보던 규복,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꿈뻑거리며, 책 저자의 약력을 부리나케 들여다본다.
얼마나 심장이 뛰는지.. 쿵덕, 쿵덕.. 가슴이 요동친다.
“J대 영문학과 교수? 영문과.. 영문과, 맞아.. 그랬나?
분명히 아줌마도 영미문학인가~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
그렇다고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다가
물끄러미~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에
‘에헤헤..’ 배시시 웃으며 책을 덮는다.
일단 규복은 손에 잡히는 그 책을 구입부터 하고
그 즉시 빛의 속도로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보고 싶은걸 간신히 참고
오자마자 컴을 키고 두드리자, 상세한 데이터가 나온다.
- 이름 : 고선혜
- 나이 : 38세
- 서울 J대학교 영문학과 전임교수
- 다양한 초청 강연 활동과 인문학 강좌 경험 다수
하아, 하아...
위의 프로필과 함께 결정적으로 규복의 동공을 확장시킨 명백한 증거.
포털에 실린 그녀의 얼굴 사진이었다.
....
몇장 없는 사진이나마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이목구비에
안경을 쓴 모습이 있는가 하면 렌즈를 낀 듯한 얼굴.
얼굴과 팔 다리의 하얗고 귀티 나는 살결..
큰 키와 늘씬한 자태.
그 당시 눈으로 확인했던 훤칠한 스타일,
모두가 규복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초빙되어 간 현장 관계자에게 찍힌 사진들로 보인다.
미모가 남다른 그녀를 보고, 기자나 일반인들이 찍어 올린 사진들.
덕분에 규복은 얼굴 만이 아닌 선혜의 전신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음...
어릴 때와 차이가 있다면,
강인을 통해 만났을 때와
함께 여행을 갔을 때 본 마른 체형에 비해서는..
살이 더 붙어서 한층 글래머러스해진 모습이었다.
사진상으로도 보이는 탐스러운 히프와 그에 걸맞지 않게 잘록한 허리.
그 언밸런스함이 더 반갑다고 할까?
게다가 슬림했을 당시에도 가슴이 아주 작지는 않았는데..
꿀꺽..
적당하게 부풀어오른 멋진 상체도 규복의 흥분된 눈에 들어온다.
규복은 연신 마른 침을 삼키며, 땀에 젖어 떨리는 손가락으로
쉬지 않고 마우스 우버튼을 ‘따깍, 따깍’ 클릭한다.
한 장이라도 사진이 더 없나 구글링을 하는 손에 혼신의 힘이 실려 있었다.
“그래, 맞아! 맞아!
이 얼굴, 이 표정이었어!..
그대로구나, 아줌마 하나도 나이를 안 먹은 거 같네!.. 하하하하..
와...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한동안 잊고 있던 얼굴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감개무량하다.
감격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리는 규복.
그렇게 뜻밖에 선혜의 흔적을 발견한 날 이후,
규복은 그녀가 교수로 있다는 ‘그 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에 불을 붙였다.
전술한대로 여러 가정적인 요인도 있지만, 또 하나의 큰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그래 맞아..
강인이가 그랬지, 자기 엄마가 결혼을 일찍해서 젊다고.
그때 나이와 지금을 계산해보면 서른 여덟이 돼..’
강인 가족의 고마운 배려로
춘천까지 함께 4명이서 놀러가 2박 3일간 즐거운 추억을 쌓고 온 것도..
그리 많지 않은 시간들이지만, 이 순간 주마등처럼 하나 하나 빠르게 머릿속을 스친다.
’그때 사진도.. 아직 잘 찾아보면 있을 지도 모르는데..‘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손깎지를 끼고 뒤로 드러눕는 규복.
춘천으로 강인네 가족 세명과 같이 놀러갔었던..
열한 살 때 여행지의 설레던 추억을 간직했던 사진..
어디 보관이나 했으려나?
아!
그래, 기억난다..
디지털이 아닌 필름 카메라로 찍어서 강인에게 사진을 받긴 했는데..
어디였더라.. 하다가 번개같이, 있을 만한 자리가 떠오른 규복.
그 즉시 벌떡- 일어나더니 책상이 아닌 다른 책장 아래를 뒤지기 시작한다.
‘있다, 있어..’
눈물에 젖은 눈동자를 꿈뻑, 꿈뻑거린다.
규복은 그 당시.. 가평과 춘천을 놀러다니며 유쾌한 포즈로 찍어댔던..
친구 가족과 행복에 젖었던 사진들을 찾아냈다.
이 모든 것도 규복의 꼼꼼하게 모아놓는 습관 덕분이리라.
어찌 됐든 간에 지금 손에 쥐인 이 몇장의 여행 사진들은
규복에게 대단히 소중한 보물이나 마찬가지.
사진이 의외로 여러 장이다.
사진 묶음을 손에 꼬옥, 소중하게 쥔 규복은 두근 두근...
설레어 얼굴을 붉힌다.
네 명이서 다 같이 찍은 단체 사진이 세장.
강인 혼자 찍은 것이 두장, 규복과 강인이 찍은 것이 또 한 장.
그리고 나머지 다섯장 중의 하나는 ‘강인의 가족’끼리만 오붓하게 찍힌 것.
바짝 애가 탄다.
혹시라도 자신이 원하는 사진이 발견이 되지 않을까..
아..!
남은 4 장의 사진에는 모두 선혜의 모습이 있었다.
그중의 둘은 선혜와 강인 모자가 다정하게 찍은 컷,
또 하나 선혜-강인-규복 이렇게 마치 한가족처럼 예쁘게 찍힌 사진,
그리고...
선혜와 규복이 단 둘이서 찍혀 있는, 정말 ‘보물 같은’ 사진이 단 한 장 있었다.
규복은 기쁨의 소리를 지른다.
“있다! 있었어...
그래, 강인이가 틀림없이 그때 나랑도 찍어보라며 자기 엄마랑 서보라 그랬다고..”
새삼 강인의 배려 넘치는 센스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더구나 사진에 담긴 규복과, 친구 엄마 선혜의 포즈는..
선혜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규복의 목덜미에
가만히 한 손을 두르고 그의 조금 오른쪽 뒤에 서 있다.
그 앞의 규복은 긴장한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문 얼굴.
규복은 그의 뒤에 다소곳이 서 있는 선혜의 자태에,
갑자기 사타구니에 힘이 바짝 몰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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