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39)

친구 엄마는 대학교수

 9

‘아, 죽인다..

 이 각도에서 보니까 끝내주네..’

 방학하느라 한동안 못보다가 오랜만에 만난 그녀.

 규복은 묘하게~ 서진이 더욱 요염해졌음을 느낀다.

 은은한 섹시함이 전신을 감도는 듯하다.

 전화하는 걸 좀 더 다가가 들어본다.

 생생히 들리는 대화 내용.

 서진은 신경질적으로 상대방에게 다그치고 있었다.

 “..... 몇 번을 이야기해도 소용없다구요, 모르시겠어요?

 다른데 가서 알아보세요, 엄한 사람 붙잡고 시간 낭비말고.

 ...

 안돼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분명히 말했잖아요.

 하하, 웃기고 있네~

 난 절대로 우리 교수님 어떤 경우에도 배신할 수 없어요.

 ....

 미친놈”

 전화를 탁, 끊음과 동시에 조용히 욕을 중얼거린다.

 규복은 서진이 일어나, 자기 쪽으로 다가오자 겁나서

 후다닥~ 소리 나지 않게 몸을 숨겼다.

 ‘뭐야 이게..

 교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니..

 무슨 대화가 이래.

 누나가 스파이라도 되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규복은 서진이 완전히 건물 내로 들어갔는지를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현관의 유리문을 밀었다.

‘기가 막혀, 정말!

 얼마나 사람을 우습게 보면, 질리지도 않고.. 그런 말같지 않은 제안을’

 서진은 연구동 1층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신경질적인 얼굴로 서 있다.

 약간 고개를 숙이고 팔짱을 낀 포즈.

 왼손으로 오른팔의 팔꿈치를 받치며, 오른손으로는 입술을 만지작거린다.

 빨간색의 스커트와, 상체는 간편한 검정색 박스티를 입었다.

 아직 조금 더운데 서진은 이렇게 긴팔을 종종 입곤 한다.

 캐주얼한 옷차림이 퍽 앙증맞다.

 하얀 양말과 같은 색의 운동화도 산뜻하다.

 안 다니던 통로의 다른 엘리베이터를 발견하고 왔더니만, 서진이 떡하니 서있어서 멈칫한 상황.

 멀리서 초조해하는 그녀의 자태를 훔쳐보기에 급급하다.

 ‘누나도 볼륨이 좋지.. 아줌마보다는 덜 해도..

 흐헷, 아주머니는 워낙 사기적인 몸매니까 그렇다 쳐,

 서진이 누나~ 펑퍼짐한 옷을 입었는데도 가슴이 뽈록 솟았잖아..’

 상상을 하다 말고 그녀의 예쁜 엉덩이에 시선이 멈춘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듯.

 봉긋한 애플힙의 귀여운 자태.

 규복은 서진의 뽀얀 허벅지와, 그 위로 솟아 오른 힙업을 보며 감탄한다.

 전반적인 신체의 밸런스가 근사하게 잡혀 있다.

 쭉 뻗어있는 그녀의 각선미도 완벽에 가깝다.

 찰랑이는 검은 머릿결..

 아까 오전에도 연구실 내에 싱그러운 샴푸향이 퍼지는데,

 규복은 서진의 그 은은한 향기와 체취를 맡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습게도 서진은 고개도 들지 않고 책만 보고 있었는데..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처럼 가녀린 그녀의 모습에 규복 홀로, 보호본능을 느끼며 절로 발기가 되었단 사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서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모퉁이.

 그렇게 규복은 ‘꼭 cf의 한 장면 같다..’ 라고 생각하며

 서진의 아리따운 전신을 동경하는 시선으로 지켜본다.

 -

 그리고 개강.

 규복은 2학기에 월화수목금 5일 전부를 나오도록 시간표를 짰다.

 수강신청에서도 웃었다.

 첫 학기에는 하나도 듣지 못했던 선혜의 수업을.. 무려 두 개나 신청한 것이다.

 ‘됐어, 됐어! 운도 기가 막혔지.. 아줌마 교양이 두갠데 두 개다 득템하다니~

 이번 학기는 뭔가 술술 잘 풀릴 것 같은걸, 시작이 좋아..’

 수요일 오후.

 그 날은 서진이 특별히 저녁까지 같이 있자며 도움을 청한다.

 규복도 서진과 같이 있는 걸 좋아하기에 기꺼이 그녀와 함께 있었다.

 “아, 비가 오네..”

 “갑자기 오기 시작하네요.. 아, 안되는데.. 누나, 여기 우산 있어요?”

 “응, 항상 예비용으로 비치해두지.

 저기 캐비넷 안에 열어보면 여러개 있으니까, 걱정말고 가져가”

 “네, 고마워요..”

 확연히 전과 다르게, 서진은 규복에게 말을 건넬 때 여유가 있다.

 소름끼치는 파충류를 대하듯

 규복의 손이 그녀의 피부에 닿았을 때 보이던..

 초창기의 반응을 생각하면 확 달라진 느낌.

 물론 지금도 섣불리 스킨쉽을 시도하기는 두려운 상대지만..

 팔과 팔이 스친다든가, 작은 터치가 생겨도 서진은 아무런 반응을 않는다.

 비가 주룩주룩 오니 중국집을 시켜먹자는 서진의 말.

 서진이 쏘는 음식~

 규복과 서진은 배부르게 먹고 다시 일을 손에 쥔다.

 규복은 서진에게 향 좋은 커피를 ‘쪼르륵..’ 따라 주며 자기도 한잔 마셨다.

 그리고 흘끗 거리면서 서진의 얼굴을 훑는다.

 지난주에 들었던 이상한 대화.

 물어보고는 싶은데, 차마 입을 열 수가 없다.

 그런 고민을 하며 서진의 옆 얼굴만 빤히 본다.

 브이 라인의 턱선과 오똑한 코.

 살짝 속 쌍꺼풀이 져 있는 수수한 눈.

 규복은 서진의 눈을 볼 때마다 아기처럼 선이 가늘고 예쁘다고 생각한다.

 하얗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

 갸름한 달걀형 얼굴의 단아한 미인상.

 규복은 커피를 ‘호록~’ 마시는 척하며

 서진의 청순한 미모를 숨죽여 흐뭇한 눈으로 감상한다.

 더 예뻐진 것 같다.

 함께 있을 때면 시선을 자연히 사로잡는 얼굴..

 ‘남친 때문에 속 엄청 끓였겠지, 지금은 좀 나아졌을진 모르지만..

 얼굴 표정이 많이 편안해졌고 풍부해져서.. 보기 좋아, 누나’

 제 멋대로 서진의 단아한 이미지에다

 지난주에 낯설게 느껴졌던, 그 사나운 모습을 오버랩해본다.

 한편 서진과 규복이 일하고 있을 그 시각.

 같은 시간에 진우는 다른 건물에서 수업을 듣고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다.

 이미 저녁 6시를 넘겼으나 고층 건물의 11층에 매점과 카페테리아가 있어,

 진우와 한 살 많은 선배는 차를 마시고 내려오던 참이다.

 그런데 승강기 내에서 호텔관광학부로 보이는, 멋스럽게 정장을 빼입은 여학생들 두 명이 진우가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들을 꺼낸다.

 고선혜 교수라는 이름이 나오자

 진우는 물론, 선혜의 교양을 함께 듣는 선배의 눈빛도 달라졌다.

 “아무리 개인 사정이 있다 쳐도 첫주부터 째버리는게 말이 돼?”

 “그러게~ 월요일도 안 왔다더니 오늘도 수업에 아무 예고가 없잖아.

 이런 수업은 나 처음 본다, 큭큭”

 “얼굴만 이쁘지~ 불성실한 교수라니까, 키득~”

 “아직 방학을 더 만끽하고 싶으신거지~”

 요딴식의 험담을 늘어놓고 있다.

 가만히 듣고 있는 진우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린다.

 여학생 둘은 사람이 꽉 차 조금 시끄러운 엘리베이터임을 감안해도 몇마디 더 하더니,

 그제야 주변을 의식하며 볼륨을 낮춘다.

 진우와 선배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다시 큰 소리로 깔깔 웃으며 멀어져가는 두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진) “어떻게 생각해? 쟤들 형네 과 맞지?”

 (영) “그런 거 같은데..”

 “말하는 싸가지들이 없네, 쟤네들 신입생이야?”

 “.... 잘 모르겠는걸”

 영섭은 검은 뿔테 안경을 슬쩍 콧등 위로 걸친다.

 눈빛이 또렷하게 살아 있는, 교회 오빠 느낌의 샤프한 타입.

 진우가 선 굵고 남자다운 느낌이 짙은 상이라면

 영섭은 여성스럽고 섬세한 이목구비의 조각 같은 얼굴이다.

 “우리 과는 맞아, 다른 과가 저렇게 입고 다닐 일은 없어”

 “그래, 그러니까 형네 과 애들이니까, 함부로 교수 욕 못하고 다니게..”

 “욕을 못하게?”

 “... 입 단속좀 시켜달란 말이야”

 “뭐야, 하하, 그 정도까지 해야겠냐”

 “해야지..”

 둘은 1층 로비에 나란히 서서, 창밖으로 그칠 줄 모르는 소나기를 보고 있다.

 진우와 영섭 둘 다 170대 중후반의 키.

 진우가 운동으로 잘 가꾸어진 체격인데 반해,

 영섭은 전반적인 몸의 라인이 여리여리하다.

 키는 영섭이 약간 더 크고 훤칠.

 잠시 입을 닫고 생각하던 진우가 다시 말한다.

 “형, 봐봐, 아무리 나나 형이나 거의~ 교양 듣는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좋아하고 따르는 교수님을, 철 없는 애들이 저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할말 안할말 못 가리고 떠드는게..

 교수님 얼굴에 먹칠을 안 하는지, 예의는 밥말아 드신지 오래고”

 “훗.. 난 고선혜 교수님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데~ 너처럼?”

 “하, 이 싸람이~~ 뭐라는 거야..

 나보고 수강 자리 하나 비었다고, 빨리 느라고 급하게 재촉한 사람 형 아냐?”

 그러자 영섭도 멋쩍은 웃음을 흘린다.

 그는 호텔관광학부지만 진우처럼 영문과를 이중으로 전공하고 있다.

 “그런가~? 기억이 잘 안난다~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아놔..”

 “ㅋㅋ 그래, 나도 고선혜 교수님 좋아해,

 그렇지만 뭐.. 저 정도 개인적인 의견은 큰 악의만 없다면 나눌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고, 사람들 다 듣는 자리에서 저렇게 선생 뒷다마를 까는데? 공공예절도 없고 애들이 기본 인성이 된 애들이야 저게~”

 “... 너 너무 흥분했다..

 쪼금 듣고 보니까 일리는 있는 것 같네”

 “가서 잘 생각해보고.. 형이 과 회장이잖아.

 나는 형이 애들한테 잘 타일렀으면 좋겠다”

 “알았어, 짜샤, 야, 근데 소나기 한참 오겠는데 어떻게 할래?”

 “음.. 일단 뛰자고, 언제까지 기다려”

 “차 가져 왔어 오늘?”

 “어, 가자! 주차장까지만 뛰어~”

 “아~ 이 자식..”

 -

 9월 둘째주의 월요일.

 결국 선혜는 규복에게 예고한 대로 개강 첫주에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규복은 그녀가 자신과 서진에게 뿐 아니라, 아는 영문과 교수들을 통해 혼동이 없도록 사전에 잘 공지했고 문제 없겠지..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진을 통해 들어보니 그녀 왈, 여론이 그다지 좋지가 않단다.

 학사관리와 학풍을 엄격하게 강조하는 미션계 명문 스쿨인 만큼

 비록 첫째주라고는 하지만 교수가 모든 수업을 불참했다는 사실은..

 일부 말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문제 삼고 있다는 말.

 “그런 거야.. 우리 생각하고는 달라..

 어딜 가나 남 욕하는 걸 즐기기 좋아하는 부류들이 있거든..”

 “저는 잘 이해가 안가요, 저하고 누나가 교수님 편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건 있지만..

 미리 얘기를 안 한 것도 아니고, 교수님이 학교에 충분히 알렸다면서요”

 “했는데.. 학생들은 학교랑 다르잖아.

 개강 첫주에 와보니까 교수가 안 나타나면, 너 같으면 기분이 어쩌겠어”

 “어쩌긴요.. 조교를 통해서 전달한게 있으니까 그런가보다 이해할 수도 있죠”

 서진이 옅은 웃음을 흘린다.

 “그래, 너 말대로 수업마다 내가 들어가서 말은 해.

 그래도 욕하는 사람은 있더라.. 나도 그런 사람들 원망스럽지만..

 어쩌겠니? 교수님이 돌아오셔서 잘 수습하길 바라는 수밖에.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교의 고객이라고”

 “....”

 서진은 침착한 어조로 규복을 타이르듯 말했다.

 그녀도 알고 있다.

 선혜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서진도 규복 못지 않게, 내색만 안 할뿐, 어떤 면에선 규복 이상으로 선혜를 걱정하고 초조해하는 마음이었다.

 -

 또다시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새 한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10월 중순은 대학과 대학원의 시험이 몰려 있는 기간.

 여느 때와 같이 규복은 선혜의 연구실에서 시험 준비를 돕느라 바쁘다.

 규복은 아직 선혜 교수의 과목을 듣는 '주전공자가 아니므로'

 선혜가 출제하는 영문과 강의의 시험문제를 타이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녀가 정성을 들인 30여개의 문항을 하나 하나 꼼꼼이 읽어본다.

 때마침 서진도 수업을 들으러 가고 없는 상황.

 선혜가 지시한 페이퍼를 타닥- 타닥- 받아치다가

 오늘 아침부터 한번도 보지 못한 선혜의 얼굴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긴다.

 ....

 요 며칠뿐 아니라 고선혜 교수의 상태가 최근 들어 부쩍 이상하다.

 규복과 서진 모두 피부로 체감하는 것은 물론, 규복과 가까운 진우를 통해서도 강의실에서의 선혜의 상태가 예전과 사뭇 다르다더라..

 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는 나날이었다.

 규복은 키보드를 기계적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빠져있다.

 개강하기 전전날 카페에서 만날 때만 해도, 상태가 저렇지 않았다.

 잘 생각해보니

 선혜가 일주일간 부산을 다녀온 이후로..

 근 한달 반동안 계속 정서적으로 선혜가 불안정했다는 판단이다.

 “.... 전화도 또 안받고.. 하아..

 전화 못 받으면 또 거시겠지.. 후, 일이나 하자..”

 선혜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아서 내뱉은 혼잣말.

 공강인걸 알고 걸었는데..

 다행이 10분 정도 지나자 선혜에게 전화가 온다.

 “응, 그래.. 미안해, 규복아.. 연구실이니?”

 “녜 아주머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가라앉으셨어요.. 어디예요?”

 “나 잠깐 몸이 안 좋아서.. 여기 교수님들 계시는 양호실이야”

 선혜의 음색이 잠겨 있다.

 “아.. 학교에 있으셨군요, 다행이다, 걱정했잖아요”

 “후훗, 그래? 고마워.. 나 걱정해주는 사람은 우리 규복이랑..

 서진이밖에 없다.. 호호”

 “에이.. 설마요.. 안 그래요, 아주머니~

 아주머니 알음알음 걱정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은근 많은거 아시잖아요..”

 “... 그랬으면 좋겠는데..

 너 언제까지 연구실에 있을 거야?”

 “저 지금 두시 반이니까, 오늘은 이따 4시에 한시간짜리 수업 있어요”

 “움... 그래.

 이따가 그럼 규복아, 다섯시에 끝나면 얼굴 좀 보자, 전화해줘”

 그러겠노라 전화를 끊었다.

 선혜의 목소리에 살짝 가래가 끓는게, 감기 기운이 있는 듯하다.

 끊고 난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아마 두주는 넘은 것같은데, 아주머니 아파하는게..

 그렇게 이번 감기가 오래 가나..?’

 5시에 강의가 끝나자마자,

 규복은 연구실에 들르지 않고 바로 주차장으로 향한다.

 선혜는 그녀의 차 안에서 규복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타자 곧바로 시동을 켰다.

 두 사람은 학교에서 일부러 조금 먼 거리의 교외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호숫가에 도착.

 선혜는 차를 세워두고, 규복에게 잠깐 내리자고 말한다.

 규복은 식당가도 아니고 좀 어중간한 자리인데.. 하며 의아하다.

 “나오니까... 좋지? 후훗”

 “예.. 좋아요.

 다른 누구랑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머니랑 같이 있으니까요”

 “키득, 너 그런 말 이상하게 들리는 거 알아?.. 누가 들으면 오해해..”

 “헤헷..”

 규복은 선혜가 어느 정도는 애정표현을 해도 받아주지만

 ‘좋아한다’ 같은 직접적 표현은 불편해할까봐, 그 말을 듣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선혜 앞에서 멋쩍어하며 그저 웃는다.

 “아주머니”

 “응~”

 “요즘 몸이 계속 안 좋으신 거죠..”

 “그러네 조금.. 감기가 쉽게 낫지도 않고..

 본의 아니게 너희들에게 계속 걱정을 끼쳐 미안한 마음이야..”

 가볍게 말을 하다 말고 콜록, 잔기침을 한다.

 선혜는 아직 더운 날씨인데도 목에 두터운 털 머플러를 했다.

 그리고 비교적 두터운 청바지와 하얀 셔츠를 입은 차림.

 “아니에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 항상 아주머니를 걱정하는 마음 뿐이죠”

 “그렇구나, 내가 왠지 너를 볼 면목이 없는 것 같네..”

 “그런거 아닌데..”

 “응, 알았어.

 저기, 규복아, 나 많이 아파보여? 지금.. 좀 어때”

 “아주머니요?..

 얼굴만 살짝.. 빨갛고.. 다 괜찮게 보여요”

 규복은 선혜가 그녀의 얼굴을 대놓고 관찰할 명분을 주자,

 한참을 선혜의 붉게 물든 얼굴과 목 주위를 바라본다.

 끈적거리는 시선으로 보지는 않지만..

 선혜는 감기 기운으로 빨간 몸 상태에..

 규복이 너무 뚫어져라 자신을 보니 무안해서 웃는다.

 “나 얼굴 그렇게 이상하니? 너무 한참 들여다본다, 너..”

 “에..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냥 본건데..

 아주머니 목이 꽤 빨갛네요, 보니까..”

 “응, 편도선염이 있대”

 “아.. 그러면 우리 그냥 집에 가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휴~ 저 왜 데리고 나오셨어요~”

 살짝 원망스러운 말투로, 아프면서 왜 나왔냐고 선혜를 다그친다.

 선혜는 규복이 그렇게 말해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걸 잘 알기에 기쁜 얼굴이다.

 “바람 좀 쐬고 싶었단 말야.

 그리고 너하고 같이 있는 시간도 한참 못 가져서..

 요즘들어 내가 계속 바빴으니까 미안했고..

 그리고, 나 오늘은..”

 “네..”

 “오늘은, 너한테 해줄 말이 있었어”

 “저한테요?”

 선혜는 붉그스름하게 충혈된 눈으로 규복의 눈을 빤히 본다.

 규복은 그 눈을 보면서 묘한 감각에 젖었다.

 충혈되었는데도 징그럽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도리어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인다고.

 ‘눈이 빨간데도 토끼처럼 이쁘네..

 분명히 아파서 얼굴이 빨간데도.. 매력이 넘친다니까’

 선혜가 그 말을 던져놓고 말이 없자

 규복이 그녀의 고운 옆 얼굴을 보며 묻는다.

 “어떤 이야긴데요?”

 “응... 내가.. 한동안 몸이.. 아픈 것보다도..”

 “예..”

 “몸보다도, 마음이 심적으로 크게 힘들었기 때문에..

 몸에도 큰 영향을 받고 아팠을 거야..”

 선혜는 목이 따끔거려서 중간 중간 말을 쉬어야 했다.

 규복이 선혜를 바라보는 시선에 안쓰러움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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