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39)

친구 엄마는 대학교수

 4

 “?! 꺄악~

 학생, 괜찮은 거예요?”

 “하아.. 하아..”

 “어디 아파 보여서요..”

 “끄읍, 아니에요..”

 .....

 틀림없이 선혜다.

 규복은 너무 놀라서 몸이 경직되어, 제대로 입이 열리지 않았다.

 눈 앞의 그녀는

 매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제가.. 제가 알던 사람을 언뜻 본 것 같아서요..”

 “.....”

 규복은 설레는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어떻게든 지탱하고 서려고 애를 쓴다.

 눈 앞이 핑 돈다.

 안돼, 힘내자.

 “저.. 저예요.. 아주머니..”

 “네..?”

 “규, 규복이요.

 강인이 친구였던..”

 “아..!!”

 어디서 본 듯 만 듯, 자기도 긴가민가 한 모양인데

 규복이 실없이 빨개진 얼굴로 웃으며 아들의 이름을 털어 놓자,

 그제야 선혜도 깜짝 놀라 입을 쩌억 벌리고..

 말 없이 바라본다.

 “아아...

 아.. 맞아! 맞아..”

 “헤헤..

 저 기억 나시는 거예요..?”

 “기.. 기억이 나지, 물론요..

 규복이.. 그래, 규복이였구나!”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선혜.

 어지간히 놀라긴 한 모양이다.

 그녀는 입을 자기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얼어 붙은 자세로 서서, 규복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그 모습에 규복의 가슴이 더 찡해져온다.

 “어쩜, 세상에.. 진짜구나..

 그래, 규복이..

 지나가다가 언뜻, 몇 번 우연히 보긴 했었거든.

 어? 이상하다.. 저 사람..

 그런 생각을 했어..”

 선혜는 신기하고 당혹스러운 눈빛을 띄면서

 규복의 예전과 다름없는 맹한 얼굴을 들여다본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가득한 안색을 보이며 어쩔 줄 모르는 그녀.

 얼마 가지 않아 평온을 되찾았는지,

 차분한 기색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다행이에요.. 많이 놀라셨어요? 헷..”

 “응... 많이 놀랐어..

 근데 어떻게 여기에? 이 학교 학생이니?”

 “네.. 이 학교 학생이니까

 이렇게 여기에 서 있겠죠..

 저 수능 보고 여기 붙었어요, 아주머니..”

 끝의 ‘아주머니’라는 호칭을 쓰면서 규복은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오랜만에 부르는 호칭이라서 설레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아줌마’라 불러야 옳은가, 아니면 ‘교수님’이라 불러야 맞는가..

 그 찰나의 시간 머릿속으로 열심히 굴렸기 때문이다.

 여전히 설렘이 가시지 않는 규복의 목소리..

 그리고 눈물이 살짝 고여있는 눈..

 그 미세한 떨림이 선혜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아주머니’라는 호칭에,

 선혜도 눈동자가 흔들리며 웃는다.

 “....

 풋, 그래..

 아주머니라고 불러주니까 좋다, 그리운 이름이야”

 “이상해요? 헷-

 아줌마보다는 아주머니가 더..”

 “아냐, 그런게 아니고

 거의 매일같이 나는 교수님..이라는 호칭만 들으면서 사니까

 반갑고 좋아서 그래, 나쁜 뜻은 아니야..”

 “아.. 다행이에요 그럼..”

 규복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선혜는 그런 규복의 얼굴을

 잠시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

 “.....

 그건 그렇고..

 예전이랑 정말.. 거의 변하지 않았네..”

 “저, 저요?”

 “으응.. 후훗,

 얼굴이, 특히 어릴 때하고 많이.. 똑같아.

 귀엽게 생긴 그 착한 얼굴이..”

 “.....”

 규복은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뉘앙스로 봐서는 선혜가 자신의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나쁘게 말하진 않는 것 같지만..

 동시에 좀 어리숙한 이미지의 스스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선혜에게 ‘멍청하게 보이는게 아닌가’하며

 갑자기 의기소침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선혜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지,

 연이어 따듯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풉~ 왜 그렇게 말이 없니..

 그때.. 맞나? 우리 강인이하고 너희들 오래전에 같이 놀러갔었지?

 그.. 밝고 천진난만했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래서 보기 좋다”

 “아, 네.. 하하, 감사합니다.

 저 아줌마.. 정말 그때 모습과 비슷한가요?”

 “응응~ 호호.

 외모만 그런지, 아직 이야기를 못 나눠봐서 잘 알순 없지만..

 착하고 순수했던,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규복이 모습 같아서.. 보기 좋구나”

 선혜는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규복은 그녀의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와 미소에,

 굉장히 부끄러워 다리를 덜덜 떨고 있다.

 한숨을 돌린 후에야.. 겨우 진정하여 호흡이 가라앉는다.

 “아줌..”

 “아차..”

 규복이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어 뭐라 말하려 하자,

 선혜가 ‘지이잉~~~~’

 어깨에 맨 가방 속에서 진동하는 핸드폰을 꺼내든다.

 “내 정신 좀 봐.. 여보세요?”

 “.....”

 ‘흐흠!’ 하고 전화 받기 전 목소리를 가다듬는 선혜.

 규복에게는 선혜의 잠겨 있다가 약간 잔기침을 하는 목소리..

 그 잠깐의 고음이 매우 섹시하게 들렸다.

 정신이 약간 몽롱한 채로..

 눈 앞의 여인이 통화하는 것을 보고 있다.

 “.... 아, 그러네요, 제가 지금 잠깐 중요한 손님을 만나서요..

 호호, 네.. 네, 알겠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준비를 마치고 이동하도록 할게요, 예, 그럼..”

 전화를 끊는 선혜의 얼굴이 무언가..

 썩 밝지만은 않은 기색이다.

 규복은 말없이 그녀가 폰을 다시 검정색 손가방에 넣으며

 약간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가,

 다시 규복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변화를 읽는다.

 “미안해, 급한 전화가 와서, 안 받으면 안되는거라..

 우리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별 얘기는 안했어요, 하하, 괜찮아요 아줌마, 저 신경 안쓰셔도..”

 “아냐, 그러면 안되지.. 어떻게 만난 반가운 사이인데..

 규복이 너는 그럼, 지금 수업이 다 끝난 거야?”

 “예? 예.. 그렇죠..”

 “후흥~ 그렇구나~

 움.. 전공이 뭐니?”

 “저 신문방송학과예요.. 헤헤”

 “신방과.. 그래..

 호호, 너 공부 많이 했구나?”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헷..

 열심히 하기는 했던거 같아요..”

 ‘아주머니 덕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그 밖에도 규복은 자기 스스로도 예상은 했지만

 선혜를 직접 만나고 나니, 머릿속이 온통 엉망진창인 기분에..

 생각하는 대로 말이 정리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래.. 대단하다, 너는 착실한 아이니까..

 한눈 팔지 않고 성실하게.. 쭉 잘 해왔을 거야”

 “.... 예, 고맙습니다, 교수님..”

 “후훗, 호칭이 갑자기 변했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괜찮아~ 아무렇게나 편하게 불러도..

 다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 눈치껏 조심해주면 돼? 훗~”

 “예예, 그럼요.. 꼭 교수님이라고 할게요”

 예의바른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규복은 그렇게 선혜와 몇마디 어렵게 말을 나눴다.

 좀 겉도는 느낌의 대화라서..

 용기를 약간 더 내서,

 이제 본격적으로 궁금했던 걸 물어보자, 결심하면서 말을 꺼내는데..

 “아.. 또 왔어”

 “전화.. 받으셔야죠”

 “아냐, 안 받아도 되는 전화.. 오늘 급한 스케줄이 있었는데

 잊고 있어서 쬐끔 야단 맞는 연락이야.. 호호.

 나 그럼 가봐야겠다~”

 “어, 저.. 아..”

 “응?”

 규복은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다.

 “어, 어디로.. 아니, 교수님을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나요?”

 “아..

 미안, 내 연구실..

 .....

 자, 이거 내 명함이야, 훗”

 “아.. 감사합니다”

 “감사라니? 호호..

 내가 오늘은 정신이 없어서 미안해.

 그걸로 내 번호 등록하고.. 카톡 한번 보내줘”

 “아.. 네! 그럴게요, 아줌..마”

 “안녕~~”

 선혜는 분명 연구실이 어디인가를 말하려다가,

 잠시 생각한 뒤 명함을 내밀었다.

 아마 무언가 고민하는 모습같았는데..

 어쨌든 규복은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가 흔쾌히 건넨 ‘명함’을 손에 넣었다.

 뛸 뜻이 기쁘다.

 폴짝, 폴짝,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것도 있지만

 얼마나 신이 났는지

 규복은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뛰어 오르며 팔과 다리를 쭉~~ 뻗었다.

 ‘내 마음을 읽었을까?

 난 또 등신 같아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할 생각.. 용기를 가지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쉽게 주다니.. 아, 기쁘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내달리듯 학교 안 버스 정류장까지 한걸음에 도착했다.

 두근 두근...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내내,

 규복은 오랜만에 만난 선혜의 옷차림을 생생히 기억해낸다.

 검은 투피스 반듯한 위아래 정장,

 그리고 컬러를 맞춘 짙은 데니어의 검정 스타킹,

 구두도 굽이 낮은, 차분한 블랙 힐.

 대체로 톤을 일정하게 맞춘 걸 보니

 오히려 모임 같은 곳에 누굴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

 검정 재킷의 안쪽으로 살짝 보이는 것은 조금 빳빳한 옷깃.

 아마 그 속에는 블라우스가 아닌 하얀 셔츠를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로 묶어서 틀어올린 머리..

 길게 풀어헤친 스타일도 좋지만,

 운좋게도 규복이 좋아하는 헤어스타일과도 딱 맞는다.

 다 끼워맞출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옷걸이가 뛰어난 그녀가 입어서인지

 완벽하고 섹시한 맵시가 돋보였다.

 그가 초등학교 때 그녀는 비교적 늘씬한 체형임에도

 히프와 가슴은 다행이도 탐스러웠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그녀..

 교수라는 신분 때문인지, 조금 답답하게 보일 정도로 절제된 옷차림을 했지만

 역시 그 타고난 볼륨감은 숨길 수 없었다.

 버스에 자리가 나기 무섭게 앉은 규복은

 저절로 떠오르는 선혜의 풍만한 젖가슴과 엉덩이의 멋진 굴곡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갑자기 발기해버린 그곳을 가리느라 안간힘이다.

 어휴...

 그렇게 충동을 억제하며 규복은

 집까지 오는 내내, 강렬한 흥분을 느끼며..

 다시 빳빳해져 오는 아랫도리에 진땀을 흘렸다.

 ‘젠장.. 미안해요.. 아주머니..

 난 그동안 항상 이런 생각만 했어요.. 이런 날 알면 어떻게 보실지..

 죄송합니다..’

 -

 그리고 일주일이 더 지났다.

 5월 16일, 즉 스승의 날이 막 지난 시점이다.

 그날도 규복은 종일 자기 전공 수업에만 충실하게 하루를 보내고

 다른 어떤 스케줄도 없이 바로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있다.

 “하~~ 나란 놈은 참 한심하구나...

 벌써 일주일도 넘었는데..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줬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게 얼마나 큰 기회인데

 할 용기도 없고..

 아, 어제는 또 스승의 날이었자나..

 진짜 오늘은 연락해야된다.. 규복아”

 애꿎은 자기 이름만 타는 목소리로 부르며, 규복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통풍이 잘 되는 갈색의 긴팔 남방에 청바지와 하얀 양말 차림.

 옷을 벗지도 않고 침대에 드러누워 뒹굴거리다가

 몸을 빙글 돌려, 베개를 품에 끌어안고 핸드폰을 쥔다.

 “오랜만에 만나 뵈서 반가웠어요.. 아, 줌, 마...

 으아아..

 아줌마가 아니고 교수님이라고.. 해야 되는거 아닐까?”

 제 3자가 보기에는 웃음 꽤나 나올 수도 있는 고민이겠지만

 지금의 규복은 당면 과제이다.

 연락처를 받고 여태껏 제대로 된 카톡 하나 날리지 못했는데..

 첫 문장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공손하게 표현해야 할지..

 규복의 지금 모습은

 첫사랑을 만나고 러브레터를 못 써서 끙끙대는 소년과 같다.

 하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규복으로서 연애는 중학교 때 한번, 고등학교 때 한번 하긴 했지만

 문자 그대로 모두 순수한 만남일 뿐이었고, 키스와 손 잡는 ‘평범한’ 수준이었으니.

 어찌 보면 그 오랜 시간을 좋아해오던 연상의 여인에게 겨우 다가서려는 이 순간이야말로, 스무살 짧은 인생 중에서 가장 설레고 떨리는 순간이 틀림없으리라.

 “진정해야 되니까 일단 한발 빼고..

 새로 얻은 사진을 봅시다”

 혼자 중얼거리며, 그날 집에 와서 추가한 선혜의 카톡을 본다.

 아쉽게도 프로필 사진은 전부 꽃과 잔잔한 배경, 그리고 한 두편의 시였고

 그나마 카톡 배경 사진에.. 남편과 함께 둘만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조금 의아함이 생긴다.

 ‘강인이 얘기는 그러고보니 그날도 거의 안하시던데?

 나도 물어볼 생각도 못했고..

 사이가 많이 안 좋은가.. 물어봐도 되는지’

 이런 세심한 고민까지 하고 나서야

 정작 자신은 그래도 명색이 친구였는데 강인에게는 관심조차 없었음을 깨닫는다.

 에이, 아무려면 어때..

 언젠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겠지.

 훗, 하고 웃으며 다시 선혜에게 몰입한다.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그 후로 규복은 용기내서 선혜를 찾았고

 미안하다며 그 뒤에도 선혜는 차일피일 만날 약속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며칠이 더 지나서야..

 선혜는 겨우 규복과 토요일 점심 식사를 잡은 것이다.

 오늘 선혜의 옷 맵시는 지난번과 사뭇 다르다.

 하얀 바탕에 다양한 꽃과 줄기가 그려진 쉬폰 블라우스 상의에,

 하의는 브라운 단색의, 무릎을 덮는 긴 스커트를 입었다.

 그리고 구두는 지난번과 형태는 약간 다른 검은색.

 발목과 발가락 바로 윗부분은 검은 밴드로 고집스럽게 가렸지만

 더운 날씨 때문인지 발가락과 발등 부분은 그대로 드러난 힐이다.

 꽤 예쁘다는 생각과 함께, 규복은 조금 아쉽다.

 기왕이면 치마가 더 짧았더라면..

 하지만 경쾌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은 그 모습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선혜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주는 매치업이다.

 ‘지난주보다 스커트가 더 기네.

 그래도 스타킹 안 신은 다리라 좋다..’

 이런 조금 평범한 감상에 뒤이어,

 규복은 분명 선혜가 뭐라 말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의 치맛속을 궁금해하며..

 아무 것도 칠하지 않은 그녀의 깨끗한 발톱,

 그리고 예쁜 발가락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저기, 규복아..”

 “아! 네, 네.. 죄송해요”

 “아니.. 호홋, 죄송할 건 없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아니에요, 죄송해요, 아주머니..

 어제 과제가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아.. 그래?”

 선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어주었다.

 그 상냥하게 웃는 입과..

 규복이 첫눈에 반했던..

 약간 끝이 위로 향해 있지만, 날카로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순하다는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눈매가

 또 소년 규복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준다.

 꿀꺽..

 선혜가 잠깐 폰을 확인하는 사이,

 규복은 또다시 ‘되도록 안 보는 척하면서’

 힐끔 힐끔.. 그녀의 하얀 종아리와, 드러난 발만 훔쳐 보았다.

 ‘... 핥고 싶다...’

 그래 놓고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바라보는 선혜만 ‘?’ 의아해하는 얼굴.

 흠모하는 대상을 앞에 두고 자꾸만 치밀어오르는 음욕 때문에,

 규복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두 사람은 분위기 좋은 시내의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있다.

 밥이 맛있는 것은 둘째치고,

 꿈에 그리던 여인과의 데이트에서 행복 가득한 설렘을 느끼는 규복이다.

 아직 둘은 웃으며 인사를 나눈 뒤 먹기만 하느라.. 많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아, 이거 맛있겠다..”

 그런데 한 두입 정도 먹고,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는 선혜의 표정이 어둡다.

 카톡인가?

 뭔지 모를 불청객의 연락에 선혜는 순간적으로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규복은 그런 선혜의 동작 하나 하나를 보며

 ‘뭔진 몰라도 아줌마가 저렇게 즉각 솔직한 반응을 할 정도면.. 대체 누구길래..’

 하는 의구심과 불안함이 든다.

 “미안해, 자꾸 폰만 보고 있어서, 어렵게 낸 시간인데.. 헤헷~

 많이 먹어 규복아.. 오늘 우리 이것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러 가자?”

 “네... 하하, 감사합니다”

 선혜는 환하게 웃으며 규복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기우일지도 모른다.

 아들 강인이 아니면 남편의 연락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규복도 선혜와 마주보며, 조금씩 묻어두었던 대화를 꺼낸다.

 “엇, 강인이는.. 재수를 하고 있어요?”

 “응, 재수라고 하기는 사실 애매하지..

 지금 한국에 있는게 아니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아아, 그래요”

 “걔는 오래 전부터 미국에 계속 있었어..

 그때가 언제였을까?

 아마 너희들 헤어지고 난 뒤~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부터.. 였을 거야”

 “그랬었군요..”

 선혜의 이야기를 조금 듣고 나자

 규복은 그제서야 9년 전의 그 날..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강인이 갑작스럽게 별 말도 남기지 않고서

 가족과 함께 급하게 이사를 떠났던 진상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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